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이야기] 24. 증오를 품고 있지 않으면 증오는 없어진다.

Buddhastudy 2018. 8. 15. 21:10


오늘은 한 교만한 스님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얘기입니다.

띠사비구라는 한 스님이 계셨는데, 이 스님은 정반왕의 누이동생의 아들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님한테 어떻게 됩니까? 고정사촌이 되죠. 그런데 이 분은 나이가 아주 많아서 요즘 말로하면 한 50이나 60이 넘어서 출가를 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왕궁에서 높은 관직에서 호화롭게 오래 세속생활을 하다가 늘그막에 부처님법 만나서 출가를 했단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출가를 해도 살던 버릇이 금방 바뀌는 게 아니잖아. 그죠? 버릇이 안 바뀌어서 생겨난 문제에요.

 

우리로 말하면 이런 법당, 정사에 있는데, 많은 스님들이 부처님을 뵈러 왔어. 그런데 이 스님은 나이는 많지마는 신참스님이었어. 출가한지 얼마 안 돼. 요즘말로하면 사미란 말이오. 그런데 부처님을 뵈러온 이 스님은 출가하신 20년이 넘은 고참스님들인데, 나이는 이 사람보다 적을 수는 있겠죠.

 

고참스님들이 왔는데, 이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앉아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온 스님들이

이 분은 장로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 거요. 인사도 하니까 인사도 받고 이러는 거요.

그래서 장로인가보다해서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다리도 주물러 드리니까 떡 하고. 그러는 거요.

 

그런데 그 스님 중에 조금 분별심이 있었던 사람이 있었나 봐요. 그냥 좋게 넘어갔으면 됐는데, 아무리 봐도 못 보던 사람이라, 장로면 다 내가 알 수 있는데, 이 사람은 낯선 사람인데 어디서 왔나싶어서 물어봤어.

 

안거는 몇 차례나 났습니까?” 이러니까

아직 한 철도 안 났습니다.”

그러니까 이 스님이 야단을 친 거요.

 

아니, 안거도 한 번도 안 났으면서 그러면 신참이잖아. 요즘 말하면 사미잖아. 그런데 비구스님들이 오셨는데, 다 출가하신지 오래된 스님들이 오셨는데, 어떻게 일어나서 인사도 안 하고 거만하게 그렇게 앉아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어깨를 주물러 줄때도 아무소리도 안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하고 야단을 쳤어.

 

그러니까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내가 어깨 주물러 달라 그랬나? 너희가 와서 주물렀지 않았냐? 네가 와서 먼저 인사하지 않았냐? 내가 뭘 잘못했냐?”

 

그러니까 또 부처님께서는 모든 차별, 계급을 철폐를 하셨는데, 절에 먼저 들어왔다. 늦게 들어왔다. 나는 이 계급을 반드시 철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왜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서 이런 식으로 신참이나 구참이니 이런 식으로 하느냐? 절에 먼저 들어왔다고 나이도 얼만 안되는 게 고참이라고 윗자리에 앉고.”

 

그러니까 스님들이 기도 안 찬단 말이오. 그러니까 또 뭐라고 한 거요.

도대체 절에 들어와서 뭘 배웠느냐? 어떻게 저런 사람이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느냐?”

요즘도 이런 게 많은 거 같아요.

 

그래서 조계종에서는 40 넘으면 안 받는다 그러잖아. 왜 이런 게 나왔을까? 세상에서 온갖 습관이 든 사람들이 법에 귀의하면 참 신참으로서 겸손하게 해야 되는데, 일단 머리만 깎고 스님복만 입으면 어때요? 나이도 많겠다, 아는 것도 많겠다, 세상의 여러 가지 경험도 있겠다 폼 잡고 있으니까 승단의 질서가 잘 안 잡히고, 소위 출가한 스님들의 그런 어떤 공동체가 무너지는 게 아닌가. 점점 세속물이 많이 들어오는 게 아닌가. 아마 이런데서 이런 제도도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즉, 담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옳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는 되지마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이유는 이 부처님의 법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평등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신분이 높든, 신분이 낮든, 남자든, 여자든, 신체장애가 있든지 없든지, 다 공평하게 법을 듣고 기뻐하는 사람은 법을 따라 정진할 권리가 있는 거요.

 

그런데 나이가 많다고 여자라고, 신체장애가 있다고, 과거 전과가 있다고 이런 것으로 인해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부처님께서는 천민도, 유녀도 또 신체장애자도, 120살 먹은 노인도 온갖 사람을 받아들이는 이 근본법하고는 멀죠.

 

그러나 우리가 부처님처럼 그런 지혜의 눈이 없는 한은 이런 세속적인 잣대로 몸이 건강한가. 전과가 없는가. 고등학교는 그래도 나왔는가. 뭐 이런 걸 갖고 지금 재단을 할 수 밖에 없는 게 또한 우리 현실입니다.

 

아무튼 이 사람은 나이도 얼마 안 된 것들이 자기를 비난했다 해서 화가 너무 난 거요. 그래서 그 스님들 보고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 당신들은 여기 왜 왔는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을 뵈러왔습니다.”

그래, 부처님을 뵈러 왔으면 내가 누군지 너희가 좀 알아야 될 거 아니냐? 내가 어떤 사람인데 너가 나한테 이렇게 비난을 하는가?” 즉 부처님하고 사촌 친척간이다. 이것이 또한 자기 나름대로는 자랑스럽기도 하고, 교만을 부린 원인 된 거요.

 

출가할 때는 이 지위가 높다든지, 나이가 많다든지, 이런 걸 다 버려야 되는데, 이 사람은 법을 듣고 좋아서 출가는 했는데도, 아직도 이런 생각으로 거만을 떠는 거란 말이에요.

 

자기 잘못은 모르고 자기 나름대로는 너무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앞장서서 부처님한테 가서 일러바쳐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부처님한테 간 거요. 너무 억울해서.

 

그러니까 다른 스님들도 저 분이 하는 거 보니 뭔가 엉뚱 소리를 할 것 같아 따라간 거요. 그래서 두 분쟁 당사자들이 부처님한테 가게 되고, 부처님 앞에서 이 띠사비구가 먼저 말을 하는 거요.

 

부처님, 이 젊은 비구들이 저를 보고 심한 욕설을 했습니다. 어떻게 수행자가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부처님께 문제제기를 한 거요.

 

그러니 부처님께서 물끄러미 보더니 부처님이 이 띠사비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몰라요? 알지. 분쟁이 왜 생겼는지 하는 꼴을 보면 짐작이 갈 거 아니오. 그래서 부처님이

띠사비구여

이 분들이 올 때 자네는 어디 있었는가?”

, 제가 법당에 있었습니다.”

그럼 법당에 있었으면 이 분이 올 때 자네는 일어나서 공손히 인사하며 맞이했는가?”

아닙니다. 그냥 앉아있었습니다.”

이 분들이 왔을 때 자네는 발 씻을 물을 떠서 갖다드렸는가?”

아닙니다.”

그럼 이 분들이 왔을 때, 양치질할 물은 떠다드렸는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뭐냐하면 외부에서 손님이 올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게 있고, 또 신참비구가 고참비구에게 어떻게 예의를 갖추어야 되는가하는 계율이 있다. 이 말이오. 그것을 하나하나 부처님이 물으시니까, 이 사람이 하나도 지킨 게 없는 거요.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자네는 신참비구로서 계율을 지키지 않았지 않는가? 그런데 어떻게 자네가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가? 그러니 마땅히 스스로 참회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흥분해서 억울하다가 찾아온 사람에게 하나하나 조목조목, 이게 부처님 가르침의 특징이죠. 잘못된 생각을 갖고 왔을 때 부처님은 사실이 어떤가를 항상 점검을 하세요. 그냥 이 사람 말만 듣고,

그래이러고 딴 사람을 야단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보고 무조건 야단치거나 이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이게 부처님의 큰 특징이에요. 그래서 부처님의 유언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나중에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의 말씀을 갖고 논쟁이 생길 수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여기에 대한 판단 기준이에요.

 

어떤 사람이 와서 이것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이다. 내가 언제 어디서 나하고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주장을 한다.

 

그럴 때 , 부처님께서 직접 들었다하니까 그런가 보다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또 반대로 자네 혼자 들었잖아. 자네가 만든 말인지, 그걸 어떻게 알아?”하고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 된다.

 

그 얘기를 잘 경청해 듣고, 지금까지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진리에 대한 말씀과 계율하고 견주어 비교해보고, “, 그것은 합당하다. 과거에 부처님께서 하신 법문과도 내용이 같고, 이 부처님께서 어떤 실천지침으로 내려주신 이 계율과도 같다.” 이렇게 생각이 된다면 비록 인정되고 있는 현재의 문서에 경전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어때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그가 그럴듯한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것 갖고 다 견주어보고 이것은 법에 합당치가 않다. 이렇게 결론이 나면 그것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까 앞에 이건 부처님이 말씀하신 거다하고 단서가 붙었다 그래서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해도 안 되고, ‘이건 부처님 말이 아니다라고 단서가 붙었다고 해서 그건 무조건 배척해도 안 된다.

 

그 내용이 진실한가. 이거야. 진실한가의 문제는 그것이 사실인가. 여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법도에 맞는 얘기인가.’ 이렇게 먼저 파악하고, 여기에 대해서 법이다. 법이 아니다라고 판정을 해야지, 그냥 형식만 갖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부처님의 말씀에 즉, 우리가 요즘 경전에 대해서도 위경이니 진경이니 이런 논쟁이 있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이게 역사적으로 나중에 나왔다. 그렇다고 이건 위경이다. 이렇게 평가하면 안 돼요. 그 내용이 어떤가? 이걸 중심에 놓고 살펴야 한다는 거요.

 

그러니 그 사람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편들거나 그 사람이 다른 사람 틀렸다고 한다고 해서 틀렸다고 단정하거나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거요. 사실 확인을 먼저 해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억울하다. 부당하다고 제기하는 사람에게 먼저 사실 확인을 하죠.

자네는 어떻게 했나?” 네가 틀렸다. 네가 옳다라는 걸 제외해 놓고. 사실 확인을 요렇게 하나하나 다 점검해 보고, 그 사실 확인 결과로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도

, 내가 계율을 어겼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이게 스스로 뉘우친다. 스스로 깨우친다.

 

남에 의해서 강제로 규정받는 게 아니고, 자기 스스로 깨우치도록 해주는 거요.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깨달음에 초점이 맞춰져있습니다.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우친다. 스스로 무지를 깨우친다. 스스로 잘못을 깨우친다.

 

이렇게 해서 그 띠사비구는 , 내가 잘못했구나.” 이게 알아졌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를 했던 거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나이가 아무리 들었다고 하더라도

세속에 있을 때 어떤 지위에 있었다 하더라도

출가할 때는 그런 걸 다 버려야 한다.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법도에 따라 정진을 해야지

그런 걸 가지고 부처님하고 나하고 친척간이다.’ 이런 걸 가지고 폼을 잡거나 이렇게 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옳지가 않다.

이렇게 하나하나 지적해서 크게 뉘우쳐서 오히려 수다원과를 증득하도록 이렇게 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이 거만한 비구만 그렇게 한 게 아니고, 다른 비구들을 모아놓고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저 띠사비구는 저렇게 거만한 게 지금 나이도 많고 세상에 살 때도 이렇게 행동했고, 그래서 절에 들어온 지가 얼마 안 되는데, 그게 어떻게 버릇이 하루아침에 바뀌겠느냐? 그러니 너희들이 그 비구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냥 신참은 이래서는 안 된다. 비구는 이래야 된다.” 이런 것만 갖고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의 처지를 이해를 해야 된다.

 

그러시면서 저 비구는 이 생에만 저런 게 아니고, 저 생에도 저렇게 거만했다. 이런 얘기를 해요.

꼭 그건 전생이라고 보기보다는 출가한 뒤만 그런 게 아니라 세속에 있을 때도 버릇이 원래 사람이 저렇다. 그러니 그를 이해해라.

 

이런 법문을 또한 이쪽사람에게 아울러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이렇게 말했어요.

 

그는 나를 욕했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켰고, 내 것을 빼앗았다고 증오를 품고 있으면 증오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는 나를 욕했고 나를 때렸다.

그는 나를 굴복시켰고, 내 것을 빼앗았다고 해도 증오를 품고 있지 않으면 증오는 없어진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마라.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마라.’ 이런 말이 나오죠.

 

그러니까 이 띠사비구는 스스로 교만했기에 그 교만을 알아차리도록 해서 깨우쳐줬지마는 그러면 이 고참비구들에게는 바로 신참비구의 처지, 그의 형편을 너희들이 이해해야 된다.

그래서 오히려 그를 수용해줘라. 그걸 아니꼽게 보고 계율을 무턱대고 정하고 이러지 말고, 그의 처지를 잘 이해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를 미워하게 되고 그러면 그는 또 억울하다고 생각하니까

 

이쪽 기준은 뭐요? 절에 들어오는 순서대로 순서를 매기고

이분은 자기 유리한데로 뭐로 순서로 매긴다? 나이로 순서를 매긴단 말이오.

자기 유리한데로 자꾸 하려고 그러죠. 사람은.

 

우리 세상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학번으로 유리하면 학번으로, 나이로 유리하면 나이로, 군대 가면 입대한 순서대로, 절에 가면 출가한 해를 기준으로 해서 질서를 잡으려하고, 어디든지 다 기본적인 질서가 필요하지마는 항상 마음이 교만하면 그런 것으로 하려고 한다. 남자는 남자라고 큰소리치려고 그러고.

 

그래서 갓 출가한 사람은 항상 출가한 것을 기준으로 해서 나이를 보지 말고 남녀를 보지 말고, 겸손해야 하고, 또 나이 어리지만 오래 출가한 스님들은 비록 그 비구가 갓 출가를 했다하더라도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면 나이에 따라 또 공경해서 대우를 해주는 게 필요하다.

 

요즘 우리 사회가 남녀평등사회가 되지 않습니까. 그죠?

그래서 비구니스님들은 남녀평등에 근거해서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런 걸 기준으로 해서 출가한 횟수로 비구 비구니 따지지 말고, 출가한 횟수로 따지자.

 

이 비구스님들은 옛날 법도를 끄집어내어서

비구니가 출가할 때 부처님이 어땠다 하는 그걸 끄집어내어 그걸 또 적용을 하려고 그러고. 이래서 늘 적용이 다릅니다.

 

미국에 가보면 부부싸움이 많아요. 우리 교민들이. 왜 그러냐?

남편은 자기한테 유리한 거는 한국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인보고 설거지도 하라. 뭐하라 이런 거 합니다.

그리고 또 어떤 건 남녀평등을 적용하느냐? 미국에 오면 여자들이 다 직장에 다니잖아. 그죠? 그러니까 자기 부인보고 다 직장 나가 돈 벌라고 그래요. 그렇게 적용을 해요.

 

그런데 아내는 또 어떻게 적용하느냐? 미국 오니까 남녀평등이잖아. 그러니까 설거지도 같이 하고 뭐도 같이하고 평등을 적용합니다. 그러면서 남자가 돈 벌어야 된다. 이것은 한국식으로 적용을 합니다.

 

그러니까 남편입장에서는 아내가 못 마땅하고, 아내 입장에서 볼 때는 남편이 못 마땅한 거요.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살 때보다 갈등이 더 심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사회에 감으로 해서 오히려 남편은 그 사회를 보면서

 

내가 부인한테 너무 함부로 했구나. 한국 사회 안에서는 그게 먹혀들지만, 여기서는 그게 아니구나. 내가 이 땅에 살려면 평등하게 대해서 모든 걸 다 공평하게 해야 되겠다.’ 이렇게 자기 기득권을 내려놓고,

 

또 부인은 거꾸로 미국에 와서 보니까 무조건 남편한테 기대고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 이렇게 해서 또 자기를 뉘우치고 이렇게 하면 여기선 싸웠더라도 거기 가서는 화합이 될 수가 있단 말이오.

 

그런데 여기서 잘 지냈던 사람마저도 거기가면 갈등이 생기는 거요. 이것도 서로 달리 적용을 하는데 따른다. 유리한대로 적용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것을 뛰어넘어서 항상 상대를 존중하는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데서 우리가 띠사비구의 경우에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양쪽에 어떻게 말씀하셨느냐, 이런 것을 잘 새겨서 우리 생활에 적용을 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