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23. 함께 살면서 화합을 하려면

Buddhastudy 2018. 8. 9. 19:45


안녕하세요. 오늘은 교단 내에서의 분쟁이 생겼을 때, 부처님께서 어떻게 가르치셨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는 많은 나라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코삼비라고 하는 나라도 있었습니다. 그 코삼비 지역 비구스님들 사이에 분쟁이 생겼습니다. 부처님도 그곳에 계실 때였는데요.

 

당시에 스님들 중에 계율, 그러니까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계율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스님도 계셨고, 그 다음에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스님도 있었나봐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한 분은 율사고, 한 분은 강사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요.

 

적어도 율사나 강사가 되려면 출가한 지 만 20년 정도 된 고참 스님들이어야 한단 말이오.

그런데 이 강사 되시는 스님이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 율사 되시는 스님이 갔는데, 그 화장실에 정해진 규칙을 안 지킨 것 같아. 보니까.

 

요즘 우리 정토회로 말한다면 휴지를 쓰지 말고 물로 씻자든지, 이런 규칙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보니까 휴지를 버려놨다든지 이렇게 됐겠죠.

 

그래서 그걸 문제제기를 한 거요. 그걸 본인을 불러서

내가 보니까 당신이 이렇게 한 것 같은데, 그것 좀 고치면 어떻겠소. 계율을 지키면 어떻겠소.” 이렇게 했으면 이게 아무 문제가 안 되었을 텐데,

 

이분께서는 자신의 친구나 자기가 가르치는 제자들과 얘기를 하면서

그 말이야, 강사나 되는 스님이 계율도 안 지키고 그래서 무슨 남을 가르친다고 그래.” 이렇게 약간의 비난조를 얘기를 하게 된 거요.

이런 소문이 퍼져나가서 강사스님에게 들린 거요.

 

이 강사스님은 자기가 그렇게 한 기억이 별로 없는 거요. 그래서 항의를 한 거요. “그런 구체적인 증거가 어디 있느냐?” 하는 문제고,

 

두 번째는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그걸 개인적으로 지적을 하지, 그렇게 뒤에서 쑥덕거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 쑥덕거리는 것도 계율에 어긋나는 거 아니오.” 이렇게 되니까, 이 율사스님이

, 제가 잘못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됐으면 되는데,

아니 이 사람이 잘못해놓고, 지적을 하면 반성을 하기는커녕 도로 잘했다고 한다. 그게 어떻게 태도요?”

이런 식으로 힐란을 하게 된 거요.

 

이렇게 해서 계율을 어겼느니, 계율을 어기지 않았느니, 지적을 제대로 했느니, 안 했느니, 이런 문제로 옥신각신 하게 되면서 이것이 점점 분쟁이 커진 거요. 처음에는 두 사람의 분쟁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패가 형성된 거요.

 

이 율사스님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 강사가 잘못한 것 같아. 율사스님 뭐 딴 얘기한 것도 아니고, 규칙을 어긴 걸 어겼다고 얘기했으면 잘못했다고 참회하면 될 텐데, 참회를 안 하고 안 어겼다고 하는 것은 그것도 중진스님이 그럴 수가 있느냐, 남을 가르치는 강사가 그건 좀 해도 너무했다. 이렇게 얘기를 들어보니까 문제가 있다.” 이렇게 생각이 들었던 거고.

 

이 강사스님을 따르는 사람들, 그 분 얘기를 들은 신참스님도 아니고, 이미 고참스님인데, 조용히 불러서 얘기하지 그걸 뭐 사람들이 다 있는 앞에서 얘기할 건 뭐고, 또 한 번 얘기했으면 됐지, 그걸 뭐 한번 두 번 계속 얘기를 하는가. 율사면 율사지 그런 식으로 하는 게 그게 율사인가? 뒤에서 험담하지 마라하는 계율도 있는데 자기도 계율을 어기지 않았느냐.”

 

이런 식으로 해서 논쟁이 점점 가열이 되게 된 거요. 그러니까 패가 형성이 된 거요.

그랬을 때, 부처님께서 그 얘기를 들으시고 두 사람을 불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율사에게는

남의 허물을 그렇게 함부로 말해서는 아니 되오. 그것도 갓 출가한 신참스님들도 아니고 오~~래 이미 절에 들어 온지 오래된 스님인데, 함부로 허물을 말하고 지적하고 비난하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수행자로서 옳지가 않소. 그러니 그만하시오.” 이렇게 얘기를 하고.

 

강사스님을 불러서는

허물이 있다고 지적을 받았으면 참회를 해야 되는 게 수행자 아니오. 설령 내가 허물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승단 안에 분쟁거리가 된다면 나로 인해서 말이오. 그렇다면 내가 진실하게 참회를 해버리면 이게 쉽사리 해결되는 거 아니오. 그런데 이거를 출가한 지 오래된 스님이 나는 계를 범하지 않았다고 이렇게 자꾸 항변을 해서 교단 전체가 분쟁이 되도록 하는 것은 수행자로서는 옳지가 않소.” 이렇게 가르침을 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이런 부처님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처님, 가만히 계십시오. 이런 사소한 문제들은 저희들이 해결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부처님의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은 거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대중들을 모아놓고

이 승단은 청정하고 화합해야 한다.’

이 청정하다는 것은 욕심이 없어야 된다. 탐욕을 버려야 된다. 이런 얘기고,

화합해야 된다는 것은 자기주장이 옳다는 고집을 버려야 되는 거요.

 

우리 탐진치 삼독으로 말하면 탐심을 버리고, 진심을 버려야 만이 이 승단은 청정하고 화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화합이 되는가? “화합하라. 화합하라.” 이런다고 화합이 되는 게 아니다.

대중이 함께 모여 살면서 화합을 하면 6가지를 점검해 봐야 된다. 이 말이오.

1. 같은 계율을 같이 지켜라.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이 사람들이 계율을 같이 지키라는 거요. 계율을 아랫사람만 지키고 윗사람은 안 지킨다든지, 남자만 지키라고 그러고 여자는 안 지킨다든지, 여자만 지키고 남자는 안 지킨다든지, 가난한 사람은 지키고 부자는 안 지켜도 된다든지, 이렇게 하면 내부의 분쟁이 생긴다. 그러니까 같은 계율을 같이 지켜라.

 

요즘 우리 식으로 말하면 어떤 게 될까?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법은 모든 사람에게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는 저 바닥에 있는 사람까지 그것이 같이 적용이 되어야 된다. 그래야 분쟁이 없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에는 이렇지가 않죠. 법을 만드는 사람 국회의원, 법을 만드는 사람들부터 법을 안 지키죠. 선거법 누가 만들었어요? 자신들이 만들었죠. 그래놓고 선거법 안 지키잖아. 그죠? 자기들이 하는 말이 뭐요? 선거법 그거 다 지키고는 선거하면 진다는 거요. 그거 갖고는 선거할 수가 없다. 그럼 그런 법은 만들지 말아야 되는 거요.

 

그러니까 법을 만들고 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거요. 그러니까 법을 만든 사람부터 법을 지키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윗사람부터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아랫사람보고는 지켜라 하니까 역시 여기도 불만이 생기죠.

 

그래서 어떤 말이 나옵니까? 높은 사람은 안 지켜도 되고, 아랫사람은 지켜야 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안 지켜도 되고, 돈 없는 사람은 지켜야 된다. 그래서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다. 이런 말까지 나오게 된단 말이오. 이렇게 될 때, 사회가 분쟁에 휩쓸리게 된다.

 

 

2. 의견을 같이 맞춰라.

어떤 문제가 생기면 둘러앉아서 의견을 맞추라는 얘기에요.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해서 가고 이러지 말고, 사람들이라는 것은 서로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둘러앉아서 의견을 조율하라는 거요.

 

의견을 서로 맞추어라. 의견을 같이 맞춰라. 이런 계율이 생긴 것은 사람은 의견이 서로 다를 수가 있다. 대부분 다르다는 얘기에요. 내가 생각할 때는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한다는 거요. 달리 생각한다는 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 의견을 서로 맞추어라.

 

오늘 우리식으로 말하면 뭐가 될까요?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결과만 중요시 하지 말고 그 과정도 소중하게 생각해라. 민주적인 어떤 절차를 거쳐라. 이런 얘기에요. 이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분쟁이 일어난다.

 

 

3. 공양 받은 것을 똑같이 나누어라.

스님들이 밖에 가서 공양을 해오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많이 얻어오고 어떤 사람은 적게 얻어오고 이러겠죠. 그럴 때 그것을 똑같이 나누어라. 같이 나눠먹어라 이 말이오. 어떤 비구는 가서 못 얻어오고, 어떤 비구는 가서 가득 얻어 오면 가득 얻어온 사람은 못 얻어온 사람에게 줘서 같이 나눠먹어라.

 

이 공양물이 서로 다를 때, 이것 또한 분쟁의 요인이 된다. 요즘 말하면 뭐가 될까요? 경제적은 평등을 말하겠죠. 이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된다.

 

저도 이 정토회에서 이렇게 살아보면 일은 다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수행하고 봉사하고 이렇게 하는데, 내가 주로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법문하는 일을 하다가 보니까, 또 얼굴을 맞대고 상담하는 일을 하다보니까, 여러분들이 구체적으로 이익을 봤다고 생각되는 것은 누구에요? 법륜스님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돈을 가져와도 사무국에 갖다 주기보다는 스님한테 줄때가 있고, 선물이나 이런 것도 여기에 있는 행자들이나 우리 실무자보다는 누구한테 많이 갖다 주고? 법륜스님한테 많이 갖다 줘요.

 

그러니까 내가 생각할 때 내가 받은 거니까 내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다 얼굴 내세우는 일로 하려고 그러지, 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이런 일 하려고 그러겠어요.

 

그러니까 우리 몸은 비록 다른 사람을 우리가 구분할 때, 얼굴을 보고 구분하죠. 얼굴만 갖고 살 수 없잖아. 그죠? 보이지 않는 많은 부분, 발도 있고, 신체의 각 부분이 있단 말이오. 그런 거에 의해서 이게 같이 이루어지는 거란 말이오.

 

음식을 먹으면 그 영양분이 모든 부분에 골고루 가야지, 얼굴보고 남한테 공양을 얻었으니까 영양분이 얼굴만 딱 가고, 발은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발에는 가지 마라. 주지 않는다면 금방 그것은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이런 공양물을 모아서 그것이 누구에게 들어왔든, 여러분들 주는 사람은 꼭 그래요.

스님, 이거 딴 데 쓰지 말고 스님혼자 드세요. 스님 꼭 입으셔야 되요. 딴 사람 주면 안 돼요.”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일 뿐이죠.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이에요.

 

들어오는 것은 다 모아서 양말, 돈 등을 다 모아서 내부에서 적당한 숫자가 될 때 공평하게 나눠 갖게 될 때, 사람들이 자기가 꼭 어떤 역할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고집을 하지 않게 되고, 내부가 화합하게 된다.

 

음식도 같이 먹고, 물건도 같이 쓰고, 생활도 같이 하고, 누구라고 해서 특별하게 하고, 이렇게 하지 않을 때 내부가 화합이 되고, 이 차이가 많이 나면 날수록 갈등이 생긴다.

 

오늘날 우리 승단에서도 마찬가지죠. 과거에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사찰들 중에서 관광지하고 결합되어서 관광수입이 많은 사찰도 있고, 영험도량이라고 소문나서 기도비가 많이 나오는 곳도 있고,

또 어떤 지역은 꼭 거기 절이 있어야 되고, 사람들이 교화를 위해서 있어야 되는데도 수입이 별로 없는 절도 있고,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자기가 맡은 그 절에 대한 직분만 다하고 그것을 전체 불교발전을 위해서 또 관계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서 균등하게 사용된다면 누가 꼭 유명한 절주지만 맡으려고 하겠어요. 그런데 그것이 일부가 사유화 되니까 이런 분쟁의 소지가 생겨나게 된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뭐라고 하셨다고요?

받은 공양을 똑같이 나누어라.”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요. 우리 사회가 첨단사업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수출이 잘 되어 돈이 엄청나게 벌리고, 그 동안에 해왔던 전통적인 산업들은 사회가 바뀌면서 지금 손실이 생기고, 이렇게 되면서 사회의 빈부격차가 굉장히 많이 나죠.

 

전체적으로 보면 성장한다 하지마는 다수대중의 입장에서는 수입이 점점 줄고 있는 거요. 그러니까 이럴 때 우리가 이것을 자기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분배를 통해서 조율을 해나간다면 이게 우리가 사회 안전망이라고 그러죠. 이런 것을 잘 구축했을 때, 국민적 합의, 국민적 화합이 이루어지게 된다.

 

 

4. 한 장소에 같이 모여 살아라.

이것은 일반인들이 들을 때는 좀 이상하게 들릴 거요. 그러나 승가공동체에서는 스님들이 개인생활하지 말고 공동생활해라. 이 공동생활의 의미가 뭐겠어요? 투명하다는 거요. 먹고 입고 사는 이 생활이 공개되어 있어서 투명하다. 그러니까 투명한 사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것이 많이 차단되어 있죠. 그래서 비록 대통령이 있고, 장관이 있고, 국회의원이 있고 다 직분이 서로 다른데, 그들이 뭘 먹고, 뭘 입고 어떻게 생활하는지가 우리 사회에게 다 투명하게 밝혀져 있다면 우리는 굉장히 국민적 화합을 가져올 거요.

 

비록 그들은 직분상,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좋은 집을 쓸 때도 있고, 좋은 차를 탈 때도 있지마는 그러나 개인적인 생활은 나나 다름이 없다. 이렇게 투명한 사회가 될 때, 요즘 우리 사회가 점점 투명해져 가고 있죠. 옛날에 비해서. 얼마나 많이 투명해 가고 있습니까. 이런 투명한 사회를 말한다.

 

같이 모여 살란 말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거요.

 

그래서 우리 사회 안에서도 돈은 국내에서 벌고, 돈을 빼돌려서 해외에서 호화판으로 살고, 이러면 사회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습니까. 이것도 함께 사는 게 아니고, 자기는 별개로 생활하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되어서 국적법에 대해서도 얘기가 되고 이렇게 되는 거요.

 

 

5. 서로 자비롭게 말하라.

서로 의견도 맞추고, 경제적으로도 균등하게 살고, 이런 여러 가지를 잘해도 말을 잘못해서 시비가 생길 때 많아요. 우리 중에도 가끔 그런 사람이 있죠. 남에게 이익을 챙기는 게 아니고, 늘 남한테 밥도 사주고 뭐도 사주고 항상 봉사도 하고 보시도 하는데, 꼭 말 한마디 잘못해서 지은 복을 다 까먹어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이 말이라는 게 참 중요합니다. 옛 속담에 무슨 말이 있어요?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이런 말이 있죠. 그러니까 이 말을 자비롭게 해야 됩니다. 거짓말뿐만 아니라, 진실을 말해도 말을 퉁명스럽게 그리고 욕설을 섞어서, 또는 뭘 하고도 자기 자랑을 너무 해버리거나 이렇게 하면 공덕이 그냥 순식간에 없어져버려요.

 

그래서 말을 자비롭게 해야 된다. 말을 잘못해서 말버릇 때문에 얼마나 오해가 생깁니까.

그런데 수행을 자꾸 하면

다른 사람이 말을 좀 잘못하더라도

바르게 듣는 귀가 있으면 또 뛰어넘을 수가 있어요.

 

우리 신도님 중에 듣는 귀가 열린 분이 계세요. 전에는 남편이

에이고 이 못난 것.” 이러면 정말 자기가 못났다고 생각하고

그래, 잘난 여자하고 살지 왜 나하고 결혼했냐?” 이러고 맨날 싸웠는데, 요즘은

에이고 이 못난 것.” 하면

, 예쁘다는 소리구나.’ ? 예쁘니까 나하고 같이 이렇게 생활을 하지. 안 예쁘면 왜 이렇게 같이 살겠어. 그러니 예쁘다는 표현을 저렇게 하는 거구나. 라든지.

 

절에 가려면 절에 가지마라. 가려면 오지마라.” 이렇게 말할 때,

전에는 왜 못가게 하느냐이렇게 싸웠는데,

요즘은 빨리 갔다 오라는 말로 들린단 말이오.가려거든 오지마라.” 이 말이 갔다가 빨리 오너라.” 이렇게 들리니까,

가려거든 가지마라.” 이러면 빨리 오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든지, 말버릇이 나빠도 듣는 귀가 열리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듣는 귀가 열리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 우선 말을 잘해야 된다. 이런 게 하나 있고요, 그런데서 말을 자비롭게 해라. 서로 자비롭게 말해라.

 

 

6. 남의 뜻을 존중하라.

남의 뜻을 존중하라는 게 무슨 말일까? 사람은 다 뜻이 서로 달라. 내가 상대편 얘기를 들어보면 저건 틀렸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죠. 그러면 우리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의 뜻을 존중하라는 것은 상대편 말이 뜻이 다 맞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죠. 이렇게 이해하라는 말이에요.

 

저도 내 맘에 안 드는 말을 누가 하거나 하면

그걸 말이라고 해? , 그걸 생각이라고 낸 거야?” 이렇게 말해버릴 때가 있어요. 이러면 얼마나 감정 상하겠어요.

, 그럴 수도 있겠다. 너는 그렇게 생각했느냐.” 이렇게 그 입장에서 그것을 이해해 준단 말이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서로 화해가 가겠습니까.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에 그렇지마는 내가 보기에는 이런데이렇게 우리가 풀어간다면 됩니다.

지금 북미 간에 대화가 일었습니다. 남북 간의 대화도 마찬가지에요.

, 저 놈들 봐라. 나와서 자기 고집대로 뒤로만 탁 받고 그냥 나머지는 입 싹 닦아버린다.” 이렇게 이쪽에서 보면 정말 참 웃긴 놈들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고,

 

상대편입장에서 볼 때는 어때요?

당국자회담에 나오면 비료 준다고 해서 나왔더니 주면 되지 뭘 딴 얘기를 자꾸 하느냐.” 이거야.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또 다른 얘기를 하게 된다.

 

그랬을 때 우리가 상대편에 서서 상대편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해에요.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옳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렇게만 우리가 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서로 다른 의견, 서로 다른 뜻을 가진 사람끼리라도 화합해서 살아갈 수가 있다.

 

내가 법회 갔다 늦게 왔을 때 남편이 화를 냈다. 그러면 우리는 대부분 어떻게 대응합니까? “내가 뭐 나쁜데 갔나? 법회 갔다 왔는데이렇게 대응하기가 쉽다. 이 말이오.

 

그 분은 내가 법회 갔다 왔는지 안 갔다 왔는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자기 지금 저녁 먹어야 되는데 저녁을 안 차려줬다. 이 생각만 하고 얘기 하니까 그렇게 얘기할 때

아이고, 늦어서 죄송합니다. 배고팠죠.”

 

그 사람이 뭐라 그러든 상관없이 이렇게 대응을 하면

알기는 알고만이러고 넘어간단 말이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잘 안 돼요.

 

상대가 하는 말을

그 사람의 그냥 생각으로 안 받아들이고

늘 내 입장에 서서, 나를 비난한 것처럼 이렇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나도 항변을 하게 되고,

이것이 사소한 일을 갖고 분쟁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

 

이런데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이 6가지를 잘 우리가 살펴서 지켜나간다면 분쟁은 사라지고, 공동체 안에 화합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니 우리나라 안에서도 이것을 잘 살펴야 되고, 가정 안에서도, 각 단체 안에서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나가서 우리가 화합하는 그런 생활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