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부처님이야기

[법륜스님의 부처님 이야기] 40. 유익하지 않을 때는 침묵을 지켜라

Buddhastudy 2018. 12. 19. 19:58


안녕하세요.

수행자들은 전통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합니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말없는 침묵을 더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다.’ 또는 성스러운 침묵이다.’ 이런 말이 있어요.

그렇게 침묵을 중요시하는데, 왜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많은 말을 하셨는가?

또 이런 의문을 제기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말을 하려거든 법에 대한 말을 해라.”

법에 대한 말을 하지 않으려거든 침묵을 지켜라.”

그럼 이런 얘기는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가?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있을 때 얘깁니다.

스님들은 아침이 되면 가사를 걸치고 바루를 들고 사위성으로 들어가서 걸식을 합니다.

탁발이죠. 기러기처럼 외줄로 한 줄로 조용히 걸어가셔서 집집마다 다니면서 탁발을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가서 식사를 마치고 바루를 씻어두고 가사를 벗어서 접어두고 그리고는 조용히 명상을 합니다.

 

그런데 이 날은 이렇게 탁발을 하고 돌아와서 식사를 한 후에, 둘러앉아서 스님들이 잡담을 하고 있었어요. 출가하기 전, 세속에 있을 때 나름대로 직업이 있었을 거 아니오. 각자 출가하기 전에 살았던, 그 세상사 얘기를 아주 재미있게 했어요.

 

한 사람이 , 나는 출가하기 전에 코끼리 길들이는 직업을 갖고 있었는데, 그 덩치가 큰 코끼리를 말이야 이렇게 저렇게 길을 들이면, 코끼리를 내가 장난감 같이 갖고 놀 수가 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 그래도 나는 그 코끼리를 길들여서 이렇게 저렇게 했다.” 이렇게 자랑을 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딴 스님이

, 그게 뭐가 어렵냐? 나는 야생마를 길들이는 일을 했는데, 그 펄쩍펄쩍 뛰는 야생마를 순한 양처럼 길들여서 말과 내가 한 몸이 되어서 나는 말을 타고 다닌다.

이렇게 야생마 길들이는 거에 대해서 자랑을 했어.

 

그러니까 한 사람이

살아있는 짐승 길들이는 게 뭐가 어렵냐? 나는 마차를 모는 일을 하는데, 이 마차를 길이 나쁜데도 좁은데도 어떻게 모느냐? 굉장한 기술이 요하는 거야.”

이렇게 마차 모는 기술에 대한 자랑을 했더니

 

어떤 사람은 또 활 쏘는 솜씨에 대해서 자랑을 하고, 그러자 어떤 사람이 또 검술에 대해서 자랑을 하고, 이렇게 해서 짐승을 길들이는데서 마차 모는데서, 활 쏘고 칼 쓰는 이런 얘기.

아마 활 쏘고, 칼 쓰는 얘기가 나오는 거 보면, 이 출신들은 왕족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전쟁터에 나갔던 사람들이니까.

거기에서 이제는 수학이나, 문학이나 이런 학문에 대한 얘기로, 이 사람들은 또 브라만들이죠.

그래서 각자 자기 계급, 자기 직업에 따른 얘기들로 꽃을 피우게 되었어. 시끌벅적했다.

 

시끌벅적한 소리를 부처님께서 들이시고, 비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셨어요.

한참 정신없이 떠들고 있었단 말이오. 마치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교실에 아이들이 떠들고 있듯이. 부처님께서 오시니까 다 조용해지면서 자리 일어나서 부처님을 맞이하셨어.

 

부처님께서 물었어요.

자네들 지금까지 뭘 가지고 그렇게 재미있는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는가?”

그러니까 한 비구가 겸연쩍은 자세로 부처님께 지금까지 있었던 얘기를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비구들이여, 그들이 모여 있을 때에 행해야 할 일은 단지 2가지뿐이오.

법에 관해 서로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성스러운 침묵을 지키는 것이 그것이오.”

 

그래서 수행자가 할 일이 2가지 라는 거요.

입을 열었다하면

법에 대한 얘기, 진리에 대한 얘기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성스러운 침묵을 지켜라.

 

우리는 입을 열게 되면 한마디로 말해서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죠.

비싼 밥 먹고, 귀중한 에너지 낭비를 많이 해요. 쓸모없는데 낭비하는 경우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남을 해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 입이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첫째는 거짓말을 하지요.

있지도 않은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틀린 말을, 잘못된 말을. 그래서 그 말을 믿고 따랐다가 속았다고 사기 당했다고 가슴아파하고 분노하고 이런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둘째는 욕설하는 경우도 많지요.

화가 나서 입에서 온갖 험담과 욕설을 함으로 해서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꼽는 이런 험한 말을 하는 경우도 있고,

 

셋째는 사람들에게 가서 아양 떠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요.

온갖 말로 꾸며서 있지도 않은 것들로 비위를 맞추고,

 

넷째는 양설이라고 해서 이 사람에게서는 이런 말 하고, 저 사람에게 가서는 저런 말을 해서 사람들을 이간질 시키고, 결국은 불신을 받고,

 

이렇게 말로 짓는 4가지 죄업이다.

망어, 기어, 양설, 악구 한문으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렇게 남을 해치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남을 괴롭히는 이런 말을 한다.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아무쓸모 없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요.

내용도 없고, 배울 것도 없고, 그냥 입을 잠시도 못 놔놓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이렇게 시끄럽게 소란스럽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이런 걸 보통 우리가 잡담이다. 이렇게 얘기하죠.

또 말을 통해서 즐겁기는 한데, 쉽게 말하면 음담패설이라든지 이런 얘기를 함으로 해서 히히 낙락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보다는 숫제 말을 안 하는 것이 낫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훨씬 더 값어치가 있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다. 침묵이 숫제 성스럽다. 그래서 성스러운 침묵이라고 하는 거요.

 

그러면 수행자는 말을 말아야 되느냐? 아니에요.

부처님께서 많은 말을 하셨지만, 그 말은 다 진리에 대한 말이고, 남을 이롭게 하는 말이에요.

남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말을 하려면 진실에 대해서 말해라.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거짓된 것을 밝혀내는 그런 진실한 말을 해야 된다.

이것이 법에 관한 얘기다.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그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얘기를 해줘야 된다는 거요. 법문이라고 그러죠.

또 괴로워 하는 자에게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있죠. 또 말을 할 때 악담을 하는 게 아니라 자비롭게 말하는 게 있다.

이런 말들은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이런 말처럼 사람을 이롭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즐겁게 한다. 이런 말은 해야 되는 거요.

 

부처님께서는 말을 하면 이런 말을 하셨고, 이런 말이 아니라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여기 2가지 법을 말하거나 아니면 성스러운 침묵을 지켜라.

 

또 말에는 이런 말도 있지요. 알리는 말이 있습니다.

알리는 말은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얘기하죠.

말하지 왜 말을 안했어? 말 안하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이렇게 상대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몰랐다고 이렇게 얘기하면 어떻게 대답이 나옵니까?

꼭 말로 해야 알아? 딱 보면 알지.”

이렇게 얘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부부간에 이런 경우가 많지요.

 

내가 필요한 것을 당신에게 꼭 이러저러하다고 얘기해야 아느냐? 같이 사는 사람이 벌써 짐작해서 알 수 있는게 아닌가. 내 마음을 그리도 모르느냐?

 

그런데 물론 타심통이 있는 사람은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안다. 이런 경우도 있다고 하지마는, 99.9%의 사람들은 상대의 마음을 아는 것은 역시 말을 듣고 아는 거요.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알려야 됩니다.

알리는 것이 손쉽고 자유로워야 돼.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진실하게 전달하지 않고,

막연히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네가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나?’

이렇게만 생각한다는 거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상대가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죠.

내가 너한테 몇 번 말했어. 그렇게 말했는데도 못 알아 듣냐?’

이걸 생각하면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듣겠어요.

 

그러니 자기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말 안하고도 알아주기를 바라고

자기는 남의 마음을 알아줄 때, 말을 몇 번 듣고도 못 알아준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로의 생각을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말입니다. 그래서 말은 굉장히 소중한 겁니다.

 

말을 해야 아는 거요.

그래서 말은 하려면 바르게 해야 됩니다.

사실대로 말해야 되요.

진솔하게 말해야 돼.

쉽게 말해야 돼.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해야 돼.

상대의 처지에 맞게 말을 해야 돼.

말을 하는 이유는 상대가 알아들어야 되는 거요.

 

이렇게 말을 해도 사람은 들을 때 또 자기 생각대로 듣는 거요.

자기 식대로 듣는다.

자기 관점을 갖고 듣는다.

그래서 왜곡되게 들린다.

 

그래서 놀이에도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10명이 줄을 서서 첫 번째 사람이 두 번째 사람에게 귓속말로 소곤소곤 합니다. 그걸 그대로 두 번째 사람이 세 번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세 번째 사람이 네 번째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이래서 열 번째 사람이 그걸 듣고 말을 해보라고 하면 첫 번째 사람이 한 얘기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게 우리가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주관적으로 듣는가,

자기식대로 듣는가

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얘기에요.

 

그래서 말을 할 때는

바르게, 쉽게, 분명하게

말을 들을 때는

있는 그대로, 내 생각에 치우치지 말고, 내 식대로 듣지 말고 사실대로 들어라.

그럴 때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이 된다.

 

이런 말은 필요하다. 부처님의 모든 설법도 바로 이런 진실한 말이에요. 우리가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때도 이 진실한 말을 내 마음으로 비우고 내 생각을 버리고 들어야 한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말하는 것을 한번 살펴봅시다.

아내가 식사준비가 다 되었어. 그래서 남편보고 식사를 하라고 얘기할 때, 어떻게 합니까?

식사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건 알림이지요?

식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알림이죠?

식사하세요.” 이거는 알림인 것 같지마는 명령이죠? 한발 더 가면 어떻게 말합니까?

식사 안하고 뭐해요?” 이렇게 말하지. 이거는 시비죠?

식사 안할 거예요?” 이렇게도 말하죠.

 

이건 다 밥 먹으라는 소리에요. 밥 먹으라는 소리인데,

나는 밥 먹으라고 했는데 왜 그러냐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알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알림이에요. 먹고 안 먹고는 그가 알아서 하는 거요.

 

그런데 우리는 상대의 인생에 간섭 하는 거요.

언제까지 먹어라. 안 먹으면 밥 치워버릴 거야.’ 이런 간섭,

나아가서는 아예 경고, 처벌까지 내포되어 있다. 이 말이에요.

이러기 때문에 시비가 된다. 열심히 식사를 준비해 놓고, 도리어 그로 인해서 시비가 되는 거요.

 

그래서 경전에 보면 부처님을 초대한 사람들은 언제나 부처님께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공양이 준비되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때를 아소서.” 이렇게 말을 해요.

밥 먹으러 오세요.” 이렇게도 말 안 해. 이것도 어떻게 보면 안 오면 난리날 일이잖아. 그죠?

때를 아소서.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때를 아소서 하는 것은 결정권이 누구한테 있어요? 상대에게 있단 말이지요? 당신이 이 때를 아셔서 당신이 결정을 하십시오. 이런 얘기에요.

 

수행자는 서로 잘 알려야 합니다.

소리를 내어 알려야 해요.

그런데 이걸 또 잘못 받아들이면, 침묵을 잘못 받아들이면, 입 다물고 말을 안 하는 게 수행자인 줄 알아.

 

88년도 올림픽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선방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 절에 10년 가까이 묵언을 하신 스님이 계셨어요. 말을 하지 않으신 수행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올림픽 때, 한국이 메달을 많이 땄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선방에서 참선하는 스님들도 거기에 관심이 있었어. 그래서 그 위 암자에 TV를 하나 갖다 놓고 휴식시간에 잠시 보고 내려오고, 잠시 보고 내려오고 그랬나 봐요.

 

그랬더니 이 묵언 하는 스님이 도끼를 들고 올라가서 TV를 다 깨버렸어.

이 분은 말을 하지 않았어.

그러나 이것은 화를 낸 거죠.

그것은 나쁘다하는 분별을 일으킨 거죠.

이것은 이미 아주 험한 말을 한 거와 같은 거요.

 

때를 알리는 것은 침묵과 같습니다.

묵언을 하라는 본래의 뜻은 분별심을 내지 마라.

입에서 아무소리를 내지 마라는 게 아니라, 분별심을 내지 말라는 거요.

 

왜 우리가 입을 다무느냐?

하도 입에서 소리가 날 때는 남을 해치는 말,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말을 하니까, 입을 다물어라.

 

그 다물라는 것이 외향적으로 입을 다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별심을 내지 마라.

분별심을 버리는 게 침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말을 많이 하셔도 분별심을 내어 말을 하신 게 아니기 때문에, 부처님은 한 말씀도 아니 하셨다. 이 의미를 아시겠어요?

 

부처님께서는 84천 법문을 하셨지만, 그러시고도 하시는 말씀이

나는 한 말도 한 바가 없다. 모순이잖아.

 

분별심이 없는 말,

그것은 말을 하지 않음과 같다.

분별심을 일으키면

비록 입을 다물고 있어도 그것은 구업을 짓는 것과 같다.

이렇게 우리가 알아야 법을 말하는 것과 침묵이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도 이 정신을 잘 알아서

남에게 이익이 되고

남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가 되는 말

진실을 깨우치는 말은 많이 할수록 좋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하는 것이 좋다.

 

침묵이야 말로

쓸데없는 말 만 가지보다도 훨씬 더 값진 것이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은 아니함만 못하다.

그러니 잔소리는 내 성질을 부리는 거지, 상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유익하지 않을 때는 침묵을 지켜라.

이렇게 우리가 생활한다면, 말로 인한 사람과 사람사이의 갈등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