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6회 천안통원 (21:32)

Buddhastudy 2012. 3. 4. 20:26

  방송 보기: 불교TV

지금을 인정하셔야 돼. 지금을 사랑스럽게 헤아릴 줄 알아야 돼. 지금을 감사하게 느끼지 않는 삶은 그 삶 내용 안에 그 자체에 그 어떤 내용도 담을 수가 없어요. 오늘 지금 이 순간 이 법좌에 불설아미타경이라고 하는 놀라운 경전을 만나게 되고 또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발원하게 되고, 그 발원을 통해서 곧 뭐죠? 성취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화살은요, 화살은 활시위를 떠난 순간에 이미 목표에 도달 돼 있거든요. 지금 발원한 것은 미래세가 곧 자기 자신이 지금은 출발된 상태거든요. 그러니까 발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죠.

 

그러니까 극락세계가 내게 생기는 것도 좋은 일도 밝은 일도 행복한 일도 자기의 생각에 의해서, 그 생각이 깊어지면 그게 발원이거든요. 그리고 그걸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면 그게 곧 원력이거든요. 그 원력은 그냥 글자 그대로 원이 아니고 원력이거든요. 원하는 것을 원하는 것의 힘을 불러다 줍니다. 지금 저희가 같이 48대원을 더불어서 같이 공부하는 것은 불설아미타경이라고 하는 제 첫 번째 경전을 저희가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미타경의 내용은 석가모니께서 기원정사에 계시면서, 기원정사를 다 아시죠? 경전을 통해서. . 기원정사에서 제자 사리불을 상대로 해서 아미타불과 그가 머물러 있는 서방정토인 극락세계에 공덕과 장엄을 설명해 주셨어요.

 

그러니까 아미타경의 세계를 설명한 내용이 그 자체가 무엇으로써 받아들였어요? 석가세존께서 설명을 했고 알려줬기 때문에 아미타불 부처님의 세계를 우리가 이해하실 수가 있게 된 거죠. 그래서 이게 제 설명이 아니고요, 석가세존께서 아미타경을 설명하실 때에 이때 사리불 존자가 그 자리에 계셨고, ~ 1,250인이라고 하는 대중이 거기 쭉~ 있었어요. 그분들이 다 뭐죠? 이런 발원이 부처님, 즉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말이 진실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증명원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부처님께서 꼭 설한 법이다라고해서 증명원이라고 하는 것들을 중국식 경전에 보면 그렇게 토를 올려놓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가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른 사람에게는 왕생의 법이 생긴다. 이렇게 설명이 돼 있거든요. 아미타경을 공부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수행하시는 분에게는 앞날에 반드시 뭐죠? 미래세에, 그러니까 미래세는 곧 자기 자신이거든요. 지금이요. 지금 이 생명이, 이 생명이 몸뚱아리가 바꾼다라고 해서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내 생명은 내 생명이 아니라고 자꾸 생각을 하는 거거든요. 어리석음의 첫째에요. 내가 육체를 바꾸어도 나는 안 없어지는 거에요. 이 육체를 바꿀 뿐이지 실제로 이게 없는 거에요.

 

우리 눈에만, 우리 오감이 가지는 눈귀코입이 가지고 있는 눈의 시각이나 눈의 착각에만 의해서만 이게 뭐죠?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죠. 실제는 늘 여여한 거에요. 늘 존재성을 가지고 있는 거에요. 나이가 들어도 나는 그대로잖아요. 그런데 이 육체가 바뀌어 가도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미래세는요, 곧 나하고 지금 현재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요 순간이 미래세에 극락세계가 바로 연결돼 있다는 거에요. 요게 불교적 관념이에요. 불교를 공부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 내가 이 모양 이 꼴을 가지고 있어도 나의 미래세는 어떻게요? 극락세계, 아미타불의 본신이에요. 요거 안 믿어지는 거에요.

 

왜 그러냐 하면 자기 시각 안에 꽉 들어차 있기 때문에 절대 이 시각이 안 변하는 거에요. 이걸 바꾸기 위해서 공부하고 기도하시는 거에요. 뭐라고요? 내가 늙고 병들고 죽으면 끝이 아니라 본래 영원한 생명이라는 거에요. 그러시죠! 그죠? . 아미타불을 부르면 극락세계에 금방 간다는 것. 죽은 다음에 다음 생에 극락세계에 간다라는 것은 그 말도 맞는 말이지만, 지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기도하고 예경하고 이렇게 한 시간씩 공부하는 그 자체가 바로 극락세계의 문을 연거와 똑같은 거라는 거에요. 지금 있는 그대로 이 존재가 다~ 극락세계가 자기의 문이 열리는 것과 똑같으시라는 거에요. 요게 정리가 잘 되시면, 안 돼도 막~ 저 뭐죠? 되셔야 돼.

 

그래 경전에 보면 뭐라고 설명 드리고 있냐하면은 아미타경을 읽는 사람이 아미타불의 본심을 보셔야 돼요. 아미타불의 본심 안에는 이미 극락세계가 갖추어져 있다는 거죠. 극락세계가 바로 우리 안의 내면 속에 갖추어져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걸 보지 못하는 건 왜 보지 못하는가? 표현만 보는 거에요. 표현만. 표면만 보고 계시는 거에요. 늙은 나, 가난한 나, 괴로운 나, 불쌍한 나, 힘든 나, 어처구니없는 나, 그렇죠! 그죠. 열등한 나, 실패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나, 이게 집착이에요. 이게. 표면만을 보는 집착이에요. 극락세계를 가시려면은 뭘 해야 되느냐 그러면 나무아미타불 명호를 잘 불러야 된다. 그랬죠. 그죠.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명호 속으로 하나로 들어가야 돼. 나무아미타불하는 의식이 자기 안에 아~ 주 들어가셔야 돼. 조용히 들어가서 앉아서 자기를 아미타불을 만나게 돼요. 그러면은 무궁무진한 생명세계가 자기 안에 공급세계가 열려지고 있어요. 그렇죠, 그죠? 지난 다섯 번째 법문에 말씀을 드렸죠? 무한공급. 무한공급의 세계가 베풀어져 있다고 설명을 드렸죠? 그다음에 뭐죠? 무한능력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분명히 설명 드렸죠? 그다음에 무한 건강의 세계가 반드시 갖추어져 있다고 설명을 드렸죠? 그런데 일주일 동안 행복하셨어요? 34쪽으로 넘어갑니다.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깃들어 있다라고 이번에 35번째 숙명통원이라고 그랬죠? 이게 다섯 번째에요.

 

이 얘기가 무슨 얘기냐 하면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얘기죠. 지나간 것이 있다라는 것은 미래세가 있다는 뜻이거든요. 지금은 나라고하는 잘못된 착각이 잘못된 지배하는 이 어두운 생각이 자기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힘든 거죠. 그런데 요거에서 마음에서 놓여지는 순간, 요걸 염불로 바꾸는 거에요. 요걸 기도로 바꾸는 순간, 내 생명이 본래 영원한 데서 출발 돼 있고 지금도 미래세까지 하나같이 다 통해져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여기 뭐라고 설명 드렸어요? 숙명통원이에요. 원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 통하지 않는 거에요. 아주 놀라운 것이 있죠.

 

두 번째 것인 천안통원이라고 돼 있죠? 천안통원인데. 이걸 뭐라고 그러냐 하면 옛날 이것을 정리해 놓은 숫자 안에 원문이 뭐라고 돼 있느냐 하면 설화득불 이랬거든요. 설아득불은 뭐냐 하면 내가 지금 설하는 사람한테, 저 좀 보세요. 내가 부처님을 말하면 부처가 있다는 거에요. 저 좀 보세요. 다시 한 번만. 내가 지금 설하면 설하거든요? 내가 설하면 뭐죠? 부처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거든요. 으음~ 너무 놀라운 것 중의 하나입니다. 움직이지 말아야 되는데. 무거워가지고. 이것이 설화거든요. 설화하고 그다음에 뭐죠? 이게 알고 보면 부처다. 이렇게 표현되잖아요. 그죠? . 여기 좀 보세요.

 

이거()는 뭐죠? 말하다라는 뜻이고, 이건() 나라는 뜻이고, 이건() 뭐죠? 얻는다라는 뜻이고, 이거는() 뭐죠? 불성이죠. 불성이죠. 그렇죠. 그죠. 이런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냐 하면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 누가 말해요? 내가 말해요. 내가 부처를 말하면 부처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이게 아주 굉장히 중요한 거죠.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것은 나무 뭐라고요? 아미타불 이렇게 설명을 말씀을 드릴 수 있어요.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설명하시는데, 이게 얻는다.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 하면 부르는 데로 간다는 거에요. 아까 말씀드렸죠?

 

이거는 염송이라 그러고, 이거는 구송이라 그러고, 이건 뭐라고 말했죠? 이거는 행송이라고 그러거든요. 행송은 행동이죠. 요렇게 세 가지 송이에요. 그래서 여기서 보면은요, 늘 이것은 생각이거든요. 이것(염송)염이죠. 이것(구송)구죠. 이것(행송)행이죠. 이런 행을 실질적으로 부처님의 행을 옮기는 거에요. 부처님의 행동을 그대로 옮기는 거에요. 요게 하나라도 옮기는 거에요. 어떻게요? 합장하는 거, 쌀 한 되 올리는 거. 염불 외우는 거. 청소한 번 해 주는 거. 보살펴 주는 거. 이거 다 행동이에요. 할 때 뭐죠? 짜증 내지 말고, 화내지 말고, 울화통 들고 다니면서 통을 이렇게 하지 말고, 자비 통을 자꾸 들고 다녀야 되거든요.

 

그래서 여기에서 뭐가 생기냐 하면 자비가 있어야 되고, 성실의 행이 여기 깃들으셔야 돼. 언제든지 성실하셔야 돼. 그렇게 우리가 살면서 이게 좀 애정이 좀 있으셔야 돼. 구성애는 뭐죠? 같은 것을 외우면서 감사할 줄 알고, 고맙습니다. 라고 이렇게 설명하고요. 구성이라고 하는 것. 할 수만 있으면 따뜻하게, 염을 외우셔야 돼. 염송을 뭐라고 하라고 그랬어요? 죽었다 깨어나도 뭐라고요? 처음에 했어요. 밝게 보셔야 돼. 밝음으로. 자기 삶을요, 여기는 자기잖아요. 여기가 자기에요. 여기가 우리가 말하는 너도 자기고, 나도 자기고, 다 자기잖아. 그지? 이 자기는 지금 자기는 지금 자기죠. 그죠. 이 자기가 뭐라고 그래요, 때때로는 가난할 수 있고, 때때로는 불행한 삶 속에 있다는 거에요. 그죠? 건강하지 않은 상태도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이건 껍데기 과정이라는 거에요. 저 좀 보세요. 절 보셔야 돼. 얼굴 들고 저 좀 보세요. 먹고 사는 거 힘들고, 재정적인 문제 있거나 그런 것은요, 이걸 벗어나는 길이 있잖아요. 없어지는 길이 있어요. 그거는 곧바로 지금 이대로 내가 지배하는 것처럼 이게 자기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뭐라고요? 이 얘기를 뭐라고 말해요? 집착성이에요. 내가 이거 안 되고 있어요. 내 아들 이건 안 되고 있고, 내가 저것도 안 되고 있어요. 이러잖아요. 이 생각을 바꾸시는 거에요. 내 남편은 미워요. 내 아내는 어떻게 해서 안 돼요. 저거는 이래서 안 돼요. 뭣 때문에 안 돼요. 이런 언어 그 자체에 이런 생각이나 의식구조가 자꾸 생긴 것을 어떻게 바꾸라고요? 부처님처럼 바꾸는 거에요.

 

그걸 바꿀 때 원효대사는 뭐라고 그랬냐하면 글자그대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는 거에요. 미운 생각이 일어나면은 그 생각대신에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는 거에요. 고마운 일이 있어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라는 거에요. 억울한 일이 생겨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거에요. 그게 염송이고 구송이고 행송 이에요. 우리가 올곧게 외우는 것 중에 그런 것인데. 그러면 부처님 대신에 꼭 설명 드리고 싶은 내용이 뭐냐 그러면요, 불이라는 것은 뭐에요? 이건 글자그대로 우리가 외우고 또 외우고 외구고해도 뭐죠? 복하고 글자 그대로 복과 지혜에요. 이유가 없어요. 이게 뭐라구요? 충만한 존재에요. 이거 자체가 완전한 거에요. 그리고 이게 뭐죠? 구족한 거에요.

 

나는 늘 부족하고 아니다 라고 자꾸 말하고 살아요. 그런데 여기는 뭐죠? 긍정이에요. 이건 부정이고 이건 긍정이거든요. 삶에 구조가 딱 바꿔지는데. 그래서 염불이라는 게 필요로 해요. 아니어도 막~ 그렇다고 그러고. 우리가 들여다볼 때 누가 말을 하느냐 그러면 곧 내가 말하는 거에요. 여기 48대원을 누가 자기가 얻어 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가 말하는 거에요. 말하는 것은 곧 생각하는 것이고, 감정이 있고, 기분이 있고, 행동이 있고, 원력이 거기 있는 거에요. 그리고 그걸 할 수만 있으면 뭐라고 해요? 행동으로 옮기는 거에요. 그러면 이 사람한테는 구하는 것이 뭐예요? 원하는 게 뭐하는 거에요?

 

부처를 원하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른다 라고 하는 말 안에는 지장보살도 관세음보살도 화엄성종도 같은 의미구조가 있어요. 옴마니반메훔. 다 똑같은 거에요. 그런데 무엇을 보아야 되느냐? 부처님을 봐야 된다는 거에요. 불성으로 보셔야 된다. 불성으로. 이렇게 보게 되면은 원하는 것이 뭘 원하느냐 하면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 하면 내가 부를 원하거나 건강을 원하거나 우리가 알고 행복을 원하는 것은 부르는 데로 원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렇게 안 되고 있는 것은 왜 그렇게 안 되고 있는가? 잘못 부르고 있었죠. 내 입이 이뻐져 있지 않은 거에요. 내 입이 내 생각이 끊임없이 뭐를 말해요? 불평을 말해. 내 입이 끊임없이 불평을 말해. 입이 벌리면 핑계에요. 입이 벌리면 이유가 있어. 그게 뭐죠? 뭐든지 불만이 가득해요.

 

자기 입이 열면은 자꾸 이걸 외우고 있는 동안은? 뭐가 깃들어와요? 가난한 거, 불행한 거, 힘든 거, 억울한 거, 병드는 거. 병은 안 드는 사람 없습니다. 누누이 누누이 강조한 말처럼 나이 들면 기능을 자꾸 사용하다 보면은 늙게 돼 있거든요. 받아들이세요. 고칠 수 있으면 고치세요. 병원 가는 거 부끄럽지 않습니다. 완벽한 존재는 없습니다. 물질세계에서 완벽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물질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늙어가는 과정, 병드는 과정, 그 자체도 완벽한 거에요. 모자른 것이 없습니다. 원만완전, 원만 구족한 상태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미타부처님의 설명이고 석가세존께서 불설아미타경을 설한 연유 중의 하나입니다.

 

이 얘기를 반대로 2500년이 지난 다음에 저처럼 이렇게 쉬언찮고 이렇게 모자란 스님이라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불자님들에게 알려 드리는 거에요. 뭐라고 알려 드려요? 걱정하고 근심하지 말라는 거에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 말라는 거에요. 병을 두려워하지 말고, 먹고 사는 거 두려워하지 말고, 괴로워하지 말라는 거에요. 자기 있는 상태. 집착을 붙들고 있는 동안은 영원히 안 지난다는 거에요. 밝게 살아야 돼요. 몸을 움직여야 돼. 깨끗하게 성의있게 살고 밝게 살면은 언젠가는 시차가 사람마다 업력이 다 다르잖아요. 행동이 다르고 말 쓰기가 다 다르고 괴로움이 다 다르거든요.

 

그런 차이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저는 완벽하지 않은 상태가 없다고 난 보거든요. 망하는 사람 결코 없습니다. 병들어서 쉬는 고통은 살다 가는 것은 자기가 자기 착각이에요. 자기 불안 자기 스스로 만든 거에요. 불평 그만 그치세요. 핑계 그만 그치세요. 이유는 아무 나한테 이득이 안 됩니다. 세상이라는 게, 모든 진리라는 게 세상에 있거든요. 진리는 누구에게 공평한 거에요. 우리가 이 욕과 욕심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누구를 탓할 게 없으세요. 지금 경제고, 힘들고 억울하고 수없이 반복적으로 사회적 구석구석에 생기거든요.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해탈하고 편안함을 얻으시려면 수행기도 하셔야 돼. 원력을 딱 세우셔야 돼.

 

원이 없는 삶은요 시체와 같은 거에요. 멀리 좀 보세요. 멀리. 지금부터 채우셔야 돼. 뭐라고요?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염해 채우세요. 입으로 부르듯 부르세요. 불러야 돼. 그게 안 되면은 종교적 차이가 있거나 문제가 있으면 안으로 그냥 감사합니다.’ 이것만 해도, 이렇게 허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좋아져. 저 보세요. 얼굴이 그냥 인생이 아주 좋게 생겼잖아. 그냥 막 굴러놔도 그냥, 그냥 놔둬도 다 좋아져요. 으음. 희한한 일이 생겨요. 안 되는 것 같은 데도 좋은 일이 생기고요. 고약한 한 거 같은데도 결과적으론 좋게 와 있어요. 그러니까 인정하는 대로 오는 거에요. 마음에 인정하는 데로 복이 오고, 인정하는 데로 지혜가 생기고, 인정하는 대로 과가 생기고, 인정하는 데로 괴로운 일이 자기가 불러다 오는 거에요. 그런 일이 생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