請法發願分
법문을 청하는 마음가짐
그때 장로 수보리가 승려들 사이에 있다가 불현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 어깨가 드러나도록 웃옷을 왼편으로 걸친 채
오른 무릎을 땅에 꿇어 합장 하고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상에 드물게 출현하신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저희 수행자들을 분별심에 미혹되지 않고
불법을 닦아 깨달음을 이루도록 부촉하며
잘 이끌어 주고 계시옵니다.
세존이시여!
구도의 뜻을 둔 사람이라면 으레 무상의 깨달음을 발원하게 되나니
어떻게 하면 그 마음을 청정히 머무르게 하여
번뇌망상을 없앨 수 있겠나이까?”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질문이로다,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여래는 제자들이 분별심에 미혹되지 않고
잘 수행해 나가도록 부촉하며 이끄나니
그대들은 이제 들을지어다.
마땅히 그대들을 위해 법문을 하리라.
구도자가 무상의 깨달음을 발원한다면
다음의 법문과 같이 마음을 녹여 다스려 나가야 하느니라.”
이에 승려들이 다 함께 고하였다.
“받들겠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기쁜 마음으로 가르침을 청하옵나이다.”
-단예선사 解義-
법문을 청하는 구도자의 올바른 마음 자세를 논하고 있는 장이다.
수보리가 공경을 다하여 법문을 청하고 있는데
왜 하필 불법을 청함에 이런 요식행위를 해야 할까?
약간의 예의를 갖춰서 물어보고
여기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법문을 들어주면 안 될까?
불법이 형이하의 정보라면 그렇게 해도 충분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법은 형이상의 고차원적 정보이다.
그것도 무상승의 가치를 수반하는 심오한 경지의 그 무엇이다.
그래서 불법은 단지 귀로 듣는다고 해서
의식이 소화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침이 듬뿍 고여야지만 음식물의 소화를 촉진하듯
법문을 듣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만반의 준비가 돼야 한다.
그것이 바로 청법발원!
즉 법문 듣기를 진심으로 발원하는 마음 자세이다.
이것이 돼야만 법문이 성립된다.
같은 물을 마셔도 뱀은 독을 만들고 소는 우유를 만들 듯
법문이 법문이 되기 위해서는
공경하는 마음 자세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부처의 지혜는 언어를 타고 들어와
청법발원하는 수행자의 의식에 젖어들어
그 공효를 발휘하게 된다.
불교에서 불법승을 삼보라 하여
여기에 대한 귀의를 심법의 근본으로 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불법승에 귀의하는 마음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귀를 아무리 활짝 열어 놓은들 결코 세존의 법문을 들을 수 없다.
지식 축적을 통한 일련의 지혜는 습득할 수 있어도
그것이 반야로 이어져 깨달음으로 귀결되기엔 역부족이다.
이처럼 법문이란
그것을 설하는 사람의 도력 못지않게
듣는 이의 심법도 중요하다.
바로 이 점을 수보리가 몸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본 장은 수보리의 모습을 통해
금강경 전체 장을 어떻게 보고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내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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