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깨달음과마음치유

[깨달음과마음치유 19강_2] 현상은 본래 혼잡하다 / 인생의 답은 인생 그 자체이다(25:18~)

Buddhastudy 2025. 6. 19. 19:17

 

현상이 본래 혼잡하다는 것은

혼잡한 나를 청정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강의에서는

의식을 깨닫고 자기 상을 보는 것이 마음공부의 핵심이라고 설명합니다.

 

인생의 답이 인생 그 자체 [42:27] :

사람들이 인생의 답을 찾고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자아(에고)의 행동이며

이는 존재에 대한 불만족과 고통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에고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조작하게 만들고,

문제를 만들며 고통 속에서 살게 합니다.

따라서, 인생의 답을 찾는다는 것은 불만족을 느끼고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는 그 행위 자체가 답을 찾는 것이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조작하려는 마음, 즉 에고의 움직임을 허용하지 않고,

본질의 힘을 실어 삶이 무위자연(無爲自然)하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모든 것이 이미 완벽하게 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을 포함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가끔 그런 말 드리거든요.

입만 열면 자기 상이 나온다

이 말 가끔 드리잖아요.

그러니까 단체 생활에서는 자기 주장을 하게 되는

입만 열면 자기 주장이 나오는

그 주장이 시비심이에요.

이게 옳다는 거예요.

 

하여튼 입만 열면 상이 나온다.

이거 하나만 딱 공부로 삼으면

그다음에는 아주 그 상이 자꾸 봐지는 거죠.

의식의 빛에 의해서

상이라고 하는 어둠이 계속 봐져서

어둠이 사라지고 밝아지는.

 

그래서 [각찰휴헐](覺察休歇)하고 [상견기상](相見其相)

요게 소위 말하는

깨달음 다음에 보림 수행법이라는 거죠.

각찰휴헐하고 상견기상_ 자기 상을 본다

 

, 그러면 결국에는 충분히 이렇게 의식은 깨어나고

그 전의 시비심은 많이 쉬어져서

이 세계의 모습이 드러날 때

결국 이 세계는 뭔가?

 

결론적으로는 체와 용

_ 본질이죠.

_ 작용이라는 말이 현상이죠.

본질과 현상,

체용이 불이구나

체용이 둘이 아니구나

이 모든 것이 이 한 개 의식의 나타남이구나

이 세상은 한 개 의식의 나타남이구나.

 

그럼 이것이, 한 개 의식이 나타나는 데 있어서

지금은 이 개체를 통해서

이 작용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어서

개체도 소중한 거죠.

 

근데 개체 하나가 없어졌다고 해서

지금 수많은 개체를 통해서 [체용불이](體用不二)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개체 하나가 사라졌다고 해서 이 작용이 멈추지는 않겠죠, 당연히.

 

그러니까 이 몸 하나가 떠나는 거는

몸한테는 죽음이지만

이 의식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죽음이 아니고

그냥 옷 바꿔 입는 물갈이 정도? 그 정도구나 하고

크게 보고

자기 죽음까지도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선이 시작할 때

삼처_ 세 곳에서

전심_ 마음을 전했다는 말이 있어요.

 

첫 번째가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꽃을 들었을 때 가섭이 미소를 지었다.

염화미소가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다자탑이라고 하는 탑 앞에서

부처님이 설법하고 계셨는데 마하가섭이 늦게 왔어요.

그러니까 앉을 자리가 없으니까

부처님이 이렇게 불러서 당신 옆에 자리가 있어서

여기 앉으라고 한번 불렀거든요.

그러니까 다자탑전에서 분반좌_ 옆에 앉혔다.

그러니까 늦게 온 사람을 자리가 없으니까

이리 와해서 옆에 앉혔다.

이게 또 자기 의식을 드러내 보인 모습이었다.

 

근데 세 번째가 뭐냐 하면

부처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때도 이 마하가섭은 그 자리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마하가섭은 특징이 두타행이라고 해서

부처님 옆에서 설법 듣는 것보다

나가서 막 사람들을 도와서 일을 많이 한, 두타행이라고 그래요.

 

그것을 많이 한 사람이라서

부처님 돌아가셨을 때도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막 부리나케 돌아왔지만

이미 부처님은 돌아가신 뒤였어요.

 

근데 하여튼 가섭이 왔을 때

부처님이 아직 그 장작을 지피기 전이라서

그 나무 무더기 속에 이렇게 계셨는데, 발을 쑥 내밀었다고 해요.

그럼 이것은 돌아가셔도

의식은 그대로 계셔서 맞이했다는 뜻이에요.

그런 걸 우리가 조금 이렇게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의식이 정말 분명하면

몸은 숨이 끊어져도

의식은 언제나 이렇게 [여여부동]하게 있다는 거죠.

자꾸자꾸 우리가 익어지면, 의식에 익숙해지면

정말 의식은 이거는

개체 하나가 세포 하나가 나고 죽어도 상관없이

항상 의식은 여여부동하구나

그래서 석존께서도, 석가모니 부처님조차도

당신 몸은

이 의식의 세포 하나는 죽었어도

의식으로서 이렇게 살아 계시는구나.

 

그래서 당신이 생로병사라고 하는 화두를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한 이유가

생로병사의 해결이거든요.

그럼 생로병사의 해결을

자기는 몸이 아니고 의식이라는 걸 깨달음으로써

의식은 생로병사로부터 물들지 않는

본래청정하다는, 영원하다고 하는 이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해결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불사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의식을 깨닫고 제일 먼저 한 소리가

불사를 얻었다

죽지 않는 것을 얻었다.

그 말이 의식을 자각한

깨달은 사람이 제일 먼저 한 소리가 그 말이다.

그런 걸 우리가 알아듣는다 이거예요.

 

어떤 분이 질문하셨는데

제 과정을 돌아보니까

이 마음공부는 의식의 탐구예요.

그래서 얼마나 의식이 실감나느냐의 문제예요.

 

몸은 실감 나잖아요.

근데 그동안에 의식은 실감 못하고 살았거든요.

근데 이런 가르침을 통해서

의식이 있다는 걸

, 지금 이렇게 의식이 있구나하는 거를 한번 자각한 뒤에

점점 점점 의식의 그 감이 짙어져요.

 

의식의 자각이 짙어져서

그 감이 계속 이렇게 꾸준하게 이것이

표현하자면 분명해져요, 스스로.

그러니까 감각이 생긴다고 할 수 있어요.

의식에 대한 감각이.

 

그래서 언제나 이렇게 있다는 것이

계속 확인하는.

계속 확인하면 확인할수록 이 감각은 길러지겠죠, 당연히.

그래서 그 감각을 기르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이런 강의를 듣는 거예요.

의식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같이 공유하는 거예요.

이심전심으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면

의식에 대한 감각이 강화되는 과정이

마치 세뇌되는 것 같아.

약간 그런 기분이에요.

 

혼자 있을 때보다는

깨어 있는 의식을 스스로 자각하는 이야기를

자꾸자꾸 그런 걸 가지고

그런 걸 회상이라고 하잖아요. 회상.

이 특별히 회상이라는 말을 쓸 때는

깨어 있는 의식끼리 만나는 모임, 회상.

그래서 대표적인 게 영산회상.

 

그러면 영산회상을 계속 우리도 지금 재현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하여튼 제가 차와 선이라고 하는 강의를 하게 돼서

차와 선이라고 하는 강의를 통해서

일본인들이 다도에 대해 써놓은 책이 있어요.

그 책을 딱 펴보니까 제일 처음에

다도의 목적이 나오더라고요.

다도의 목적은 이심전심으로 깨어 있기

이거예요.

재밌지 않나요?

 

말을 안 하고

모든 의사소통을 그냥 목례로서

그러니까 차를 타서 이렇게 하면

드세요.” 이 말이고

말이 필요 없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영산회상에서는 모든 게

그냥 목례로서 모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거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의식이 깨어서 강화하는 시간을 가지기.

이해되세요?

 

하여튼 지금 계속 우리의 목적은

[체용불이](體用不二)를 익혀가는데

익혀가는 과정에서

의식이 깨어 있는 감각이 길러지는 거

그래서 어느새 물들어서

진짜 이제는 의식을 안 챙겨도 될 정도로

항상 이렇게 자기가 스스로 분명해져서.

 

그래서 부처님한테는

손 안에 과일이 보이는 것처럼 분명하다고 표현하신 게

이것이 충분히 익어지면

자기 의식이 언제나 이렇게 분명한 거예요.

 

의식이 항상 지각되는 1번이고

의식 안에 이런 컵이 나타나고, 여러분이 나타나고, 수업이 진행되고

항상 의식이 먼저다 이거예요, 이것이 익어지면.

 

지금은 의식을 챙겨야만이 의식이 자각되지만

자꾸 이것이 익어지면

이것이 항상 먼저 있고

그리고 모든 게 여기에 나타나.

나타나는데 찰라생 찰라멸

의식이 익어지면 익어질수록

이것이 빨리 왔다가 사라지는 게 보인다 이거예요.

 

그렇게 되면 어떤 지혜가 생기느냐 하면

, 본체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틈이 없이 잘 맞아 돌아가고 있는 거구나

이 본체가 현상으로

체용불이가 지금 작용되고 있는 이 모습은

내가 크게 신경 안 써도

알아서 이게 지금 잘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걸

점점점점 알게 돼요.

점점점점 이것을 알게 돼요.

 

근데 정말 맡겨놓고 흐름 따라 가게 되는 힘이 생겨.

그래서 [간불용발](間不容髮)

이 말은

_ 사이사이에

지금 체용이 불이로 돌아가고 있는 여기에

나와 이 세상의 실상과 사이에

_ 사이에

_ 머리카락 하나라도

불용_ 용납하지 않는다, 허용하지 않는다.

 

세상이 본질과 현상이 돌아가고 있는데

여기에 나와 이 실상과의 사이에

내가 어떻게 조작하려고 하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어떤 조작하려고 하는 그 마음을 내지 않게 되는

그래서 완전히 하나가 되는.

 

그래서 간불용발_ 간발의 차이가 있다고 그러잖아요.

머리카락 하나의 차이도

불용_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 이 모든 것이 흐름 따라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을 하면서

여기에 그냥 같이 흐르지

여기를 내가 조작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는 그런 뜻이에요.

 

그러면

이렇게 무언가를 조작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있으면

특히,

우리는 지금 마음공부하고 있는 중이잖아요.

중요한 부분이에요. 잘 들어보세요.

 

우리 지금 마음공부하고 있는 중이잖아요.

그러면 마음공부하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냐 하면

내가 마음공부를 해야 돼한다고, 이해되세요?

나는 이대로 있으면 안 돼. 마음공부를 해야 돼하는 그 심정이 있어요.

그거 이해되세요?

여러분 안 그래요?

그렇죠.

 

그래서 어떤 자각이 있느냐 하면

이런 걸 이해하게 되면

내가 뭔가 이대로 있으면 안 돼. 허전해, 뭔가를 해야 돼.’

마음공부를 특히 해야 돼하는 그 마음이

오히려 이 체용불이의 흐름을

내가 거스르고, 부닥치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돼요.

 

그러니까 정말 중요한 부분은

[간불용발] 이 말은

특히 무엇을 허용하지 않느냐 하면

머리카락 하나라도 내가 체용불이면서

이걸 배우려고 하고

뭘 닦으려고 하고 하는

그 의도 자체가 자각이 되어서 이거 안 한다는 거예요.

 

우리한테 구체적인 의미는

내가 무언가를 해야 돼하는 그 마음이 바로

나를 등지게 만든다고

이 체용불이라고 하는 이 진실을

오히려 내가 등지게 한다는 그 사실을 자각한다는 거예요.

 

좀 말이 어렵네.

제가 말하면서 조금 어렵다는 걸 느껴요.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이해해 주시길 바라요.

근데 이걸 이해하는 것이 시간이 걸릴 거예요.

 

우리들은 하고잡이에요.

우리 손녀를, 1살 반부터 유치원 보냈던 것 같아.

지금 돌아 보니까.

한 살 반, 그때부터 벌써

아닌가? 두 살 넘어서인가?

근데 요즘은, 또 그 사이에 당겨져서

1살 반만 되면 보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세요.

우리가 태어나서 만 1살 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학원 다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를 배워 왔다 이거예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뭔가를 배워왔다 이거예요.

이게 지금 몇십 년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한테는 뭔가 하려고 하는 이게 있다, 이거예요.

 

근데 선은 깨닫고 보니까

체와 용, 본질과 현상이

이미 완벽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거예요.

 

깨달음이라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예요.

특히 본질을 깨달으면

본질은 손 하나, 티끌 하나 델 필요가 없는 거예요.

 

우리가 깨달음이 익어가면 익어갈수록

내가 조작하려고 하는 자기 마음이 보인다.

뭔가 조작하려고 하고

뭔가를 하고잡이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막 뭘 하려고 하는 그게 보인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그거를 자각해서 내려놓는 거

허용하지 않는 거

나중에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허용하지 않는 거.

 

그래서 제가 며칠 전에 카톡 방에다가

댓글에 제가 그런 말을 썼거든

항상 지금까지 생각해 보니까

인생의 답을 추구했어, 인생의 답을 찾았어요.

근데 인생의 답은 인생 자체예요.

지금 제 말 이해되세요?

 

인생의 답은 인생 자체고

인생의 답을 찾았다는 말은 뭐냐 하면

여기에 내가 불만족을 느끼고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만들려고 하는 그게 답을 찾는 거였다.

 

따라서 답을 찾는 그게 에고였고

그게 존재 불만족이고

존재 불만족이 두카, 고통이었고

그것을 우리가 알아채는 거예요.

 

부처님 오도송에

집을 짓는 자를 보았다

-이게 업을 계속 만들어가는 자

-이게 우리들의 에고거든요.

 

그래서 끊임없이 존재 불만족을 느끼게 해서

무언가를 조작하게 만드는 그놈

그게 에고인 거예요.

그걸 본 거예요.

 

그래서 항상

-인생의 답을 찾아야 되요.

-이상을 추구해야 돼, 하는 그게 지금 에고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거를 자각을, 발견하게 되면

그놈한테 간불용발

머리카락 하나라도 그놈한테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간불용발해서 여여부동(如如不動) 움직이지 않게 된다.

움직이지 않게 되면

무위자연(無爲自然)

모든 게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정말로

무위자연_ 돌아가고 있다.

특히 무위자연의 주체가 에고겠어요? 본질이겠어요?

본질이겠죠.

그 본질이 무위자연이에요.

그래서 정말로 본질에 힘을 실어서 살지

에고 쪽으로는 힘을 안 실어주는

에고는

-계속 업을 만들고,

-문제를 만들고

-나로 하여금 존재 불만족하게 만들고

-자꾸 무언가를 하게 하고

-그래서 고통 속에서 살게 하고 하는

거기에 계속 나는 끌려다녔구나 하는 걸 알아채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 대한 에너지를 주지 않고

무위자연 쪽으로 이렇게 간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본질이 부처지요.

그 부처가 무위자연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쪽을 힘을 실어서 산다.

 

그러면 수류화개(水流花開)

수류_ 물은 흐르고

꽃이 핀다.

 

이때 하여튼 수는

물 수()자는 심방변()하고 같아요, 한자에서.

그래서 심방변은 이거거든요()

이걸 줄이면 이거거든요().

()= ()= () 다 같은 말이다.

 

수류_ 마음이 살아 있으니까 무위자연인데

마음이 어느 한 군데 가서 집착하지 않아요.

이렇게 붙질 않아요, 마음이.

그래서 항상 마음은 열려서 자유롭게 열려 있는 상태

여기서 전광석화가 일어나요.

 

마음이

-나는 어떻게 해야 돼

-나는 뭘 해야 돼, 하면 마음이 굳어요.

 

유교에서

-나는 착하게 살아야 돼.

-나는 양심에 따라야 돼 하면

거기에 마음이 굳어버려요.

 

그것조차도 다 놓는다 이거예요.

수류_ 항상 마음이 흐른다.

이게 우리 공부의 끝이에요.

우리 공부의 끝은

수류_ 내 마음을 어디에도 고정시키지 않는다는 거예요.

 

특히 가장 수류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검객들이었어요.

왜냐하면 칼이 1:1로 딱 칼이 붙었을 때

승부는 마음이 뺏기느냐 안 뺏기느냐야 달려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마음이 어디에도 놓여 있지 않아야

전광석화처럼 본능적으로 움직임이 나오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지하면

어떻게 해야지하는 의도 때문에 마음이 굳어버린다.

뺏겨서 굳는다

그러면 스피드가 나지 않는다.

이해되세요?

 

두 사람이 똑같은 자세로 쳐요.

칼을 가지고 두 사람이 똑같은 자세로 쳐.

근데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

차이는 스피드예요.

스피드는 어디서 나오느냐?

마음이 매여 있느냐? 매여 있지 않느냐에서 나와요.

 

모든 운동이 똑같지만

페인팅을 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속인 다음에, 탁 공격에 들어가는.

이해되세요?

페인팅이라는 게 있어요.

모든 상대적으로 하는 스포츠에는.

 

그 페인팅을 통해서 상대방을 속여서 마음을 굳게 만들고

자기는 싹 빠져나가는.

그러니까 그 스피드가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이 지혜가 어디서 나오느냐?

지혜는 수류_ 마음이 흐르는 데서 나온다.

 

마음이 마음대로 흘러가면

하는 일마다 꽃이 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어디에도 메이지 않고

무심하게 텅 빈 상태로 딱 깨어서 일을 대하면

무위자연이란 말이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부처의 경지라는 거예요.

부처의 경지

 

그러면 화계_ 하는 것마다 꽃이 핀다.

독일 사람이 쓴 <활쏘기의 선>이라고 하는 책이 있거든요.

그래서 서양 사람이 선을 배울 때

좌선이 안 되니까, 독일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좌선이 안 되니까

아예 당신은 앉지 말고 궁도를 가지고 선을 배워라.”

그래서 이 사람이 궁도를 가지고 선을 배운 거예요.

 

근데 거기에 어떤 대목이 나오느냐 하면

그 책을 가지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어떤 대목이 나오냐 하면

하도 실전은 안 가르치고 기본 폼만 가르치니까

너무나 이게 지겨워서, 이게 맞는가 싶어서

그 일본인 스승한테 이렇게 대들었다는 거예요.

언제까지 이렇게 폼만 가리킬 겁니까? 실제로 소개해 줘야지.”

그러니까 그 사람이

그러면 밤에 와라

 

밤에 오라고 해서 이 일본인 스승이

그러니까 품만 가르친다, 이 말은 뭐냐 하면

활을 가지고 가마때기를 걸어놓고 거기만 쏘는 거예요.

근데 실전에 과녁을 넣고 쏘는 걸 하고 싶다 이거야.

 

근데 스승의 말은

너가 폼이 익어야지 그게 되지, 지금 아무리 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

그래서 폼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말을 못 믿으니까 밤에 와라해서

그 독일 사람이 밤에 왔을 때

스승이 200m, 그 과녁이 200m 밖이래요.

굉장히 멀지 않나요?

까마득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200m 가서 관장을 확인하고 오라고

그래서 확인하고 와서

이 스승이 밤에 그 과녁을 쏜 거예요.

 

첫 번째 가서 보니까 한가운데, 과녁에 딱 한 가운데

요즘 같으면 10점 있잖아요.

거기에 딱 맞은 거예요.

그러니까 감탄하면서 와서

안 보이는데, 밤에, 이렇게 쏘니까.

 

그래서 두 번째 화살을 쏘았어요.

그리고 이 독일 사람이 가서 기겁했다는 거예요.

그 화살 맞은 거기를 또 두 번째 화살이 뚫었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여튼 그거 이해가 안 된대요.

저한테 질문을

그게 이해가 안 된다고.

그 한 분이 저한테

그 대목이 이해가 안 됩니다.

인간이 어떻게 두 발을 연속해서 같은 자리에 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한 거예요.

 

근데 요즘 올림픽에 보면

가운데 렌즈 있잖아요. 렌즈 깨 먹는 일이 잦다면서요.

한국 여자 궁사들이 쏘면

10점 한가운데, 렌즈가 있어서

그 날아온 화살을 촬영하는데 그 렌즈를 깨 먹는데요.

하도 잘 쏘니까.

 

무위자연 수류화개의 뜻이

그냥 음풍농월 하는 게 아니고

정말 실력이 그렇게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마음이 어디에도 메이지 않는 사람의 경지라는 것은

정말 어마무시하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이 그냥 이런 이론 공부에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로 자기가 생활에서

이런 실력을 길러가자는 그런 뜻이에요.

 

화개의 꽃이 핀다.

정말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진선미가 하나 된

그런 것이 피어난다.

 

그래서 임운등등(任運騰騰)

의문등등_ 표주박이 물에

임운_ 운에 맡겨서

등등_ 표주박이 등등등 이렇게 떠내려가는 것처럼

이 체용이 무위자연으로 흘러가는 여기에

완전히 인간도 하나 되어서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맡은 일을 하게 되는

그래서 정말 그런 실력을 갖춘 인간이 되는 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