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태어나서
시발점으로 이렇게 종교를 믿고 이렇게 가는데
여기까지 와서 여기를 한 번 뛰어넘어서…,
이게 생사에 관한 건입니다, 이게 지금 말하자면.
물질세계에서 이리로 와서 여기를 다시 뛰어넘으면
이제 피안의 세계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넘어간다
이런 소리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이것이 쭉…,
이게 살아서 열반이라고 하는 경계입니다.
죽어서 열반은 없어요.
그러니까 한 번 내가 모든 것을 놔서
돌아서 죽은 세상까지
살아있는 세상과 죽어있는 세상이 동시에 같이 있는데
거기를 찰나찰나 이렇게 한 바퀴 돌 줄 알아야
모가 나지 않게 돌아갈 줄 알아야
50% 50%, 100%를 같이 굴릴 줄 알아야
이게 됩니다.
지금 그것을 뭐라고 그러셨죠?
처음에 물으실 때.
내 듣고도 또 말하면서 잊어버렸죠.
그래서 한 바퀴 돌아와야
그 둘이 아닌 도리를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이 세상에 나와서 자식이 됐다가 부모가 돼요.
부모가 됐다가 또 한 번 옷을 벗고 한 번 돌아요.
돌아서 다시 탄생을 해보니까
딴 부모한테 또 태어났어요, 인연에 따라서.
그러니까 또 딴 부모의 자식이 되더란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딴 모습으로다가, 짐승의 모습을 가지고서
짐승의 자식이 돼서 또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돌고돌다 보니까
내 자식 아닌 게 하나도 없고
내 부모 아닌 게 하나도 없고
내 형제 아닌 게 하나도 없더라.
공동묘지에 가보니까
남녀노소도 없고 그대로 늙었더라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것 또한 깨우쳐야 알겠죠.
그러니까 진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지금 내가 이 줄과 염주가 둘이 아니다
뿌리와 싹이 둘이 아니다.
그 뿌리의 세계를 알아야
이제 뿌리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나오면서
자꾸 화해서 바뀌어서 모습이 바뀌어서 나오는 거
인연이 바뀌어서 나오는 거.
그런 것을 50%만 아는 게 아니라
100% 돌아가면서 알아야
'아! 이게 모두가 둘이 아니로구나!' 이렇게 알지
내가 직접적인 행을 해보지 않고,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먹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둘이 아닌 줄 알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한 번 이렇게 죽었다 깨어나고, 깨어났다가 죽고
이러는 도리를 확실히
우리 지금 이 공부입니다.
그것을 한다면 그 도리를 알게 됩니다.
내 과거에 살던 나와
현실에 살던 자기와 둘이 아니게 상봉을 해야
진짜로 그런 도리를 공부하는 겁니다.
그리고 알게 되는 겁니다.
스스로 알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스스로
너 나가 없이 자비를 베풀 수가 있고,
네 부모 내 부모 아니게 자비를 베풀 수가 있고
마음을 낼 수가 있지
어떻게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생짜배기로,
너 나가 따로 있는데
‘아이고, 둘이 아니다!’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습이 둘이 아니고 그런 게 아니라
그 마음이 둘이 아니다
영혼이 둘이 아니다 이겁니다.
영혼이 둘이 아니라면
바로 진짜로 자비를 베풀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러고 모습은 따로따로 각각 있을지언정
한 줄에 꿰었다 이겁니다, 한 줄에.
이 염주알이 여러 개 따로따로
염주알은 따로따로 있으나
한 줄에 꿰어 있으니까
‘너 나가 둘이 아니구나.’ 이렇게 알려지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도 또한
발견을 해야 아시겠죠? 확실하게.
그러나 발견을 안 했어도
‘진짜로 뿌리의 세계는 그렇게 둘이 아니구나.'
'영과 영이 만 개가 한데 합쳐도 영은 영이고 바로 둘이 아니구나.’
이런 걸 알게 될 겁니다.
그러니 모두가 우리가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을 증오 안하고
미워 안하고
이렇게 항상 하신다면
자식의 업보도, 남편의 업보도, 아내의 업보도, 부모의 업보도
다 사라지게 돼 있는 것입니다.
여기 실천을 아주 하고 가시는 분들도 많은데
그게 왜 그렇게 되는지 그것을 모르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사실로 체험하고 가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은 모르죠.
그러나 자기가 그만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을 거예요.
입력, 컴퓨터에 입력하는 것과
비교를 해서 얘기해 드렸으니까요.
한 찰나에 없어지는 것은 그거와 같다 이겁니다.
입력이 돼서 나오는 데다가
다시 입력을 한다면
앞서의 입력은 없어진다는 사실을
그대로 얘기해 드렸으니깐요.
내가 대답을 서툴게 얘기를 해 드리더라도
좀 여러분은 지혜롭게 너그럽고 둥글게 이렇게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난 말은…,
이렇게 배우지 못해서 그런지
용어를 방편으로
빨리빨리 대치를 해서 얘기할 줄 모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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