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보세요.
내 몸뚱이는 내 몸뚱이가 아니에요.
모든 생명들의 집이죠.
그런데 그 생명들을 다스리는 바로 자기 마음의 근본이 있거든요.
근본을 진짜로 믿는다면 두려운 게 없어요.
진짜로 믿어서…,
그 믿는다는 걸 어떻게 말을 해줘야 될까?
진짜로 믿는다면요
아무 의심도 없고요. 죽느냐 사느냐도 거기에 의심이 가지 않아요.
‘죽이든지 살리든지 너 알아서 해라.’하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뭐 두려운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죽는 것도.
죽는다 산다 이런 것도 두려움이 없고요.
또 뭐라고 그랬죠? 두려운 거하고….
내세운다.
믿지 못하니까 나를 내세우죠.
내가 몸속에 있는 생명들과 더불어
물 한 컵을 마시되
지금 이 성대든가 이 위에서 날더러요
물을 달라고 그래요.
그래서 심부름 해줬죠, 지금.
그런데 이 심부름을 해주면
더불어 같이 먹는다고요, 일체가.
그러니까 어떤 ‘나’가 먹는 게 아니구요.
나만 먹는 게 아니죠.
그러니까 나를 내세울 게 없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이론으로만 알려고 애를 쓰지 마세요.
좀 미련한 듯하게 모르는 척하고
그냥, 모두 경이고 뭐고 아는 거는 몽땅 거기다가
다 주인공에다가 그냥 팽개쳐버리세요.
팽개쳐버리고 거기에다가 거기에서
'흥! 못났든 잘났든 니가 형성시켜서 니가 이끌고 가는데 너 알아서 해라.' 그러고
그냥 몽땅 거기다가 팽개쳐버려요.
그렇게 함으로써 과거 참자기와 현재 자기와 상봉이 돼요.
이 상봉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리 이런 말을 광대하다고 얘길 해줘도
그 뜻이 거기에 귀에 들리지도 않아요.
그나 그뿐이에요?
이게 ‘돈오다’ 하는 거는
지금 내가 태어나는 걸 말하는 거예요.
지금 상봉을 해서 애를…,
뭐 말을 어떻게 해야 쉽게 말을 하지?
상봉을 해서 잉태를 해가지고
어린애 낳은 거와 같은 거니까요.
그
래서 어린애가 어른이 될 때까지, 자랄 때까지 하는 거는 점수라고 그러죠.
그렇게 이름이 돈오, 점수 이렇게….
그러다가 이게 돈오와 점수가 둘이 아니게 됐을 때는
그때 가선 돈수(頓修)라고 그러죠, 돈수라고.
그러니까 이것이 돈수라고 그러다가,
또 이것이 다 넘어가면
왜, 대학을 나와가지고 대학원을 들어가면
대학 나온 거는 다 없어지고 대학원 나온 것만 위로 남죠?
그거와 같이
구경경지에 이르기까지 생사에 관한 건도 다 놔버린 상태에서
구경에 이르러서까지 생사를 다 버린 그런,
아주 탕탕 놔버린 그런 상태가 돼야만이
그때는 ‘돈수다’ 뭐 이런 이름도 붙지 않고
그냥 ‘열반이다’ 이런 이름도 붙지 않은
아무것도 붙지 않는 그런 자리라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두렵다거나 나를 세운다거나 이런 거는
언어도단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이거는 도무지 이건, 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내세울 게 없다는 결론이에요.
내가, 이 몸뚱이 하나가 세계가 지금 하나로 된 몸뚱이라고도 볼 수 있죠.
이 세계인데 어떻게 혼자 살아요.
이 지금 몸뚱이 속에 위공장이 있는가 하면
성대공장, 식도공장, 심장공장
또 간장공장, 이자공장, 척추공장, 척수공장, 방광공장, 콩팥공장 뭐
공장이 이거는 너무나 그냥 많아서
그리고 피부에 대한 문제, 핏줄에 대한 문제
그게 우리한테는 이 지금 지구에도 핏줄이 있는 것이
즉 법계라고 하죠, 법계.
이게 법망이라고도 해요.
이게 즉 그걸로 인해서 통신이 되니까.
그래서 인간의 이 핏줄이 전부 이게
한 몸뚱이를 돌아다닐 수 있는 통신망이죠.
그러니까 어디든지 그런 망이 없이는 있는 게 하나도 없죠.
그러니 모두 자기 내세울 게 없어요, 공(空)해서.
그러니까 더불어 같이 사는 주인공이, 주인공이 하고, 주인공은 속에서 하고
주인공 몸뚱이는, 즉 말하자면 시자는 뛰고.
내가 간단하게 그냥 무식하게 이렇게 말을 했어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할 테니까 너는 뛰어라!' 이랬다고요.
'나는 할 테니까 너는 뛰어라!'
아, 그런 거 아니에요?
'나는 할 테니까 너는 뛰어라!'
그 말이 잘 지혜롭게 이해 하면
아주 그냥 근본적으로 들어가는 말이에요.
그렇게 하세요.
무조건 감사한 일이 생기면
자기 주인공에게 모든 거를 감사하게 놓고요.
또 아니 되는 거는
'아니 되는 것도 너니까
아니 되게 하는 것도 너니까
되게 하는 것도 너다.' 그러고 놓고요
그렇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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