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
이겁니다.
여기에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그냥 텅 빈 마음에서
이렇게 이렇게 일어났다 사라졌다 일어났다 사라졌다
그냥 이것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이게 아무것도 없어요.
치기 전에도 아무것도 없고
치는 동안에도 소리가 나는 동안에도
실체라고 할 게 없어요.
그러니까 이게 사라지고 사라지고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다음 소리가 걸림 없이 나오는 거거든요.
이게 만약에 앞에 소리가 머물러 있으면, 뭐가 있다면
이 두 번째 소리가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이게 실체가 없기 때문에
두 번째 소리도 선명하고
세 번째 소리도 선명하고
100번을 쳐도 이게 선명합니다.
이게 간섭받지 않고 뭐가 실체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생각도 마찬가지거든요.
우리가 과거를 생각하다가 미래를 생각할 때
미래의 생각 속에 과거가 섞여 있지 않아요.
왜냐하면 본래 비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순간순간 순식간에 무슨 생각이든지 전환이 가능해요.
아무것도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생각도 실체가 없고
느낌도 마찬가지거든요.
근데 자꾸 우리가 의도를 내서
자꾸 그 생각을 고수하려고 그래.
그러니까 힘이 들어가는 거예요.
진짜 그게 생각이 있다면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거기 있거든요.
근데 끊임없이 우리가 어떤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고
감정을 유지하려고 하고
생각을 붙들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 자체가 허깨비라는 걸 증명하는 거예요.
그게 진짜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그거를 마음을 써서 붙잡을 이유가 없잖아요.
붙잡고 있는 이유는
그게 환상이기 때문에 붙잡고 있는 거예요.
그게 진짜라면
왔다갔다 안 합니다.
그냥 항상 거기에 그대로 있지.
그래서 우리가 왜 피곤함을 느끼냐 하면
붙잡을 수 없는 거를 자꾸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실체가 아닌 거를 붙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이 피곤한 거예요.
마치 그 강가에 모래를 탁 잡으면
이 잡은 손 아래로 다 모래알이 빠져나가듯이
근데 그거를 완벽하게 잡으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니까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피곤하고
이게 잡히지 않는 거를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래도 모래는 만지는 느낌이라도 있죠.
그 모래 말고 물을 잡으려고 하세요.
물. 안 잡히거든요.
물. 안 잡히죠. 그냥 줄줄 빠져나가죠.
근데 물은 그나마 좀 나와요.
왜냐면 만지는 촉감이라도 있지.
근데 이 도라는 거는
물도 아니야.
그런 식의 어떤 느낌으로도 나오는 게 아니에요.
마치 공기와 같아요.
이거 잡힙니까?
이게 느낌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게 비유거든요.
눈앞에 있는 공기를 법이라고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 마음에
마음에서 이 생각 일어나고, 저 생각 일어나고
여러 가지 상이 일어나는데
그 일어나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에.
그러니까 이 상, 모습 하나하나가 실체가 없다라는 거예요.
근데 이게 죽은 게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 환상과 같은 것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춤추고 있거든요.
모든 것들이, 모든 상들이.
뭔가 죽은 거는 아닌 것 같아요.
그게 표현을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어요.
살았다 죽었다도 말할 수 없지만.
왜냐하면 끊임없이 소음은 일어나거든요.
끊임없이 생각은 일어나거든요.
끊임없이 느낌은 일어나거든요.
머물러 있진 않지만.
가만히 놔둬 보세요.
우리가 공부하면서 가장 재미있는 건 뭐냐 하면
남 구경, 싸움 구경한다거나 세상 구경하는 거 재미있죠?
근데 제일 재미있는 건 뭐냐 하면
자기한테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구경하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되게 새롭거든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요.
내가 이랬나? 싶은 것들이 보여서
놀랍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해요.
“내가 이런 사람인가?”
그런데 사실은 그런 판단조차도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라는 것도 실체가 없고
그런 판단하는 것조차도 어떤 고정된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서투르기 때문에
자꾸 자기한테 실망하게 되요.
그건 아직 공부가 덜 여물어서 그런 식으로 보게 되는 거지
나중에는
그 판단하는 그 소리조차도 공기와 같은 거라.
이 육체조차도 머물러 있는 게 없는 거예요.
왜?
어느 거를 나라고 할 거예요?
1살 때 나? 2살 때 나? 5살 때 나? 1
0살 때 나? 20살 때 나? 50살 때 나? 60살 때 나?
머물러 있지 않잖아요.
어느 걸 나라고 할 거예요.
“이게 내 잘못이야” 하는 순간
나는 변하고, 다른 몸이 돼 있어요.
누구한테 탓을 할 거예요.
하나도 머물러 있는 건 없어요.
그래서 없는 건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끊임없이 나타나기 때문에
근데 그게 고정된 뭐라고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만법에 자성이 없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표현하죠.
스스로 자, 성품 성
그거의 고유한 독자성이 없다라는 거예요.
생각의 결과물이고
분별 망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잘 보세요.
뭐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이것이다 저것이다’ 판단하고 있지 않나?
그거 다 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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