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지금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 ‘도와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하다가 법문을 듣고 그게 잘못됐다 알고, 바꿨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둘 다 지금 얘기 들어보면 역시 도와주세요, 지금 이 얘기하고 있는 거 아니오. 그 내용이. ‘우리 아들은 내 말 잘 듣고, 내 마음에 들도록 해 주십시오.’ ‘남편도 내 맘에 들도록 해 달라.’ 이 얘기밖에 아니다. 그러니까 바뀐게 하나도 없다. 바뀐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번뇌가 생기는 거요. 만약에 바뀌었으면 번뇌가 안생기지.
그러면 남편에 대한 기도, ‘남편을 원망하지 않게 해 주세요.’ 하는 거는 바라는 바의 기도에요. 남편을 원망을 하는데 원망하지 않게 해 달라. 왜 원망하느냐? 내가 바라는 대로 안 되기 때문에 원망한단 말이에요. 원망하지 않게 해주세요, 해도 그러면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이것은 기도도 또 성취가 안 되는 거에 속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뿌리를 뽑아야지, 자꾸 이렇게 덮어놓고 드러난 현상만 고치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남편을 이해하게 되면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진다,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절을 하면서 ‘여보, 돈 벌기 힘들죠.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그 동안에 너무 의지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나까지 당신한테 의지해서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너무 그렇게 부담 갖지 마시고, 편안하게 여유를 갖고 하십시오. 제가 그 동안에 집안일은 책임을 지겠습니다.’ 이렇게 자꾸 마음을 내면 원망하는 마음이 저절로 없어집니다. 원망 안하게 해주세요. 한다고 원망이 안 되는게 아니다 이 말이오.
그 다음에 애에대해서도 마찬가지. 건강이란게 뭐냐는 거요. 이 세상 사람이 건강이 다 똑같지 않지 않습니까? 걷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이런 사람에 비해서는 지금 아들이 건강한 편이에요? 안건강한 편이에요? 그러니까 건강이라는 말은 상대적인 거요. 뭣과 비교해서 더 건강하다, 이런 얘기요. 두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한눈만 보여도 어때요? 그 사람보다 나아요? 안 나아요? 낫지. 그런 것처럼 이 건강이라는 것이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이 말이오.
지금 제 발로 걸어 다녀요? 그럼 아무 문제가 없어요. 검진 받으면 되죠. 거 뭔 문제요. 병이라 할 때는 고칠 수가 없을 때가 병이에요. 고칠 수 있는 건 병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항상 부처님께 ‘부처님 감사합니다. 내가 몸이 안 좋은데도, 아이가 저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되.
아이에게 늘 근심어린 눈으로, 동정의 눈으로 내려다보면, 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근심이 많은 사람. 동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 버리는 거요. 내가 지금 아이를 그렇게 연약하게 만드는 거요. 내가 마음으로 자꾸 ‘니는 연약하다. 니는 연약하다. 니는 도움을 받아야 되. 니는 조심을 해야 되.’ 이렇게 자꾸 하면 아이는 그런 연약한 인간이 되 버린다. ‘그 뭐 그 정도는 괜찮아. 검사만 받으면 되. 뭐 못 걷는 사람도 있는데, 니는 걷잖아, 못 보는 사람도 있는데 니는 보잖아. 말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니는 말하잖아. 너는 건강해. 괜찮아.’ 애가 걱정을 해도 엄마가 이래 말해줘야 되.
애가 뭘 조심하면 ‘아 괜찮아. 한번 해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고, 다치면 병원 가서 치료받으면 되지. 뭘 그걸 갖고 그렇게 조마조마하냐? 해봐.’ 이렇게 말해야 된다. 그런 내가 이렇게 ‘아! 이래야 되구나’하고 알았는데, 남편을 보면 또 원망하는 마음이 들면 ‘어~ 내가 남편을 아직도 의지하고 있구나, 내가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구나.’ 하고 그걸 참회해야 되고, 또 아이를 보면 근심걱정이 일어나면 ‘오~ 내가 또 잘못된 마음을 쓰고 행동을 하구나.’ 이걸 참회해야 된다, 이 말이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부처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게 참회가 아니에요. 공염불이에요. 그거는. 어떻게 해야 되는데, 내가 아이를 건강한 눈으로 봐야 되는데, 그래 안 돼는 나를 볼 때마다 ‘오~ 내가 또 잘못된 마음을 쓰구나.’ 이렇게 점검을 해 가면서 참회를 해야 된다, 이 말이오. 참회가 구체적이어야 된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에게 어떤 관점으로 봐야 된다 하는데, 그런 관점을 내가 유지 못한다. 왜? 근심 걱정하는 이미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근심 걱정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나를 알아차리고, ‘오~ 내가 또 어리석은 생각을 하구나.’ 하고 참회를 해야 된다. 이런 말이오. 참회할 때는 그렇게 자기의 일상 속에서 법에 어긋나는, 바른 길에 어긋나는 행위나 말이나 마음이 일어나는 거를 잡아서 참회를 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래야 고쳐질 거 아니오.
그런데 그냥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거는 참회가 아니오. 입으로는 참회,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속으론 ‘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러게 되. 그러니까 아무 쓸데없는 짓이오. 그러니까 생각으로 참회하는 거요. 입으로만 참회를 하고, 참회가 몸과 마음에서 ‘아~ 내가 또 어리석게 행동하구나. 내가 또 잘못된 생각을 하구나.’ 이게 자각이 돼야 참회요. 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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