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저에게 너무 소중했던 엄마를 자살로 잃었습니다.
부모님이 다투시다가 엄마가 투신하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아빠가 죄책감에 나쁜 선택을 하실까 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아빠는 종교 활동도 하시고, 여자 친구도 만나며 잘 극복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 살지 못하고 가신 엄마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자주 듭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빠를 생각할 때
엄마의 죽음에 기여도가 있는 사람이라는 증오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증오하는 마음 때문에 괴롭고, 아빠에게 그 마음만으로도 죄송스럽습니다.
부모님의 비극으로 시작된 이 두 가지 감정 속에서
어떻게 하면 평안하게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네. 가슴 아픈 사연이네요. 10년 전이면 몇 살 때예요?
27살이면 미성년자가 아니고 성인입니다.
성인이 되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합니다.
미성년자일 때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을
아이가 온전히 책임지기 어렵기 때문에
부모가 그 책임을 대신 져줘야 합니다.
부모가 없으면 다른 보호자가 그 역할을 합니다.
대부분 부모가 보호자 역할을 하고
부모가 없으면 친척이 보호자가 되며
친척도 없으면 사회에서 보호자를 지정합니다.
하지만 한국 나이로 20살, 만 나이로 19살이 지나면
성인이 되고, 생물학적으로 성체가 됩니다.
그때부터는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직접 감당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남을 탓할 수 없는 나이라는 겁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살아가다 보면 다툴 수 있습니다.
질문자도 나이가 들어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 보면 알 거예요.
만약 결혼을 했다면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더라도
의견 차이나 감정 차이로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 겁니다.
하지만 갈등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자살하거나, 상대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갈등 없이 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다만, 극히 드문 경우에만,
즉 100명 중 하나도 안 되는 적은 수의 사람들이
화를 참지 못해 상대를 죽이거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자살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발생하는 일입니다.
사람이 싸우다가 분을 참지 못해 누군가를 죽였다면
우선 이 사람은 범죄자죠.
그러나 이 사람의 심리 상태를 조사해 보면
정상적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감정이 북받쳐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화가 나도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죠.
그런데 감정이 확 올라올 때
자기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속된 말로 눈이 뒤집힌 상태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거나 망치로 때리다가
살인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세상에서는 보통
나쁜 놈,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하지만
제가 살인으로 감옥에 있는 사람과 상담을 해보면
꼭 나쁜 사람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순간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통제를 못해서
자기도 후회하는 일을 저지른 겁니다.
물론 범죄 조직에서 저지르는 건 별개의 문제고요.
반대로 갈등이 생겼을 때
분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도 그 사람의 이전 병력을 조사해 보면
대부분 심리적 불안 요인이나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향,
또는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병력이 전혀 없이
단순히 순간적인 감정을 못 이겨 자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만약 아버지가 지혜로워서 어머니에게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을 파악했으면
어머니가 감정적으로 격해질 때
'여보, 그만하자' 하면서 중단시킬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아무리 서로 친밀하거나 부부, 형제 사이더라도
상대의 감정적 위험성을 인지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그냥 자기 감정에 따라 갈등을 일으키다가
어머니는 결국 그 선을 넘었고
투신이라는 극단적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마치
자기가 아내를 죽인 것처럼 느꼈을 거예요.
자기 때문에 아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니까
매우 큰 죄책감이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살한 사람을 따라서 자살하기도 하고,
평생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질문자의 아버지처럼
처음에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가 세월이 흐르면
그 감정을 잊고 다시 다른 사람을 사귀면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아버지가 평생 죄책감 때문에 혼자 괴로워하며 사는 것이 좋겠어요?
아니면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결국 그 감정을 잊고 일상적인 생활로 복귀하는 게 좋겠어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일상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복귀가 잘 안되는 사람들은 사랑이 깊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어서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와 갈등이 없었더라면
어머니가 그날 돌아가시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일어난 일을 아버지의 책임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머니가 이미 그런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꼭 그날이 아니더라도, 또 남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갈등이 격해져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이런 사고가 일어날 위험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위험 관리를 해야 했지만
그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죠.
이것을 아버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정신분석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아버지에게는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이 상황을 상대편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갈등이 없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 아니냐고 얘기하면
어느 정도 책임이 있겠지만
어머니가 정상적인 심리 상태였다면
이런 정도의 갈등으로 자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화를 내고 난리를 피우고 집을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것이 보통이니까요.
만약 어머니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조기에 알아차리고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었다면
이런 극단적 선택은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완전히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우울증도 조기 발견해서
상담 치료나 약물 치료를 하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약을 먹지 않고 혼자 방에 있다가
어느 순간 감정이 격해져서 확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감정이 바깥으로 드러나면 살인 행위가 일어나고
안으로 드러나면 자기를 죽이는 행위가 일어납니다.
자살은 남은 가족에게 정말 큰 상처가 되죠.
특히 자녀인 질문자에게는 매우 큰 상처로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아까 지진 난 거 보셨죠?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갑자기 가족을 잃는 경우처럼
질문자도 이 일을 하나의 사고로 봐야 합니다.
아버지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일어난 하나의 사고로 봐야 하는 것이죠.
물론 이런 사고가 안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일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이 사건을 너무 가슴에 담고 있기보다는
하나의 사고로 받아들이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아버지가 정말 지혜로웠다면 좋았겠지만
아버지나 어머니가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성인이 아니잖아요.
아버지, 어머니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중생의 한 사람, 시민의 한 사람일 뿐이에요.
시민의 한 사람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 시민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에게 너무 높은 기대를 걸고,
'그 정도는 배려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안 됩니다.
우리의 뇌는 어떤 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도록 되어 있습니다.
잊는 것은 엄마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뇌의 기본적인 성질이 그런 거예요.
그 당시에는 가슴 아프고 죽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히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몸져누웠을 때
아무리 주변에서 위로해도 소용없잖아요.
그래서 어른들이
'세월이 약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다'하고 말하곤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근데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가 따라 죽는 경우,
이는 사랑이라기보다 일종의 정신 질환에 가깝습니다.
심리학적으로만 분석하면
이것을 '사로잡힘'이라 불러요.
생각이 한쪽에 확 사로잡혀서
다른 것이 보이지 않게 되는 심리적 상태입니다.
아버지가 일상을 회복하고, 여자 친구도 만나고, 앞으로 재혼도 한다면
아버지가 정상적으로 돌아온 거라고 봐야 합니다.
질문자가 찬성하고 좋아할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질문자에게 하나도 나쁜 일은 아닙니다.
아빠가 늘 우울해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아버지마저 자살할 위험이 있다면
질문자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을 거예요.
아버지가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는 죽었는데 아빠는 다른 여자를 만나서 편안하게 살다니
엄마만 불쌍하다. 아빠는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가족이 지진이나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겠어요?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왔습니다.
우리나라도 동학혁명 때 몇 십만 명이 죽었고
한국전쟁 때도 100만 명 이상 죽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이별의 과정을 겪고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마음에 상처는 있죠.
그것이 트라우마입니다.
북한에서 식량난으로 가족을 잃고 한국에 온 사람들은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도 트라우마 때문에 늘 괴로워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음식이 없어서 죽은 형제나 부모 생각이 자꾸 나는 거예요.
이 흔해 빠진 음식이 없어서
죽은 가족을 생각할수록 분하고 화가 납니다.
이러면 정상 생활이 잘 안 돼요.
트라우마를 치료해야 합니다.
질문자도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고 생각할 때마다 어머니가 떠오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아버지가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거나
아버지가 행복해 보일 때
'엄마는 죽었는데 아빠 혼자 뭐가 그리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자기를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어머니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셨고
비록 자살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명을 다해서 삶을 마쳤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양쪽의 상황을 모두 놓고,
질문자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환경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떤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가야 합니다.
앞서 말한 지진이나 전쟁 상황과 비교했을 때
그래도 내가 겪은 것이 낫다고 생각해야 해요.
이렇게 자기를 긍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가 없잖아요.
더 나쁜 상황에 비교해 본다면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 어머니가 죽었을 때
아버지마저 죄책감에 자살해 버렸다면
질문자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을 거예요.
‘아버지라도 살아 계셔서 다행이다’ 하고 좋게 받아들이고
이제 질문자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이렇게 관점이 잘 전환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 문제가 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면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치료를 통해
그런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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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보면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예기치 못한 일, 원하지 않은 일도 일어납니다.
그것이 세상사입니다.
그건 어떤 하느님의 징벌도 아니고 전생의 죄도 아닙니다.
세상사가 원래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수해 피해가 없도록 집을 안전하게 지었지만,
갑자기 홍수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모래주머니로 둑을 쌓아 최선을 다해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막을 수 없다면
집을 포기하고 우선 몸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괴로워할 필요가 없어요.
집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살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집을 잃을 만큼 위험한 상황에서도 죽지 않고 목숨을 건진 거니까요.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 총이나 칼을 겨누며 돈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돈이 아까워서 그 순간 돈을 움켜쥐고 칼을 맞아야 할까요,
아니면 돈을 내어주고 내 생명을 지켜야 할까요?
내 생명을 지켜야겠죠.
이때 돈을 뺏긴 게 아니라 대신 내 생명을 구한 거예요.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돈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겠지만,
나는 지혜롭게 돈을 포기하고 내 생명을 구했다’
이런 관점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상황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주인 된 자세로 내가 결정하는 것을
‘수처작주’라고 합니다.
이런 주인 된 자세로 자기 삶을 살아야
내 인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물에 떠내려가는 나무토막처럼
이 세상에 휩쓸려 살게 됩니다.
여러분들
모두 휩쓸려 다니는 이런 인생에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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