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절제한 아들과 며느리의 채무를 갚아주고 싶은데
깨진 독에 물붓는 격이어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합니다.
갚아주면 또 사채를 쓸 것 같고 아기도 있는데 걱정이 큽니다.”//
아까 조금 전에는 아들이 40인데, 결혼을 못해서 할머니가 찔찔짜고 울고 그랬어요.
그리고 저 아들을 놔두고 내가 어떻게 죽느냐고...
그래서 제가 어떤 기도문을 준 줄 알아요?
“우리 스님은 우리 아들보다 나이 많으니까
그래도 스님 먼저 장가가고, 다음에 우리 아들 장가보내주세요.”
이렇게 기도해라. 내가 그렇게 줬어요.
왜 웃어요? 이치가 그렇잖아,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더 먼저가야 안 되나?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서 그 여자보고 물을 거 아니오. 야단 칠 거 아니오.
“너희 아들은 40세 밖에 안 됐는데 그게 그렇게 걱정이가? 우리 아들부터 먼저 가야지”
그래서 스님 먼저 가시고, 스님 가시면 다음에 우리 아들 보내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스님 먼저 가고 우리아들 가도록 기도하라’ 이 말은 뜻이 뭘까?
스님 장가보내겠다는 뜻일까?
아들 장가보내는 거는 신경 끄라는 얘기일까?
스님이 장가갈 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신경 꺼라. 이 얘기에요.
그러니까 이 경우에 그 할머니가 들으면
“아들이 장가가서 애 낳았는데 그게 뭐가 걱정이고.”
그 할머니 데려올걸 그랬어.
그게 울 일이가? 아무 일도 아니오.
그리고 또, 아들이 18살 때, 17살 어쩌구...
옛날에 저기 조선시대면 남자 15, 16이면 장가 보냈어요? 안 보냈어요?
보냈는데, 18살이면 3살이나 더 많아서 간 건데
사고가 아니에요.
‘우리 아들은 효자라서 일찍 장가를 갔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지.
일찍 장가를 가니 애들 장가 보내는 건 잊어버렸잖아.
그런데 나이가 만18, 우리 나이로 20살이 넘으면 부모의 역할을 다 했습니다.
내가 형편이 되어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면 그건 자유에요.
길가는 사람도 도와주니까.
그러나 나의 역할은 끝났다. 의무적 역할은 끝났다.
어떻게 살든지, 죽든지, 내 역할은 끝났다.
그러니까 자기가 ‘내 역할을 끝났다’ 이렇게 생각하고 독립을 하면 되는데
자기가 거기 신경을 쓰는 거, 그거야 나도 어쩔 수 없어요.
무슨 통을 들으니까 밑에 지렁이가 밑에서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거 보고
“아이고 스님, 지렁이가 너무 불쌍해요...”
뭐 다람쥐 기어 가는 거 보고
“아이고 저 조그만한게 어떻게 사는가, 겨울에 도토리나 먹나, 불쌍해요.”
이렇게 걱정해도 되죠.
그런데 그건 자유 아니에요?
그거 걱정 안 해도 되요? 꼭 해야 되요?
안 해도 되는 데 본인이 하는 거요.
어쩔 수가 없잖아. 그거야.
그러니까 안 해도 될 걱정이오.
빚을 지든지, 지야 뭐, 게임을 하든지, 애 밥을 주든지 말든지,
그건 자기 하고 상관없는 일이다.
남의 가정에 이웃집 할머니가 간섭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거는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시라고.
도와주고 싶으면 도와주고.
그거 나한테 물을 필요가 없는 거요.
안 해도 되는 거를 자기가 하고 있다. 이 말이오.
법률적으로도 안 해도 되고
도덕적으로도 안 해도 되고
윤리적으로 안 해도 되고
부처님의 법 안에서도 안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거를 자기가 지금 지렁이 걱정하듯이, 다람쥐 걱정하듯이, 쥐 걱정하듯이 지금 걱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거 뭐, 당신 자유요. 하려면 하라 이 말이오.
그러니까 하면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울고 살아라 이 말이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울고 살 필요가 없다.
나도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
그러면 그거 안하면 돼.
뭘 알았다는 거요?
얘기해 봐요.
한 집에 살아요? 따로 살아요?
그래. 그런데 뭐 남의 집에 왜 걱정하느냐 이거요.
담 넘어 남의 집을 쳐다보고 뭣 때문에 걱정한다는 거요?
죽어도 자기가 죽인 것도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죽든지 살든지, 자기야 뭐 어떻게 살든지, 헤어지든지,
헤어져도 애들 데리고 오면 안 돼.
그럼 자기는 이제, 인생에 또 큰, 내 애 다 키워놓고 남의 애 키운다고 난리요.
입양하는 마음으로 키우는 거라면 모르지만,
그런데 아이는 자기 엄마 크고 싶을까? 할머니 손에 크고 싶을까?
예. 그러니까 거기 신경을 꺼라 이 말이오. 한 마디로.
남의 집이다.
‘아들 집이다’ 이런 생각하지 말고,
아들이긴 하지만 스무살 넘었기 때문에 내 역할은 끝났고,
저희 결혼해서 하나의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남의 집이다. 이 말이오.
남의 집에 신경 좀 꺼라.
남편 살았어요? 혼자 살아요?
사별한 지. 3개월.
그럼 딴 남자를 구해.
내 남자 없다고 그 젊은 남자 자꾸 내 남자처럼 간섭하지 말고
거기에는 여자가 있다니까.
왜 한 남자한테 두 여자가 붙어살려고 그래.
외로우면 내가 남자 친구를 구해야지.
그 남자한테 자꾸 신경을 끄라니까.
오늘 이 강의를 통해서 딱 끊어야 돼.
그러면 갚아주고 안 갚아주고 이런 생각도 하지 마라니까.
와서 막 울고 해도, 그냥 실컷 듣고,
“엄마는 내 할 일 끝났다. 네가 알아서 살아라.”
죽는다 그래도 “그래 살아라.” 이래야 돼.
스님도 출가해서 있으니까 우리 어머니가 와서 약 먹고 죽는다고 그랬어.
뭐라고 그랬어요?
“장례를 치러드리겠습니다.”
그래야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지,
안 그러면 어떻게 이 자리에 서 있겠어.
그러니까 딱 끊어야 인생이 행복해 진다 이 말이에요.
내가 이 얘기 하는 거는.
그게 불효가 아니라는 거요.
어머니 얘기에 끌려 다니면 평생 부모 종노릇해야 된단 말이오.
그러니까 딱 끊어.
아무 자기하고 상관없는 일이야.
알았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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