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업이지 뭐 그게. 그러면 여기 한번 물어보자. 그냥 한번 보세요. 사람이 어떤지. 고양이 좋아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손 들어봐요. 쭉 보세요. 내리세요. 고양이 싫어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개 좋아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내리세요. 개 싫어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이거 봐. 절반이나 되잖아. 개고기 좋아하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이거는 음식부터 시작해서. 제가 지금 한두 개만 물어봤잖아. 음식부터 시작해서 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니 남도 좋아한다. 이런 거 없어요.
남이 천하가 좋아해도 내가 싫은 사람이 있고, 천하가 싫어해도 내가 좋은 사람도 있고 이러거든요. 그러니까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고, 음식에 대해서도 그렇고, 나라에 대해서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다 그래요. 뭐냐? 자기 업이라 그래. 자기 업식. 그래서 이게 사람이 취미가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다 다른 건 뭐냐? 업식이 다른 거요. 그러니까 어릴 때 집에서 짜게 먹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음식이 그렇게 맛들면 평균적으로 좀 짜게 먹고, 그렇지 않는 집에서 태어나면 싱겁게 먹고 이런 두 부부가 결혼을 하면, 늘 서로 간이 서로 안 맞다고. “간도 볼 줄 모르나.” 이렇게 서로 다투는 거요. 습관에서 즉, 오는 거요. 별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습관에 누가 좋고 누가 나쁜 거는 있을 수 없잖아. 그래서 옳다 그르다 해서는 안 되고, 서로 다를 뿐이에요. 그리고 거기에 의해서 좋고 싫고가 일어나는 거요. 그래서 좋다하는 것도 아무 근거가 없고, 싫다 하는 것도 아무 근거가 없어요. 그러나 그것이 일어나는 건 사실이에요. 그러니까 거기에 매이지마라. 이런 얘기고, 싫으면 안하면 되요. 그걸 억지로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싫다고 해서 상대가 나쁜 거는 아니에요. 그건 내 업식이기 때문에. 내가 먹어보고 짜다해서 그 음식이 짠 거는 아니에요. 내가 먹어보고 싱겁다해서 그 음식이 싱거운 것도 아니에요. 딴 사람이 먹으면 또 맛이 다르니까.
왜 일어나느냐 하는 거는 자기 업식이 그런 거요. 몸도 다 여러분들 다른 거 아시죠? 토마토 맛있는데 토마토 알레르기 있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복숭아 맛있는데 있어요? 없어요? 사과 알레르기 있다는 거 들어봤어요? 네. 그러니까 이 체질마다 다 다른 거요. 왜 그러냐? 체질이 그런 거요.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이 싫으면 그 사람 안 만나면 되지, 그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나는 싫다는데 상대는 또 나를 좋다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건 그 사람의 기호가 그런 거니까.
나도 좋은데 너도 좋으면 다행이고, 나도 싫고 너도 싫어도 다행이에요. 그렇죠? 나는 좋은데 너가 싫거나, 너는 좋은데 내가 싫거나하면 갈등이 생기는 거요. 그래서 내가 싫은데 죽어라하고 좋다고 따라다니는 사람 옛날부터 있어요? 없어요? 별로 없어 보이기는 합니다만. 그런 경우에 살면 갈등이 생기죠. 그러니까 그런 사람하고 살 때는 그거를 이해하고 수용을 해야 되요.
그러니까 생기니까 좋고 싫고에 구애를 안 받는 게 수행이지. 그런 원리는 알면, 그건 그냥 같이 음식 먹으러 갔는데 꼭 나는 짬뽕 좋아하는데 자장면 시켜서 힘든 거하고 똑같은 거지. 그러니까 내가 자장면 먹을 수 있는, “야 자장면 짬뽕 둘 중에 하나 먹어라”하면 내가 짜장면 좋아하면 시켜먹으면 되고, 오늘 일률적으로 짬뽕이다 하면 그냥 먹어야지. 별 볼일이 없지. 그럼 좀 적게 먹으면 되지. 그러니까 그걸 가지고 왜 하나만 시키냐? 선택권은 안 주나? 그렇게 하면 살기가 힘들지.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하면 돼. 다만 내 체질과 내 성질을 알고 상대의 체질과 성질을 알아서 상대가 그런 거는 그 사람의 업식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힘들다하면 세상을 못 살지 뭐. 이 세상은 같은 집에 사는데 나 사과 좋아하는데 사과 알레르기 있는 사람하고 한 집에 살 수 있어요? 없어요? 결혼할 때 그거 다 맞춰줄 수 없잖아. 그럼 과일 살 때마다 늘 문제지. 그러나 그럴 때는 서로가 이해해야죠. 서로 맞추어서 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상대가 사과를 못 먹으니까 내가 사과를 안사든지, 상대는 나는 못 먹는데 상대가 좋아하니까 적절하게 배분을 하든지. 그런 것처럼 이런 거는 체질이 다르면 늘 이렇게 알게 모르게 갈등이 생기는 거요. 더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없으면 앉으세요.
자, 기호에 충실하면서도 살 수도 있습니다. 네. 그런 인가하고 가능하면 뭐하고? 안 만나고, 이렇게 살면 되요. 그러면 대신에 좀 속박을 받죠. 그러면 어떤 인간하고도 어떤 조건에도 살려면 그런 것에 있기는 있지만 구애를 좀 덜 받아야 되요. 그건 자기 선택이에요. 기호를 따져서 살아도 되고, 그 다음에 자기 그거에 대해서 좀 덜 고집을 하고 그냥 살아도 되고. 그러면 조금 인간관계가 넓어지고. 그건 어느게 좋고 나쁘고는 없습니다. 그걸 자기가 좀 자유롭게 싶으면 좀 그런 걸 덜 고집을 하고, 자기가 그걸 고집하고 싶고 좀 자기 기호를 충실하고 싶으면 관계를 끊으면 되죠.
그런 인간 있으면 회사에서 나오면 되요. 그런데 대부분 어떤 문제에요? 회사는 월급을 많이 주니 있고 싶고, 상사는 꼴 보기가 싫으니 나오고 싶고. 그럴 때 고민이잖아요. 그게 고민 아니에요. 선택의 문제에요. 그러니까 어떤 걸 선택할지는 그건 자기가 결정하면 돼. 세상은 늘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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