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은 한시도 쉬지 않고
변화하며 성장하고 늙어갑니다.
변하는 것 속에 영원함이 깃들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몸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몸을 ‘나’라고 여기면서
우리는 그 대신 천국을 이뤘습니다.
왜냐하면 몸은
끝없이 먹고, 입어야 하는
[걱정거리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몸을 뒤치다꺼리하는 시종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젊은 몸을 탐내지만
그것은 꿈속의 꽃처럼 피고 지나갑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흐르고 변화하는
그 어떤 에너지장 속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알 듯 모를 듯한 우리는
과연 무엇이며 누구일까요?
우리는 과거의 특정한 순간이
마치 사진처럼 계속 기억됨을 알 것입니다.
놀라운 소식을 접할 때
머리 아닌 가슴이 철렁함을 먼저 느낄 것입니다.
일상이 아닌 그 어떤 비현실적 꿈이
계속해서 반복됨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물질 몸이 아닌
의식체이자
그 활동이 쌓인 마음임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본래 순수 무구한 의식체이며
그것은 이 지구의 탄생과 같이
모든 물질 현상의 배후에서
그 변화를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었습니다.
우리의 가슴속에
하나의 강렬한 기억이
변하지 않고 영원히 기억됨을 보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본래 영혼불멸한
초월적 의식의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물질에 취해
자기가 본래 누구인가를 망각해 버렸습니다.
물질은 한 곳에 둘이 같이 존재할 수 없지만
의식과 마음은 그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과 의식이 모이는 곳에
바로 사랑과 우정의 빛이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하등 인간은 물질의 마음이 따라 가나
고등 인간은 마음 가는 곳에 물질이 뒤따릅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보이는 것만 믿지만
현명한 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대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바로 그대의 어린 시절 속에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것의 편린이 지금까지도 남아
우리는 어린 시절을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퀘렌시아는
그대의 어린 시절 속에 공기처럼 깃들어 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마치 꿈결 같을지라도
그때는 그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페렌시아를 지금 여기로 가져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대의 참 목표입니다.
그대는 이제 퀘렌시아는 여기에 없으며
죽어서나 갈 수 있는 곳이라 믿습니다.
진정한 케렌시아는
신이 임하시는 곳, 어디에나 뒷따르며 있습니다.
그런데 신은 어디에나 계심으로
결국 퀘렌시아는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죽어서 퀘렌시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신을 만나 하나 될 때
퀘렌시아에 갑니다.
일부 종교인들이 추측으로
퀘렌시아에 대한 얘기를 잘못 주장할 때 참 안타깝습니다.
퀘렌시아는 이미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삶의 과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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