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그때 모든 에고가 사라진 순간이었고
내가 존재와 합일된 순간이었구나.
그리고 바로 그것이 신성에너지였구나.
그리고 그 상태의 나는 에고로서의 나가 사라지고
근원으로서의 나로 존재했던 시간이고
신성으로서의 나로 존재했던 그런 시간이었구나”를
1~2년이 지난 후에야
“아, 내가 그 상태였구나”를 그때 깨달은 거죠.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존재와의 합일을 경험하고
신성을 경험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10년~12년 전에 일이고요.
제가 마음공부를 시작했던 시점으로 봤을 때는
한 7~8년 정도 됐을 때입니다.
막내 아이가 시각장애 아이인데요.
저희 집이 경기도에요.
집 근처에 시각장애를 위한 특수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특수학교로 등하교를 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저는 그때까지 제가 운전을 해 본 경험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운전에 굉장히 서투르고 소질이 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배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요.
이제 아이를 초등학교를 안 보낼 수는 없으니까
또 아이를 데리고 등하교를 시켜야 할 상황이니까
어쩔 수 없이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3월 2일 입학식에 맞추어서
2월 마지막 주에 3일을 연수를 받았는데요
집에서 학교까지 가고, 학교에서 집까지 오는
딱 그 한 가지 코스만 연수를 받은 거예요.
그렇게 하고 3월 2일부터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죠.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가는 그 등교 시간이
보통은 1시간 반 정도 걸렸고요.
차가 막히는 날은 2시간 그런 등하굣길이었는데요
정말 한 달은 초긴장 상태로 옆도 못 돌아보고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그냥 가다가 서다가, 차선도 못 바꾸고, 그냥 한 선에서 학교까지 쭉 가는
그렇게 해서 봄 여름을 지나고 가을쯤이 되니까
이제 조금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능숙함은 없었죠.
가을이었어요.
은행나무에서 은행잎들이 노랗게 흩날리는 그런 계절이었는데요
등굣길에 갑자기
내면에서 딱 그냥 세 가지 단어가 떠오르는 거예요.
단어가 떠올랐다기보다 그 에너지가 느껴지는 거죠.
에너지가 저의 온몸을 충만하게
내면에서부터 가득 채우면서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저절로 제가 혼잣말을 할 만큼 저절로
그 에너지가 너무너무 충만해서 넘쳐흐르는 느낌인 거죠.
어떤 세 문장이었나 하면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축복합니다.
마음속으로 그냥 그 문장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 상태가 되는 거죠.
문장이 떠올랐다기보다
저라는 존재 자체가 그 에너지 상태가 되는 거예요.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이 세 문장만 떠오르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시간이 계속 길게 1시간 간다, 뭐 이런 거는 아니고요.
그냥 잠깐 1분, 2분, 이런 식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그게 뭔지를 제가 몰랐어요.
그냥 굉장히 행복감만 느껴졌죠.
행복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의 지복?
지복이라고 그러죠.
영적인 그 언어로는 우리가 지복의 상태라고 하는데요.
그 당시에는 왜 그 에너지가 저에게서 일어나는지를 모르고
그냥 하나의 느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은 그게 느껴지고
어느 날은 느껴지지 않고 그런 거죠.
제가 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고
그냥 어떨 때는 너무 너무 충만하게…
그런데 이럴 때, 사랑합니다를 할 때요
이게 어떤 주체와 객체가 있어서
제가 ‘나는 누구를 사랑합니다’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 순간에는 저라는 존재가 사랑과 감사와 축복이 된 상태인 거죠.
에고의 언어를 넘어선 곳, 저 너머의 어떤 상태를
에고의 언어로 표현하기가 굉장히 힘든 거 같아요.
이렇게 말씀을 드릴게요.
나는 사랑합니다. 나는 감사합니다. 나는 축복합니다.
이 상태가 아니에요.
그것이 아니고
나=사랑, 나=축복, 나=감사
이러한 상태가 되는 거죠.
그런데 어떨 때 제가 그 상태가 되는지를
그 당시에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냥 그 상태가 됐을 때 너무 너무 행복하다. 지복스럽다. 환희감…
그냥 그런 느낌이었는데 모르고
1년~2년쯤 지나서야 그 상태가 무슨 상태인지를 제가 정확하게 알았어요.
“아, 내가 그때 모든 에고가 사라진 순간이었고
내가 존재와 합일된 순간이었구나.
그리고 바로 그것이 신성에너지였구나.
그리고 그 상태의 나는 에고로서의 나가 사라지고 근원으로서의 나로 존재했던 시간이고
신성으로서의 나로 존재했던 그런 시간이었구나.”
1~2년이 지난 후에야
어떤 책에서 우리가 운전을 하는 순간에 그 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아, 내가 그 상태였구나”를 그때 깨달은 거죠.
어떻게 하면 그 상태에 의식적으로 의도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봤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어떨 때 그 상태에 들어갈 수 있었던가?
그 상태에 들어갈 수 있었던 조건이 뭔가를 생각해 봤는데요.
처음 아이를 데리고 등교를 시작했을 때의 초집중과 초긴장의 상태를 지나서
긴장이 사라지고 집중만이 남아 있는 그 상태에서
약간의 이완된 상태
적당한 집중과 적당한 이완의 상태에 있을 때
에고가 사라지고
존재와 합일하는 순간이 저절로 이루어졌던 거죠.
적당한 집중에서 말하는 적당한이란 어떤 뜻인가 하면
다른 모든 생각과 어떤 잡념 감정이 사라지고
한 가지 초점에 집중을 유지할 수 있는 그 집중을 말하는 거예요.
운전에 대한 집중이 다른 모든 잡다한 생각을 날려 버린 거예요.
그 상태에서 내가 조금 이제 운전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니까
긴장은 사라지고 적당한 이완이 저한테 일어났던 거죠.
그러면서 에고가 완전히 사라지고
존재에 완전히 잠긴 순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저 상태에 들어갈 수 있을까를
굉장히 오랫동안 고민했던 거 같아요.
제가 현실 속에서 에고를 가지고 살다가도
그 순간에 들어가고 싶다라고 의도를 내면
지금은 쉽게 들어가집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굉장히 상대적인 세계입니다.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있고
사랑이 있으면 미움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는 그런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는데요.
이러한 감정들은 에고가 느끼는 감정이에요.
즉,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 감사하다, 행복하다.
이런 감정들도 모두가 반대편의 어떤 것을 가진
양극에서 왔다 갔다 하는 그런 에고의 감정이구요.
이 이차원적인(이원적인) 감정을 완전히 넘어선 곳에
근원의 사랑과 축복과 감사와 평화와 지복이 있습니다.
이 순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의 에고를 구성하고 있는 생각감정이 사라져야 하는데요.
이 생각감정이 사라지는 그 순간을 위해서 명상을 하는데
생각감정을 비워내기 위한 그런 명상이 있고요.
이 생각 감정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서 넘어가는 명상이 있죠.
저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 드리고 싶어요.
아이들이 시소를 탈 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거죠.
그 양쪽 끝을 생각 해 보세요.
양쪽 끝을 한쪽에는 기쁨이고 한쪽은 슬픔이에요.
한쪽은 행복이고 한쪽은 불행이에요.
우리의 모든 인생에서는 이것이 번갈아 가면서 나타나요.
기쁨으로 올라갔다 다시 슬픔으로 내려왔다
불행했다 행복했다.
그런데 사실은요
여기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요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는 게 아니에요
시소 위에 작은 공이 하나 올려져 있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공이 두 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소에 하나의 공이 있어요.
기쁨이란 공이 따로 있고
슬픔이란 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요
하나의 시소에서 이 한 개의 공이 왔다 갔다 하는 건데
슬픔이 있는 것이 아니고요
기쁨이 줄어든 그 순간이 우리가 슬프다고 느끼는 거예요.
불행이 따로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요
행복이 줄어든 그 순간에
행복이 줄어든 만큼 불행을 느끼는 거예요.
그 빈 공간에…
행복의 감정이 100% 차올랐을 때랑
행복의 감정이 조금 내려와서 90%일 때
이럴 때는 우리가 불행하다는 생각을 안 하죠.
그런데 이 행복지수가 낮아져서
70% 60% 50% 해서 50% 이하로 가면 점점점점 불행감이 느껴지는 거죠.
결국 행복과 불행이 두 개의 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요.
행복감이 줄어들면 그래서 그것이 50% 정도 아래로 내려갔을 때,
우리는 점점점 내가 지금 조금 불행한데 지금 더 불행해
이렇게 느끼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가 빛과 어둠이 있잖아요.
그런데 빛은 우리가 태양에서 나오는 빛이 있는데
어둠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빛이 사라진 순간이 우리가 어둠으로 인식하는 거잖아요.
빛이 없는 그 순간이 어둠인 것이고
새벽에 동이 틀 때 빛이 조금 조금 조금씩 드러나면서
어둠이 서서히 서서히 그만큼 사라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한낮이 됐을 때 빛이 환하게 밝혀져 있죠.
다시 밤이 되면 빛이 사라지죠.
이거랑 똑같은 거예요.
불행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감이 서서히 서서히 사라져서 어느 임계점을 넘어가면
우리가 그것을 불행이라고 얘기를 하고요.
슬픔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가
이 기쁨이 사라진 어떤 순간이 슬픔이라고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에고가 사라지고 근원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어떤 순간인가 하면요
이것이 정확하게 평행(수평)을 이루었을 때만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상상을 조금 더 해 볼게요.
시소에 테니스공 정도의 공이 있다고 생각을 해 볼게요.
시소 판에도 중심에 구멍이 있고요
시소 밑에 기둥에도 동그란 구멍이 있어요
그런데 이 구멍이 딱 수평을 이루었을 때만
기둥의 구멍과 시소 판의 구멍이 일치하죠.
그때만 공이 시소의 널판지를 통과해서 구멍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거예요.
딱 중심을 잡고 있는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에고가 사라지고 근원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이라고 생각해보시면
조금 상상을 하실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저쪽 세계의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방법밖에 없는 거 같아요.
물질세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표현하기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미지를 제가 설명을 드리는 건데요.
자, 이 시소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또 다르게도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어요.
시소의 왼쪽을 우리가 시간상의 개념으로 봤을 때 과거라고 생각을 해 보시고요.
시소의 오른쪽 끝을 미래라고 생각을 해본다 말이에요.
시소 위에 있는 공을 우리의 생각이라고 상상을 해보면요.
시소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에 따라서
우리의 생각이 과거로 갔다 미래로 갔다, 과거로 갔다 미래로 갔다 하죠.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할 때
조금 전에 1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10분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또 1년 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 거죠.
그랬을 때 우리의 생각은 과거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것이
“아, 내일 뭘 할까? 다음 날 뭘 하지?” 하는 미래로 가는 거죠.
우리의 생각이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해요.
시소타기 하듯이…
그러다가 이것이 정확하게 중심에서
양쪽이 균형을 잡아서 수평이 되었을 때
그때만 이 테니스공 같은 이 공이
시소 중앙에 그 동그란 구멍을 통과하여
기둥까지 내려갈 수 있단 말이에요.
그것이 현재 이 순간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그 순간인 거에요.
그 순간에 우리는 현재에 머무르는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는
그 순간에 우리는 근원과 합일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과거와 미래를 더 이상 왔다 갔다 하지 않고
그런 모든 생각 감정을 내려놓고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를 수 있을 때
우리는 나의 존재에 합일되는 거죠.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 때 우리는요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내가 누구를 축복하고
내가 누구에게 감사하는 순간이 아니고요
나=사랑, 나=축복, 나=감사인 상태가 되는 겁니다.
그냥 참나
근원인 나
신성으로서의 나로 존재하는 순간이고
축복과 사랑과 감사와 평화의 에너지 자체가
그것이 바로 나임을 자각하는 순간입니다.
오늘 잠자기 전에
이 말들을 한번 생각해 보시면서 잠자리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현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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