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줄곧 죽음에 대해 돌아보고 있어요.
오늘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우리는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말뜻이 무엇인지 알아볼게요.
최상의 행복에 이르는 지혜 – 틱낫한
옮긴이 손명희, 감수자 선업 스님
펴낸곳은 교유당의 교양 브랜드 <싱긋>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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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행복한 지속>
우리는 날마다 탄생과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관세음보살은 무슨 연유로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다고 설파하는 것일까요?
수평으로 선을 하나 그어서 시간을 나타내보겠습니다.
왼쪽은 과거, 오른쪽은 미래라고 가정해 봅시다.
왼쪽에서 선 위에 점을 하나 찍어, B라고 부르겠습니다.
B는 당신이 태어난 순간입니다.
그러나 B지점을 설정하기만 해도 이미 문제가 발생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고
비존재 영역에 속했다가
출생일인 B지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선을 따라 계속 살아가면서
죽음이라는 D지점에 이를 때까지
자신이 줄곧 똑같은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D지점에 이르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존재의 영역을 지나, 다시 비존재의 영역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알을 낳기 직전의 암탉을 상상해 봅시다.
알을 낳기 전에도
알은 이미 닭의 뱃속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이미 9개월 동안 어머니의 태내에 있었습니다.
태어나기 전,
다시 말해서 B지점에 다다르기 전에
이미 명백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미 존재한다면 굳이 태어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갑자기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무엇인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사실 당신은 어머니가 당신을 잉태하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구성하는 요소의 절반은 어머니 안에,
나머지 절반은 아버지 안에 있었습니다.
그 요소에는 유전자와 염색체뿐만 아니라
생각, 신념, 자질, 재능도 포함됩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당신을 이루는 요소가
조부모와 증조부모에게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
그들의 부모와 조부모들에게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당신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당신을 낳은 날은
당신이 태어난 날이 아닙니다.
당신이 이 형상으로 나타난 날일 뿐입니다.
당신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태어남이란 없습니다.
오직 지속만 있을 뿐입니다.
당신이 생일이라고 부르는 날은
실제로 당신의 지속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날을 다음에 축하할 때는
“지속일 축하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한 장의 종이를 다시 깊이 들여다봅시다.
목재 펄프가 평평하게 펴져서 종이가 된 순간을
과연 종이가 태어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말은 정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종이는 그 순간 이전부터
목재 펄프, 나무, 햇살, 비, 구름 같은
다양한 형태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종이는
구름이고 나무이며 햇살입니다.
종이를 만질 때
우리의 지성을 발휘해 보면
숲과 햇살을 비롯해
이 종이를 만든 모든 요소를
종이 안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숲이나 이 요소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거한다면
종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종이의 모습을 띨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종이는 과거 삶에서
나무, 숲, 햇살, 구름, 비였을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숲이고, 햇살이며, 구름이고 비입니다.
이는 수많은 원인과 조건이 함께 발현한 것,
즉 형성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종이의 탄생, 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종이가 태어난 순간이 아닙니다.
종이는 무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이의 진실은
태어남이 없다는 것입니다.
종이는 한 번도 태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종이라는 형상을 취하는 순간은
단지 지속 가운데 한순간일 뿐, 탄생의 순간은 아닙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나는 전생에
내가 구름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인 설명입니다.
종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전생에 구름이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구름입니다.
나는 흙과 물과 공기와 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가 마시는 물은 한때 구름이었습니다.
내가 먹는 음식은 한때 햇살과 비, 그리고 흙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구름이고, 강이며 공기이기에
과거에도 내가 구름이고 강이며 공기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바위였으며 물에 녹아 있는 광물질이었습니다.
이는 환생을 믿는지 여부와는 관계없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구상 생명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가스, 햇살, 물, 곰팡이, 그리고 식물이었습니다.
우리는 단세포생물이었습니다.
부처님은 과거생 중 하나에서
당신이 나무였고, 물고기였으며, 사슴이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신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구름이었고, 사슴이었으며
새였고 물고기였으며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이러한 것들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태어남이라는 관념은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태어남이 있다고 생각하자마자
이는 죽음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현실의 궁극적인 본질은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무에서 나와 무엇인가가 된다는 뜻이지만
구름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구름은 하늘에 나타나기 전에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구름은 바다의 물이었습니다.
-구름은 태양이 발생시킨 열이었습니다.
-구름은 하늘로 올라가는 수증기였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에도
구름은 죽지 않았습니다.
구름은 방금 비나 눈으로 변했습니다.
죽음이라는 관념 또한 우리의 마음이 만들어 냅니다.
그 무엇이든 완전한 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구름은 죽지 않습니다.
구름은 비, 우박, 눈, 강
그리고 지금 내 손에 들린 차 한잔처럼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처럼 구름의 본성은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종이는 어떨까요?
종이가 죽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기만 해도
종이를 파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이가 불타서 무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사실 우리가 종이를 태울 때
종이는 다른 것으로 바뀌고,
우리 몸과 우주 안에서
재, 연기, 열기처럼 형태만 달리해 계속 이어집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는 물론
열기도 종이의 다음생 중 하나입니다.
재는 땅으로 돌아가 흙의 일부가 됩니다.
종이는 다음 생에서
구름인 동시에 장미가 될지도 모릅니다.
주의를 기울여 아주 세심하게 살펴보아야만
종이가 태어난 적도 없으며
죽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종이는 온갖 다른 모습을 취할 수 있지만,
우리는 단 한 장의 종이조차 무로 만들 수 없습니다.
삼라만상이 그러하며
당신과 나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는 태어남과 죽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선사가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그대의 부모가 태어나기 전에
그대의 진면목은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미래생은 물론 과거생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철학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당신의 손을 바라보며 이렇게 자문해보십시오.
“내 손이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깊이 들여다보면
당신의 손은 아주 오래전인
수십만 년 전부터 줄곧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손에는 수많은 윗세대 조상들이 보입니다.
조상들은 과거에만 살아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존재하며
당신 안에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당신은 조상들의 지속입니다.
그들은 결코 죽은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죽었다면
당신의 손이 어떻게 아직도 여기에 있겠습니까?
프랑스의 과학자인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창조되는 것도 없고 파괴되는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반야심경>이 설파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현대 과학자라도
먼지 한 톨조차 무로 만들 수 없습니다.
에너지나 물질은
오로지 어느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의 에너지나 물질로
바뀔 수 있을 뿐입니다.
작디작은 먼지 한 톨조차
결코 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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