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책낭독] 돈 벌려고 치열한 삶을 살았지만 병을 얻은 사업가에게 시골 한의사가 내린 마음 처방 | 어설픔, 이기웅 01

Buddhastudy 2024. 2. 19. 20:08

 

 

우리는 열심히, 그리고 잘하기 위해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일을 해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할 때 성취감도 있고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완벽해지려고 하는 만큼

우리의 어설픔마저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 마음이 급하지 않고

자유롭게 삶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어설픔 - 이기웅

출판사는 조화로운 삶입니다.

 

 

 

--천천히 가는 길이 더 아름답다

 

골프장에서 회장님이나

의원님 같은 분들이 골프를 칠 때

공을 올려주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그런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골프를 다 치고 나면

아이는 친구와 함께 리어카를 끌며

그 넓은 골프장을 뛰어다닙니다.

방금 전까지 자기 손으로 올려놓았던 공을 다시 줍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대 6시간을 뛰어다니며 공을 주워 오면

500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지요.

아이는 그 일을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계속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아버지 몰래 하는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그 가난이 너무도 지긋지긋해서

돈을 벌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소년은 그동안 모은 돈으로 돼지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아버지 환갑잔치를 해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소년은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았습니다.

학생이 공부는 안하고 돈이나 번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한학을 공부해온 선비였지요.

 

소년은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아파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험한 노동을 해온 터라

소년의 덩치는 이미 어른 만큼 커져 있었습니다.

소년이 울고 싶은 것은 책상물림,

아버지의 순진한 현실관이 가여워서였습니다.

 

소년의 꿈은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뼈 빠지게 일해서

3만 평짜리 농장이나 수목원을 갖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 꿈만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속 편하게 공부하고 앉아 있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돈을 벌며 세상과 싸워나가는 동안

팔뚝은 점점 굵어지고 힘도 강해졌습니다.

 

어느새 소년은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강한 기운의 소유자로 성장했습니다.

정신이 해이해질지 봐, 그래서 돈을 못 벌까봐

술도 안 배우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습니다

간혹 어두운 세계에서 주먹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혹을 해올 때도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나무를 키우고 살리는 일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나무를 보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나무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이제 좀 쉴 만도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내쳐 달려오기만 하던 그 관성 때문에

좀처럼 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병에 걸렸습니다.

 

지독한 불면증과 신경과민, 위장병에 관절염까지 한꺼번에 겹쳐

일상생활이 도저히 안 될 정도였지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살기가 느껴졌습니다.

성공을 향해 내달리면서

무수히 많은 경쟁자들과 싸워야 했던

그 집념의 에너지들이

고스란히 세포에 남아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커다란 덩치에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은 머리까지

단번에 상대방을 압도하는 외모였지요.

 

잠을 못 주무신다고요?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3시간도 채 못 자요, 아주 그냥 죽겠어요.”

 

왜 그렇게 못 주무세요?

내가 자는 동안 언놈은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있겠지

그 생각만 하면 잠이 확 달아나요.

자명종도 필요없어요.

잠도 못 자는데 자명종이 왜 필요해요?”

 

굵고 대찬 외모와는 달리

아주 예민한 성격인 것 같았습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날 하루 만났던 사람들이며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다 떠올린다고 합니다.

그러고도 잠이 안 오면 과거에 누가 섭섭하게 했던 일

또 누군가를 서운하게 했던 일들을 죄다 끄집어낸다고 합니다.

 

“3년 전에 누가 약속을 안 지켰나

그런 것까지 불쑥불쑥 생각나요

그럼 또 두어 시간 그 생각만 하는 거예요.

그놈은 약속을 왜 안 지켰을까?

지금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내일 연락해볼까? 말까?

한번은 운전을 하는데

웬 덤프트럭이 위험하게 추월을 하더랍니다.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공사장 모래판까지 쫓아가서

그에게 사과를 받아 냈다고 합니다.

그럼 또 그날 밤부터 되새길 일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는 셈이지요.”

 

난감했습니다.

우선 위장병이나 관절념부터 다스릴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마음공부를 좀 해보시지요

공부요? 아이고 공부는 사양할랍니다.”

본인은 오히려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그래도 이만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공부 잘하던 친구들은 커서 할 수 있는 게

몇 가지밖에 없답니다

기껏해야 정치가나 회사 간부 아니면 교수 정도로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는 얘기지요.

 

공부 잘하던 친구들은

지금도 1등 하던 놈들만 찾아다녀요.

하지만 공부 적당히 하던 놈들은 안 그래요.

보면 지역에서 여기저기 전부 한 자리씩 하고 있거든요.

걔네들끼리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놀기도 하고

서로 돕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이 친구 밀어주고 싶지

1등 하던 녀석들 밀고 싶겠어요?”

그의 말에도 어느정도 일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면 기본적으로 안정되고

질서 잡힌 인생으로 갈 확률이 높지만

자기 세계를 찾을 수 있는 기회 영역은

그다지 넓다고 볼 수 없지요.

 

반대로 학력으로 통하는 세계가 아닌 경우에는

개인의 노력이 더 많이 요구되겠지만

선택의 폭과 자유는 더 넓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구조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카오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변수가 많고 기회도 많은 것이지요.

 

제 말씀은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보시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에게 특별히 선곡된 CD 두 장을 선물했습니다.

차에서 들으세요.

 

침은 안 놔줍니까? 약도 짓고..”

 

차를 몰고 경치 좋은 곳으로 가보세요.

거기서 이 음악 틀어놓고 가만히 경치를 감상해 보세요.

침은 다음에 오시면 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80노인처럼 한번 살아보세요.

 

? 80노인이요?

이제 겨우 50인데

 

상상으로 말입니다.

쉽진 않겠지만 연습삼아 한번 해보세요.

 

80노인은 세상을 어떻게 볼까?

80노인의 눈으로 바라본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대전에서 하던 한의원을 정리하고

이곳 사포리, 깊은 터에

햇님 쉼터를 차린 뒤에도

그는 가끔 먼 길을 달려오곤 합니다.

 

아직 몸이 다 낫진 않았지만

달라진 점도 꽤 많습니다.

우선 술을 배웠다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

 

, 세상에 술이 그렇게 좋은 줄 왜 몰랐을까 싶어요.”

바람 부는 억새밭에서 한 잔 마셔봤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아

술을 조금씩 마시게 되었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일부러 동학사 근처로 달려가

동동주를 마신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감잎차를 즐겨 마시고

눈 내리는 겨울날에는

종일 음악을 들으며 지낸다고 합니다.

 

달라진 점은 또 있었습니다.

요새는요, 일부러 막히는 길로 가요.

 

그건 왜죠?

마음공부하라매요.

차가 암만 막혀도 화내지 않기, 성질나도 웃어보기

그런 거 말입니다.

그런데 천천히 가다 보니까

창밖으로 풍경이 더 잘 보입디다

잠은 잘 주무시나요?

잠이요? 10시간 잡니다, 10시간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그의 얼굴이 꼭 소년 같습니다.

그 옛날 골프장을 뛰어다니며

공을 줍던 초등학교 3학년 시절에도

아마 똑같은 표정이었을 겁니다.

 

하루 일을 마친 해가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까닭은

잠시 쉬어가자는 신호가 아닐까요?

 

낮 동안 저마다의 색깔과 모양으로 열심히 존재하던

땅 위에 모든 것들도

노을 앞에서는 똑같이

검은 실루엣으로 물들어갑니다.

 

이 우주 속에서

모든 존재들이 하나라는 느낌

그래서 내 안에 울타리 쳐진 모든 경계선이

사라지는 이 시간이

바로 쉼에 이르는 순간입니다.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