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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올라 정견)[정견특강] #8. 공(空)자리와 하나되는 지름길

Buddhastudy 2025. 5. 29. 20:34

 

'정견'에 대한 특강의 일부로, 정견을 통해 공(空)의 자리와 하나 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 정견의 정의: 몸과 마음의 현상이 오온(색, 수, 상, 행, 식)의 활동임을 철저하게 보는 것입니다 [00:09].
  • 존재 방식의 변화: 정견을 통해 과거에 자신이라고 여겼던 몸과 마음을 넘어, 그것들을 구성하는 더 본질적인 바탕이 드러납니다 [00:18]
  • 본질적인 바탕: 이는 의식조차 나타나고 돌아가는 생명의 자리이며, 우주조차 창조하는 무한한 생명 자체입니다 [00:45] 이 자리는 영원하며, 탄생과 죽음조차 꿈과 같이 일어납니다 [01:11].
  • 전체성의 인식: 이 자리에서는 세상과 자신의 심신 전체가 하나의 입체 그림처럼 인식되며, 전체가 하나로 평면 사진처럼 펼쳐져 보입니다 [01:32]
  • 주체의 변화: 정견을 통해 본래 자리가 주체가 되고, 몸과 마음은 그 위에 나타나는 환영처럼 보이게 됩니다 [02:16].
  • 견성으로 나아가는 과정: 제대로 정견 명상을 하는 것이 견성으로 나아가는 길이지만, 그 과정에서 개체 마음의 잔재들이 나타나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02:26]
  • 잔재의 철저한 제거: 남아있는 생각이나 느낌까지 철저하게 제거해야 본래의 영원한 자리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03:01], 
  • 정견의 심화: 정견을 계속하면 자신이 정견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자리가 항상 깨어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03:21]
  • 무한한 생명의 자리: 이 자리는 전체를 하나로 품고, 모든 움직임 속에서 파도처럼 함께 나타나는 것을 생생하게 보게 됩니다 [03:34]
  • 초견성 이후의 노력: 초견성을 넘어서도 여전히 심신 활동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습관이 남아있다면, 그것이 망상임을 더욱 강렬하게 정견해야 합니다 [03:57]

 

 

정견이란 무엇일까요?

정견이란

몸과 마음의 현상이

오온, 색수상행식 활동임을 철저하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홀연히 존재 방식이

거꾸로 뒤집히는 때가 옵니다.

 

즉 과거엔 내 몸과 마음이 나였고

무엇을 하더라도 주체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견을 계속해 나가노라면

어느 순간

나와 내 마음까지 구성하고 있는

더 본질적인 바탕이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의식조차 나타나고 돌아가는 존재를 유지하는

생명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드러나면 신심조차도 객체이자 대상이 됩니다.

 

생명이라 하여

죽음에 대비되는 상대 개념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 말뜻은 우주조차 창조하고 있게 하는

무한한 생명장을 말합니다.

 

이 자리는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탄생과 죽음조차 이 위에서 꿈꾸듯 일어납니다.

 

비유컨대 풍경화가 있을 때

그림 속에선 가깝고 먼 풍경이 펼쳐지지만

실제로는 다 한 장의 종이

스크린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이 세상과 내 심신 전체를 다 같이

하나의 입체 그림 같은 현상으로 있게 하는

바탕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선

전체가 다 하나로서

평면 사진처럼 펼쳐지고 인식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자리 전체가

분리할 수 없이 하나로 살아 있어

나란 심신현상을 통해

저절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엔 몸과 마음이 하는 줄 알았는데

이 자리를 보면 확 뒤집히게 됩니다.

 

정견하면 할수록

이 자리가 점점 더 생생해져서

마침내 이 자리가 주체가 되고

나머지는 다

그 위에 신기루처럼 붕 떠 있는 환영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진짜 정견명상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견성을 하는 거지만

거기까지 가는 데 수많은 장애들이 나타납니다.

즉 개체마음이 끝까지 자기가 주체로 남아

이건가 저건가 먼저 찾으려 들고

심지어 자기가 묘한 느낌 하나 붙들고

이거라고 고집까지 부립니다.

 

그런데 넘어가면

부산 가는 데 대전이나 평택에서 하차하는 꼴이 됩니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항시 자기 안을 스스로 정견 점검하여

뭔가 생각과 느낌이 미세하게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까지 철저하게 쳐내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본래의 0자리와 하나가 되는 다른 지름길입니다.

 

정견을 함에 있어 어느 정도 지나면

내가 정견함이 아니고

본래자리에 늘 정견의 눈()

항상 밝게 빛나며 깨어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무한 생명의 자리가

전체를 바다처럼 하나로 품으며

일체의 움직임 속에 즉하여

같이 파도처럼 나타나는 것이

생생하고도 늘 여여하게 보여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르게 정견하는 법이며

정견을 통해 마침내 보고 만나는 자리입니다.

 

초견성을 했더라도

아직 자기 안에

에고, 즉 심신활동을 나라고 여기는 망상심이 조금 남아서

마음속이 번잡하거나 알 듯 모를 듯하다면

그걸 자기 동일시 하지 말고

그 자체가 망상임을

더욱더 가열차게 정견에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