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무엇을, 어떻게 전개하는가에 대한 질문 [00:08]: 일반적인 접근 방식인 '누가 무엇을 어떻게'를 통해 문제를 이해하지만, 출세간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분별 자체가 번뇌 망상이라고 설명합니다.
- 무엇을 보는가 - 12연기 [01:22]: 우리가 습관적으로 분별에 빠지는 과정을 12연기의 첫 4단계(무명, 행, 식, 명색)를 통해 설명합니다.
- 어떻게 보는가 - 정견 [05:28]: 분별만 하지 않으면 이미 정견이 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소승불교처럼 12연기 과정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근원을 바로 보면 된다는 대승불교의 관점을 제시합니다.
- 견성(見性) [07:07]: 성품이 작동하는 것, 즉 연기가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을 의미하며, 악몽 속에서 현실을 자각몽으로 깨어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07:24].
결론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악몽이 아닌 자각몽으로 인식하게 하여 정견으로 깨어나는 법을 배우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08:05].
여러분들은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하실 거예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정견합니까?”
당연히 여러분은 이런 질문이 나오실 거 아니겠어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누가 무엇을 어떻게로
모든 문제를 접근하거든요.
이게 세관법적으로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이렇게 접근하는지 몰라도
사실 출세간법적으로 보면
이게 다 번뇌망상이야, 이게 이미 분별이야.
그래서 ‘누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사실은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 안에서 정견이 되고 있어요.
항상 이미 되고 있어.
근데 자기가
자기의 미세한 생각과 감정, 느낌으로 그걸 가리는 거예요.
그래서 정견이 되고 있는 걸 모를 뿐이에요.
이미 정견이 되고 있어요.
근데 그걸 몰라.
그다음에 ‘무엇’을 봅니까?
중요한 거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분별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불교가 12연기 얘기를 자주 하잖아요.
12연기는 생로병사에서 윤회하는 그 과정을 부처님이 말씀하신 거고
12연기에서 처음 4단계가
우리가 분별에 습관적으로 빠지는 가장 큰 과정이에요, 핵심적인 과정이에요.
그래서 그걸 이걸 잘 좀 이해하실 필요가 있어요.
12연기의 첫 번째가 뭐냐면 [무명]으로부터 시작되죠.
무명이 뭐예요?
없을 무(無) 밝을 명(明)이에요.
그럼 밝지 못하다는 얘기죠.
뭐에 밝지 못해요?
내가 누구인지, 이 ‘나’란 현상, 여기에 깨어 있지 못한 거예요.
부처님의 자등명 법등명 얘기를 하셨잖아요.
자기가 자등명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무명인 거예요.
자기가 누군지 알면
참나가 무엇인지 알고, 부처 자리가 뭔지를 알면
무명이 아니라
거기에 깨달을 각(覺)자가 들어가겠죠.
그래서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뭐 이렇게 쭉 가는데
무명은 자기가 진짜 무엇인지를 모르는 상태인 거예요.
그럼 무명 다음에 뭐가 나오냐 하면 [행]이 있죠
[행]이 뭘까요?
무의식적인 충동적인 움직임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처음에 어떤 행위가 시작하려면
여러분이 처음에 그거를 인식해야 됩니다.
이게 어떤 상황을 인식해야 돼요.
인식하는 건 봄으로부터 시작돼
봐야 알지.
근데 봄과 앎은 사실 동시에 일어나지
아주 찰나 같은 순간에
봄이 먼저냐, 앎이 먼저냐 이렇게 따질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한테는 동시에 일어나요.
행이 봄이고
식기 앎이라고 굳이 말할 수 있어요.
이 사실은 번개같이
이렇게 하면
벌써 여기 12연기가 끝난 거야.
왜?
깨닫지 못했으니까
이거의 본질을 못 보고.
근데 보고 있지
그다음에 ‘아 저 사람이 막대기를 들었다 내렸구나’ 하는 앎이 있지
벌써 ‘막대기’라는 명색에 떨어졌지
그다음에 그거 가지고 벌써 여러분은
자기의 시각을 통해서 그거를 인식하고
그다음에 그걸 붙들었어요. ‘저게 뭘까?’
12연기가 벌써 번개같이 진행된 거예요.
이러니 이 과정을 여러분이 정견을 깨어 있으면
다 거슬러 올라가서 이 번개 같은 순간에 궁극을 봐야 돼.
그래서 소승에서는 이거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공부를 그렇게 몇십 년 동안 해요.
근데 대승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야.
왜?
그걸 왜 굳이 거꾸로 올라가
그냥 근원을 딱 봐버리면 끝나지, 왜 거꾸로 올라가냐고 힘들게.
자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보느냐?
즉 바로 12연기를 보는 거예요.
어떻게 보느냐?
자 어떻게 보느냐는
자기 분별만 안 하면 돼, 정견만 하면 되는 거예요.
분별망상이 다 내려놔지면 이미 정견이라고 그랬죠.
정견하라고 어떻게 하는 게 아니에요.
이미 이 정견은 되고 있어.
초보는 자기가 처음에 한다고 생각해
근데 여러분이 어느 정도 고수가 되면
정견은 이미 되고 있다라는 걸 알아.
여러분 잘 생각해 봐요.
내가 하는 게 쉬워?
이미 되고 있는 거 아는 게 쉬워?
이미 되고 있는데 내가 왜 신경 써.
그러니까 그냥 되고 있는 거를
대승기신론처럼 그냥 받아들이면 그냥 그렇게 돼.
근데 안 받아들이고 내가 하겠다고 그러니까
번개 같은 찰나에 일어난 12연기 과정을
그걸 다 거슬러 올라가겠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어요.
그때부터 그냥 무릎 꿇고 앉아서 생고생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가- 무엇을- 어떻게’라고 하는 이 과정이
사실은 일반인 세간법적으로는 이걸 다 따져야 되지만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역발상적인, 출세간적인 방법으로는
이미 네 안에서 되고 있으니
번뇌만, 분별 망상만, 쥐고서 그거 따라가지 않으면
이미 저절로 되고 있는 그것을 본다 이 말이에요.
이게 대승의 요지예요.
그래서 견성이란 말이 나온 거예요.
성품이 작동하는 것을 본다.
거기서 그 성(性)이 뭐냐 하면 12연기가 돌아가는 걸 말하는 거예요.
이는 마치 무엇과 같으냐면
우리가 막 악몽을 꾸다가
악몽 속에서 막 헤매다가 갑자기 자각이 왔어.
“가만히 있자 이거 꿈이잖아.
이게 생시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지.
이거 꿈이야.
꿈이라면 이 악몽이 내가 괴롭다고
이걸 현실처럼 받아들일 필요가 없지.”
그래서 악몽 속에서 깨어나서
꿈은 꾸지만 자각몽이 되는 것과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여러분의 지금 현실적인 삶은
저도 이 현실이라는 꿈을 꿉니다.
-이 안에서 돈도 벌어야 되고
-여러분하고 이렇게 마음학교도 하고 있고
다 하지만
이게 저한테는 자각몽이에요.
근데 이걸 ‘현실입니다’ 하면
그건 악몽 속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의 현실에서
자각몽으로 깨어나는 법에 대해서
제가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어요.
여기까지 이해되셨죠?
예 좋아요.
그러면 정견하는 법에 대해서 얘기해 봅시다.
'피올라마음학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대선104] 깨어나기 전의 정견 / 피올라 현대선 16강 "정견으로 깨어있기" 3회 (0) | 2025.06.03 |
---|---|
[현대선102] 분별에 빠지지 않는다 / 피올라 현대선 16강 "정견으로 깨어있기" 1회 (0) | 2025.05.27 |
[현대선101] 삶도 하나의 체험이다 / 피올라 현대선 15강 "응무소주 이생기심" 6회 (0) | 2025.05.26 |
[현대선100] 진리가 나를 삼키다 / 피올라 현대선 15강 "응무소주 이생기심" 5회 (0) | 2025.05.20 |
[현대선99] 성(性)과 상(相)은 둘이 아니다 / 피올라 현대선 15강 "응무소주 이생기심" 4회 (0) | 2025.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