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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툰] 최초의 인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Buddhastudy 2022. 1. 27. 18:47

 

 

제가 어릴 때 족보를 보면서 궁금했던 게 바로

시조 위에는 누가 있을까였습니다.

 

족보를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늘 시조에서 끝이 나니까요.

그런데 시조도 알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면 분명 부모가 있었을 겁니다.

 

시조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 이렇게 끝없이 거슬러 올라간다면

마지막엔 정말 신화나 전설에서 말하는 최초의 인간이 나올까요?

그렇다면 그 최초의 인간은 우리와 얼마나 닮았을까요?

 

저는 제 부모와 조부모가 저와 얼마나 닮았는지 압니다.

증조, 고조, 그 전의 조상들을 본적은 없지만 어느 한 구석은 저와 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닮은 형질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최초의 인간은 참으로 신기하게도 저를 닮은 모습이었을 테니까요.

 

똑같은 이유로 지구상 모든 사람들과도 닮아야 합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점진적으로 변해왔습니다.

그 변화가 수천 세대 만에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느리게 진행되었을 뿐입니다.

 

변화를 한눈에 파악하려면

아마 모든 조상 들의 실물 사진이 있어야 가능할 겁니다.

물론 그런 실물 사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첨단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 사진과 아버지, 할아버지의 사진에다가

유전학, 분자생물학 그리고 풍부한 화석자료를 입력하고

최첨단 합성기술을 이용해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진을 재구성하는 겁니다.

 

저는 다만 누군가가 이 값비싼 작업을 저에게 해주었다고만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가지고 최초의 인간을 찾아가는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먼저 제 사진을 한 장 꺼내놓습니다.

그 위에 제 아버지의 사진을 올려놓습니다.

다음에는 할아버지의 사진, 다음에는 증조, 고조 할아버지의 사진.

이런 식으로 계속 쌓아 올려 봅니다.

 

얼마나 많은 사진을 쌓아야 최초의 인간이 나올까요?

성경에 따르자면 약 200, 200세대만 쌓아 올리면 됩니다.

 

그러나 진화론에서는 최소한 18500만 세대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8500만 장의 사진을 층층이 쌓으면 대략 70km 높이의 거대한 탑이 됩니다.

 

아무래도 탑을 타고 올라가는 여행보다 걸어가는 여행이 낫겠습니다.

탑을 옆으로 세우니까 사진이 서울 광화문에서 평택까지 이어집니다.

, 조상님들의 오랜 노고에 잠시 감사의 묵념을 올린 뒤 사진을 한 장 한 장 뽑으며 평택까지 가보겠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얼굴은 확실히 서로 닮았습니다.

사진을 뽑을수록 지금의 저와 닮은 점은 점점 사라지지만 모두 인간의 모습입니다.

 

만 년 전의 사진을 뽑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장이나 헤어 스타일을 지금처럼 꾸민다면 현대인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4천 세대, 그러니까 약 10만 년 전에도 변화가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머리뼈와 눈썹 밑이 아주 약간 두꺼워지긴 했습니다.

 

그런데 10만 년이나 거슬러 왔는데도 이제 겨우 두 걸음을 왔네요.

이래 가지고는 언제 평택까지 갈까 싶습니다.

 

10미터를 걸어와서 사진을 뽑으니 드디어 우리와 확실히 다른 모습이 나옵니다.

5만 세대 전의 조상은 이마가 좁고 인중에 길며 턱이 튀어나왔습니다.

우리는 이 조상을 호모 에렉투스라고 부릅니다.

 

호모 에렉투스는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종입니다.

그러니까 호모 에렉투스가 지금 존재한다 해도

우리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아이를 낳는다 해도 그 아이는 자식을 낳지 못할 겁니다.

 

당나귀와 말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가

대부분 새끼를 낳지 못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우리는 분명 중간에 다른 종의 사진을 끼워 넣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5만 세대가 지나니까 다른 종으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부모의 부모라는 사슬이 끊기지 않고 이어졌는데

과연 사진의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답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계속해 보겠습니다.

 

다시 1만 년마다 사진을 한 장씩 뽑으며 걸어갑니다.

역시 눈에 띄는 변화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100m쯤 걸어온 뒤에 뽑은 사진은 놀랍게도 침팬지와 닮은 유인원입니다.

그동안 제 눈도 닮은 형질에 익숙해져서 점진적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이 여행의 감을 잡았습니다.

저는 단숨에 1km를 내달려 25백만 년 전의 사진을 뽑아 보겠습니다.

 

사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세대의 연수도 점점 짧아집니다.

시청 앞에서 뽑은 150만 세대 전의 조상은 더 이상 유인원이 아닙니다.

꼬리가 달려 있으니까요.

오늘날의 원숭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렇다고 현대의 원숭이와도 거리가 멉니다.

 

다시 한번 훌쩍 뛰어넘어가 보겠습니다.

서울역에서 7백만 장째의 사진을 뽑아듭니다.

63백만 년 전의 조상은 여우원숭이나 갈라고원숭이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실제로 이 조상은 현대의 모든 원숭이뿐만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모든 유인원의 선조입니다.

그와 현대 인류의 유연관계는 그와 현대 원숭이의 유연관계와 같습니다.

 

이제 차를 타고 속도를 내어보겠습니다.

광명을 좀 못미처 뽑은 15천만 년 전의 사진은

우리뿐만 아니라 유대류 단공류를 제외한 모든 현대 포유류의 먼 조상입니다.

 

완전히 내달렸습니다.

평택 요금소에서 뽑은 31천만 년 전의 사진은

현대 포유류와 파충류 그리고 공룡의 먼 조상입니다.

 

평택시내에 들어온 기념으로 뽑은 사진은

도마뱀을 닮았고

현대 양서류 뿐만 아니라 모든 육상 척추동물의 먼 조상입니다.

 

이제 마지막 사진을 뽑을 차례입니다.

물론 그 이전의 고대 조상들도 계속 추적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가진 화석자료로는 여기까지가 정확한 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는 끝으로 봐야 합니다.

 

18500만 세대, 41700백만 년 전,

, 우리의 가장 먼 조상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5:25

 

우리의 조상이 물고기라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우리는 나의 부모가 나와 닮았다는 점에 안도하듯

나의 먼 조상들도 나와 닮은 모습이기를 바라니까요.

 

그러나 자연은, 그리고 우주는

우리의 바람이나 희망에 냉혹하리만치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불편해한다고 해서 법칙을 바꾸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그 냉혹한 자연의 선택 속에서 피나는 생존경쟁을 벌여온 것입니다.

18500만 세대의 연속된 사슬이 한 번이라도 끊겼다면

지금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각 사슬이 이어지는 데에도 수억 분의 일의 경쟁을 뚫어야 했습니다.

질병이나 전쟁, 자연재해와 같은 외부적인 위협도 모두 피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확률을 뚫고 태어난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동식물도 오랜 생존의 사슬 끝에 서 있으니까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과 동식물은 같은 DNA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DNA상으로 우리는 서로 유연관계이고 친척관계인 셈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어떤 신화나 전설보다 경이롭고 감동적입니다.

최초의 인간은 없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최초의 인간입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영상은 리처드 도킨스의 책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을 참고해서 재구성했습니다.

누구에겐 도발적이고 누구에겐 유머러스한 도킨스식 표현이 담겨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