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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아주 기이한 해석

Buddhastudy 2022. 5. 11. 18:56

 

 

 

거리두기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와 거리를 둔다는 것은 바꿔 말해

그 누군가가 없다면 거리도 없다는 뜻입니다.

 

거리는 나 말고 상대방이 있어야 성립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물리학에서 거리는 공간에 해당합니다.

나와 너, 나와 집, 나와 산이 있어야

나와 너, , 산 사이의 공간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물체가 없다면 공간도 없는 걸까요?

아니면 물체의 유무에 상관없이 공간은 항상 존재하는 개념일까요?

만약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요?

 

공간과 시간의 실재에 대한 의문은

오랫동안 철학과 과학을 오가는 주제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서로에 대해 배치되어 있는 물체들이 공간을 정의합니다.

이는 곧 물체들을 제거하면 공간도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그와 반대로 아이작 뉴턴은

물체의 유무와 상관없이 공간은 항상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뉴턴 역학 속의 공간은 3차원의 거대한 통 같은 개념이었습니다.

통속의 모든 사물은 좌표로 표시할 수 있었습니다.

 

뉴턴에게는 시간도 절대적인 변수였습니다.

시간은 온 우주에 걸쳐 과거, 현재, 미래가 공통으로 적용되는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뉴턴의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 개념은

20세기에 들어 상대적 개념으로 대폭 수정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물체들의 운동에 의해 늘어나고 조정되는 것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시공간을 보는

관점에 있어서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덕분에 20세기의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은

시공간에 대해 더 과감한 해석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과감하다 못해 급진적인 쪽에 가깝습니다.

 

로벨리가 주장하는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개념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조정되는 개념도 아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 오늘은 조금 과감하고 급진적이며 그래서

기이한 시간과 공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공간

뉴턴의 절대적 공간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적 공간으로

넘어가는 데에는 장의 발견이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19세기 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과 마이클 패러데이는

전하들 사이의 전기력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전자기장의 존재를 발견했습니다.

 

전기력과 자기력의 매체인 전자기장은

전하들 사이를 연결하는 무수한 역선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던 공간 속에

장이라는 미지의 요소가 숨어있었던 셈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새로운 중력 이론에

전자기장과 비슷한 중력장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전자기력이 전하들 사이의 전자기장을 통해 작용하는 것처럼

중력도 두 질량 사이의 중력장을 통해 작용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처럼 중력장 개념을 도입하면

질량을 지닌 물체들의 상호작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력장은 공간과 동일한 개념이 되거나

아예 공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게 됩니다.

굳건하던 공간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양자 중력

일반상대성이론은

공간이 곧 중력장이라는 사실을 암시했습니다.

한편 양자역학은

모든 장이 양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두 아이디어를 합치면

중력장도 양자화해서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합니다.

 

자연의 네 가지 힘 중에

아직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힘은 중력입니다.

만약 중력까지 양자화해서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연의 비밀을 알아낼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중력을 양자화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양자는 영어로 퀀텀입니다.

퀀텀은 수를 뜻하는 퀀티티에서 나온 말입니다.

수는 양과 달리 하나, , 셋하고 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자화된 힘은 하나하나 떨어진 알갱이처럼 불연속적인 속성을 띱니다.

 

양자화의 또 다른 속성은 불확실성입니다.

고전역학에서는 운동의 다음 상태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지만

양자역학에서는 다음 상태를 확정하지 못합니다.

 

알갱이의 다음 상태는 오로지 확률로 나타낼 뿐입니다.

그래서 중력을 양자화한다는 말은

연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거시세계의 힘을

불연속적이고 확률적인 미시세계의 속성으로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이론물리학에서 말하는

양자중력 이론입니다.

 

양자중력 이론 중 제일 유명한 이론은

뭐니뭐니해도 끈 이론입니다.

 

끈 이론에서는 모든 물질이 아주 작은 끈으로 구성되며

끈들은 무려 10차원의 공간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끈 이론과 비슷하지만 덜 유명한, 그래도 끈 이론의 경쟁자라 할 수 있는 것은

루프 양자중력 이론, 이른바 루프 이론입니다.

 

 

--루프 이론

카를로 로벨리는 루프이론을 고안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양자중력 문제의 해법을 구하던 중

방정식의 모든 해가 루프 모양

즉 고리 모양의 닫힌 곡선들로 모아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플랑크 규모로 아주 작은 루프들은

질량이 있는 입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공간을 촘촘히 채우고 있었습니다.

 

로벨리는 이 루프들이 전자기장의 역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장이 곧 공간이라는 가정을 가져온다면

공간은 루프의 집합체가 됩니다.

 

우리가 알던 3차원의 공간이 알고 보니

입자들, 장들, 루프들의 상호작용 그 자체인 셈입니다.

 

이 개념은 어지러울 정도로 우리의 직관과 거리가 멉니다.

어지러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동일한 개념임을 암시합니다.

 

그렇다면 시간 역시 양자화해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불연속적으로 흐르며 확률로 표시되는 시간이라니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요?

 

고전물리학에서는 거의 모든 운동 방정식에

시간변수 t가 들어갑니다.

시계추의 진자운동, 맥박수, 지구 자전 주기는

시간 t의 흐름에 따라 각각의 함수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루프 이론에서는 시간변수 t가 없습니다.

루프 이론에서는 측정가능한 절대적 시간은 의미가 없으며

각 사건들의 상호작용만 남습니다.

 

예를 들어 맥박수는 시계추의 진자운동으로 나타내고

시계추의 진자운동은 지구자전주기로 나타내는 식입니다.

 

카를로 로벨리는 세상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기존의 시간 개념을 과감히 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주적 규모에서는 모든 은하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절대적 시간변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사건의 전후가 모호하며

다음 사건을 연속적으로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는

우리가 알던 시간이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카를로 로벨리의 책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이한 시공간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오랜 직관을

현대 이론물리학의 시각으로 해석해주는 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사실 로벨리의 시간 부재 주장은

확실히 급진적인 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로벨리와 함께 루프이론을 연구한 리 스몰린은

시간의 부재만큼은 로벨리와 의견을 달리합니다.

 

스몰린은 시간이란

거시와 미시세계에서 실재하는

절대적인 개념으로 봅니다.

 

로벨리는 책에서 스몰린과 의견 차이를 인정합니다.

또한 루프이론의 한계도 분명히 밝혀 둡니다.

 

이는 기이하기 그지없는 현대 이론물리학의 한 단면을 탐구하는 여정에서

독자로 하여금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루프로 이루어진 공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이러한 주장을 담은 루프이론은

수학적 모델이야 확립되었을지 몰라도

아직 과학이론으로서 확립된 것은 아닙니다.

 

물리학에서 확립된 이론이란

양자역학, 표준모형, 상대성이론처럼

수많은 검증을 거쳐 각 분야에서 완벽하게 적용되고 있는 이론을 말합니다.

 

그에 반해 양자중력, 끈 이론, 초대칭 이론, 차원론, 다중우주론 등은

여전히 사변적 이론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들은 실험을 통해 가설이 확인된 적이 없고

실질적으로 응용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확립된 이론처럼 보이려는 과오를 범하지만 않는다면

사변적 이론들도 기초과학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급진적인 이론일수록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불러옵니다.

호기심이야 말로 인류를 동굴 밖으로 끌어내고

문명을 빚어내고

절대자에 대한 찬양에서 벗어나게끔 해준

가장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오늘날 확립된 이론들도 과거에는 불확실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상과 호기심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확립된 이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겁니다.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에 담긴 내용들도

언젠가 확립된 이론으로 인정받을 날이 올까요?

 

현재로서는 실험으로 검증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바뀌게 되겠죠.

 

수많은 거리와

그 거리가 낳은 생각들로 어지로운 요즘

잠시나마 거리가 없는 세계

시간과 공간이 없는 세계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북툰이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