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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루마니아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6. 29. 19:14

 

 

1. 소개

'로마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토지'라는 뜻의 루마니아는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에 위치한 라틴계 공화국으로

수도는 부쿠레슈티(Bucharest)입니다.

 

루마니아의 국기는 왼쪽에서부터

파랑·노랑·빨강의 세로 3색기로

국기의 이름도 3색이라는 뜻인 트리쿨로리(Triculori)’입니다.

파랑은 자유를

빨강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민들의 피를

노랑은 풍요를 상징합니다.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받은 파랑노랑빨강의 3색기는

19세기 초반부터 사용해왔고

이후로도 전통의 색이 되었으며

1940년대 공산화 이후에도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루마니아는 유럽 동남부 발칸반도 흑해 서안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몰도바헝가리와 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세르비아불가리아와 접해 있습니다.

 

국토면적은  24  세계 81위이며

대한민국 면적 10   배가 넘습니다.

 

루마니아는 2019 기준으로

 2천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62이는 서울 인구 약 1000만명의 2 정도 수준입니다.

 

루마니아의 1  GDP 

2017 기준 약 2100 달러

이는 세계 49위로 비슷한 수준의 국가로는 체코페루를 꼽을  있습니다.

 

인종 구성은 루마니아인이 90% 정도이며

나머지는 헝가리인과 독일인이 있습니다.

 

공용어로는 루마니아어가 사용되며

  헝가리어와 독일어도 소수 사용되고 있습니다.

 

종교는 루마니아 정교가  85%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가톨릭개신교가 있습니다.

 

 

2. 역사

기원전 1세기

 카르파티아산맥 남부에서 도나우강에 이르는 지역에 살고 있던 다치아(Dacia)인들은

강력한 다치아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하지만 로마제국과 연이어 전쟁을 치르면서

결국 106트라야누스 황제에 정복당했고

 후로  150년간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4세기부터 루마니아인은 세계사에서 종적을 감추었다가

14세기 카르파티아산맥 동남부 지역에 몰다비아와 왈라키아를 건국하지만

 시기에 발칸으로 진출한 오스만제국에

19세기까지 직간접적인 지배를 받습니다.

 

그동안 오스만제국에 반대하는 투쟁이 끊임없이 지속되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오스만제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인 위치  때문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습니다.

 

크림전쟁의 결과로 오스만제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파리조약에 의해 러시아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된 몰다비아와 왈라키아는

1859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를 공동 군주로 선출함으로써 

민족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쿠자는 민심을 읽지 못하고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실시한 탓에

반대세력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고

결국 1866 퇴위하고 맙니다.

 

뒤이어 독일의 카롤 1세가 루마니아공에 추대되어

1881 3월에 정식으로 루마니아 왕국으로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게 됩니다.

 

 1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가담했던 루마니아는

트란실바니아베사라비아  부코비나 지방을 얻어

영토를 크게 확장합니다.

 

전쟁 이전에 비해 인구와 영토가 2배로 증가하였고

새롭게 얻은 지역은

자원도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계공황에 뒤따른 나치 독일의 대두와

소련의 영토반환요구  불안한 국제정세를 겪으면서

루마니아는 1930년대부터

독일과 이탈리아와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1940년대에는 안토네스쿠 장군의 파시스트 정권이 성립되었습니다.

 

1944 8소련군의 발칸진출을 배경으로 일어난 쿠데타에 의해

안토네스쿠 정권이 타도되고

루마니아는 공산화에 접어들게 됩니다.

 

1948 소련군의 주둔 아래 루마니아는 왕정이 폐지되고

공산주의 국가인 루마니아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습니다.

 

10년이 흐른 1958 

소련군이 철수함과 동시에 루마니아는 

탈소련화 정책과 독자외교노선을 전개했고

 

1965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Nicolae Ceausescu)가 집권하여 

1989년까지 24년간 독재정치를 실시합니다.

오랜기간 족벌독재를 해오던 차우셰스쿠는

1980년대부터 국내외에서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고

마침내 1989 12시민중심의 민주혁명이 일어나

차우셰스쿠 공산정권이 축출되었습니다.

 

 

3. 정치 & 경제

루마니아의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가 가미된 대통령중심제입니다.

정부 기구는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최고 대표기관인 의회가 있으며

각료회의대법원 등으로 구성 됩니다.

 

2019 현재 루마니아 대통령은

2014년에 당선된 ‘클라우스 요하니스'이며

국무총리로는 2018년 루마니아 최초로 여성총리로 지명된

비오리카 던칠러(Viorica Dancila)입니다.

 

차우셰스쿠 사후루마니아의 정치는

그간 정권을 유지해온 정치인들의 담합 구조로 인해

부정부패와 사회 갈등이 계속 지속되었습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공식적으로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공산체제를 유지해온 것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집권정당이 권력을 남용하는 등의 정치적 갈등이 여전히 심각한 편입니다.

 

루마니아의 경제는 1950년대 후반까지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소련의 경제원조에 주로 의존해왔으나

60년대부터는 탈소련 자주노선을 표방하며

강력한 공업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루마니아의 가장 중요한 지하자원은 석유입니다.

플로이에슈티 지역은 루마니아 최대의 유전이자,

최대의 석유화학공업도시이기도 합니다.

 

석유천연가스와 같은 풍부한 에너지원과

발칸 중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발칸 지역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루마니아 경제의 대부분은 농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옥수수포도 등이 세계 생산량 상위 10% 들어갑니다.

특히 기후가 포도 생산에 적합해서 포도 생산량이 매우 많으며

양질의 포도주 생산국으로도 유명합니다.

 

루마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국가  하나입니다.

루마니아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확보하고,

저렴한 인건비를 내세워 HP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 IT기업들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기업들에게의 진출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루마니아는 동남유럽에서 가장 면적이  국가에 속하며

유럽에서도 12번째로  국가입니다.

루마니아의 대부분이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와 접하고 있으며 

다뉴브강이 통과합니다.

 

국토의 중앙부는 

해발고도 800~2,300m 이르는 산지이며

중앙부를 둘러싼 낮은 구릉과 대지가 이어져

서쪽과 동쪽으로는 200m 이하의 평야가 있습니다.

 

해양과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가 나타납니다.

여름은 기온이 상당히 높은 편으로 

일부 저지대의 경우 여름 내내 35 이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겨울의 평균기온은 보통 2 내외로매우 추운편이며

산지의 경우 최저 영하 15 정도입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산악지대에 리조트 산업이 발달해 있으며

많은 하천과 호수에서는 다양한 어류가 서식하고 있어

어업자원 역시 풍부합니다.

 

루마니아는 인구의 90% 가까이가

정교회신자로 분류될 정도로

유럽에서도 종교적 색채가 강한 국가입니다.

루마니아 정교회는 국민종교로 국가적 행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수도인 부큐레슈티에는

오랜 전통을 가진 신학대학 2곳이 있고

전국에 많은 수도원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루마니아 동북부 지역에는

15세기에 건설된 5개의 수도원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루마니아 브라쇼브 남서쪽 32km 위치한 브란 (Bran Castle) 

드라큘라의 전설로 유명한 곳입니다.

아름다운 여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인 드라큘라는

15세기 왈라키아공국을 통치하던 실존인물인

블라드 체페슈 백작을 모델로 하고 있는데요.

 

블라드 백작은 기발한 전술로

오스만제국의 군대를  번이나 물리치며

루마니아를 구해낸 영웅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작의 잔혹하고 소름끼치는 처형방법이 

대를 이어 회자되면서

이에 영감을 얻은 아일랜드의 작가인 브람 스토커가

소설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예술가로는 

세계적인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민간설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공간의 새>(1923)  

<잠자는 뮤즈>등은 브랑쿠시의 대표작인데요

그의 독특하고 기하학적인 스타일의 조각작품은

현대조각예술 발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5. 인물

루마니아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90년대 유럽축구계를 평정했던

천재 플레이 메이커인 게오르게 하지(Gheorghe Hagi)’ 있습니다.

그는 루마니아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90년대 당시, ‘발칸의 마라도나’ 라고도 불렸습니다.

 

하지는 어려서부터

루마니아 축구의 기대주로 각광받으며

15살에 루마니아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입단했고

수많은 해외 축구팀들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81, 16  파룰 콘스탄차에 입단하여

성인무대에 데뷔하였으며

루마니아리그에서 4시즌 동안 58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했습니다.

 

1984년과 1985, 2 연속 득점왕에 오르게 되며

특히 20살이던 1985 시즌 기록은 

31경기에서 31, 경기당 1골이라는 경이적인 득점 기록을 과시하며 명성을 쌓았으며

어린 나이임에도 국가대표에서 주장을 맡게 됩니다.

 

1986년에는 루마니아 최고 명문팀인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로 이적하여

5 연속 소속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UEFA 챔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스페인의 명문축구팀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에서 선수생활을 보낸 

은퇴를 앞두고 터키축구팀인 갈라타사라이에서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웁니다.

 

2000갈라타사라이 시절

유로파 결승에서 아스널을 꺾고

당시 변방축구로 취급 받던 갈라타사라이를 우승시키게 됩니다.

 

게오르게 하지는 현역 시절에는

천재적인 활약으로 루마니아 축구 역사를 새로 썼고

은퇴 이후로는 차세대 선수 육성으로

루마니아 축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