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즉문즉설] 제160회 가족 2편

Buddhastudy 2012. 11. 26. 05:11
출처 YouTube

 

자식도 여러분들의 선택이에요. 안 낳으려면 안 낳을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애를 낳았어. 그런데 부부에 대한 아내와 남편에 대한 관계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어요. 그리고 성년끼리의 약속이기 때문에 설령 내가 약속을 안 지켜도 피해가 별로, 그러니까 크게 많지는 않다. 이 말이오. 그런데 아이는 내가 선택했는데, 이거는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니다. 이 말이오. 아이한테는 아무 책임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부모가 됐을 때 자식에 대해서 애보고 뭐라고 그럴 수가 없어요. 그거는 자식에 아무 책임이 없는 거요. 이게 한국 사람이 될지, 이게 미국사람이 될지, 부모 밑에서 자랄지, 고아로 자랄지,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부모가 하는 거지. 자기가 키울 건지 어디 입양을 시킬 건지 이거 다 자기가 선택하는 거요. 그러고 자라면서도 자기가 직접 키울 건지 유모한테 키울 건지. 그러니까 무슨 옷을 입히고 뭘 먹일 건지. 이거 다 부모가 선택해.

 

애가 뭐 달라, 뭐 입혀 달라. 어떤 집에 재워 달라. 이렇게 얘기한 적이 없어요. 다 부모가 선택해서 한단 말이오. 그러면 애는 거기 길들게 되는 거요. 단 걸 자꾸 먹이면 단맛에 길들고. 부드러운 걸 자꾸 주면 부드러운 것에 길들고. 고대로 물든다. 이 말이오. 그래서 일정하게 자라면 어떠냐? 거기 습관이 붙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데, 그 아이의 그러한 선택은 그 아이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주어진 것의 길들임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애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라고 볼 수가 있어. 내가 부모가 된 입장에서. 으음. 내가 어떻게 할 거냐의 문제다. 내가. 으음. 그러니까 자식에 대해서는 선택을 하는 거기 때문에 거기에선 책임을 오래져야 돼. 즉 스무 살까지는 책임을 져야 돼. 그러니까 자식과의 관계에서 부모가 나 책임 없다.” 마치 부부 이혼하면 책임 없어지듯이 이혼을 딱해서 부모자식 간에 이혼을 딱 해서 난 더 이상 너에게 책임이 없다.” 할 수 있는 건 몇 살 때까지다?

 

스무 살 때까지다. 그전에는 이거는 이혼이 안 돼요. 그러니까 자식 선택 그만큼 무서운 거요. 그래서 성년 때까지는 부모가 자식에 대한 전적인 책임이오. 이거를 책임 안 지고 도망가려고 그러면 안 돼요. 그래서 제가 미성년자를 데리고 와서 아이 문제를 나한테 상담하면 내가 애 상담 안 하죠. 애가 어떤 문제든 그건 내가 애하고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그건 애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애하고 얘기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돼.

 

애가 도둑질을 해도 애하고 얘기하는 게 아니고 부모하고 얘기해야 되고, 애가 폭력을 행사해도 부모하고 얘기해야 되고, 애가 정신질환이 돼도 부모하고 얘기해야 되요. 부모가 고쳐져야 애가 고쳐지지. 미성년자라는 말은 한 사람의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이오.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거요. 그럼 스무 살이 넘어서도 자식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그거는 본인이 계속하고 싶어서 그래 하는 거요. 그래서 스무 살 넘은 자식 걱정하면 스님 법문이 어때요?

 

한마디로 쓸데없는 걱정하는 거요. 결혼을 어떻게 할 건지. 취직은 어떻게 할 건지. 손자는 어떻게 나을 건지. 이런 얘기 하면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요. 이게 기본의 그 답은 당신 지금 쓸데없는 짓 하고 있소가 기초요. 뭐라고 얘기해주든. 그런데 그 18살 안쪽에서 자식을 뭐라고 얘기해도 그건 다 당신 책임이오. 이런 관점에서 얘기하는 거요. 으음. 그런데 18살 안에 자식에게 14, 소위 중학교 한 1~ 2학년 까지는 따라 배우기 하는 수준이오.

 

그걸 다시 나누면 3살 때까지는 각인작용. 무조건 바깥에서 들어오면 그냥 콱 박혀버리는 거고, 그다음부터는 쉽게 물드는 시기고, 그다음에 14살부터는 자기가 뭘 독자적으로 해보려고 하는 소위 사춘기에요. 이때는 부모가 좀 물러서 줘야 되요. 그러니까 3살 때까지는 무조건 키워야 되고, 그다음에 3살부터 한 13~14살까지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걸 따라 배우도록 해 줘야 돼. 그리고 그다음에는 약간 물러서 줘야 돼. 자기 시행착오를 거듭할 동안에. 으음.

 

이런 과정을 부모가 밟아주면, 아이가 어릴 때는 세 살 때까지는 무조건 사랑을 베푸니까 아이의 심성이 안정되고, 그다음에는 좋은 교육을 따라 배울 수 있는 모델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게 되고, 그다음에는 자발성, 자기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자립심이 생긴다. 그래서 18살 딱 되면 손을 흔들어 줘도 된다. 어떻게 살든 그건 니 책임이다. 요 사춘기에 자발성을 키워줘야 18살 넘으면 안녕히 할 수가 있는데.

 

요 때 안 키워놓고. 요렇게 지켜보고 자기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자립을 안 시켜놓고 나중에 가서 하려면 안 되는 거요. 딱 달라붙어가지고. 안 떨어진다. 이 말이오. 지금.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그래서 요즘은 언제까지 이 붙어서 안 떨어집니까? 죽을 때까지 안 떨어집니다. 으음. 그럼 부모가 늙으면 이제 어떻습니까? 내가 돌봐줘야 된다는 거요. 내가 어릴 때 돌봄을 받았으니까 어때요? 이젠 돌봐줘야 되요. 이제 자식들이 돌보지 않으려고 하는 데서 문제가 생겨요.

 

그러고 늙은 부모를 자꾸 고치려고 그래. 그런데 이거는 고쳐질 수 없는 이미 상황에 이르렀는데 고치려고 하는데 안 고쳐지니까 더 관계가 나빠진다. 그러니까 늙은 부모는 맞춰야 돼. 돌봐드려야 되고 맞춰야 돼. 그런데 늙은 부모한테까지 아직도 뭘 얻으려고 하잖아. 유산을 받으려하고 도와 달라 그러고. 그건 바로 젖을 뗄 때 안 떼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요. 그러니까 어릴 때 그 감싸 안고 살던 습관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결국은 죽을 때까지 붙어서 살아야 돼. 근심 걱정하고.

 

담배습관하고 똑같습니다. 담배 오래 피워서 습관 들면 못 떼는 거 하고 똑같습니다. ~ 이런 것들이 우리 인간 삶의 현실이다. 그래서 세월이 흐르면 어때요? 부모님 먼저 돌아기시죠. 그러면 관계가 하나 청산이 됩니다. 또 세월이 흐르면 배우자가 하나 돌아가죠. 또 관계가 청산이 돼요. 처음에 태어나면 부모가 나한테 주어지듯이, 이제는 늙으면 마지막으로 남는 게 뭐요? 자식과의 관계가 남죠.

 

이거는 이제 내가 자식이 먼저 내 곁을 떠나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떠나므로 해서 어때요? 결국은 하나의 인간관계가 종결이 되는 거요. 이 속에서 우리가 지금 갈등을 일으키는데. 이거 사실은 나를 낳아준 부모고, 내가 좋아서 한 이불 밑에서 자는 사랑의 부부고, 내가 선택한 내 자식인데, 여기서 지금 우리 모든 고뇌의 80%는 다 여기서 생겨. 즉 관계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결국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행복의 원천이 여기 있는데 결국은 이것이 고통의 원천이 돼 있다. 현재.

 

그러니까 해결은 뭐요? 가족을 해체하는 거요. 이게. 이게 행복의 보금자리가 아니고. 이게 고통의 보따리니까 어쨌든 이걸 해체시켜야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있지 않으냐? 그러니까 부모로부터 어때요? 떨어져 나오려고 그러죠. 으음.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꾸 뭐요? 집 나간다. 자꾸 나갈라 그러잖아요. 부부지간에는 헤어지려고 그러죠. 그다음에 자식 문제는 어때요? 내가 못 되는 거요. 내가 자식일 때는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니까 도망을 가려고 그러고.

 

내가 선택해서 난 자식은 내가 정을 못 떼 가지고 애가 도망가려는 데도 내가 따라다니면서 잡는 거요. 따라다니면서. 그래서 여기서 지금 괴로움이 발생한다. 그래서 어릴 때는 부모하고의 관계가 괴롭다 하지만 결혼해보면 부모하고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고 부부관계가 괴롭고, 남편 때문에 죽겠다 하지만 애를 키워보면 어때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고. 애 때문에 이제 진짜 괴로운 거요. 이래서 한생을 괴로움 속에 살다가 가게 되는데.

 

사실은 나를 낳아준 부모에 대해 감사하고, 나와 함께 더불어 사는 아내나 남편을 사랑하고, 내가 낳아서 내 모양대로 키운 내 자식을 어때요? 내가 잘 크도록 독립하도록 정을 떼 주고 어릴 때 잘 돌봐주고 크면 정을 딱 떼 주면 인생이 괴로울 일이 없지 뭐. 그런 원리에 따라서 교통정리를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