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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멘토 임작가] 행복으로 이끄는 8가지 발달과업 3편 |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Buddhastudy 2022. 9. 21. 19:25

 

 

 

예전에 전 어떤 프랑스인 부부와 친하게 지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 부부한테 끌로라는 예쁜 아기가 태어났는데,

나중에 이 부부의 양육 방식을 보고서

전 너무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부부는 아기가 뭘 하든 간에 거의 제지를 하지 않는 거예요.

통제를 안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약간 더러운 돌도 만지면서 갖고 놀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기 아빠한테 물어봤어요.

"넌 정말 네 딸한테 자율권을 많이 주는 것 같다.

원래 그렇게 키우려고 한 거냐?" 하고 물어봤었죠.

 

그랬더니 아기 아빠가 얘기해주기를

자신은 부모로서 아이가 자기 스스로 가능한 많이 경험해보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래요.

그게 자기 딸을 위한 것이라고 답변을 해주더라고요.

 

전 이 말이 너무 신선하고 약간 충격적이었어요.

한국의 부모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대신 다 해주는 경우가 많잖아요.

부모가 다 대신해주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런 부모들은 아이가 스스로 선택해서 뭔가 하게 되는 걸 두려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학생 나이가 되서도 버스를 혼자서 못 타는 애들도 많아요.

 

어떤 경우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는데도 위험하다면서

전기 플러그를 대신 꽂아주는 엄마들도 있어요.

아이가 뭘 하고 싶다고 하면 못하게 하는 부모님들도 되게 많죠?

 

그런데 이 프랑스 부부는 아기한테 해가 되지 않는 한

가능한 모든 걸 스스로 해보도록 허용해주더라고요.

그게 아이한테 나중에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한국과 프랑스의 너무나 다른 양육 스타일 때문에 굉장히

인상 깊었던 기억이 저에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현명한 부모는 아이가 옷을 혼자서 입어보는 시도를 할 때 기다려줍니다.

그러면 이때 부모에겐 뭐가 필요하겠어요?

참을성이 필요하겠죠.

나는 금방 하는데 아이는 느리니까 성질이 급한 부모들은

아이가 스스로 해보는 시도를 못 기다립니다.

그리고 이걸 못 기다리면 스튜핏한 부모가 되는 겁니다.

 

물론 아이가 계속 혼자서 옷 입는 걸 시도했는데 계속 실패한다면

그래서 아이가 도와달라고 하면

그때는 도와줘야 합니다.

계속된 실패는 아이가 좌절감을 느끼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전까지 현명한 부모는 아이한테 충분히 참을성 있게 기회를

주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 아이가 옷을 혼자서 입는 도중에

아이에게 잘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거나 심하게 통제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는 어떻게 느낄까요?

 

아이는 , 내가 옷을 혼자서 입을 능력이 안 되는구나, 무능력한 존재구나,

수동적인 존재구나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감도 떨어지게 되고

내가 혼자서 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걸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느끼게 되는 거예요.

 

예컨대, 여러분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고 생각해봐요.

자랑스럽겠죠?

 

반대로 음치여서 노래를 정말 못했어요.

음정 다 틀리고 사람들 반응이 그래서 안 좋아요.

앞에 있는 사람들이 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며 큭큭 웃어댑니다.

그럼 어떤 느낌이 들겠어요?

부끄럽잖아요.

잘 못했으니까.

능력이 없다고 느끼게 되니까요.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것은 이런 거예요.

아이를 이렇게 수치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멍청한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여러분의 부모님은 어떠셨나요?

여러분이 충분히 혼자서 해볼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부모님이셨나요?

 

그러면 정말 다행이겠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혹시나 그렇지 않았다 해도 여러분은 부모로서

자녀에게 스스로 해볼 기회를 많이 제공해서 아이의 자율성을

많이 키워주려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

이제 세 번째 심리사회적 발달단계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나이의 시기에 해당됩니다.

3세부터 5세까지의 단계입니다.

 

이 시기엔 이제 아이가 더 많이 성숙해집니다.

이 시기엔 아이가 뛰어다닐 수도 있을 거예요.

아이가 아주 활동적이 되는 다이나믹해지는 나이대입니다.

이제 아이는 놀이터나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같이 놀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친구들과 같이 조직해서 게임을 하기도 하고

가끔은 리드를 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스스로 해보는 여러가지 시도를 더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부모들이 하는 흔한 실수 하나는

너무 활동적으로 변해버린 아이에게 벌을 많이 주거나

아이가 혼자 해보는 시도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겁니다.

 

아이가 이제 혼자서 결정하고 싶을 때가 많은데

그런 시도를 아예 차단해버리는 것이죠.

이 시기엔 아이가 언어를 사용하는 면에서도 더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부모에게 아주 많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자기 주위에 있는 것들이 다 새로워서 알고 싶고 궁금하니까

부모에게 오만가지 사소한 질문들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멍청한 부모는 그런 질문들을 아예 차단해버립니다.

그런 질문하지 말라고요.

귀찮고 성가시니까 그런 바보 같은 질문들 하지 말라고 면박을 줄 때도 있어요.

 

그럼 아이는 어떻게 느낄까요?

수치심을 느끼겠죠.

그리고 그에 더해 죄책감까지 느끼게 됩니다.

 

수치심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잘 못 불렀을 때 느끼는 감정이지만

죄책감은 '내가 뭔가 잘못을 했구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했구나' 라고

생각할 때 느끼는 감정이에요.

그래서 죄책감이 수치심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이런 감정들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수치심도 그렇고, 죄책감도 그렇고 아이는 모두 그런 감정들을 경험해

볼 필요가 있어요.

자신이 뭔가 잘못했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건

지극히 인간적이고 바람직한 감정입니다.

그런 죄책감을 느껴봐야 자제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되어서

비로소 양심이란 게 생기는 거예요.

인간이 더 인간다워지는 거죠.

 

반면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뭐라고 부르나요?

싸이코패스라고 부르잖아요?

 

다만 여기서 여러분이 주의해야 하는 점은

아이가 너무 많이, 빈번히 죄책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죄책감을 평소에 많이 느끼게 된다면

아이는 평소에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도 꺼려하게 되고,

그게 아주 심하게 되면 대인기피증이 되는 거예요.

 

죄책감이라는 것은 자기가 상대방한테 성가시다고 느껴지는 감정이거든요.

자기가 그 사람한테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되는 거예요.

 

이런 감정을 빈번히 느끼는 아이가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삶을 살 수 있겠어요?

 

따라서 이 시기의 아이에겐 부모가 너무 많이 통제하지 말고

가능한 범위 내에선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