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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방글라데시 10분 완벽정리

Buddhastudy 2022. 10. 20. 19:44

 

 

1. 소개

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 줄여서 방글라데시는

남아시아 인도 북동쪽의 벵골 만 연안에 있는 나라로

수도는 다카(Dhaka)입니다.

 

방글라데시의 국기는

1971년 독립전쟁 당시에 사용되었던 기를 기초로 하여 만든 것으로

독립전쟁 당시에는 빨간색 원안에 금색의 방글라데시 지도 디자인이 그려져 있었으나

1972년에는 지도 디자인을 삭제한 형태의 기를 국기로 제정하였습니다.

짙은 초록바탕 중앙에 빨간 원이 약간 좌측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배경의 초록은 방글라데시의 푸른 국토를 상징하며

빨간 원은 암흑의 시기를 거치고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한 것으로

방글라데시의 독립과 저항정신을 의미합니다.

 

방글라데시는 서쪽은 인도, 남동쪽은 미얀마, 남쪽으로 벵골 만에 접해있으나

국경의 95% 이상이 인도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국토면적은 약 147,000

세계 92위이며, 대한민국 면적의 약 1.5배 정도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약 165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8위이며, 세계 제일의 인구 조밀국입니다.

 

방글라데시의 1년 총 GDP2019년 기준 약 3200억달러로 세계 40위이나

1인당 GDP2000달러가 되지 않습니다.

 

주민의 90%가 공용어인 벵골어를 사용하며

그밖에 힌두어와 영어가 함께 사용되기도 합니다.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98%가 몽골드라비다계의 벵골족이며

그 외 지방에는 버마계 종족과 인도에서 이주해온 비하르족 등이 있습니다.

 

1988년 이슬람교가 국교로 제정되어

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힌두교, 불교, 기독교가 소수 존재합니다.

 

 

2. 역사

벵골 지방의 동쪽에 해당하는 현재 방글라데시 지역은

예부터 문명이 발달했고

기원전 4세기 마우리아 왕조부터 6세기 굽타 왕조까지 수많은 왕조의 속령이었습니다.

 

8세기 중엽 팔라 왕조가 세워졌고, 불교가 번영하였습니다.

하지만 1200년경 무슬림들이 벵골 지역을 침략하였고

그 결과 대다수 주민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슬람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12세기 후반 벵갈 술탄국이 수립되면서 벵골어가 발달하고

벵골인들의 정체성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으나

세나 왕조를 거쳐 1576년 인도의 무굴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15세기 후반 포르투갈의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벵골 지역에 도착했고

뒤를 이어 네덜란드와 프랑스 동인도회사가 잇달아 벵골에 나타났습니다.

 

영국 역시 17세기부터 인도의 캘커타부터 벵골까지 세력을 미쳤고

북부 인도의 마라타 동맹이 대영제국에 패하면서

방글라데시 지역 역시, 실질적으로 영국의 식민지 영향권 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1905년 영국은 독립운동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무슬림이 많은 지역인 현재 방글라데시 지역을

힌두교가 많은 인도의 서벵골지역과 분리시켰습니다.

 

이러한 조치에 벵골인들은 격렬한 반대운동을 일으켰고

결국 영국은 1911년 벵골 분할령을 철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펼쳐진 독립운동 과정에서

힌두교가 주도한 국민회의와

이슬람교도들이 만든 전인도 무슬림연맹사이의 적대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1947년 인도가 자치권을 회복하자,

힌두교인 위주의 인도자치령과 이슬람교인 위주의 파키스탄 자치령으로 따로 분리되었습니다.

이슬람교도가 다수였던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에 속하게 되어 동벵골, 혹은 동파키스탄이 됩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동파키스탄에서는

벵골의 라만(Mujibur Rahman)이 아와미 연맹을 만들어 꾸준하게 벵골의 자치운동을 벌였습니다.

 

마침 1971년 동파키스탄의 독립을 지지하던 인도가

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에 동파키스탄은 본격적으로 독립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파키스탄 군대와의 치열한 전쟁 끝에, 마침내 방글라데시의 독립이 확정되었습니다.

독립 이후 방글라데시는 1972년 제정한 헌법에 따라 의회 민주주의 국가로 시작하였으나

30년간 정치적 혼란과 부정부패가 만연했습니다.

 

13명의 행정 수반 중 2명이 암살당했고

4차례 이상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으며

여전히 국가적인 불안정과 위험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3. 정치 & 경제

방글라데시는 대통령은 상징적인 존재인 의원내각제 국가입니다.

1972년부터 의원내각제로 출발했다가

1975년 한차례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었으나

다시 1991년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로 복귀했습니다.

 

국가 수반인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의회에서 선출되며

행정부의 실질적인 권한은 총리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의회는 단원제로

국민투표로 선출한 5년 임기의 의원 350명으로 구성됩니다.

주요 정당으로는 아와미 연맹(AL),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 자티야당(Jatiya Party) 등이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경제는 1970년대만 하더라도 후발개발도상국 수준이었으나

최근 들어 인구의 감소와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큰 폭으로 경제수치 상승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갠지스 강의 범람으로 형성된 풍부한 토지와 노동력을 바탕으로

예부터 방글라데시에서는 쌀농사가 발달했습니다.

현재도 방글라데시는 세계 쌀 생산량 4위이며

국내 인구의 6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전까지 방글라데시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황마는

현대 들어 폴리프로필렌에 밀리긴 했으나

여전히 황마를 활용한 제품과 가공품 수출이 경제에서 중요하며

그 외에도 감자, 파인애플, 양파 등의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17000만이라는 거대한 노동력과 저임금을 무기로 하여

방글라데시에는 많은 의류업체가 진출해 있습니다.

황마수출을 대체하여 직물가공품 수출이

전체 수출의 80%까지 치고 올라올 정도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방글라데시는 아시아 서남부 인도양 연안에 위치한 국가로

국토의 95%가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브라마푸트라 강과 갠지스 강이 흘러드는 벵골 만에 접해있고

벵골 만은 인도양으로 이어집니다.

 

방글라데시는 두 강이 하류지역에 형성하는 거대한 삼각주 지대가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동부의 치타공 구릉을 제외하면 대체로 평탄한 지형입니다.

특히 저지대 지역은 정글이 많은데,

이 정글은 벵골호랑이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기후는 열대 기후로, 고온다습한 편입니다.

여름인 3월부터 6월까지는 매우 덥고 습하고

6월부터 10월까지는 몬순기후의 영향을 받습니다.

10월부터 3월까지 이어지는 겨울 역시 비교적 따뜻한 날씨를 보입니다.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덥고 비가 많이 오는 지역 중 하나이며

매년 홍수와 사이클론의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연평균 1.6건이나 발생하고 있는 사이클론의 피해가 극심한 편으로

1991년 발생한 사이클론으로 인해

14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방글라데시는 싱가포르나 모나코와 같이 면적이 작은 소규모 국가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러시아보다 약 2000만명 정도가 더 많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정부는 1992년부터 적극적으로 산아제한을 통한 인구조절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은 시(poem)에 대한 열정이 높은 편으로 유명합니다.

라론 샤(Lalon shah), 하손 라자 (Hason Raja) 등과 같은 대표적인 시인들이 있고

19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

나의 황금 벵골은 방글라데시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에 있는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은

유명한 건축가인 루이스 칸이 1962년 설계한 것으로

방글라데시를 대표하는 건축물입니다.

물 위에 떠 있는 중세 성과 같은 모습한 국회의사당은

세계에서도 가장 예술적인 국회의사당 건물에 꼽힐 정도입니다.

총 부지가 800,000에 호수, 잔디밭, 국회의원 주거지 등이 포함되어 있어

세계 최대의 입법부 단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5. 인물

방글라데시 출신의 유명한 인물로는

은행가이자 경제학자, 사회운동가인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가 있습니다.

 

그는 빈민들을 상대로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을 펼쳤고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여 빈곤퇴치에 앞장 선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940, 영국 식민지 시절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유복한 무슬림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다카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의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박사공부를 했습니다.

학업을 마치고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유누스는

치타공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습니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그는

국민 대부분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967년 무담보 소액대출 프로젝트를 생각해낸 그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사업이 점차 확장되어 1983년 정식으로 그라민 은행 법인을 설립하였고

2007년까지 그라민 은행에서 700만명 이상이 대출을 해간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그라민 은행에 의한 무담보 소액대출은

세계 여러 나라로 확산되어 빈곤퇴치에 기여하였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그라민은행과 공동으로

무함마드 유누스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그는 막사이사이상, 세계 식량상, 서울 평화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고

현재까지도 가난 없는 세상을 꿈꾸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