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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무신론자 관점 유대인 역사 6 - 이스라엘 1대왕 사울, 교양 세계사

Buddhastudy 2023. 6. 7. 19:45

 

 

 

유대인 역사는 구약 성경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유대교에서는 구약 성경을 타나크라 부르며 24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개신교에서는 39, 가톨릭에서는 46권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류 방식을 다르게 해서 권수의 차이가 나는 것이며

기본 골격과 다루는 내용은 같습니다.

 

전반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은

모세 5경과 역사서로 역사를 다루고 있고

후반부는 지혜서와 예언서로 구성되어 있죠.

 

성경의 역사기록에 대해서는

성서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이 끊임없이 다투는 소재로 이용되고 있는데

모세가 히브리인들과 함께 이집트를 탈출하는 출애굽기에서도

고고학에서는 근거가 없는 꾸며낸 이야기라 하고 있고

성서학에서는 불완전한 인간의 지식으로 증명하려는 것 자체가

무지한 일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10분 세계사 고대 이집트 역사 시리즈 중

람세스2세 편에서 출애굽기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어서

유대인 역사를 정리하기 시작하였고

이번 영상의 이야기는 그동안 어지러운 시절이었던 판관기의 시절이 끝나고

이스라엘 왕정기가 시작되는 이야기를 진행해 봅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은 사울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두 번째 왕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는데

고고학자들이 역사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은 다윗시절부터죠.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없었던 시절

12지파 중 벤야민 지파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울은

앞으로 주요 인물이 되는 것을 암시하듯

잘생긴 외모와 함께 키도 큰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성격도 겸손하고 집재산도 많으며

소문난 효자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었죠.

 

하루는 아버지가 암나귀를 잃어버려서 사울에게 찾아오라고 하니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태에서 효심이 지극한 사울은

무작정 열심히 암나귀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오랫동안 암나귀를 찾아다닌 사울이 지쳐갈 때쯤

같이 찾으러 나섰던 심부름꾼인 사환이

예언자 사무엘에게 가보자고 하죠.

사울은 사무엘이 사는 곳에 갔다가 기름부음을 받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책무를 부여받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후 사무엘이 이스라엘인들을 미스바로 모아서

하나님의 뜻을 담겨있다는 제비를 뽑게 되는데

이 제비뽑기에서 왕을 선정하게 되고

그 중 사울이 제비를 뽑게 되면서, 정식으로 이스라엘 1대왕이 되었죠.

 

그간 왕이 없어 판관을 통해 민족이 유지되던 이스라엘인들이

왕을 필요로 하게된 이유는

판관들의 타락도 자주 있었으며, 구심점인 왕이 없다 보니

다른 민족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너희들이 나만 믿으면 되는걸 자꾸 다른 신들을 섬기고

다른 민족하고 어울리니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거라고 믿음만 보이면 된다고 했죠.

하지만, 이스라엘인들은 그래도 인간으로서의 강력한 왕이 필요하다 했고

야훼는 말을 안 듣는 사람들에게 속상해하며

왕이 생길 경우에 벌어지는 경고를 합니다.

 

이제 왕이 생기게 된다면, 왕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아들딸들이

성에서 노역을 하거나 궁녀를 맡게 될 것이니

결국에는 모두들 왕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서는

사무엘에게 왕이 될 자를 선정해줍니다.

 

 

 

제비 뽑기로 왕이된 사울은 정식으로 이스라엘의 초대왕이 되었지만

처음부터 사람들이 이에 대해 수긍을 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어찌되었던 왕이 되었으니, 왕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으나

제비뽑기가 무슨 왕이냐며 무시하는 사람들도 수두룩 했죠.

 

이는 사울의 집안 배경이 벤야민 지파였기 때문이기도 한데

10분 세계사 유대인 역사 3번째 영상에서

레위 지파의 첩과 벤야민 지파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벤야민 지파가 다른 11개의 지파와와 내전으로 인해

600명만 빼고 모두 죽는 사건이 있었죠.

그러다 보니, 가장 규모가 작은 세력에 대해서

다른 11지파들이 서로 견제하느라 큰 반발은 없더라도

왕의 권위가 쉽게 살아나진 않았던 셈이죠.

 

어쨌든 초대왕이 된 사울은 기원전 1078년에 태어나

40세인 기원전 1038년부터 재위하였고

초기에는 다른 지파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해

평소 요단 서편 기브아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요단 동편의 길르앗 야베스에서

이스라엘은 암몬 민족의 침략 위기에 놓였죠.

 

암몬 민족의 왕 나하스는 그 지역을 포위하고서는

너네가 살고 싶으면 각자가 오른쪽 눈을 하나씩 빼면 살려주께라고 조롱을 합니다.

무서운 암몬의 왕 나하스의 포스를 보고,

이스라엘인들은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고

이 소식은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소를 몰고 밭을 갈던 사울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어서는 덤비지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그 자리에서 소를 죽여 여러 토막으로 나눈 뒤에 각 지역에다가 토막들을 보냅니다.

그리고는 지금 당장 나를 따라 나서지 않으면, 니들 소들도 다 이렇게 만들어버린다.”라고 하며,

자신이 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게 되죠.

 

분위기에 압도당한 이스라엘인들은 사울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고

군대를 취합하게 되니, 33만의 병력이 생겼고

이를 3개 부대로 나누어서 이른 새벽녘에

암몬 민족의 진으로 쳐들어가 암몬군을 전멸시키게 됩니다.

이 전투를 길르앗 야베스전투라 하는데

이후로 사울의 활약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약한 민족이라는 인식을 바꾸기 시작하죠.

 

길르앗 야베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사울은

사무엘과 함께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순식간에 인기남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되어지는 중앙집권 체제의 왕은 아니었습니다.

세금을 부과한다거나 상비군을 두지도 않았고

왕궁도 건설하지 않게 되죠.

그 시기의 다른 민족들과의 끊임 없는 전투가 이어져

정치적인 지도자라기 보다는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 같은 역할을 맡은 편이죠.

 

길르앗 야베스 전투 이후, 2년의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에게는 자존심 회복을 건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예전에 있었던 에벤에셀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당시 엘리 대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들이 전사했고

성궤까지 블레셋에게 빼앗아기게 되었는데요

바로 블레셋과의 전투인 믹마스 전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사울과 자신을 왕으로 인정해주었던

제사장인 사무엘과 마찰이 생기게 됩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이번 전투에서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수의 블레셋 군대를 보고서

겁에 질려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는데요

 

사울은 제사장인 사무엘이 도착해서,

이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번제를 주관하고 싶어했죠.

하지만, 사무엘은 약속 날짜에 전쟁터에 도착하지 않았고

7일이 지났는데도 도착하지 않게 되자

사울은 자신이 직접 부하들의 전의를 회복시키려고

제물을 가져오라고 지시를 합니다.

 

 

 

블레셋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이스라엘인들이 겁에 질리기 시작하자

사무엘을 기다리다 못해 사울은 직접 번제를 주관하게 되었죠.

제물로 바치는 짐승에 각을 떠서, 제단에 올려 제사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번제를 주관할 수 있는 것은 제사장 뿐이었으며

이는 하나님이 정해준 왕의 권한을 넘어서는

월권행위를 했다고 성경에서는 해석을 하죠.

 

늦게 도착한 사무엘은 사울이 직접 번제를 주관한 것에 대해 크게 노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벗어난 것은 하나님에 대적하는 일이니

머지 않아 다른 사람을 왕으로 세울 것이라고 벌 받을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사무엘은 갈 길을 떠나게 되고

사울은 아들 요나단과 함께 블레셋에 맞서게 되죠.

 

저 같은 경우는 종교인이 아니라서, 이 상황에서 사울이 잘못한건 없다고 생각을 하지만

성경을 깊게 공부하시는 종교인들은 이에 대해

사울이 주제넘게 행동해서 죄를 지었다고 표현을 하는 편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울이 참을성 있게 믿음을 갖고 사무엘을 기다려야 된다고 하는 거죠.

이렇게 같은 상황에 대해서 다르게 해석을 하는 건

사람마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사울은 기브아에서 믹마스로 향하게 되고

아들 요나단은 게바에 있는 블레셋 주둔군과 총독부를 기습 공격하게 되는데

삼국지의 여포 같은 역할을 해내며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을 무찔러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기습 공격을 당하게 된 블레셋은 믹마스에 집결하여

이스라엘군과 블레셋군과의 대형 전투가 벌어지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도 요나단의 부대의 활약으로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두게 되죠.

 

믹마스 전투 이후에 사울은 연이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주변에 있던 암몬, 에돔, 소바 등의 땅을 정복하면서

국가의 기틀을 다잡아 가게 됩니다.

그리고 세력이 강한 블레셋과의 싸움에 좀 더 대비하기 위하여

군대를 모아 병합하기도 했죠.

 

사울의 지휘아래,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이스라엘이었지만

사울은 믹마스 전투에서 번제를 드리는 월권행위를 한 점으로

하나님의 선택에서 버림을 예고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말렉 전투에서 왕의 자격이 박탈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죠.

 

아말렉은 히브리족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시기 때

대열의 후미를 공격하였던 민족이었습니다.

이에 다시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뜻을 전달하게 되는데

예전에 아말렉 족이 상당히 괘씸했으니, 그들을 모두 없애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파괴하라고 전달했죠.

 

사무엘의 말에 따라 사울은 20만 군대를 끌고는

아말렉에 진격하여, 손쉽게 승리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일부는 듣고

일부는 자신의 판단대로 실행하게 되는데요.

아말렉인들은 모두 전멸시켰으나 그들의 왕인 아각은 생포해서 사로잡고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양과 소들은 전리품으로 챙기며

승리 기념비까지 세우게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얻은 식량과 가축에 대해 이스라엘의 재원이 늘어나게 되었지만

하나님은 아말렉이 가지고 있던 소유물까지 없애라고 했는데

이를 어긴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며

이제는 사울을 버리겠다고 하죠.

 

사울은 사무엘을 붙잡고,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지만

사무엘이 비키면서, 옷자락이 찢어지게 되고

이 옷조각처럼 당신도 하나님께 버림받은 거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생포했던 아말렉을 끌고 나와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된다고, 도끼로 아각을 두동강 내버리죠.

이후, 사무엘과 사울은 두 번다시 만나지 않게 됩니다.

 

사무엘은 그 길로 베들레헴 지역에 거주하던 유다 지파 집안에 가서는

다윗에게 기름부음을 시행했고

이는 추후 다윗으로 왕이 바뀐다는 뜻이었죠.

 

사울은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정통성이 깨지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위축되기 시작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사울의 심적인 변화에 대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떠나시고

악령이 사울을 번뇌케 했다고 기록하고 있죠.

 

 

 

오늘은 기원전 11세기 경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에 대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사울은 성장기 시절부터 훈남에 성격도 겸손하고

효심도 가득한 청년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었는데요

왕이 되고나서도, 자신의 집안이 세력이 가장 약해서

다른 지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위기가 닥치자, 리더쉽을 발휘하며 민족을 통합하여

약한 민족의 대명사였던 이스라엘을 강성하게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무엘과의 갈등이 있었고

이는 종교적으로는 무엇보다 큰 죄인

하나님에게 대드는 행위였죠.

 

사무엘이 오지 않았을 때 번제를 대신 드린 사울의 행동은

적절한 판단이었다 혹은 불경죄였다 하는 것은

개개인 각자가 판단할 몫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