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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다윗과 골리앗

Buddhastudy 2023. 6. 8. 20:05

 

 

 

다윗과 골리앗

이스라엘군과 블레셋이라 불리는 필리스타인과의 전투에서

거인처럼 덩치가 큰 골리앗과

양치기 소년이었던 다윗의 일대일 대결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 그림은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다니엘레 다 볼테라의 작품으로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있으며

생동감 있는 모습이 마치 금방이라도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벨 것 같은데요

다니엘레 다 볼테라는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화가로

'최후의 심판'에서 허리 수건을 그려넣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그림의 특징은 양면으로 그린 그림으로

둘의 전투 장면을 반대편 시선에서 보는 듯 상상하며 나타냈으며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두 개의 액자가 서로 등을 지고 전시되고 있죠.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사무엘이 신의 예언자로서 이스라엘인들을 통솔하고 있었으나

국력이 약하고 불레셋인들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를 하여

사람들은 우리도 이제 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지명에 따라 사울을 1대 왕으로 선정하게 되죠.

유대인의 역사는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유일신으로 야훼의 존재가 등장하는 점은 참고 바랍니다.

 

1대 왕으로 선정된 사울은 강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군대를 이끄는 리더십이 뛰어나

다른 종족을 통합하여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해갔으나

신과의 약속을 저버리며, 결국 신의 예언자인 사무엘로부터

왕위를 박탈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듣게 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다음 왕이 될 사람을 찾아가라는 명을 듣고는

베를레헴에 사는 이새라는 자를 찾아가게 되는데요.

이새의 자식 중에서

미소년이며 눈이 총명한 막내인 양치기 소년 다윗을 이스라엘의 다음 왕으로 선정하게 됩니다.

 

양치기 소년이라고 하면

"늑대가 나타났다!' 거짓말을 잘 하는 소년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기원전 10세기 고대 사회의 양치기는 그러한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발달된 근육과 운동신경이 뛰어나야만

양은 물론 자신의 목숨도 지킬 수 있었던 고된 직업의 대명사였죠.

 

양치기는 수많은 양들과 함께 수십 킬로미터를 뛰어다녀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는 산과 언덕에서 양들을 노리는 배고픈 곰 같은 맹수를 뿌리치기도 했습니다.

 

건장한 신체 조건을 겸비해야 하는 양치기는

로마 제국 시절, 검투사들의 반란을 일으켰던 스파르타쿠스 시절에도 존재했습니다.

미드 '스파르타쿠스'에선 많은 노예들이 해방되어 해방군에 편입되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노예 중에서는 검투사뿐만 아니라 양치기를 하는 노예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평소 목동 생활에 익숙해 기병으로 활용되었죠.

 

다윗이 골리앗과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장면에서는

많은 매체에서 자그마한 허약한 이미지의 다윗이 자주 나오는 편이지만

실은 건장하고 잘 단련된, 신라의 화랑 같은 미소년의 이미지를 청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1대 왕이 된 사울은 여섯 차례의 규모가 큰 전투에 임하게 되는데

처음 네 번의 전투에서는 모두 승리를 거두는데요.

하지만 네 번째 전투에서 신에게 버림받는 경고를 받은 후에는

다섯 번째 전투인 엘라 전투부터는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으로 인해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요즘 단위로 환산하면 키가 3m에 달하는 거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 정도 컸을지는 모르겠네요.

참고로 현재 최장신 기네스북 보유자는 터키 출신의 술탄 쾨센으로 251cm입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은 거대한 덩치와 강력한 힘으로 이스라엘군을 압도했고

멀리서 그가 보이기만 해도 사울의 군대는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유다 지파의 베를레헴 출신의 이새의 여덟 명의 아들 중 막내아들로

이새의 큰 세 아들은 사울의 부대에서 전투에 참여했으며

다윗은 형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오갔습니다.

 

싸움터에서는 블레셋 진영에서 골리앗이라는 투사가 있었는데

그는 키가 보통 사람의 2배에 가까웠으며

청동 투구와 비늘 갑옷으로 무장을 하고서는

일반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무게의 창을 들고 있었죠.

 

골리앗은 이스라엘군이 겁에 질리게 했고

그들의 자존심마저 꺾어버리고자 일대일 제안을 하게 됩니다.

나랑 일대일로 싸울 사람이 없냐며 조롱하고 시비를 거는데도

이스라엘 전장에서는 공포에 질려 아무도 나서질 못 했죠.

 

이때 형들에게 빵과 볶은 밀을 갖다준 다윗이

골리앗의 말을 듣고 자신이 나서겠다고 지원하는데

사울은 다윗에게 갑옷과 투구, 칼을 건네줍니다.

다윗은 갑옷은 오히려 몸을 무겁게 하기 때문에 모두 거절하겠다고 하고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메고 있던 양치기 가방주머니에 챙겨넣었습니다.

 

골리앗은 고작 막대기와 돌멩이만 챙겨 나온 다윗에게

자신을 개 취급하냐고 성화를 내면서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죠.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투석구를 이용해 돌팔매를 하여

골리앗 투구의 미간 사이의 빈틈을 정확하게 맞춰

FPS 게임에서 표현하는 헤드샷으로 골리앗을 즉사시켜버립니다.

그리고는 달려가서 골리앗을 밟고 서서는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내어 골리앗의 목을 잘라버리죠.

 

다윗이 이용한 투석기는

긴 줄을 중앙에 천이나 가죽으로 바구니 모양을 만들어서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원거리 무기인데요.

중앙의 천에 돌멩이를 넣고 휘두르다 놓으면 탄환이 빠르게 날아가서

고대 사회에서는 활이나 칼처럼 살상이 가능했던 무기로 사용된 도구였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일대일 대결로 인해 블레셋인들은 도망가고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이 일화는 서양 미술에서 즐겨 다루는 일화중 하나이며

성서에서 다윗은 믿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

이 일화는 그리스도와 예루살렘 입성을 예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죠.

 

르네상스 시대 유명한 미술가인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는

각각 15, 16, 17세기의 다윗상을 조각하는데

이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미술 양식의 변화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도나텔로의 다윗은

자신이 내리친 골리앗의 머리를 내려다보며

적의 장수였지만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고

미켈란젤로의 다윗은

골리앗과의 거리를 가늠하는 장면

베르니니가 제작한 다윗은

바로크 시대의 역동성을 나타내고 있죠.

 

또한 다윗에 얽힌 에피소드로는

1985년에 제작된 '다윗 대왕'이라는 영화에서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으며 그 해 골든라즈베리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골든라즈베리상은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수여하는 상인데

영화매니아들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최악의 연기를 하는 사람을 뽑는 상이죠.

리처드 기억의 다윗 대왕은 그리 연기력이 좋지는 못 했나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제압하고 기세는 이스라엘군으로 돌아서게 되고

결국 엘라 전투는 이스라엘군이 승리를 가져가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슈퍼스타로 떠오르게 되고

신분이 바로 격상하여 사울을 가까이서 모시게 되었죠.

 

사울 왕은 영웅 다윗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개선하였고

개선 행진을 구경하던 이스라엘 여자들이 모여서는 축하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에서

사울이 가진 다윗에 대한 마음은 친절이 아닌 질투로 바뀌게 되죠.

"사울 왕이 죽인 자는 1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1만이라."

 

 

 

다윗은 이스라엘 장군으로서 공을 세워나갔고

그의 인기는 사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치솟아 올랐습니다.

사울은 전성기만큼의 전투력을 보이지 못하는 늙어가는 몸인데 비해

젊은 피 다윗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고

지난 영상에서 말씀드렸던 사무엘의 예언대로

자신이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상태라는 사실은 더욱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죠.

 

이에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로 마음 먹고

악신을 달래기 위해 연주하는 다윗에게

창을 던져 죽이려 했으나 실패를 하게 됩니다.

 

이 와중에 사울의 딸 미갈이 꽃미남 다윗에게 반해버리게 되죠.

사울은 이 상황을 이용하여

다윗에게 사위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소수의 병력만 붙여줄테니 그간 우리 군사들이 돌아오지 못한 위험 지역에 가서

블레셋인들을 100명 죽이고서는

그들과 관련된 증거물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이에 다윗은 미갈을 얻기 위해 사울의 미션을 받들고서는

블레셋인 200명을 죽인 증거물을 가져와서 사위가 되어버리죠.

 

딸을 이용해 다윗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울은

이번엔 전투에 능한 아들, 요나단에게 다윗의 살해를 지시합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그동안 다윗과 절친이 된 사이였죠.

 

다윗이 궁전에 들어가서 친구도 빨리 사귀고 결혼도 하고, 인간관계 처세술이 대단했나봅니다.

요나단은 되려 다윗에게 아버지의 음모를 누설하고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그후로도 여러차례 다윗을 향한 암살 시도가 이어지고

다윗은 계속해서 위기를 모면하다

결국 적국 블레셋으로 망명하기로 결심합니다.

 

다윗은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 몸을 의탁하는데

인간관계 베테랑이었던 다윗은 또 아기스랑 절친이 되어버리죠.

하지만 블레셋과 이스라엘은 적개심이 강한 적대국이었고

또다시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과 함께 싸우길 원했으나

다른 블레셋인들은 다윗의 배신을 걱정해 전장에 나가지 못 하게 되죠.

 

 

이번 전투는 사울이 마지막 전장으로 길보아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는 이스라엘의 패배로 끝나게 되는데

여기서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이 전사하게 되고

사울 왕은 길보아 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죠.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던 다윗은 그 길로 블레셋을 빠져나와 시글락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글락에 도착해보니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으며

남아있는 이스라엘인들의 가족들도 납치된 자들이 많았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다윗은 유다 백성들을 도와 사람들을 구출하게 되었고

이때 챙긴 전리품을 나눠주면서 유다인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서는

유다 지파의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장에서 패하여 아들들과 함께 전사했다는 소식이 퍼지며

그와 동시에 다윗의 복귀도 이루어져

이스라엘인들은 점점 다윗의 명성에 이끌리게 되었죠.

 

정식으로는 사울의 마지막 남은 아들인 이스보셋이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유다 지파의 인구가 많았고 이에 이스라엘 내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결국 세력이 약했던 이스보셋의 측근은 불안감에 휩싸여 이스보셋을 암살하게 되고

다윗은 통합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됩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표적이 되어 평생을 도망쳤으나

그 자녀들과는 사이가 돈독했는데

장남인 요나단은 전장에서 전사하였고

딸인 미갈과는 결혼까지 했었죠.

 

그리고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라고 할 때마다

미갈이 정보를 미리 알려주며 다윗의 목숨을 지켜주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블레셋으로 도망칠 때는 혼자서 도망쳤으며

10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하면서 둘의 사이는 멀어졌습니다.

 

그 사이 다윗은 두 명의 아내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다윗의 소식을 전혀 알 길이 없었던 미갈 또한

아버지의 명령으로 다른 남편을 받아들이게 되었죠.

 

이스라엘 왕이 된 다윗은 첫째 부인이었던 미갈을 다시 궁으로 불러들였고

미갈의 현재 남편은 울면서 따라왔지만

다윗의 신하가 더이상 못 가게 막아 혼자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미갈은 궁으로 돌아왔지만, 10년 간 헤어졌던 세월은 다시 불타오르는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다른 왕비와 후궁들 사이에 존재감 없이 궁 생활을 하며

다윗과는 평생동안 동침을 하지 않게 되죠.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여부스인 영토였던 예루살렘을 정복하고는

다윗성을 쌓아 올리고

떠돌아다니던 성궤를 옮겨와서 정치 종교적인 수도를 정하게됩니다.

또한 강력한 군사력으로 블레셋을 포함해 주변 민족들을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게 되면서

이스라엘을 강국으로 만들게 되죠.

 

그렇게 다윗의 통치는 평화를 유지하는 듯했으나

다윗의 통치에도 어둠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다윗의 일대기에 관한 전개를 해보았는데요.

 

양치기 소년으로 출발한 다윗은 엘라 전투의 활약으로

이스라엘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사울 왕의 질투는 그의 목숨을 계속해서 위협하였고

잠시 블레셋으로 망명하여 살고 있었지만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 유다 지파의 지지를 얻어

이스라엘의 2대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