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나탐 Natam] 살이 찌는 진짜 이유 | 이걸 모르면 빠진 살 도로 찝니다 | 다이어트 비법 | 연인, 가족의 뱃살이 보기 싫다면

Buddhastudy 2024. 4. 15. 18:26

 

 

남성은 임신이 가능한 젊고 건강한 즉 날씬한 여성을 선호하고,

여성은 자신과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성을 선호하게 됩니다.

 

여성성을 거부한 여성은

남자로부터 거부당한다고 느껴야 하도록

자신은 젊지 않고 날씬하지 않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거울을 통해서 주름과 뱃살만 가진 나를 보게 되는 것이죠.

수치스러우니까 또 먹고

또 먹으니까 더 수치스러워지고.

 

--

살 빼야 해 살찌면 안 돼라는 고민은 다들 해보셨을 겁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건강과 미를 추구하기에

체중 관리를 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살 빼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

건강하고 날씬한 날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살 빼야지라는 생각에 운동도 하고 식단도 하는데

거울을 볼 때마다

나는 언제나 못나 보이고, 살쪄 보이기만 한다면

이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요.

 

과체중이어서 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몸이 건강하고 날씬한 편인데도

여전히 살이 찌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상한 점은

여러분이 몸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한들

결국 같은 생각을 출력하게 된다는 거예요.

살이 찌든 빠지든, 운동을 하든 안 하든, 폭식을 하든 소식을 하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든, 안 좋은 음식을 먹든

결론은 원점으로 돌아와서

, 살찌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출력합니다.

 

20, 30, 40, 50, 60대가 되도록 평생을 걸쳐서

살 빼야 돼, 살찌면 안 돼라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에는 언제나 한결같이 여전히 부족하고

못난 살찐 나만이 나타납니다.

 

매일 거울을 보면서 옷을 입으면서

, 이놈의 뱃살

밥을 먹으면서 먹으면 안 되는데 살찌는데

사람들을 만나거나 어떤 일이나 활동을 하면서 또는 쉴 때조차도

살 빼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출력합니다.

마치 매일 자동으로 울리는 알람을 설정해 놓은 것 같죠.

 

이는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걱정으로도 이어집니다.

남편을 보면서 아 저 뚱뚱배를 어떡하나? 운동 좀 해

아이에게 그만 먹어, 살쪄

강아지를 보면서 강아지 살찌는데, 산책시켜야 되는데라는 고민을

남들에게도 투사하여 반복합니다.

 

살을 빼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적으로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요.

살 빼라는 알람이 평생 동안 시도 때도 없이 계속 울리는데

대체 이 알람이 왜 어디로 부터 울리는 것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제가 이번 영상에서 말하는 살이 찐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몸무게가 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요.

자신의 몸무게가 50kg100kg, 뱃살이 있든 없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못나고 살찐 나로만 인식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물론 살찐 자아가 나타나는 바탕에는

운동 부족, 칼로리 과다 섭취, 노화, 유전적인 요인 등 표면적인 원인이 있죠.

하지만 이 표면적인 원인을 발생시키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몸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한들

자신을 살쪘다고만 인식하게 하고

현실에 살찐 나(자아)’를 나타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평생 계속되는, 살과의 전쟁에서 벗어나서

그 자체로 아름답고 건강한 몸을 갖게 되는 비결은

살찐 자아가 나타나는 바탕에

어떤 마음이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살찐 자아가 나타나는 원인은

개인마다 다르고 복합적이지만

그중에서 일반적인 원인 5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

살을 빼려는 이유를 알지 못하면 살이 찝니다.

 

평생에 걸쳐서 살 쪘다 살 빼라라는 알람이 울리는 이유 중에 하나는

살이 쪘다는 이유로 마냥 살을 빼려고만 하지

결국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을 빼려는 것이고

무엇이 두렵기에 살이 찌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살찐 자아를 마주하게 됩니다.

현실에 살찐 자아를 등장시킴으로써

내 마음이 뭘 원하고, 뭘 두려워하는 것인지를 보게끔 만드는 것이죠.

 

살을 빼려는 사람은 살을 빼는 것 그 자체를 원하는 듯 하지만

더 깊은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살을 뺌으로써 어떤 특정 체험을 하길 원하고

살이 찜으로써 어떤 특정 체험을 하게 될 것을 두려워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요.

 

1)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첫 번째로는 내가 목표로 하는 몸, 가장 이상적인 몸을 갖게 된다면

예를 들어서

날씬해지거나 근육질의 몸을 갖게 된다면

결국 무엇을 체험하고 싶은지를 떠올려 봅니다.

 

2)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두 번째로 원하지 않는 몸을 갖게 된다면

예를 들어서 뱃살이 잔뜩 나오거나 근육이 다 빠진다면

결국 무엇을 체험하게 될 것이 두려운지를 떠올려 봅니다.

만약 날씬해지면 그 옷을 입을 수 있을 거고

바디 프로필도 찍을 수 있을 거야라고 떠오른다면

여기서 그칠 게 아니라

그래서 그 옷도 입고 바프도 찍는다면

결국 무엇을 경험하고 싶은 것인지까지 보는 거예요.

 

반대로 살이 찌면

자신감도 없어질 거고, 건강도 안 좋아질 거야라고 떠오른다면,

그래서 자신감도 없어지고 건강도 안 좋아진다면

결국 무엇을 경험하게 될 것이 두려운지를 떠올려 봅니다.

 

 

--2.

사랑받고 싶은 감정을 억누르면 살이 찝니다.

 

여러분이 살을 빼야 하는 이유로 무엇을 떠올리든

결론은 사랑받고 싶고

버림받는 것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살 빼면 예쁜 옷을 입을 수 있을 테니까 이성에게 관심 받겠지.

살 빼면 자신감이 생길 테니까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겠지.

결국 사랑받고 싶다는 말이죠.

 

반대로 살찌면 자신감이 없어질 테니까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인정을 못 받겠지.

살찌면 남친이 날 떠나고 다른 여자한테 가버리겠지.

살찌면 건강이 안 좋아질 테니까

사람들로부터 짐짝 취급을 받고 외면당하겠지.

 

결국 버림받는 게 두렵다는 말이죠.

살쪘어무의식의 언어로 지역하면

사랑받지 못해

살 빼야 돼직역하면

사랑받고 싶어

살찌면 안 돼직역하면

버림받는 것이 두려워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이놈의 뱃살직역하면

사랑받고 싶어

이렇게 있으면 안 되는데, 내일은 꼭 운동해야지직역하면

사랑받고 싶어

아이스크림 먹으면 안 되는데직역하면

아 나 버림받으면 안 되는데

나는 제로 슈가만 먹어직역하면

나는 사랑받아야만 해라는 말이죠.

 

무의식에 사랑받지 못하는 나와 관련한

분노, 슬픔, 외로움, 수치심, 죄책감 등의 감정이 억눌려 있으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서

표면 의식에는 살쪘다 살 빼야 한다는 알람이 끊임없이 울리게 됩니다.

 

무의식에 이런 감정이 딱히 억눌려 있지 않거나

감정을 그때그때 해소해 내는 사람은

평소에 우리가 숨을 쉴 때 별 생각이 없이 숨을 쉬듯이

거울을 볼 때, 누워 있을 때, 아이스크림 먹을 때 별 생각이 없어요.

그냥 편안하게 거울을 보고, 편안하게 누워 있고, 편안하게 디저트를 먹는 거지

살찌면 안 되는데하면서

나를 엄격하게 검열하고 제재하는 알람이 딱히 올리지 않습니다.

 

살찐 자아로 살아가면 내가 나 자신을 향해서

이놈의 뱃살 진짜 밉다라고 못났다고 수치 주고요.

상대방도 역시 나를 향해서

너 왜 이렇게 살쪘어? 살 좀 빼라고 못났다고 수치 줍니다.

 

이때 올라오는 수치심을 그대로 마주하고

나도 상대방을 향해서

너나 살 좀 빼라고 수치를 주고 싶은 마음을 인정하고 느껴주는 경우에

살찐 자아가 무의식에서 풀려나면서

건강하고 날씬한 나로 인식을 하게 됩니다.

 

<살이 빠지지는 않고 찌기만 하는 이유>

하지만 이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고통스러우니까

감정으로부터 나를 방어하고자

배가 부른데도 필요 이상으로 계속 먹게 되는 경우가 있죠.

수치스러운데 수치심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아프니까

이 아픔을 느끼지 않고 차단하고자

폭식, 폭음, 야식, 단거, 군것질 같은 거로 감정을 눌러버려요.

먹으면 잠시나마 아픔을 느끼지 않고 넘어갈 수 있거든요.

이렇게 수치심을 억눌러버리면

현실에는 더 큰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살이 더 찐 모습의 내가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더 수치스러워서

또 수치심을 차단하고자 더 먹게 되고

그래서 더 살이 찌고,

수치스러우니까 또 먹고

또 먹으니까 더 수치스러워지고,

또 수치스러우니까 더 먹고

그래서 더 살이 찌고

이런 식으로 살이 빠지지는 않고

자꾸만 찌는 굴레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생각만

먹으면 안 되는데 살찌는데라고 하면서

자꾸 뭔가를 필요 이상으로 먹게 된다면

이는 감정이 쌓일 대로 쌓여서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신호입니다.

 

마음을 들여다봐야겠죠.

내 마음이 어떠한지는 보지 않은 채

다이어트 그 자체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수박 겉핥기를 하는 겁니다.

 

수박 겉핥기를 하면

현실에는 사랑을 받고만 싶도록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껴야 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화가 나고 수치스럽고

그로 인해서 나도 상대방을 사랑해주지 못해서 죄스럽고 수치스럽도록

현실에는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여전히 수치스러운 내가 등장하게 됩니다.

 

살찐 자아는 상대방들에게도 투사되요.

내 뱃살도 거슬리는데, 남편이나 아이 뱃살도 계속 거슬리고

길을 가는데 유독 살찐 사람들만 보이게 되는 거죠.

 

 

--3.

이성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거부하면 살이 찝니다.

 

이성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나의 여성성 또는 남성성이 반대 성별인 이성으로부터

받아들여지길 원하는 마음입니다.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남자와 여자같이 나뉘어 있는 것이

서로를 다르다고 거부하고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수용하고 화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우리 무의식에는 같은 성별에게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동성 친구와는

, 내일 일 끝나고 만나자라고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고

이성 친구와는 만나자고 할까 말까? 그냥 말아야겠다라고 마음을 숨기고 억누르듯이

같은 성별에게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인정하는 편이지만,

반대 성별에게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성에게 사랑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이런 욕구가 없었다면

인류의 번식이 일어날 수가 없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인간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겠죠.

 

즉 이성에게 관심받고 싶고

이성과 함께하고 싶고

이성의 성을 갖고 싶은 마음,

즉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그때그때 인정하고 표현하고

그에 따른 감정을 수용하는 경우

나의 성이 이성으로부터 다르다고 거부당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이성에게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을 때

이를 솔직히 인정하는 경우

내 아바타는 이성에게 관심을 받고자 하는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남편 앞에서 예쁜 옷을 입고 한껏 꾸미고서

나랑 데이트 나갈래?’ 라고 하게 되는 거죠.

 

이때 관심 받는 체험을 하라고

상대적으로 현실에는 관심받지 못하는 체험이 나타납니다.

남편이 옷을 뭐 그런 걸 입었어, 뭔 데이트야하면서

시큰둥해하며 나를 거부하게 되죠.

이때 느껴지는 거부당한 분노나 수치를 그대로 마주해서

감정을 풀어주는 경우에

현실에는 관심받는다고 느끼는 체험이 일어납니다.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남편이 알아서

나한테 먼저 예쁘다고 해주고 데이트 나가자고 해주게 되는 거죠.

즉 이성으로부터 버림받는 수치를 그대로 수용하게 되면

이성에게 거부당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여지는 체험이 일어납니다.

 

이런 체험은 다양한 상황으로 나타나는데,

그중에 하나로 내 아바타의 외모가

이성이 나한테 관심을 가져주고, 환영해 주고, 받아준다고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쉽게 말해서

연인과의 다툼이나 이별 또는

연인 관계를 대변하는 부모, 자식 간에 갈등을 겪고 난 후에 느껴지는

버리고 버림받는 아픔을 온전히 수용하게 되면

내 아바타가 알아서

살을 빼든 운동을 하든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되면서

내 자신이 느끼기에 또한 상대방이 느끼기에

충분히 건강하다고 인식되는 외모를 갖게 됩니다.

 

그럼 반대로 이성으로부터 버림받는 수치를 억누르면 어떻게 될까요?

이성이 나를 거부한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그중에 하나로 이성이 나의 외모 때문에 나를 거부한다고 느끼게 되기도 해요.

내가 살이 쪄서, 못생겨서, 나이가 들어서, 배가 나와서, 키가 작아서

상대방이 나를 거부하나?’라고 느껴야 하도록

내 아바타의 외모가 못마땅하게 나타납니다.

 

우리 모두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둘 다 가지고 있어요.

여성 안에도 남성성이 있고

남성 안에도 여성성이 있습니다.

내 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인정하면

존재로서 빛이 나지만,

둘 중에 한쪽의 성만 인정하고 한쪽의 성은 거부하게 되면

내가 거부한 나의 성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거부하게 됩니다.

 

특히 여성이 자신의 남성성만 인정하고 여성성은 거부하거나

남성이 자신의 여성성만 인정하고 남성성을 거부하게 되면

내가 나의 성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만큼

상대의 성별이 나의 성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이 자신의 남성성을 거부하는 것보다는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거부하는 것이 특징적인데요.

 

일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외모에 더 신경을 쓰고 살이 찌는 것을 걱정하는 편이죠.

여성분들의 무의식을 중심으로 설명을 드릴게요.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거부하면

현실에 살찐 자아가 나타납니다.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거부하게 된 대표적인 이유는

조상 대대로 이어져서 거의 90년대까지 지속되어 왔던

남존여비 사상이 바탕이 되고요.

이는 현재 서로의 성을 혐오하는 현상, 저출산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남자아이를 원하는 집안에 여자아이가 태어났거나

여자아이를 원하는 집안에 남자아이가 태어난 경우

부모는 아이의 성별을 거부하게 되고

아이는 자신의 성별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체험이 직접적으로 없었더라도

여러분의 부모님이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성별을 거부당했다면

여러분도 같은 무의식을 물려받게 됩니다.

 

이런 경우 나의 성을 드러내서 이성에게 관심받고자 하면

나의 부모가 나를 거부하였듯이

이성도 나를 거부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성에게 관심받고 싶거나

성적 욕구가 올라올 때 거부당하는 수치를 마주하지 않고자

겉으로는 관심받고 싶어 하거나

성욕을 드러내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나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이성에게 관심받고 싶은 티를 내지를 않는 거예요.

 

나랑 데이트할래, 라면 먹고 갈래?’ 이런 말을 수치스러워하는 거죠.

남성이 좋아할 만한

여성스러움, 부드러움, 섹시함 같은 느낌과는 반대되는 느낌이 되도록

여성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옷이나 외모는 피하고

남자처럼 꾸미고, 남자처럼 사고와 행동을 하고

남성이 주로 종사하는 직업을 선호하는 등

자신의 여성성은 열등하게 여겨서 숨기고

자신의 남성성만을 인정하고 추구하게 됩니다.

 

여성성을 거부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여성성을 버려버린 여성은

여성성을 똑같이 열등하게 취급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남자와 연결되어서

서로를 미워하게 됩니다.

내가 나의 여성성을 거부하는 만큼

세상도 나의 여성성을 거부하게 됩니다.

 

남자가 나를 여자라고

예뻐해 주고, 아껴주고, 존중해 주고, 배려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날 여자라고

무시하고, 함부로 하고, 열등하게 보고, 무가치하게 본다고 느껴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경험을 구성하는 것 중의 하나로

살찐 모습의 뇌가 나타납니다.

 

인간은 후손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펼쳐나가고자 하는 번식 욕구가 있습니다.

번식을 위해서는 본능적으로

남성은 임신이 가능한 젊고 건강한, 즉 날씬한 여성을 선호하고

여성은 자신과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켜줄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성을 선호하게 됩니다.

 

여성성을 거부한 여성은

남자로부터 거부당한다고 느껴야 하도록

자신은 젊지 않고 건강하지 않다, 즉 날씬하지 않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내가 나이 먹고 살이 쪄서

이성이 나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나를 멀리하고 거부한다고 느끼게 되는 겁니다.

 

살이 쪄서 연애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살이 쪄서 남편이 다른 젊은 날씬한 여자를 찾아서 나를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달고 살아야 하도록

평생을 다이어트를 하고 젊어지려고 노력해도

거울 앞에는 여전히 살찌고 늙어 보이는 내가 나타나게 됩니다.

거울을 통해서 충분히 아름답고 괜찮은 나를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름과 뱃살만 가진 나를 보게 되는 것이죠.

 

여성성을 심하게 거부당한 여성은

겉으로 남성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여성으로서 남성의 성을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서

성욕을 억누르게 됩니다.

성욕에 억눌리면 상대의 성을 빼앗아 내고 싶도록

성을 가질 수 없고

성을 빼앗기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남녀가 성 에너지를 주고받아서 서로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녀가 서로 성 에너지를 주고받지 못하고

서로의 성을 빼앗고 빼앗겨서

성적으로 수치스러워지고 죄스러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성생활이 즐거울 수가 없는 거죠.

 

무의식은 상대방에게 투사되고 후손에게 대물림됩니다.

여성성을 거부당한 여성의 남편, 아들, 딸은

살찌고 무능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성적으로 수치스럽고 죄스러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4.

무능한 나를 거부하면 살이 찝니다.

 

살이 찌는 두려움은

살이 찜으로써 몸에 병이 생기거나 건강을 잃게 되는

두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여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뜻하는 바를 펼쳐나가고

자아실현을 하게 되는 것과는 반대의 체험인

건강을 잃고,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되고, 뜻하는 바를 펼치지 못하고

사람들과 사회에 도움이 안 되고, 쓸모없는 짐이 되어서 민폐가 되어서

수치당하고 버림받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런 두려움을 갖게 되는 원인 중에 하나는

아들을 원했던 집안에 여자아이가 태어나거나

계획에 없던 아이가 생기거나

안 그래도 애들이 많은데 또 애가 생기거나 한 경우에

부모는 아이를 불필요하다, 쓸모없다, 짐이다,

도움이 안 된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이렇게 인식된 아이의 현실에는

난 도움이 안 돼, 난 짐이야, 난 민폐만 끼쳐

난 열등해, 난 쓸모없어, 난 가치 없어라고 느껴야 하는 일이 현실로 나타나요.

 

무기력해지거나, 하는 일이 안 되거나, 돈을 잃게 되거나

병이나 사고가 나는 여러 가지 상황이 나타나는데

그중에 하나로 살찐 모습의 내가 등장합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마주하게 될 때

내가 못나고, 열등하고, 못하고, 자신 없고, 못 해낼 것 같고

그래서 버림받을 것 같은 수치를 인정하고

 

또한 상대방의 무능함을 마주하게 될 때

밀어내고 싶고, 수치 주고 싶은 분노와 죄책감 등을 인정하고 풀어주는 경우에는

현실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뜻하는 바를 잘 펼쳐나갈 수 있도록

내 아바타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 나가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아바타가 군것질을 덜 당겨 하거나, 운동을 재미있어 하는 등

알아서 건강 관리를 해나가는 거예요

몸이나 마음이 아플 때는 푹 쉬거나 치료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등

병을 금방 이겨내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무능한 나로서의 감정은 보지 않은 채로

쉬지도 않고, 더 열심히 잘하려고만 하고

상대방을 무능하다고 거부하기만 할 뿐

그에 따른 자신의 마음은 보지 않는 경우에

현실에는 무능한 내가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현실에는 자꾸 먹기만 하고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나타나거나

툭하면 아픈 내가 나타나거나

운동과 식단을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과하게 건강식이나 영양제를 찾는 등

건강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내가 나타납니다.

 

또한 억눌린 마음은 상대방에게 투사되죠.

우리 남편이, 우리 아내가, 우리 아이가, 우리 강아지가

건강을 잃고 무능해져서

내가 상대방을 버리거나 상대방이 나를 떠나서

결국 나 혼자 남게 되면 어떡하나하는 두려움을 봐야 하도록

내 주변 사람이

건강 관리를 안 하고 살이 쪄가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5.

가해자 감정에 억눌리면 살이 찝니다.

 

가해자 감정은

상대를 거부하고, 무시하고, 싫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고, 공격하고, 수치 주고 상처 주고, 버리고 싶은 마음 등등입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듯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곧 가해를 하고 싶은 마음과 이어져요.

사랑받고 싶음은 사랑받지 못했음이고,

사랑받지 못했음은 나도 사랑을 줄 수 없음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해 줄 수 없는 마음은

곧 나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없는 마음이기도 해요.

상대방은 곧 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체험하고자

인간의 삶을 통해서

사랑을 주지 못하고 받지 못하는 체험을 하도록 설정하였습니다.

상대방을 미워하고, 밀어내고, 수치 주고 싶고, 버리고 싶은

가해자 감정을 잘못했다고 보고 이를 억누르는 경우,

이 감정은 결국 밖으로 나가지 못해

내 안으로 들어와 나 자신을 가해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나 자신을 증오하고, 공격하고, 수치를 주게 되는 거야.

안 돼 먹지 마, 살쪄 더 살 빼, 더 열심히 해. 더 달려. 다 네 탓이야.

넌 못났어. 넌 열등해라고

자꾸 자기 자신을 수치 줘야 하도록

내 아바타의 외모는 수치스럽게 나타납니다.

 

너 그러다 살 쪄, 살 빼라고

평생을 쫓아다니며 끊임없이 울려대는 그 알람 소리는

나 자신을 괴롭히고 공격하는 가해자 마음입니다.

 

<가해자 감정에 억눌리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한 가지는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싶고, 수치를 주고 싶고, 밀어내고 싶을 때

이를 억누르고 티 내지 않고

자신은 선한 사람인 척 참고 넘어가는 경우,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는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수치를 주고, 상대방을 밀어낸다 하더라도

내가 왜 그랬지? 다음부턴 그러지 말자라는 식으로

그러한 모습을 보인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자책만 하는 경우,

가해자 감정은 억눌립니다.

 

예를 들어서

무의식에는 엄마가 나를 받아주지 않았던 만큼

나도 엄마를 받아주기 싫은 마음이 있는데

겉으로는 엄마를 계속 받아주는 척하면서 착한 자식 코스프레를 하거나

엄마를 밀어낸다고 해도 그렇게 한 나 자신을 자책하는 경우

가해자 감정은 해소되지 못하고 결국 나 자신을 공격하게 됩니다.

 

가해자 감정이 오랜 시간 억눌리는 경우는

내 자신이 잘못되도록, 내 자신을 버려버려야 하도록

내 아바타에게 면역체계 이상, , 사고, 자해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데,

그중에 하나로 살찐 모습의 내가 나타납니다.

 

나 자신을 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내 몸을 살찌게 하여서

이성에게 관심받지 못하게 하거나 병을 갖게 하거나 무능해지게 만들어서

결국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도록 만드는 것이죠.

 

무의식은 상대방에게 투사되기에

가해자 감정을 억누른 사람의 배우자와 자식은

살이 찌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상대방이나 나 자신을 미워하고, 거부하고, 해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

이를 인정하고 풀어주면

해를 주는 것과는 상대적인 체험인

사랑을 주는 체험이 일어납니다.

 

미움이 풀려나면

나 자신이나 타인을 미워하거나 수치 주지 않아도 되도록

나 자신과 타인은 모두 그 자체로

괜찮고, 충분하고, 완전한 존재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에 따라 내 아바타의 외모 역시도

그 자체로 괜찮고, 충분하고, 완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그런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뭘까요?

살찌고 못나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나입니다.

살찌고 못난 나로서의 경험은

여러분은 본래 그 자체로 아름답고, 충분하고, 완전하고

사랑으로 충만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나타나게 됩니다.

 

시청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