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신박한깨달음] 우주의 모든 것은 의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무한한 능력과 힘이 우리 안에 있다|의식혁명

Buddhastudy 2024. 4. 22. 20:16

 

 

종교나 영성 단체에서는

자비와 사랑, 감사와 용서에 힘쓸 것을 말하고 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국제적으로 유명한 영적 스승인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이라는 책에서는

우리가 왜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의식지도를 통해 밝혀놓고 있다.

 

아울러 우리가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참나로 갈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존재에 대한 강력한 체험을 하고,

38살이 되었을 때 치명적인 질환에 걸려

죽음의 직전에서 다시 한 번 무한한 현존을 체험하게 된다.

 

그 후 7년간 명상과 연구를 하면서

모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게 되고

근육 테스트를 통해 의식지도를 완성하게 된다.

 

의식지도는 힘과 위력으로 되어 있는데

힘과 위력은 진실과 거짓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으며

힘을 따르게 되면 근육이 강해지고

위력을 따르게 되면 근육이 약해진다고 한다.

 

오늘은 현 인류 의식의 상태와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대해 밝혀주고 있는 책

<의식혁명>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의식의 새로운 패러다임

우리의 의식은 원래 순수의식인데

대부분 사람은 그것을 잃어버렸고, 찾으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낮은 에고상태와 동일시하면서

의식에 낮은 수준에 가둬놓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대다수는

진화의 척도 아래쪽에 있으며

자신의 실제적 무력함을 보상하기 위해

여전히 위력에 의존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의식 레벨을 수치화시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의식 수준의 모든 영역을

1부터 천까지의 대수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발견을 확증하게 해준 수백만 번의 실험을 통해

인간사에 작용하는 힘의 다양한 측면을 실감하게 되었고

똑같은 힘이라도

눈에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확연히 다르며

또 그들 힘의 질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측정치는 첨단 이론물리학이나

혼돈이론의 비선형 동역학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검증되었다.

수치화된 각 레벨은

의식 자체의 영토 내에 존재하는

강력한 끌개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끌개란

표면상으로 무의미한 데이터의 무더기에서 출연한

어떤 감별 가능한 패턴을 의미한다.

 

이 끌개장이야말로

인간 존재를 지배하고

인간 행동의 광범위한 패턴들을 나타내는

조직화된 에너지로서의 구실을 한다.

 

세계 인구의 에너지 수준 분포를 설명하자면

지금 인류의 85%는 임계 수준 200이하로 측정된다고 한다.

전체로서 인류의 의식 수준은

여러 세기 동안 위태로운 190에 머물렀지만

1980년대 중반

그것은 갑자기 희망적 수준인 2007로 뛰어올랐다고 한다.

200이하의 모든 수준은 개인과 사회 전반에 걸쳐

생명에 파괴적이고

200이상의 모든 수준은 힘의 건설적 표현들이다.

 

만일 사람이 진실로 200이하 끌개장에

에고 중심적 끌어당김을 피하면서

생명의 우호적인, 성실한, 친절한, 용서하는 접근 방식을

의식적으로 선택하게 되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저자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의 기본 가르침은

기쁘고 평화로운 충족 상태가

정말로 사람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래야 만인에게 연민을 품을 수 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이 우주에는 끌개장이 있다.

힘의 끌개장, 위력의 끌개장이 있는데

우리가 힘의 끌개장을 선택할 때 우리의 의식은 상승한다는 것이다.

 

강한 패턴은 건강과 결합되어 있고

약한 패턴은 병, 질환, 죽음과 결합되어 있다.

 

마음속에 용서를 품고 있으면

힘의 끌개장과 연결되어 강해질 것이고

복수심을 품고 있으면

위력에 연결되어 약해진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 전체에서 모든 위대한 스승들은

어떤 언어로든, 어느 시대든

한 가지를 반복해서 가르쳤다.

그것은 강한 끌개장을 위해

약한 끌개장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실험을 통해 발견한

끌개 힘 장들 가운데 가장 높은 측정치는 한결같이

역사 속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고등 이론물리학의 원리와 끌개 연구 결과를 참고해서 말하면

우주에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대신 이루어 준다.

 

창조성과 천재는

높은 에너지 끌개장이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 의식의 모든 발전은

낮은 끌개 패턴에서 그 상위 고조파로의 도약을 통해 일어난다.

 

만인이 각자 자신의 내부에

의식이라는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천재 역시 모든 인간 속에 거하는 잠재력과 같다.

천재는 우리 사회 최대의 미개발 자원 중 하나이다.

 

 

--수치심(에너지 수준 20)

수치심의 수준은

위험할 정도로 죽음과 가장 가까운 상태로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지만,

자살할 수도 없으니

마지못해 살아간다는 식의 자세이다.

 

이 수준의 공통점은

죽음이라는 것을 피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체면을 잃었을 때의 아픔이나 모욕을 당하거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을 때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무기력(에너지 수준 50)

이 수준은 빈곤, 절망, 자포자기로 특징지어진다.

현재와 미래가 황폐해 보이고 비애가 인생의 주제로 보인다.

이 단계는 아무 희망이 없는 상태로서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그 도움조차도 그들에게는 쓸모없게 느껴질 뿐이다.

 

보살펴 주는 사람에 의해

외부의 에너지가 조달되지 않는 한

무기력에 의한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두려움((에너지 수준 100)

100의 수준에는 좀 더 활발한 에너지가 보인다.

위험에 대한 두려움은 건강한 반응이다.

세상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고

그런 두려움이 인간을 활동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적에 대한 두려움

늙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거절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회적인 다수의 두려움은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동기가 된다.

 

 

--분노((에너지 수준 150)

분노는 살인이나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에너지 수준 자체는

죽음의 주위에서 맴도는 단계에서 훨씬 벗어난 상태이다.

 

분노는 파괴적일 수도 있고 건설적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무기력이나 슬픔에서 벗어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상태에 이르면

이제 그들은 무엇인가를 원하기 시작한다.

 

욕망은 좌절감을 초래하고, 좌절감은 분노를 가져온다.

그런 이유로 분노는

억압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용기(에너지 수준 200)

200의 수준에서는

내면의 참된 잠재력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에너지 수준 200 이하인 피험자들 모두가 약한 반응을 보인다.

생명력을 증진시키는 200이상의 수준에서는

모두가 강한 반응을 보여준다.

 

200이야말로 인생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구분하여 주는

분기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한다.

우리는 이 수준에서 비로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갖기 시작하며

이 단계야말로 탐구, 성취, 인내, 결단의 영역이다.

 

이보다 낮은 수준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희망이 없고, 슬프고, 무섭고, 좌절감으로 가득 차 보인다.

 

하지만 용기의 수준에 이르면

인생이 흥미롭고, 도전적이고, 자극적인 것이 된다.

 

 

--포용(에너지 수준 350)

이 수준에 이르면 우리 자신이

인생의 모든 경험을 창조하고

원천이 된다는 이해를 하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이러한 책임감이야말로 이 단계의 특징으로

인생의 여러 외적인 힘에 대응하면서도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200이하의 사람들은 무력하며

자신들을 인생이란 폭군의 피해자로 바라보기 쉽다.

이러한 생각은

자신의 행복이나 문제의 근원이

밖에 있다고 믿는 데 기인한다.

 

그러나 이 수준에 이르면

행복의 근원이 자신 속에 존재한다고 깨달음으로써

커다란 도약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경지에서 그들은

외부의 그 어떤 것도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

또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거나 그들에 의해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사랑(에너지 수준 500)

언론이나 TV에서 묘사하는 사랑은

여기서 말하는 수준의 사랑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이란

육체적 매력, 소유욕, 통제 등의 격렬한 감정과 결합된 형태를 띤다.

그러한 사랑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쉽고

주어진 조건에 따라 파도치곤 한다.

사랑에 좌절하게 되면

그동안 숨겨졌던 노용과 의존성이 밝아 벗겨져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같이 되어 있지만

이러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지독한 감상주의의 소산에 불과하다.

 

자존심에서 비롯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그런 관계 속에서는 사랑이 머무르지 않는다.

 

 

--평화(에너지 수준 600)

이 에너지 장은

초월이나 자아, 실현, 신의식 등의 용어로 묘사되는 경험과 깊이 관련된다.

이 수준은 천만 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는 아주 드문 현상이다.

 

이 상태에 도달한 사람에게는

주관과 객관의 차이가, 또 특별한 관점이라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복의 상태에 잠겨 있으므로

세상 일에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고

따라서 범인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

 

영적 지도자가 되기도 하고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인류의 개선을 위해 일한다고 한다.

 

 

--깨달음(에너지 수준 700~1000)

이 수준은 영적 완성자의 단계로서

수많은 세대를 통하여

군중들이 따르며 영성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 사람들은 신성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이들 자체가 신성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강렬한 영감의 소유자로서

이들은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 끌개 에너지장을 형성한다.

 

이 수준에서는

개성을 띤 어느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더 이상 분리되는 일이 없다.

 

진아와 의식과 신성이 하나로 동일시된다.

보이지 않는 세계조차도 마음을 뛰어넘어 진화로서 경험된다.

 

이렇게 에고를 초월함으로써

인간 완성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다

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모범이 된다.

 

이 수준이야말로

인간의 몸을 입고 도달할 수 있는 최고봉인 것이다.

 

심오한 가르침은

사람들의 정신을 양양하고

인간성의 자각에 눈뜨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깨달음의 단계에서는

시간과 개별성을 뛰어넘게 된다.

육신인 나에 대한 관념이 없어져서

운명이라는 것에도 연연해하지 않는다.

 

육신이란

마음의 창문을 통한 의식의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몸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자아는 보다 큰 진아로 녹아들어간다.

이 단계는 인원성을 뛰어넘는 완전한 하나의 수준이다.

 

의식의 분화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며

항상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신성한 은총은

천에 이르는 것으로 측정되며

역사에 기록된 인상으로서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서

우리가 아는 세 성인에게는

주라는 칭호를 붙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주 크리슈나, 주부처,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분들이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

사람의 영안손상은

어두운 도덕적 시력과 진실에 대한 맹목으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전체 인류가 맞닥뜨린 큰 현안은

그러한 영적 맹목을 치유하는 데 있다.

 

비록 세계 인구의 15%만이 임계적 의식 수준 200 이상이지만,

15%의 집단적 힘에는

나머지 세계 인구 85%의 부정성을 상쇄하는 무게가 있다.

 

힘의 척도는 로그값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의식수준이 1000인 단 한 명의 화신은

전 인류의 집단적 부정성을

사실상 완전히 상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세계에서 사람의 힘을 강화하는 유일한 길은

온전성, 이해, 연민을 품는 능력을 높이는 데에 있다.

 

인류의 다양한 구성원이

이러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인간 사회의 생존과 사회구성원의 행복은 보장될 수 있다.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것은

낮은 에너지 수준을 200으로 올리는 것이다.

200 수준은 힘이

최초로 나타나는 임계적 수준이자

모든 높은 수준을 향한 디딤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인간적 약점에 대한 인식은

용서를 낳고, 그다음에는 연민을 낳는다.

연민은 은총에 이르는 문이자

우리는 누구이며

왜 여기 있는가에 대한 최종적 각성에 이르는 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 존재의 궁극적 근원에 이르는 문이기도 하다.

보다 의식적으로 되는 것.

이것은 사람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이 시대부터 사람은 더 이상

어둠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선택할 수 있다.

 

지옥은 심판하는 신이 준 조건이라기보다는

사람 자신이 내린 결정에 불가피한 귀결이다.

 

말하자면 지옥은

부정적인 것을 끊임없이 선택하여

스스로를 사랑으로부터 격리시키는

행동의 최종 결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