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신박한깨달음] 운은 존재하는가?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 상념을 없애는 방법|운을 끌어당기는 과학적인 방법

Buddhastudy 2024. 4. 15. 18:29

 

 

현대 첨단 과학도 운이 존재하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왜 그런 것이 생기는지

아직 밝히지 못했다.

 

그런데도 수천 년에 이르는 인류의 오랜 역사에서, 그리고 이 넓은 세상에서

누구나 운의 존재를 믿는다.

비과학이라고 하면서도 다들 믿는 것

이것이 운이라 불리는 것에 신기한 점이다.

 

누구나 그 존재가 있다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믿고 있기 때문에

나쁜 일이 이어지면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고

좋은 일이 이어지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시작한 이래

무수히 많은 사람이 이런 경험 감각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적 증명을 넘어서 누구나 운의 존재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기존의 좋은 운을 끌어당기는 방법들은 하나같이

마음 세계를 긍정적 상념으로 채우면

좋은 운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 마음 세계를 긍정적 상념으로 채우려고 해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이미 긍정적 상념을 웃도는 수많은 부정적 상념이 넘쳐난다.

 

부정적 상념을 없애지 않고

마음 세계를 긍정적 감정으로 채우려 해봤자

이미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 상념의 힘이

긍정적 상념의 힘을 넘어선다.

 

어떻게 하면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 상념을 없앨 수 있을까?

도쿄대학원 공학박사인 다사카 히로시는

<운을 끌어당기는 과학적인 방법>이라는 책에서

긍정적 상념과 부정적 상념이라는

분리나 대립을 초월한

궁극의 긍정적 상념을 마음속에 실현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는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기에

양자과학의 세계에서 논의되는 제로포인트 필드 가설도 소개한다.

오늘은 <운을 끌어당기는 과학적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좋은 운을 끌어당기는 다섯 가지 마음세계

 

첫 번째, 마음 세계는 [개인적 의식 세계]이다.

불평이 많은 사람에게는 왜 좋은 운이 오지 않는가.

 

-첫 번째 이유는

표면의식세계가 부정적 상념으로 채워지면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 상념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말로 표현되어

주위 사람들이 멀어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 중 8할은 비언어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두운 느낌이 드는 사람은

딱히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두 번째 마음 세계는 [집합적 의식 세계]이다.

실제로 집합 의식은 집단이나 조직, 사회에 속한 개인의 의식이 모인 것이며

종종 공기나 분위기, 문화의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인생과 일에서

조직이나 팀 분위기가 나빠져서

나쁜 운을 끌어당기는 경우를 이따금 경험한다.

집단이나 팀에서 좋은 운을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무드 메이커 역할을 하는 사람의 존재가 중요하다.

그로 인해 집단이나 팀 전체의 선순환이 생기기 때문이다.

 

세 번째 마음 세계는 [개인적 무의식 세계]이다.

예를 들어

표면 의식에서는 행복한 결혼을 하고 싶다고 바라면서도

성격이 맞지 않는 상대와 만나

불행한 결혼 생활과 이혼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있다.

 

과거에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있으면

그것이 강한 트라우마가 되어 무의식 세계에 고착되는데

그러면 무의식 세계에

이런 내가 행복해지면 안 된다는 자기징벌 의식이 생겨

인생의 선택이나 행동을 지배한다.

 

한마디로 무의식 세계에 있는 부정적 상념이

원인도 모르는 형태로

그 사람의 선택이나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마음 세계는 [집합적 무의식 세계]이다.

가령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그쪽을 봤더니

실제로 누가 나를 보고 있었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을까?

어느 날 문득 한동안 만나지 못한 지인이 떠올랐는데

때마침 그때 그 지인이 전화를 걸어오는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공시성이라 불리는 현상으로

이 현상의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 집합적 무의식 가설이다.

 

사람들 마음은 깊은 무의식 세계에서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마음 세계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무의식 세계]이다.

데자뷰 현상에 대해서 과학에서는

시신경과 뇌신경이 일으키는 착각이라고 설명하지만

데자뷔 현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설명으로 수긍할 수 없을 정도의 현실감을 느꼈다고 한다.

 

옛날부터 많은 사람이 꿈에서 본 일이 현실이 된다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미국 대통령 링컨이 암살되기 일주일 전에

암살을 예견하는 꿈을 꾼 것이 유명한 사례이다.

 

미래의 기억이라 부를 법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까?

저자는 제로 포인트 필드 가설을 이야기한다.

 

제로 포인트 필드란

우주의 모든 곳에 편재하는 에너지장을 가리키는데,

이 장에 우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는 가설이다.

현대 과학인 양자물리학에서

아무것도 없는 진공 속에도

방대한 에너지가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양자 진공이라 불리는 극미소 세계 속에

방대한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본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현대 최첨단 우주물리학이 제창하는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다.

 

이는 우리가 사는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탐구하는 우주 생성 이론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138억 년 전에는 우주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양자 진공이 존재했을 뿐이다.

하지만 양자 진공이 어느 날 갑자기 흔들림을 일으켰고

급격한 팽창이 일어나 빅뱅을 거쳐 우주가 탄생했다고 한다.

 

이렇듯 양자 진공 안에는 장대한 우주를 낳을 만큼

막대한 에너지가 깃들어 있는데

이런 양자 진공 안에 제로 포인트 필드라 불리는 장이 존재하며

그 장에는 우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건이

파동으로서 홀로그램 구조로 기록되어 있다는 가설이다.

 

우주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이 [파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가설이다.

왜냐하면 우리 눈앞에 있는 물질이라는 것은

본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실체는

에너지이자 파동이고

이를 질량을 가진 물질이나 딱딱한 물체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일상 감각 때문에 생긴 착각에 불과하다.

 

 

--미래는 이미 존재하는가?

우리는 과거는 생겨나서 존재하지만

미래는 아직 생겨나지 않아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이 같은 감각은

우리의 일상 감각 자체이기 때문에

미래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란 정의가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제로 포인트 필드에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정보도 기록되어 있다는 건

우리의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다.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제로 포인트 필드에 기록된 미래는 가능성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이 필드에 연결되어 예견할 수 있는 미래는

무수히 많은 미래의 가능성 중 가장 일어날 법한 미래이다.

따라서 현재의 행동이 변하면

가장 일어날 법한 미래가 아닌

다른 미래가 실현될 가능성도 커진다.

 

우리가 제로포인트 필드에 연결되어 미래를 예견할 때는

확실히 도래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어날 법한, 확률이 높은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가능성의 미래를 현재로 만들 때

하나의 미래가 확정된다.

 

 

--왜 마음이 제로 포인트 필드에 연결되는가?

제로 포인트 필드 가설은 우리의 마음이

제로 포인트 필드와 양자 레벨에서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제로 포인트 필드에서 정보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정보를 보낼 수도 있다는 가설이기도 하다.

 

여기서 뇌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쓴 이유는

뇌과학 연구가 진행된 오늘날에도

마음이 뇌에 작용해서 생겨나는 것인지

아니면 몸 전체에 작용해서 생겨나는 것인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로 포인트 필드에 기록된 정보가 홀로그램 기록이라면

파동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고

우리 뇌나 마음속에 존재하는 상념 역시, 양자 과정으로 존재한다면

이 또한 파동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리학에서 잘 알려져 있듯

하나의 파동은

그 파동과 유사한 주파수의 파동과 공명을 일으킨다.

 

따라서 뇌나 마음이 제로 포인트 필드와 연결될 때

우리 뇌나 마음속에 있는 상념이

그 필드 안에 있는 유사한 정보와 공명해서

끌어당김을 일으킨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마음속에 품은 상념이

그와 유사한 것을 끌어당긴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첨단 과학과 종교의 직관은 왜 일치하는가?

제로 포인트 필드에는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정보도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필드에 연결되기만 하면

우리는 우주가 시작된 순간의 정보도 알 수 있을까?

 

이를 생각하다 보면

첨단 과학의 지견과 가장 오래된 종교의 직관 사이에 존재하는

신기한 일치를 깨닫게 된다.

 

현대 과학의 우주론에 따르면

이 우주는 138억 년 전, 양자 진공에서 탄생했다.

양자 진공이 어느 날 파동을 일으켜 급격히 팽창하면서

인플레이션 우주가 탄생했고

이어 대폭발이 일어나 빅뱅 우주가 탄생했으며

빅뱅 직후에 우주가 광자로 가득 차게 되었다고 한다.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구절은 세계는 모두 [진공에서 탄생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 그리스도교 경전인 구약 성경에서

천지창조를 기록한 창세기 1장에는

신이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셨다는 구절이 있고

신이 이 세상을 만들 때

[맨 처음 빛이 생겨났다]고 쓰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이 우주가 탄생한 순간의 기억을

종교적 직관으로 파악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왜 우리 마음은 늘 부정적 상념이 지배당할까?

세상에 넘쳐흐르는 부정적 정보의 홍수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매일 대량의 부정적 상념이 스며든다.

매일 아무렇지 않게 눈에 들어오는 미디어 정보가

우리 무의식에 부정적 상념을 계속해서 불어넣는다.

 

그렇다면 미디어의 부정적 정보나

인생에서 겪은 부정적 경험에서 생겨난 마음속의 부정적 상념은

왜 좋은 운을 밀어내고 나쁜 운을 끌어당길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부정적 상념이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는 능력을 위축시켜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폭 30cm 길을 벗어나지 말고 걸어본다면

아무 문제 없이 걸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벽 위에 놓은 폭 30cm 다리라면 어떨까?

아마 마음속에 생겨난 죽음의 공포나

좁은 다리는 건널 수 없다는 자기 함정 의식 때문에 위축되어

그 다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자기 부정 의식을 품는 순간

우리 능력은 비참하게 위축되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옛날부터 심층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평생 잠재 능력의 몇 퍼센트밖에 꽃 피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

 

사실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은

잠재 능력을 평범한 사람보다 더 꽃 피운 사람들이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도 만약 마음속에 부정적 상념을 없애고

마음을 긍정적 상념으로 채울 수만 있다면

비슷한 재능을 꽃피울 가능성이 있다.

 

 

--명상은 하는 것이 아니다

무의식 세계를 바꾸어 좋은 운을 끌어당기는 방법은

무의식 세계에 존재하는 갖가지 부정적 상념을 정화하는 것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자연의 위대한 정화력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자연이 가진 마음을 정화하는 힘은

단지 표면적으로 기분이 상쾌해지거나

마음이 씻겨 나가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부터 이런 마음 정화법으로

요가나 좌선을 비롯한 다양한 명상 방법이 존재한다.

정치가나 경영자 가운데 매일 명상을 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많은 경우 무념무상상태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왜 명상이 어려울까?

그 이유는 명상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명상은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일어나는] 일이다.

즉 어떤 순간에 마음이 문득

명상 상태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무념무상 상태가 되자같은 인위적 의도야말로

잡념이 되어 명상 상태에 드는 것을 방해하는 역설을 일으킨다.

 

저자는 무의식을 정화하는 방법으로

명상이 아니라

[자연의 몸을 담근다]라는 방법을 권한다.

그것이 가장 쉽게 명상의 마음 상태가 일어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연에 몸을 맡기며

자연의 훌륭함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명상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부정적인 언어도 쓰지 말아야 한다.

남을 탓하는 마음 또한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게 된다.

 

 

--운을 닦는다, 마음을 닦는다

우리 인생에는 본래 좋은 운도, 나쁜 운도 없다.

이것이 핵심이다.

만약 우리가 절대 긍정 사상을 진정으로 손에 넣는다면

좋은 운과 나쁜 운이라는 이항 대립도 사라진다.

그 결과 운이라는 말도 사라진다.

 

운의 본질에 다가서면 설수록

흡사 신기루처럼

그 말 자체가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의식 세계에 부정적 상념을 낳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에서 주어진 것 전부를 긍정하는 절대 긍정이라는 의미에서

[긍정적 상념이 필요]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좋은 운나쁜 운이라는

이양 대립의 말도 사라진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좋은 운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개척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인생 풍경이 바뀔 것이다.

 

궁극의 긍정적 상념을 품고 바라볼 때

인생 풍경은 빛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인생 풍경은

결국 [우리 마음의 모습이 비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음 닦기를 계속한다면

그것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세계로 연결된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개인적 무의식 세계와 집합적 무의식 세계를 넘어

제로 포인트 필드로 연결된

[시공간을 뛰어넘은 무의식 세계]가 있다.

 

아직 현대 과학으로 이 세계의 존재를 밝히지 못했지만

시공간을 뛰어넘은 무의식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 세계가 바로 [신의 세계]일 것이다.

우리 인생을 신기한 형태로 인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인도 사상가인 크리슈나무르티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세계이고 세계가 당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