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008. 모든 게 허무해요

Buddhastudy 2024. 4. 24. 19:52

 

 

저의 가장 큰 고민은 모든 게 허무하다는 거예요.

제가 살아가는 게 약간 환상 같고 뭔가 채우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고

뭔가 공허한 건 아닌데 되게 허무하다고 해야 되나

그런 만큼 활력도 없어지고 열정도 없어지고//

 

 

ㅎㅎㅎ

앞길이 보이네요.

앞길은 그렇게 가면 자살하는 것밖에 없어요.

자살이 종착력이에요.

벌써 자살할 수 있는

살아서 뭐하나, 죽는 게 낫겠다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길에, 고속도로에 지금 올라탄 거예요.

 

그렇게 쭉 가면

결혼하면 뭐 하나? 그래서 애 낳고 이래이래 하다가 죽을 거 아니냐.

돈 벌면 뭐하나? 큰 집 사면 뭐 하나?

그래도 이렇게 죽을 거 아니냐.

유명하면 뭐 하나?

그래봤자 지구 환경이 지구가 파괴되기도 하는데 해서 뭐 하냐?

부처님 말씀 들으니까 우주적 관점에서 보니

지구라는 게 한 개 티끌 같은데

그 티끌 같은데 그 살아서 뭐 하냐?

 

이런 생각이 자꾸 들면

한쪽에 정상적으로 그렇게 딱 들어가 깨달으면

괴로움이 없는 깨달음의 길로 가고

자기같이 허무로 나오면

야 그러니까 경쟁할 필요 없네

야 그러니까 괴로워할 필요 없네

그러니까 뭐 결혼 안 해도 되네

이런 식으로 하면

나처럼 이렇게 살면 되는데 .

 

그런데 자기는

그러니까 살아서 뭐 하나?’

이렇게 가는 거는

비슷한 것, 불교를 좀 아는 것 같이, 도가 통한 것 같지만

그거는 종착력이 죽음이에요.

죽음의 그 큰 대열에 올라탄 거를 뭐 축하해야 되나? 뭐라고 해야 되나?

축하드립니다.

인생의 종착역으로 빨리 가니까

어차피 다 우리 죽거든요.

 

그런데 뭐 자기는 그럴 거예요.

그래 이래이래 해 봐야 자기도 죽고 나도 죽는데

그럼 빨리 죽으나 늦게 죽으나 또 그게 무슨 차이겠나.

법륜스님 얘기 들으니까

하루살이가 저녁 10시에 주거나 오후 4시에 주거나 무슨 차이가 있나?

이런 법문하는데

맞아 맞아 사람한테 적용하면

40에 죽으나 80에 죽으나 무슨 차이가 있어 마찬가지지

 

모든 법문도 경전도 종착이 죽음을 합리화하는

그래서 죽는 게 좋다, 살 필요가 없다

이렇게 대열에 올라섰다, 자기가.

 

그래서 법문을 들어도 안 되고

우주공부를 해도 종착력은 죽는 걸로.

뭘 해도 종착역은 죽는 걸로 딱 결론이 나는 그거에 들어섰습니다.

위험하다.

그래서 내가 딱 말꼬리 보니까.

 

아주 잘하셨어요.

안 그래도 지구에 인구가 많은데

빨리 죽고 ㅎㅎㅎ

사람이 하나라도 빨리 더 죽어줘야

지구가 살지 그죠?ㅎㅎㅎ

 

그래 따지면 나무가 자라서 뭐 해요?

나무 입장에서 이거 자라면 뭐해요?

어차피 사람이 베어갈 거고

닭은 자라면 뭐해요? 어차피 사람이 잡아먹을 거고.

소는 살면 뭐해요? 어차피 사람들이 잡아먹을 거고.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만물이 생존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야.

 

그게 큰 병이에요.

반생명적 사고방식이다.

반생명적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그게 소위 이 소프트웨어에도 컴퓨터에도

고장이 나면 백신 치료하듯이

정신적인 병이 든 거예요.

그래서 그런 병이 전염되다시피 유행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한국에서 자살률이 엄청나게 높잖아요.

 

진짜 못 살아서, 배가 고파서, 정말 학대를 받아서

사느니 죽는 게 낫겠다

이렇게 해서 가난한 나라나 독재 국가의 자살률이 많은 게 아니고

이렇게 살 만한 나라에 자살률이 많은 게 대부분 다...

 

그거를 정신적으로 보면 다 병에 들어가고

사회적으로 보면

-경쟁의 압박이 있어서 그렇다

-너무 빈부 격차가 심해서 그렇다

-가정폭력에 의해서 그렇다

-왕따를 시켜서 그렇다

이건 그때, 그 자살을 할 때의 상황이거든요.

상황 가지고 얘기하면 전부 외부 문제예요.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왕따를 시킨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두드려 맞는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파산한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이혼한다고 다 자살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연애에 실패한다고 자살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그럴 때

슬픔이 확 올라오거나 어떤 허무감이 들 때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게 더 낫겠다하는

합리화하는 사유 체계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딱 듣자마자

아이고, 거기 올라탔네

자살 대열에 발이 올라갔네.

지금은 멀쩡해 보이지만 조금 더 가면 이제 큰일 나겠다

 

큰일이 아니죠. .

이것도 보통 사람이 봤을 때 큰일이지

자살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하나도 큰일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끼리 서로 전화해서

혼자 가기에 조금 외로우니까 우리 같이 가자

이래서 같이 가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얘기해서 미안해요. ㅎㅎㅎ

 

그러한 사고방식이 바로 병이다, 이 얘기예요.

병이라는 건 앞에서도 얘기했잖아요.

증상인데, 그게 보통 생명의 현상

생명이라는 건

-지옥에 넣어놔도 살아나는 게 생명이거든요.

-싹이 올라오는데 위에 돌을 덮어놓으면

못이겨서 죽는 것도 있지만

옆으로 삐져 올라오고

모든 자연이 어떻게 해도 살려고 하는 거거든요.

-굶어 죽어도 막 훔쳐먹고라도 살려고 하고

-학대받아도 막 살려고

 

자기같이 생각하면

-옛날에 노예들이 다 죽어버리지 뭐 때문에 살아요?

노예는 뭐 살아봤자 노예로 끝나는 거 아니에요, 그죠?

-왕도 뭐 살아봤자 죽는데

노예 그거 뭐 살면 뭐해요? 그냥 죽지

-옛날에 여자들은 다 죽어버리지 뭐 때문에 살아요?

살아봤자 결론이 뻔한데, 보면.

 

그래서 이건 결론적으로 무슨 얘기냐?

자기가 [삶에 대해서 너무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삶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만히 보니까 별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럴 바에 죽는 게 낫겠다이런데

스님은 삶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원래 삶이라는 게 이런 거예요.

아무 별 것 없는 거예요.

 

가치라는 건 다 사람이 만든 거예요.

아무 별거 아니기 때문에

별거 아니다하고 깨달으면

살기 편하지, 뭐 때문에 죽을 생각을 해요.

가만히 있어도 때가 되면 죽는데.

 

죽을 때가 되면

안 죽겠다고 발버둥쳐도 죽게 되고

그러면 죽을 때가 됐는데

산소호흡기 꽂고, 생명 연장하는 거

이거 사실 반생명적이에요.

그게 생명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그게 반생명적이에요.

 

그런 것처럼 살은 생명을

남의 생명이든, 자기 생명이든,

살아있는 데 끊겠다 하는 거

그것도 반생명적이에요.

 

왜냐하면 살아있는데 죽으려면 힘을 써야 되잖아요.

밧줄을 찾아서 목을 맨다든지, 약을 먹는다든지

뭘 해야 되잖아요.

근데 안 죽는 거는 가만히 있으면 안 죽잖아요.

근데 또 죽을 때 또 가만 놔두면 죽는데

또 그걸 살리려고 산소호흡기를 꽂는다, 뭘 한다

또 난리를 피워야 되잖아요.

 

이게 다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거다.

그래서 지금 자기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거고

반생명적인 사고방식이고

그게 반환경적 사고방식이다.

반자연적 사고방식이다.

 

그걸 정신적으로 [질환]이라 그래요.

자기 지금 약간 질환, 병을 앓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그 병에 들면

세상 모든 게 다 종착이 눈에 보여요.

그래봤자 뭐 할 건데?’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서 뭐 할 건데

결론 뻔하잖아.

그럼 결국 죽을 거 아니야

이렇게 되기 때문에

 

근데 맞는 얘기예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자기하고 나하고 똑같이 생각해요.

그래서 나도 별로 세상 일에 크게 관심 없잖아.

그래봤자 뭐 죽을 거고.

 

그래서 여기 결혼해서 죽는다, 혼자 산다 외롭다, 뭐 한다 해도

남편이 죽었다고 울어봤자

나는 또 좀 있으면

저 여자 또 남편이 없다고 우는 거 보니까

남자가 필요하다는 얘기구나.

좀 있으면 딴 남자 만나겠구나.

이게 눈에 훤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런 말을 하면 말리지만, 말은 안 하지만

 

그러듯이 자기는 딱 보니까

벌써 이게 또 죽을 꾀를 내구나

금방 보여요.ㅎㅎㅎ

 

죽으려고 호주까지 가서

죽으려면 한국에서 죽지 뭘 그리 멀리 가요?

한국 나무라도 하나 더 키우지, 거름하지

왜 호주나무 거름 하려고 거기까지 갔어요?

그리고 또 부모 가슴에 못 박고

죽으려면 조용히 죽어야 되는데

자기 죽었다고 그러면 또

결혼을 안 했으니까 남자가 없고, 자식이 없으니까 괜찮지만

또 부모가 또 힘들 거 아니에요, 그죠?

 

...

 

 

안 되기는 왜 안 돼?

죽으면 그만이지

무슨 안 되기는 또 안 돼.

죽기 싫으니까 안 되지.

 

부처님은 뭐 나라도 있고

그다음에 예쁜 마누라도 있고

자식도 있고

부모도 있고

그런데도 버리고 출가했는데

죽는 거 그거 뭐 어때?

 

죽는 건 간단해.

옥상에 올라가서 떨어져 버리면

아내가 있든, 자식이 있든, 남편이 있든, 죽지

금방 죽어.

약 먹어버리면 죽고.

 

죽는 건 언제든지 간단해.

그러니까 미리 궁리 안 해도 돼.

그러니까 그 병인 줄 알고

병을 치료하세요.

 

치료를 해서

그건 맞아,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

 

그런데 나하고 자기하고 차이는

그건 다 똑같은데

-그래서 나는 죽을 필요도 없는데

-자기는 그래서 죽겠다니까

그게 참 굉장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걸 다 깨달으면

사는데 힘이 하나도 안 들잖아.

-애가 공부 꼴등 하면 어때? 1등 해도 죽고 꼴등 해도 죽는데

-남편이 뭐 딴 여자가 바람 피우면 어때 뭐

짐승들은 뭐 그냥 다 사는데, 그게 무슨 큰일이야

이러고 뭐 내버려 두고 난 내대로 살면 되거든.

 

훨씬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

자기는 그러니까 죽어야 된다

그 결론이 병이라는 거예요.

 

...

 

그러니까 자꾸

사람들이 상담할 때 이게 문제예요.

병인데

자꾸 자식을 낳아놓고 죽으면 되나?

부모를 놔놓고 네가 죽으면 되나?

자꾸 이러니까

그게 병이 자꾸 더 커지는 거예요.

그건 언제 죽어도 죽을 건데 뭐 안 죽나?

자꾸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게 별로 설득력이 없어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는 모든 것의 초점은

이런저런 사유가 아주 훌륭해요.

철학도 훌륭하고 다 좋은데

마치 깨달은 사람처럼 되는데

그 종착력이 죽음이라는데, 거기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살아서 뭐 하냐?’ 이렇게 결론이 난다는 거예요.

 

나는

그러니까 웃으면서 살지이렇게 결론이 나는데

자기는

그러니까 죽지이렇게 결론이 난다는 거예요.

 

그냥 한 생각 바꾸면 돼요.

그러니까 뭐 괴로울 일 없네.’

그럼 편하게 살게 되어 있네.’

죽을 때 되면 알아서 죽을 거니까

일부러 뭐 힘들어 죽을 일이 있겠나

이렇게 생각을 한번 바꿔보세요.

 

...

 

살다 보면 온갖 사람 다 있죠.

이것도 다 병이에요.

정신적으로 따지면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죽겠다는 사람한테

스님이 말을 저렇게 하면 어떡하나?

 

스스로 죽겠다는 걸 어떻게 해요?

죽겠다는 사람하고도 우리는 웃으면서 대화하는 거예요.

죽을 때 죽더라도 하루라도 웃어야지.

 

그래서 이 도를 잘못 공부하면, 수행 잘못하면

결론이 허무주의에 빠져서

제법이 공한데 살아서 뭐하냐?

이래서 자살자가 생깁니다.

수행하다가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거든요.

잘못 깨달아서, 저렇게 깨달으면

결론이 죽는 데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사는 게 굉장하다는 부작용은

삶에 대한 의미를 너무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저렇습니다.

사는 거 그냥 풀 한포기 나는 거나

나무 한 그루 자라는 거나

토끼 한 마리 뛰어 다니는 거나

사람 사는 거나 다 똑같아요.

아무 차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죽을 것도 없고

억지로 살려고 할 것도 없어요.

그냥 인연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늘 괴로울 일이 없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

 

그래요.

자기가 너무 인생을 너무 높이 생각하고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그래서 이래서 사느니 죽는 게 낫지

이거는 그럼 자기가 뭐가 돼야 돼요?

자기가 뭐 유명한 배우가 돼야 살 만하나?

뭐 임금이 돼야 살 만하나?

 

그러니까 풀 한 포기도 사는 이유를 알아야 된다.

이유가 없어요. 그냥 살지.

자꾸 이유를 찾아서 문제예요.

 

그러니까 존재가 먼저 있고

우리가 살고 있고

그다음에 생각을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생각을 나중에 해서

자기를 죽이는 거는

이 순서에 역행하는 거예요.

 

존재가 있고

살아 있으니까

생각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