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러들이 접하는 영적 존재들의 영적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20세기 최고의 영능력자이자 예언가로 평가받는, 에드가 케이시는
미국에서 유명한 초능력자로 알려져 있다.
보통의 영능력자들은
영적 존재들과 접촉하여 많은 정보를 알아내지만
케이시는, 영혼과의 직접 접촉은 거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구에 매여 있는 영혼은
영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초의식에 직접 접근하여 정보를 얻었다.
초의식이란
각개별 영혼이 자신과 신의 관계를 자각할 수 있는
의식 수준에 도달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신에게는 모든 지식과 지혜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초의식의 파동에 동조함으로써
무한한 원천으로부터 지식과 정보를 끌어올 수 있었다.
오늘은 신의 존재와 삶의 목적을 깨우쳐 주는 책
에드가 케이시의 <삶의 10가지 해답>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에드가 케이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에드가 케이시의 어린 시절은 단순하고 평범했으나
간혹 그의 비범한 능력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4살 때 사고로 죽은 할아버지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교과서를 머리에 베고 자면
그 내용 전부가 저절로 암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최면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육체적 질병을 치료하는
피지컬 리딩으로 유명했다.
케이시는 16살에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최면 상태에서는 전문적인 의학 지식으로 병든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
심지어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상대방의 이름과 주소만 듣고도
투시력을 통해 어떤 질병을 앓고 있는지 알았으며
정확한 치료법과 약을 처방하기도 했다.
미국 켄터키주에는, 에드가 케이시 박물관이 설립되어 있는데
그가 환자들의 병을 고친 기록들이
무려 14,000건이나 보관되어 있다.
의학지식이 전혀 없었던 케이씨가
어떻게 하여 불치병이나 원인 불명의 병에 걸린 환자들의 질병을 고쳐줄 수 있었을까?
그는 병에 걸린 환자를 보면
그의 몸속 병든 부분을 투시해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미국 각종 언론과 타임스지 신문에도
케이시의 치유력에 대한 기사가 나왔을 정도로
그의 영능력과 치유력은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사실상 미국의 공인된 초능력자이다.
또한 상대방의 전생이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려주는
라이프 리딩을 해주기도 했다.
그의 집안은 매우 가난했지만
다른 사람의 불치병을 고쳐주거나 미래를 봐주는 것에 대해
전혀 대가를 받지 않았으며
평생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신에 대한 케이시의 개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 내놓은
빅뱅 이론과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의 시원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태양계도 없고 생명도 없을 것이다.
케이시는 이것을 [원 창조 에너지]라고 불렀다.
이것은 무한한 에너지의 셈이며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다.
당신과 나도 우리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그것의 일부이다.
우리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던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만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원 창조 에너지로부터 비롯되었으며
또 그것의 일부라고 한다면
생명과 의식, 그리고 자기 인식 역시
그것으로부터 출연했을 것이다.
이런 개념으로부터 케이시가 말한 생명의 정의가 도출된다.
한마디로 생명은 존재의 의식이다.
인간이 마주치게 되는 많은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우리 스스로가 시원에서 분리되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시 그것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의식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이다.
우리는 자기 인식을 잃지 말아야 하며
우주의 장대한 계획에 우리의 목적을 일치시켜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은 전혀 물질이 아니다’라고 했다.
우주 안에 속해 있는 무한한 양자들은
순수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구성된 우주의 물질도 에너지의 집합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가 태양 광선을 통과할 수 있듯이
그 물질들을 통과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파장을 맞출 수 있는 것도
바로 만물은 하나라는 그런 개념인 것이다.
케이씨에 따르면
의식적 마음은 물질적 육체에 갇혀버렸기 때문에
오직 무의식적 마음만이
물질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신의 일부이며
다시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무한한 근원적 힘에 의지하면서
우리의 자유 의지를 그 힘에 조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무한한 신성의 차원에 동조되어야 하며
그곳은 [참 실재]가 존재하는 순수한 영적 차원이다.
케이시는 신을 비인격적인 힘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신은 진정한 영적 존재를 구성하는 개별 영혼으로서
우리 각자를 창조했다고 한다.
물론 진정한 영적 존재는 물질적 육체를 초월해 있지만
지상에 머무는 동안은 육체의 부분으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변함없이 신의 목적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의 협력자로서
우주를 위한 신의 장대한 계획을 따르는 것이다.
--종교는 신의 안을 보고, 과학은 신의 바깥을 본다
케이씨는 우리에게 ‘밖과 안을 동시에 보라’고 말한다.
비록 우리가 신을 보거나 만질 수는 없을지라도
우주 전체에 편재된 신을 항상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항해의 동반자이다.
그러나 신을 믿는 우리가 진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현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적합한 신의 의미를 알아야만 한다.
과학 자체도 물질적 한계를 넘어서서
새로운 경지에서 종교와 동일한 영적 영향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과학은 물질계의 모든 것이 불변의 법칙에 따른
공통적 화학 성질의 조화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연법칙은 케이시가 강조한 것처럼
물질적인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사실 과학 자체는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 인간 존재의 영적 차원을 탐색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존 에크레스 경은
인간의 마음은 두뇌와 분리되어 있으며
마음이 두뇌를 지배한다는 학설을 주창했다.
그는 자신이 실험을 통해서
이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고 말했다.
비물질적 마음이 물질적 두뇌에서 분리되어 있으며
동시에 그 두뇌를 지배한다는 사실이 함축하는 의미는 굉장한 것이다.
마음이 물질적 육체에 속박되지 않았기 때문에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그것은 자유롭게 존속할 것이다.
더 나아가 개별 영혼의 생각이
영속적인 의식 속에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명상이란 우리 내부의 신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명상이 신의 말을 듣는 것이라면
기도는 신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영체가 머무는 곳은 초의식 안이며
영체는 각 개인적 실체에 영속하는 영적 본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의식을 통해 신에게 접근할 수 있다.
리딩에 따르면 케이씨의 영적 정보는
바로, 이 초의식에서 나왔던 것이다.
명상은 우리가 영혼을 찾고, 그 영혼을 통해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신을 찾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왜 환생하는가?
에드가 케이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하지만 리딩을 통해 확인한 환생의 개념이
성경에 대한 자신의 깊은 믿음과 상충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연구가 좀 더 진행된 다음
그는 환생의 개념이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가 생각한 환생 개념은
영원히 창조력과 하나가 되기 위한 여정이었다.
신의 인격화된 개념은, 인간의 자만에 의해 창조되었다.
인간은 신을 천상의 옥좌에 앉히고
그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긴 하얀 수염을 기르도록 고집했다.
신은 이제까지 그래왔고, 미래에도 항상 그렇지만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다.
신이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했다는 말은
우리 역시 한때는 순수한 영적 존재였다는 의미이다.
인간이 처음으로 이 차원에 들어섰을 때는
물질적 형상으로서가 아니었다.
인간은 영혼, 신성한 빛의 불꽃 속에 들어있는 영적 실체로서 지구에 왔었다.
지구에 온 영혼이 지금처럼 물질적 육체 속에 머물게 된 것은
신의 의도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선택이었다.
인간은 점차 자신을, 3차원 의식의 한계 내에 제한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것이 인식 가능한 기본 형태가 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이런 물질적이고 3차원적인 한계 내에 가두었기 때문에
우리는 신으로부터 분리되게 되었다.
우리가 지구 차원에서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영혼의 발전을 위한 영적 선택의 결과이다.
매번의 생은, 긍정적 카르마의 축적을 통해서
우리가 영혼의 진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인 것이다.
--카르마는 인과응보가 아니다
에드가 케이시에 의하면, 카르마는 징벌이 아니며
각 개인이 과거생에서 행한 실수를
긍정적 방법으로 보상하는 기회라고 말한다.
자신이 과거생에서 무슨 잘못을 했든 간에
현생에서 바르게 살면서 균형을 잡고
신의 계획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영원히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카르마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행했던 그대로 돌려받는다는
필연적인 인과응보의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과거 행위를 직시하고
그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지만
우리는 응보라는 의미에 구속되지 않고도 카르마를 청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거생에서 남을 학대했던 사람이
현생에서 반드시 학대받는 사람으로 환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학대받는 여성들이나 아이들을 돕는데
자신의 삶을 헌신할 수 있다.
카르마는 우리가 세상과 자신의 영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무이다.
우리 각자는 창조력이 현상계에서
물질적 형태로 구현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역시 신의 일부이다.
우리가 이웃을 하찮게 대접한다면
그것은 바로 신을 그렇게 대접한다는 의미이다.
--원자의 진동이 고양되면 질병이 치유된다
에드가 케이시에게 건강과 치유는
육체적 치료뿐만 아니라 영적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다.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분노도 분해를 파괴할 수 있다.
분노 자체가 마음의 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나 몸에 관한 태도만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케이시는 우리가 세상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경고한다.
그는 이웃을 [미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위장병이나 간질환을 앓게 되며
이웃을 [시기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은
소화장애나 심장이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케이씨는 우리 모두가 영적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과 에너지 패턴의 무의식의 힘을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치유하는 주체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 자신의 몸과 마음인 것이다.
물질적 육체의 원자적 힘은
음과 양의 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로 이 힘들이 우리를 물질적 차원으로 데려다 준 것이다.
그것들은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치는 전기적 성질로 인해
물질계로 편입되거나 물질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긍정적 힘에 도움이 되는 원자의 진동을 고양시키면
신성한 힘이 물질 차원에서 활성화되는 것이다.
물질은 창조력을 통해 구현된다.
그리고 창조력은 구현된 신이다.
이 시점부터 자아는 사소한 것들이 필요하게 된다.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를 연구하고 이웃을 도와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당신의 실체는 치유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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