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진쏠미] "광안리 조개 껍데기"만 기억하면 됩니다

Buddhastudy 2024. 5. 30. 19:51

 

 

제가 예전에 광안리 바닷가를 자주 갔어요.

머리가 복잡할 때 그냥 광안리 가서

맨발로 백사장을 걸으면 힐링이 되더라구요.

 

그날도 평소처럼 맨발 걷기 하면서 힐링하려고

광안리를 갔는데

아니..

백사장에 쓰레기가 너무 많은 거예요.

“31

세 걸음 걸으면 쓰레기 하나가 눈에 띄는

그 정도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아 오늘은 날이 아닌가보다하고

그냥 바닷가가 잘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어떤 때였냐면

제가 한창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해서 알아갈 때였고

끌어당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상태였어요.

그래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어야 끌려온다는 논리를

...는 이해 했는데

아직 가...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거예요.

아니 내가 뭘 성공적으로 끌어당겨봤어야 확신을 가지지

그렇게 속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눈으로는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어요.

 

그때, 어떤 구절 하나가 눈에 확 띄더라구요

내가 집중하는 것이 끌려온다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구절을 읽다가 잠시 뇌정지가 와서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각선 앞쪽에 위치한 테이블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앉기 시작하는 거에요.

그리고 자기들 가방 속에서 뭘 하나씩 꺼내서

그거를 책상 위에 탁 탁 올려놓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까 조개껍데기더라구요.

해변가에서 예쁜 조개껍데기를 주워 온 거였어요.

 

근데 그걸 딱 보는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 저렇게 예쁜 조개껍데기들이 백사장에 있었다고?

내가 걸었을 때는 하나도 안 보였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은

예쁜 조개껍데기로 가득한 아름다운해변을 경험했고

저는 쓰레기로 가득한 더러운 해변을 경험했어요.

 

그 사람들은 숨어있는 예쁜 것에 집중하기로 선택했고

저는 눈에 띄는 쓰레기에 집중하기로 선택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 관광객들은 해변가를 나올 때

예쁜 조개껍데기들과 행복한 느낌을 한가득 품고 나왔지만

저는 해변가를 나올 때

아쉽고 찝찝한 기분만 한가득 품고 나왔어요.

 

물리적으로 똑같은광안리에서

완전히 다른광안리를 경험한 거죠.

 

그때

나랑 똑같은 바닷가를 걸었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다른 경험을 할 수가 있지?

저 사람들이 걸은 바닷가를 나도 걸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책을 주섬주섬 챙겨서 밖으로 나갔어요.

저 사람들이 조개껍데기를 봤다면

나도 조개껍데기를 볼 수 있겠다

분명히 이 쓰레기들 사이에 조개껍데기가 있다

어딘가에 분명히 예쁜 조개껍질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허리를 90도로 팍 숙이고

미친듯이 조개껍데기를 찾기 시작했어요.

 

근데 정말 신기한 게

어딘가에 분명히 예쁜 조개껍데기가 숨어있다.

나는 지금부터 조개껍데기를 찾는다.’라고 생각하고

해변가를 바라보기 시작하니까

그때부터예쁜 조개껍데기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심지어 조개 껍데기를 찾는 데 집중하기 시작하니까

물리적으로제 시야에 있었던 쓰레기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어요

그 경험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조개껍데기를 계속 줍다 보니까

어느새 손이 꽉 찼더라구요.

 

그래서 껍데기 줍는 걸 잠시 멈추고

손에 가득 담겨있던

알록달록한 조개 껍데기들을 가만히 감상했어요.

그때 갑자기 울컥하더라고요.

 

쓰레기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던백사장에서

예쁜 조개껍데기를 이렇게나 많이 찾았네.

, 쓰레기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내가 쓰레기만 보려고 해서

쓰레기밖에 안 보였구나.

내가 생각 없이 걸었던 백사장 아래에

이렇게 예쁘고 아기자기한 조개 껍데기들이 숨어 있었는데..

내가 이것들을 보려고 하지 않아서안 보였던 거구나.

 

보려고 해야 -> 보이기 시작한다는 책속의 구절이

드디어 가슴으로이해가 되기 시작하더라구요.

 

제가 카페를 들어갔다가 나온 사이에

광안리의 백사장이 물리적으로 바뀐 걸까요?

아니요.

모든 것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마음의 초점만 바꿨을 뿐인데

물리적으로 똑같은광안리에서

완전히 다른광안리를 경험한 거예요.

 

물론 조개껍데기를 찾는 동안에도

간간이 쓰레기가 보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그 쓰레기가 이전만큼 거슬리지가 않더라구요.

 

쓰레기에 강하게 집중할 때는

쓰레기가 너무 거슬렸는데

예쁜 조개껍질에 집중하기 시작하니까

쓰레기는 그냥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무언가쯤으로 여겨졌어요.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똑같습니다.

 

지금 내 주변에 가득한 정보는

내가 집중하기로 선택한것들의 총합입니다.

 

그러면은 이런 궁금증이 드실 거예요

나는 지금 나한테 도움이 되는 정보들로 둘러싸여 있나?’

내 알고리즘에 가득한 정보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판단 기준을 알려드릴게요.

 

그건 바로

1. 표면적이고 논리적인 옳고 그름 따지기를 초월해서

2. 그 논리 속에 녹아있는 주된 감정을 포착하는 겁니다

3. 그리고 그 감정이 최고 버전의 나로서 존재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감정인지를 판단해보는 거예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간단한 예시를 들어볼게요.

여기 쏠쏠이와 미미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유명인의 불륜 소식

그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접하게 됐습니다.

쏠쏠이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유명인의 불륜이 잘못인지 아닌지를 평가하고

네티즌들의 추측과 평가들을 자세히 읽어보면서

그 문제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자꾸만 사람들의 반응을 찾아봅니다.

 

반면에 미미는

유명인의 불륜 소식과

그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접하자마자

표면적인 옳고그름 따지기를 초월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속에 녹아있는

주된 감정을 포착합니다.

 

그래, 누군가가 불륜을 했구만

네티즌들은 질타를 하고 있고

그런데 이 정보 전체에 녹아있는 주된 감정은 뭐지?

[증오, 혐오, 분노]구나

증오심, 혐오감, 분노는

내가 최고 버전의 나로서 존재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감정들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니네.

그럼, 이 정보는 제낀다.’

 

그렇게 미미는

표면적 옳고 그름을 따지고 드는 싸움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전체 양상에 녹아있는 본질적 감정

최고 버전의 나로서 존재하는 데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 정보로부터 현명하게 거리를 둡니다.

 

혼란스러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의 에너지를 지혜롭게 지키는 방법은

바로 미미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옳고 그름

양극단의 싸움판을 초월해서

그 속에 들어있는 알맹이적인 감정에 주목하고

그 감정 상태가 나의 에너지를 고양하는 데에

도움이되는가 아닌가를 판단해 보는 거예요.

 

아니.. 그러면

부정적 감정이 담긴 소식은 아예 보지 말라는 거야?

부정적 감정이 담겨있어도

유익한 소식이 있을 수도 있잖아라는 의문이 드실 거예요.

 

그게 당연합니다.

내가 되고자 하는 나로서 존재하는 데에

증오, 혐오, 분노같은 감정이 [도움이 된다면]

그 정보를 수용하면 됩니다.

사회적 억압에 대해서 반발하며 울분을 터뜨리는 힙합 가수나

사회 풍자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

고질적인 편견을 깨고자 하는 예술가

사회 문제를 비평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에게는

분노, 증오, 반발심 등의 감정들이 오히려 필수적입니다.

그 감정을 원료로 삼아야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분노를 원동력으로 삼아서

자신의 고유성을 발현하는 존재는

우주 전체의 입장에서 꼭 필요한 고마운 존재입니다.

 

하지만

내가 되고자 하는 나로서 존재하는 데에

분노, 증오등의 감정이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면

그 정보로부터 거리를 둬야 합니다.

 

-평화주의 시위를 개최하는 사람들은

오직 평화, 사랑, 포용에 대한 정보만을 흡수하면서

사랑의 현현, 평화의 현신으로서 존재해 주어야 하고

-사회의 지배적인 집단의식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사람들은

분노, 증오, 반발심을 원동력 삼아서

사회 현상을 날카롭게 꼬집고 비판하는 행동을 해줘야 합니다.

 

선악 개념을 떠나서

우주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는

양극단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해줘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즉 분노 자체가 잘못된감정이라는 게 아니에요.

분노는 어떤 사람의 여정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강력한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성이 담긴 정보를 무조건적으로 멀리할 게 아니라

나라는 고유한 영혼의 여정에

부정성의 원료가 도움이 될지 아닐지를

판단해야 되는 거예요.

 

판단 기준을

외부적 옳고 그름에서 -> “로 옮겨야 되는 겁니다.

이 표면적인 논리 속에 녹아있는 감정이

최고 버전의 나로서 존재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감정들인가?”

대답이 그렇다라면, 그 정보를 흡수하면 되고

대답이 아니오라면 현명하게 거리두기를 시전해야 합니다.

 

 

영상의 핵심만 간략하게 말씀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보려고 해야 -> 보이기 시작한다.

광안리 조개껍데기를 기억하자.

 

내가 바람직한 정보에 둘러싸여 있는가를

판단하는 방법은

표면적 논리 속에 녹아있는 알맹이적 감정을 캐치하고

그 감정이 최고 버전의 나로서존재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를 체크하는 것이다.

 

우주, 우리의 삶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는

쓰레기와 예쁜 조개껍데기가 공존하고 있다.

쓰레기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예쁜 조개껍데기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두 개가 유기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어떤 영혼에게는

쓰레기가 필수적인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즉 쓰레기가 나쁜것이 아니고

예쁜 조개껍데기가 좋은것이 아니다.

 

내가 지향하는 나로서 존재하는 데에

부정성이 도움이 된다면

부정성을 취하고

부정성이 도움되지 않는다면

적절히 거리를 두면 될 뿐이다.

 

초점을 외부적 옳고 그름에서 -> ‘로 옮기자

정답은 언제나 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분별력을 발휘해서

나의 고유성과 결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선택하자

 

 

여러분

는 어떤 정보에 둘러싸여 있나요?

그 정보들 속에 녹아있는 주된 감정

내가 최고 버전의 나로서 존재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감정들인가요?

한번 차분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모든 또 다른 나들이

나 자신을 최고 버전의 나로 빚어주는정보들에 둘러싸인 채로

봄꽃처럼 나의 고유성을 꽃피우셨으면 좋겠습니다.

 

긍정성을 통해서 빛나게 되는 영혼도

부정성을 통해서 빛나게 되는 영혼도

모두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