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신박한깨달음] 반드시 신에게 응답받는 기도의 작동 원리|잃어버린 기도의 비밀

Buddhastudy 2024. 6. 4. 19:06

 

 

인류의 95%가 우주를 창조한 신비로운 힘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그것에 말을 걸기 위해 기도를 한다.

 

우리는 분명 간절하고 끊임없이 기도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컴퓨터 지질학자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인물 1007년 연속 선정된 그렉 브레이드는

티베트 불교의 지혜부터 양자물리학까지

종교와 과학의 경계를 허물고

위대한 기도의 힘에 관해 이야기한다.

 

오늘은 반드시 응답받는 기도의 작동 원리를 담은 책,

<잃어버린 기도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언어

 

우리가 인식하는 일상의 저편에

우리를 위로하는 신비로운 존재, 어떤 힘이 실재한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그것을 믿고 그것에게 기도한다.

 

20세기 들어 현대 과학은

신의 영이 일반적인 에너지 형태와는

다른 에너지장이라는 것을 재발견한 듯하다.

 

양자물리학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막스 플랑크는

이 에너지장의 존재가

물질세계를 책임지는 위대한 지성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힘 뒤에 의식과 지성을 가진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상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마음이 바로 모든 물질의 매트릭스라고 결론짓는다.

 

고대인들이 암시했듯이 이 에너지장은

인간의 감정에 반응한다.

과학과 종교가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든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를 끌어당기게 만들고

더 높은 힘에 이어주는 거대한 자석 같은 힘이

어떤 존재가 어딘가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힘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은

유의미하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그 힘과 소통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뜻한다.

 

2000년에 전 세계적으로 실시한 인구조사는

유사 이래 가장 정확한 조사로 인정받는데

이 연구에서 매우 흥미로운 통계 결과가 나왔다.

 

세계 인구의 95퍼센트 이상이

초자연적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며

그중에서 절반 이상은 그 힘을 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무엇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초자연적 힘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언어는

우리 모두의 일반적인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느낌과 감정의 경험이다.

느낌과 감정을 기도의 언어로 사용하기 위한 열쇠는

기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다.

 

 

--의식이 바로 창조자다

 

이제까지 인정되지 않았던 에너지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 익숙한 힘은

전기나 좌석의 성질을 띠지 않지만

만물을 아우르는 듯한 통일장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

혹은 다른 물건 사이의 공간을 보면서

비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거기에는 에너지장이 존재한다.

 

현대 과학에서 에너지장의 존재가 인정됨에 따라

우리는 영적 지혜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언어와 문맥을 갖추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고대인들이 천국이라고 언급한 곳이

바로 이 에너지장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곳은 죽을 때 혼이 가는 곳이고

잠을 잘 때 꿈꾸는 곳이며

의식의 고향이다.

 

고대의 전통에 따르면 이 에너지장은

세상 만물을 서로 연결할 뿐 아니라

일종의 거울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것은 우리의 내적인 경험을 비추는 외적인 거울이다.

에너지장은 반짝이면서

맥동하는 살아있는 실체로서

온갖 종류의 메커니즘에 피드백을 한다.

 

에너지장을 통해 우주 만물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감정과 생각을

우리의 관계, , 건강의 형태로 반영한다.

 

신의 마음이 이해하는 언어는 감정이다.

에너지장은 우리의 감정을 특징적으로 삶의 경험에 투영할 뿐이다.

 

고대인들은 전문 용어나 복잡한 과학 실험 없이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 같은 심오한 지혜에 따르면

우리의 건강과 평화에 대한 책임은

우연한 사건과 악운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식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인슈타인의 동료였던 물리학자 존 휠러는

우리는 변화하는 우주의 일부이며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우주의 미세한 조각이다라고 했다.

 

휠러의 발언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엄청나다.

그는 고대의 전통이 수천 년 전에 했던 말을

과학의 언어로 바꿔 반복한 것이다.

의식이 바로 창조자라고.

 

 

--마음의 상처가 우리를 죽인다

 

의사들은 인간의 몸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적적인 능력이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인간의 몸에는 대략 50조 개의 세포가 존재하는데

대부분의 세포가 평생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스스로를 고치고 재생하는 능력을 갖췄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안에서부터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대체하고 재건하고 있는 것이다.

인체의 장기와 뼈, 그 밖의 조직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대부분이 수소, 질소, 산소, 탄소라는 4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4가지 원소는 우주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물질이다.

말하자면 우리 인간은 문자 그대로

별과 은하를 구성하는 물질과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건물에 비유한다면

우리 몸을 짓고, 수리하는 데 필요한 자재가 모자랄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죽는 것일까?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현대의 연구들은

생명체가 스스로 자기 신체의 소멸을 이끌어간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마음의 상처는 심장질환의 원인으로 규정되는

긴장, 염증, 동맥경화 등의 신체 상태를 유발한다고 한다.

 

듀크대학의 의학 교수 제임스 블루먼솔은

마음과 신체의 관계를 밝혀냈다.

그는 두려움과 좌절감, 불안, 실망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오랫동안 경험하면

심장에 악영향이 미치고 생명이 위태로워진다고 보았다.

 

흔히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실제로 상실과 좌절에 대한 극심한 감정적 반응은

치명적인 심장마비를 유발할 수 있다.

 

대개 100살을 넘기지 못하는 현대인과 달리

많은 고대인이 수백 년을 살았다.

 

예를 들어

아담은 930년을 살았고, 노아는 950년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노아는 대홍수 이후에도 무려 350년을 더 살았는데

600살의 나이에도 튼튼한 방주를 건조할 정도로

건강하고 활기가 넘쳤다는 뜻이다.

 

더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면

지금의 인류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우리는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영혼들이다.

몸은 우주의 원소로 만들어졌지만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영혼이다.

우리의 영혼이 상처를 받으면

그 고통은 몸으로 전이되어 각 세포로 스며든다.

 

그렇다면 인간의 일반적인 수명으로 여겨지는 100년이라는 시간은

치유되지 않은 영혼의 상처를

몸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라고 보면 어떨까?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때

고통을 느낀다고 말한다.

상실과 배신으로 가득한 일생은

심장마저 무력화시킬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게 아닐까.

 

 

--아름다움은 변화의 촉매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면

상처의 경험을 오히려

우리를 돕는 새로운 경험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먼저

상처를 인정하고

상처가 우리 몸을 통과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아름다움은 자연의 힘 가운데 가장 기이한 힘을 가진 듯하다.

아름다움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때까지는 휴면 상태로 있다.

 

아름다움은 가슴과 머리와 영혼으로 하는 경험이다.

날마다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은 모든 사물 안에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쓰라린 상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힘을 찾아

영혼 깊숙이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선현들의 위대한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지혜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마음에 아름답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이다.

세상 이치를 깨닫는 데는

현대의 위대한 스승들의 삶도 도움이 된다.

 

테레사 수녀 같은 현인들은

어떤 설명이나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도

아름다움이 그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삶은 아름다움을 찾아낼 기회이자

찾아낸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울 기회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체험하는 아름다움은

세상에 투영된 것들의 이미지이다.

 

우리의 내적 믿음이

외부의 세계가 된다는 양자적 통찰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어떤 기술이 이보다 더

간단하고 강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늘 기도를 하고 있다

 

기도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감정으로서

우리의 내부에 존재한다.

저자가 티베트에서 만난 주지스님은

기도는 감정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서구에서는 오래전에 잊힌

시대를 초월한 진리를 가르쳐 주었다.

 

느낌과 기도는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 성취해야 하는 과제로 남겨졌다.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고

때로는 완전히 무시하는 문화 속에서 살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의식과 느낌의 우주 컴퓨터를

운영 매뉴얼 없이 사용해 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사제와 권력자들까지도

감정이 기도에 미치는 힘을 잊기 시작했다.

기도는 말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은 말을 하면

기도를 하는 거라고 믿는다.

오래전 누군가에 의해 짜여

오늘날 공식처럼 여겨지는 기도문이

마음속에 기도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감정이 곧 기도이고

우리가 항상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늘 기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창조의 거울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치유 혹은 질병의 신호, 평화 혹은 전쟁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것, 즉 기도하는 것이

신의 마음에 의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