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나탐 Natam] 신은 무엇인가 깨달음은 무엇인가? 즉시 깨닫는 법, 신이 되는 법, ‘나는 무엇인가’

Buddhastudy 2024. 6. 17. 19:58

 

 

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신은 사실 신이라고는 정의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명해야 하니까

저는 신, 참나, 이것 등의 표현을 쓰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 참나, 진아, 신성, 하나님, 부처님, 순수의식, 절대의식, 깨달음, 근원, 절대, 땡땡땡

뭐라고 표현하든 상관은 없어요.

 

이것은 언어로 완벽하게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용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각자 원하는 대로 표현하시면 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신이 무엇인지,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신이 되는 법같은 말로 깨닫는 법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여러분이 이 영상을 보면서

즉각 신이 되는 경험,

즉각 깨닫는 경험을 해보실 수 있도록 설명드릴 겁니다.

 

--

신이 되는 법, 또는 참나 자리에 있는 법, 또는 깨달음을 얻는 법

뭘까요?

결론만 말하면 사실 방법이랄 게 딱히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 참나, 깨달음, 뭐라고 표현하든

여러분은 지금 이 순간

바로 그렇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모두 신이자, 참나이자, 부처이자, 깨달음으로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여러분은 이미 숨을 쉬어 왔고, 항상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근데 숨을 쉬는 법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거죠.

숨을 쉬는 법을 굳이 배울 필요가 있나요?

방법을 찾고 말고 할 것이 없이

숨을 쉼은 지금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이 되는 법, 참나 자리에 있는 법, 깨닫는 법은

굳이 그 방법을 찾고 말고 할 것 없이

여러분은 지금 그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는 것을 자각하느냐? 자각하지 못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비유하자면

어느 누구나 지금 똑같이 숨을 쉬고 살아가듯이

어느 누구나 지금 똑같이 신으로 존재하고

참나 자리에 있고, 깨달음으로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는 숨을 쉬면서

숨을 쉬고 있구나의식하고

누군가는 숨을 쉬면서

숨을 쉬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죠.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존재함으로 있으면서 그 자리를 자각하고

누군가는 존재함으로 있으면서 그 자리를 자각하지 못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항상 숨을 쉬지만

숨을 쉬고 있음을 의식할 때도 있고, 의식하지 못할 때도 있죠.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항상 존재함의 자리에 있지만

그 자리를 자각할 때도 있고, 자각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 참나, 깨달음, 뭐라고 부르든

이것 자체는 인식하지도 않고, 인식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경험이나 체험, 상태, 또는 자리가 아니에요.

경험이나 체험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일어난다고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설명해야 하니까

에고의 관점에서 이를

신이 되는 경험, 참나 상태, 참나 자리 등으로 표현할게요.

 

여러분이 이 영상을 보고 듣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에게는 신이자, 참나이자, 깨달음의 자리에 있는 경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그렇게 있어요.

이것은 결코 새롭거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이 한 번도 없던 적이 없고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숨을 쉬는 경험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던 것이랑 비슷해요.

 

여러분이 참나가 되려고 하거나

참나 상태에 도달하려고 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이미 그렇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숨을 쉬고 있음은

지금 여기 뻔하게 드러나 있고

지금 여기서 바로 찾아지는 거죠.

 

마찬가지로 진리는

지금 여기 뻔하게 드러나 있고

지금 여기서 바로 찾아지는 것입니다.

 

아니 인간은 인간일 뿐이지 신이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임?

그리고 이 몸을 가진 내가, 여기 이렇게 생생하게 존재하는데

내가 어디 또 따로 있다는 거임?

나는 그런 거 모르겠음이라고 한다면

모르겠다고 하는 순간조차도

여러분은 신이자 참나이자 깨달음의 자리에 있습니다.

 

난 그런 거 모르겠음이라고 하는 순간에도

숨을 쉬고 있잖아요.

다만 숨을 쉬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듯이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 자리를 자각하지 못할 뿐인 겁니다.

 

여러분이 이게 뭔지를 모르겠다면

이거를 신, 참나, 깨달음, 뭐라고 표현하든

여러분은 언제나 그것이었고

시작도 끝도 없이 그것으로 존재하지만

단지 그렇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진짜의 나로 존재하지만

단지 에고가 아직 진짜의 나를 알아보지 못한 거예요.

 

저의 이런 설명을 이해하려고 할 필요도 없이

바로 알아듣는 분은

에고의 관점에서 진짜의 나를 알아본 것입니다.

 

하지만 알아봤다고 해서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이것을 정말 알아본 분이라면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라고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해서

나는 숨을 쉼을 얻었다라고 할 수 없는 것과도 같아요.

 

숨을 쉼은 갑자기 얻어지거나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숨을 쉼은 누구에게나 지금 일어납니다.

깨달음은 갑자기 얻어지거나 생기는 것이 아니에요.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나 지금 깨달음으로 있습니다.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하는 것은 에고(마음)이고,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하는 에고는

언제든 다시 진짜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기도 해요.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구나라고 자각한 사람이

1초도 안 돼서

숨을 쉬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숨을 쉼을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숨을 쉼은 항상 있듯이

깨달음은 항상 지금 있는 것이지

갑자기 얻어지거나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내용이 알쏭달쏭하고 궁금하다면

진짜의 나를 알아보는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말장난 하나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네싶다면

지금 이 순간도 진짜의 나로 있지만

즉 깨달음으로 있지만

아직 진짜의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의 본질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

신이나 참나가 어디 멀리 있는 줄 알거나

깨달음이 어떤 수준에 도달해야 얻어지는 것인 줄 알게 됩니다.

심지어 특정한 사람만

신과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게 되기도 해요.

 

숨을 쉼이 어디를 가야 찾을 수 있는 것인가요?

숨을 쉼이 어떤 수준이 돼야만 일어나나요?

숨을 쉼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나요?

숨을 쉼은 지금 여기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고

지금 바로 자각이 되는 것입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마치 안경을 쓴 사람이

안경이 어디 있지?’라고 묻는 것과 같고요.

참나 자리는 어딘가?’ 라는 질문은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는 사람이

내 핸드폰 어딨지?’라고 묻는 것과도 같습니다.

깨달음은 어떻게 얻는가?’라는 질문은

핸드폰을 들고 있는 사람이

핸드폰을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지?’라고 묻는 것과도 같습니다.

핸드폰을 든 채로 핸드폰에 대해서 묻는다면

핸드폰은 지금 당신에게 있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 다 이긴 해요.

 

그렇기에 신은 무엇인가요?”

참나는 무엇인가요?”

깨달음은 무엇인가요

나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는

내가 있음, 존재함

그것만이 있고, 그것만이 다입니다, 라는 답을 드릴 수밖에 없어요.

 

참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고

깨달음은 어떻게 얻나요?”라는 질문에는

당신은 지금 그렇게 있습니다.

지금 그 존재함의 자리에 있습니다라는 답을 드릴 수밖에 없어요.

 

사실 이 주제를 다루는 거는

이런 상황이랑 비슷해요.

 

A라는 사람이 숨을 쉬고 있으면서

B라는 사람에게

숨은 어떻게 하면 쉴 수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B

당신은 지금 숨을 쉬고 있습니다라고 답을 했어요.

근데 A

아니 그게 무슨 말이죠?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떻게 숨을 쉬냐고요라고 다시 묻습니다.

 

이에 BA에게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그냥 간단하게

당신은 지금 숨을 쉬고 있습니다하면 끝날 문제를 갖다가

코 밑에 손을 갖다 대보세요.

배에 손을 올려보세요.

배가 움직이는 게 느껴지나요?

당신이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겠나요?”라고 하는 상황인 거죠.

 

이처럼 신, 참나, 깨달음 뭐라 표현하든

이것은 지금 바로 자각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아니 언제나 이렇게 뻔하게 있었고

바로 찾아지는 것이었는데

그동안 몰라봤다니 어이가 없고 황당스럽기도 하고

언제나 바로 여기 이렇게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펑펑 쏟아질 만큼 감격스럽고 경이롭기도 하죠.

하지만 그만큼 어찌 보면 평생을 가도 알지 못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기도 해요.

 

너무 쉽고 간단해서

너무 어렵고 복잡해져 버린 거고

너무나도 찾기를 원하다 보니까

너무나도 찾기가 어려워져 버린 거죠.

 

한 걸음이면 가는 거리를

천리를 돌아서 가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직접 자각하지 않는 이상은

제 설명이 마치 수수께끼나 스무고개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여러분 내면은 철석같이 알아들으실 거예요.

 

여러분이 본래 아는 것이자

언제나 경험해 왔던 것을

제 입을 통해서 다시 듣는 것뿐이니까요.

 

 

--이것은 무엇을 하든 경험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것은 경험이나 상태가 아니지만

언어로 설명해야 하니까 표현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것은 어디를 가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방법으로 찾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랜 기간 도를 닦아야만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열심히 드린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깊게 공부를 해야만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명상을 해야만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신비 체험을 해야만 알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이것은

도를 닦거나 기도를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명상이나 신비 체험을 하다가 자각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도를 닦지 않거나 기도를 하지 않거나 공부를 하지 않거나

명상이나 신비 체험을 하지 않아도

자각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숨을 쉬는 경험이 언제 일어나는지를 보면

이해하기 쉬워요.

우리가 내부에 집중하거나 조용한 환경에 있을 때

숨을 쉬고 있음을 자각하기가 쉽듯이

이것도 내면에 집중하거나 고요할 때 자각하기가 쉬워집니다.

하지만 내면에 집중하는 것만이, 명상을 하는 것만이, 도를 닦는 것만이

이것을 경험하게 한다고는 할 수 없어요.

 

조용할 때 숨소리가 더 잘 들리듯이

마음과 주변이 고요할 때

이것을 자각하기가 좀 더 쉽다는 것뿐이지

마음과 주변이 어지럽고 시끄럽다고 해도

숨을 쉬고 있음은 자각할 수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이것도

내면의 상태나 주변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자각되는 것입니다.

 

숨을 쉬고 있음은

출퇴근 시간에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있든

콘서트장에서 사람들과 떼창을 하든

상관없이, 계속 경험되는 것이고 자각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내가 존재함은

시끄러운 클럽에서 춤을 추든

롤러코스터를 타며 소리를 지르든

상관없이, 경험되는 것이고 자각되는 것입니다.

 

숨을 쉬고 있음은

밥을 먹으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변을 보면서도, 걸어가면서도

사람들과 말을 하면서도,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생각을 하면서도, 감정을 느끼면서도

음악을 들으면서도, 화장을 하면서도, 노래를 부르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요리를 하면서도, 성관계를 하면서도, 기차를 타고 가면서도, 아이를 안아주면서도

집에 있으면서도, 학교에 있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꿈을 꾸면서도 일어납니다.

 

숨을 쉬고 있음은

게임을 하면서도, 술을 마시면서도 tv를 보면서도, 넘어져 다치면서도,

키보드 배틀을 뜨면서도, 누군가에게 화를 내면서도, 무서워서 떨면서도

외로워하면서도, 수치스러운 짓을 하면서도, 창피하면서도

마음이 힘들어 엉엉 울면서도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저 존재함은

방을 어지럽히든, 청소를 하든, 바쁘게 살든, 뒹굴거리든, 수치심을 억누르든

수치심을 느껴 해소하든, 엉엉 울든, 웃든, 집착으로 괴로워하든

집착을 놓고 자유로워하든 상관없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경건하고, 긍정적이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만 접할 수 있고

올바른 행동을 해야만 접할 수 있다고 알고 있거나

마음이 어지러우면 접할 수 없고

불결하거나, 해로운 생각을 하거나, 죄스럽거나, 수치스럽거나,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면

접할 수 없다고 알고 있다면 오산입니다.

 

올바른 행동을 해야만 숨을 쉴 수 있고

잘못된 행동을 하면 숨을 쉴 수 없나요?

그런 것과 상관없이 숨을 쉬고 있음은 일어나죠.

 

아바타가 무슨 생각, 감정, , 행동을 하든

어떤 상황이 펼쳐지든 상관없이

이것은 지금 그저 내가 존재함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건적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에요.

숨을 쉼이 조건적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듯이요.

 

우리 마음, 즉 에고가 조건을 달고 분별해서 보는 것이지

이것 자체는 아무 조건도 분별도 없이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그저 사랑 그 자체로 있을 뿐입니다.

 

깨끗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신이자 참나로 있고

더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도 신이자 참나로 있습니다.

 

더러운 것은 신이나 참나가 아니고

깨끗한 것만 신이고 참나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나로 존재함의 자리에서는

깨끗하다, 더럽다가 없어요.

깨끗하다는 인식이나 더럽다는 인식이 없습니다.

즉 깨끗함이나 더러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나로 존재함의 자리에서는

옳다 잘못했다가 없습니다.

즉 옳음이나 잘못됨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에고가 더럽다, 깨끗하다, 옳다, 잘못했다 라고 분별할 뿐이고,

에고가 그런 분별을 하는 와중에도

여러분은 신이자 참나이자 깨달음으로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든 것을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보는 경험이

보고 있지만, 본다고 할 수 없는 그 경험이

단 한순간도 빠짐없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 참나 자리, 깨달음 뭐라고 표현하든

여러분은 항상 그 존재함의 자리에 있어요.

지금 바로 그렇게 있잖아요.

단지 그렇다는 것을 자극하지 못할 뿐인 겁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경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이든 어떤 삶을 살아왔든, 어떻게 살고 있든

평소에 돌을 닦든 안 닦든, 신을 가까이하든 멀리하든

사람을 살리든 해치든

아바타가 무생물이든, 식물이든, 곤충이든, 동물이든, 외계인이든

물질 자아이든, 꿈 자아이든 상관없이

그저 존재함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의 계시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것은 뭔가를 절실하게 믿은 사람에게만 경험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수준에 도달한 사람만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똑같이 숨을 쉬듯이

누구나 다 똑같이 신이자 참나이자 깨달음으로 있습니다.

 

나는 신이고 너는 신이 아니고

나는 깨달았고 너는 못 깨달았다라고 한다면

매일 숨을 쉬고 살아가는 대상을 향해서

나는 숨을 쉬고 있는데 너는 숨을 쉬지 않고 있네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와 같은 거에요.

 

아기도 어른도, 곤충도, 동물도

피해받았다고 분노하는 사람도, 가해했다고 죄스러워하는 사람도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고통에서 벗어난 사람도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는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도, 나는 못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도

다 신이자 참나이자 깨달음으로 있습니다.

 

무슨 아바타를 가지고 무슨 역할놀이를 하든 상관없이

언제나 내가 존재함으로 있을 뿐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어떤 믿음, 기도, 바른 행실, 노력, 수련 등의

특별한 뭔가를 한 사람만이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

오산입니다.

 

우리가 숨쉬기를 경험하고

,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구나라고 자각하는 데

뭔가를 절실하게 믿어야 하고

어떤 수준이 되어야 하고

어떤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하나요?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특정한 행위나 믿음 혹은 노력을 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본질이자 신에 대해서 무지한 것입니다.

 

물론 무지해지는 것 역시

역할극 내용 중에 하나이긴 해요.

만약에 뭔가를 해내야만, 어떤 수준에 도달해야만,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신을 만날 수 있거나, 참나가 될 수 있거나,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 또한 마음이에요.

그 또한 프로그램 된 게임(현실) 스토리 중에 하나입니다.

 

가치 없고, 무능하고, 부족한 자아로서 억누른 수치와 죄책감,

그로 인해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표면 의식에 뭔가를 해내야 할 것 같고

뭔가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을 올려보내게 됩니다.

 

 

--이것은 언제든 지금 바로 경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 선물 기다리는 것처럼

선한 행동을 해야만 나타나거나

특정한 날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자아와는 동떨어져서

저 멀리 하늘 위나 우주 너머에

어떤 특정한 위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독립적으로 떨어진 채

내 아바타나 천지를 지켜보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죽고 난 이후에 천국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어딘가에 가야만 접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것은 죽음 이후에도 경험되는 것이긴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도 내내 경험되는 것이며

지금 이 순간 경험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대단한 것도, 특별한 것도, 신비한 것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대단하게 보거나 이상하게 본다면

숨을 쉬는 경험을

대단하게 보거나 이상하게 보는 것이랑 같아요.

 

만약에 내가 이것을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는

거대하고 신비한 존재,

또는 내 아바타를 조종하거나

천지를 다스리는 힘을 가진 존재 같은 것으로

대상화하게 된다면

그 또한 마음이 만들어낸 것으로

내 마음이 그런 것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것뿐입니다.

 

무의식 속에 억눌린 상대를 상처 준 죄책감과 수치심은

그것을 나를 지켜보는 존재처럼 떠올리게 하고

무의식 속에 억눌린 약자로서 상대를 가해하고 싶은 분노와 수치심은

그것을 나보다 대단하고 힘을 가진 존재처럼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이 어떤 이미지로 그려지든

마음이 그런 것을 떠올리는 거예요.

이것 자체는 인식을 하지도, 인식이 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형상 짓거나 이미지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공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치화 되거나 대상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설명을 해야 하니까

지금 여기라는 표현을 쓸 뿐이에요.

 

만약에 신의 음성을 듣는 체험이 있었거나

프로젝션으로 신적인 존재를 만난 체험이 있었다면

이것은 실제로 신적인 존재를 접한 것이 아니라

그 또한 내 마음이 만들어낸

꿈이자 허상의 현실을 경험한 것입니다.

주인공이 신적인 존재를 만나는 내용의 영화를 본 것과도 같습니다.

 

내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 체험이 현실로 펼쳐졌을 뿐이에요.

마치 영화 장면에 빠져 있을 때는

주인공이 겪는 세상이 진짜 같지만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듯이

여러분이 현실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체험하든

나타나서 인식되는 것은 모두 그저 영화이자 꿈 같은 것으로 실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진짜처럼 생생하게 겪는 꿈을 꾸는 것인데,

꿈을 꾸는 와중에도 여러분은 내가 그저 존재함으로 있습니다.

대체 뭐가 존재한다는 거지? 뭐가 자각된다는 거지?”

아직도 수수께끼 같죠?

 

 

--존재함의 자리 즉각 자각해보기

 

이번에는 여러분이 이것을 직접 자각해 보실 수 있도록 설명드려볼게요.

여러분이 이 영상을 보고 계십니다.

제 말도 듣고 계시죠?

여러분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방금까지 제 말을 듣고 있었지만

듣고 있다는 인식 없이 듣고 있었습니다.

저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말을 한다는 인식 없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듣고 있었지만

듣는다는 인식이 없었기에

여러분에게 들음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말을 하고 있었지만

말한다하는 인식이 없었기에

저에게 말함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듣는다는 인식이 없고 말한다는 인식이 없습니다.

들림이 없고 말함도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는 듣는 주체와 말하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들리는 것, 말해지는 것

역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어디에도

듣는 자와 말하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예요.

 

여러분은 방금까지 이 영상을 보고 있었지만

보고 있다는 인식 없이 보고 있었어요.

그 순간

보고 있었지만 본다는 인식이 없었기에

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즉 그 순간 봄과 보임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방금 영상을 보고 있지만

본다는 인식 없이 보고 있던 그 순간

여러분 아바타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 영상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뭔 소리야?

지금 분명 내가 이렇게 영상을 보고 있잖아.

방금까지도 분명 보고 있었고

이 눈을 가진 내가 이 영상을 보고 있고

내 눈앞에 이렇게 보이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만약 여러분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조차도

생각을 한다는 인식 없이 생각이 일어나 있어요.

 

즉 생각이 일어나는 그 순간에

생각을 한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에

생각함[생각하는 체험, 생각하는 현실]’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이 일어날 뿐, 생각하는 주체가 없는 겁니다.

생각하는 자가 없고, 생각되는 것이 없어요.

생각을 하는 그 순간

생각한다는 인식이 없기에

생각을 함’ ‘생각이 일어남은 존재하지 않아요.

 

생각하는 주체를 잘 찾아보세요.

지금 누가 생각하고 있는지

잘 관찰해 보세요.

그 생각의 주체가 있는지.

 

몇 가지 더 해볼까요?

만약 여러분이 핸드폰을 들고 영상을 시청 중이시라면

방금까지 핸드폰을 들고 있었지만

핸드폰을 들고 있다는 인식 없이 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을 잘 살펴보면

무엇을 들고 있다는 인식이 없었고요.

무엇이 들려 있다는 인식이 없었습니다.

들고 있음들려 있음은 일어난 적이 없어요.

 

드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고

들린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여러분이 핸드폰을 들고 있다는 인식 없이

핸드폰을 들고 있던 그 순간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개체)은 존재하지 않았고요.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개체)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의자에 앉아서 이 영상을 보고 계시다면

방금까지 의자에 앉아 있다는 인식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앉아 있다는 인식이 없었고

의자가 있음에 대한 인식이 없었습니다.

 

즉 그 순간에

앉아 있는 자와 의자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궁금하시다면

궁금해한다는 인식 없이 궁금해합니다.

즉 그 순간

궁금해하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고

궁금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신다면

알아듣고 있지만, ‘알아 듣는다는 인식 없이 알아듣고 있죠.

알아들음이 없습니다.

즉 여기에는

알아듣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고

알아듣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방금

또 본다는 인식 없이 보고 계셨고

듣는다는 인식 없이 듣고 계셨어요.

그 순간에 보는 자, 듣는 자, 들리는 것 보이는 것은 없었습니다.

 

세상이 펼쳐져 있지만

여기엔 행위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해지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식하는 것인식되는 것도 없습니다.

 

세상이 펼쳐져 있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에

세상이 펼쳐져 있지 않습니다.

 

에고 관점에서의 이것은

아무것도 없다혹은 모든 것이 하나(분리된 개체 없음)로 통째로 텅 비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다혹은 텅 비어 있다라고도 인식할 수 없기에

아무것도 없다혹은 텅 비어 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럼 결국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만이 존재하나요?

여러분이 방금 본다’ ‘들린다는 인식 없이

보고 있고 듣고 있던 그 순간에

여러분에게는 보는 자듣는 자보이는 것들리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럼 그 순간에 무엇만이 있었나요?

는 분명 존재하고 있었죠?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 바로 딱 하나 있습니다.

 

는 분명 존재합니다.

(에고는 이를 신, 참나, 깨달음 등으로 표현)

 

지금 여기 내가 존재함(내가 있다)’만이 있습니다.

 

시청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