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10] 소리가 의지하고 있는 침묵의 배경자리 / 피올라 현대선 3강 "모든 일들은 지금 이자리에서 다 일어난다" 1회

Buddhastudy 2024. 6. 25. 18:54

 

 

오늘 제목은

모든 일은 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다라는

좀 요상한 제목으로 시작을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강의를 한 번이라도 다 들어보신 분들이라

식스존 명상이나 해븐존 과정에서

*!

징소리 명상 다 하셨죠?

다 들어보셨죠?

 

그럼 징소리 명상에서는

*!

이거를 의지해서

이게 이 소리가 일어나기 전이나 후에 있는

사실은 동시에 같이 있는

원래 있었던 침묵의 자리를

우리가 자각하게 하는 명상법을 이용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워낙 살아오면서

매 순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된다라고 하는

아니면 누가 코 베갈지 모르니까

그런 생활습관 속에서 살다 보니까

 

*!

요 소리만 따라다니게 됐어요.

이 소리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배후에는 관심이 없어지게 된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래서 우리 피올라 마음 학교는

현대선, 현대 명상을 지향해요.

그러니까 현대선, 현대 명상에서 징소리 명상을 왜 얘기하냐면

여러분들이 절에 가거나 또는 교회나 성당 같은 데 가보면

성자들이 계시고 성자 뒤에 보면

아우라 같은 동그라미가 하나 있죠?

머리 뒤에다 이렇게 그려놨잖아요.

 

근데 보통 사람은 그냥 그걸 아우라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사실은 뭐냐 하면

그 동그라미가

바로 지금

*!

이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이 배후와 하나 돼 있다는 얘기예요.

 

그 배후가 뭔데?

여러분 그게 궁금하시죠?

이거를 여러분들이 더 정확히 정견하실수록 여러분이 깨어나고

그리고 삶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것을 절에 가면

동그라미 ..라고 그래요.

절에 가면 동그라미 그려놨죠. 동그라미.

 

이걸 다른 말로 말하면

하나님이고, 부처님이고, 진리고, 그리고 성품이고, 본래면목이고, 참나예요.

 

그런데 이 문제는

이 동그라미 자리를 여러분들이 자각하고 느껴보려고 하는 순간

여러분들은 벌써 번뇌 망상에 떨어지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 하면

자각하고 느껴보려고 하는 순간

그게 벌써 생각 아니면 느낌이야.

 

그렇기 때문에 이 징소리뿐만 아니라

그 생각도 일종의 화살표인 거예요.

 

다시 말하면 뭐냐면

생각도 일종의 징소리야. 소리 안 나는 징소리.

그 생각도 일종의 뭔가가 이렇게 움직인 거야.

소리가 아닌 거죠.

 

예를 들어

징소리 명상은 소리를 이용하는 거지만

제가 이렇게 했다 그러면

이건 이것도 징소리 명상인 거예요.

이거는 징소리가 아니라 동작 명상인 거죠.

동작을 이용해서 이 자리를 보여주는 거예요.

 

소리, 동작, 아니면 지금 손 비벼봐요.

그럼 무슨 느낌이 일어나죠? 따뜻하다든지 차갑다든지.

이제 내려놔 봐요.

그럼 그 느낌이 사라졌죠?

이런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배후에 뭔가가 있으니까

이런 게 생겨나지

배후에 아무것도 없는데

혼자서 생겨났다 사라지고

또 비비면 또 생겨났다 사라지고

이러지는 않는단 말이에요.

 

그 뒤에 있는 게

생명이든 의식이든

뭔가가 있으니까 이게 생겨나고 사라지는 거예요.

 

여러분 생명이든 의식이든 존재든, 말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런 뭐가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이 느낌이 일어나고

보면 보이고

*!

이렇게 하면 들리고

이렇게 하면은 여러분이 인식이 되고

뭐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그게 진리 자리예요.

그런데 문제는 이거를 이 자리를

어떤 액션이나 소리나 느낌이나 이런 것을 이용하지 않으면

이 자리는 드러나지 않아요.

 

그것만을 자각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그거는 깨닫고 난 사람 얘기지

깨닫기 전 사람은 그게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뭔지를 아직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그 자리를 체험도 못했으면서

그 자리를 지금 명상하고 있다라는 거는

완전히 망상을 떨고 있는 거예요.

 

반야심경 같은 데 보면

안이비설신의를 의지해서 드러난다라고 돼 있어요.

안이비설신의

 

이 세상에 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안이비설신의를 이용해서 일어나요.

보는 거, 듣는 거, 맛보는 거, 느끼는 거, 생각하는 거, 이런 것들

냄새 맡는 거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일어나지

그 밖의 건 없어요.

 

그러면 지금 한번 가만히 잠깐 1분만 명상을 해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이 자리를 한번 느끼려고 노력해 봐요.

지금 말하는 이 모든 것의 배후 자리를 한번 느끼려고

명상을 1분만 해볼게요.

*!

이 소리의 배후를 1분만 느껴보겠습니다.

 

.

.

.

.

 

 

*!

좋습니다.

느껴보셨어요?

그럼 어디 한번 물어봅시다.

사랑님, 느껴보니까 잘 느껴지던가요?

(침묵 속으로 들어가 고요를 느끼고)

네 그랬어요?

그거 말고 다른 느낌이 없었어요?

 

이제 여러분은 침묵, 고요

이게 생각이에요. 이름이고 생각입니다.

그리고 침묵 고요라고 하는 이름이 끌고 다니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이 자리가 아니에요.

그것도 안이비설신의 하나인 거예요.

 

또 다른 분, 예컨대 참나님 어떠셨어요?

침묵 고요 말고 또 다른 거 느껴보셨어요?

(느끼려고 애쓰는 생각이 먼저 자꾸 나타나더라고요.)

 

생각이 자꾸 올라오는 것도

그러면 그 생각을 징소리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나오고 들어가는 그 자리를 보셔야 돼요.

그거를 봐야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가만히 있다해도

바깥에서 차소리도 들리고, 바람 소리도 들리고

또 내 몸이 여기 이렇게 있구나 심장이 뛰는구나 피부가 좀 따뜻하구나 오늘은 좀 춥네

이런 별별 생각이 다 들어요.

느낌도 있고.

 

그래서 그거를 의지해서 그것이 일어나는 근원을 봐야지

그거를 붙들고 있으면서

내가 침묵으로 있었네, 그 자리네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럼 그걸 의지해서 자꾸 그 이전 자리를 보면

뭐가 있을까 여러분

그 자리를 보다 본격적으로 우리가 한번

그렇다고 그 자리가 없는 건 아니죠.

여러분 없다라고 또 그 자리에 너무 드러나지 않아서

없는 거네요라고 하면 그건 또 없다에 떨어지는 거예요.

 

그 자리가 또 살아 있어요.

이렇게 살아있기 때문에

스스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러나 뭔가를 의지해서 뭔가를 이용해서

자꾸 자기를 드러내고 있어요.

그걸 한번 우리가 검토를 한번 해봅시다.

 

그래서 자꾸 진리란 무엇입니까?’ 하면

이것이다하고

이것이 뭐냐고 또 물어보는 분도 계세요.

 

그런데 이 말은 뭐냐 하면

이것으로 정리해서 내가 알겠다라는 얘기야.

그럼 또 생각 정리 중이야.

 

그래서 생각이 아니어도 분명히 나타낼 수 있는

분명히 또 그것을 볼 수 있는.

 

여러분 옆에 있는 식구들을 보세요.

여러분 옆에 있는 식구들을 보시면

거기 그 사람이 있는 게 아니고 생명이 있어요.

거기 자기가 알고 있고

여태까지 자기 마음속에 그렸던 저 인간이 있는 게 아니고

진리가 있어요.

근데 우리는 자기 마음만 보고 있어요.

 

자기가 그린 그 사람의 이미지 상만 붙들고

저 인간, 그래서 우리가 한때는

세상에서 제일 소중했던 사람이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지겨운 사람, 권태스러운 사람, 짜증나는 사람

내지는 뻔한 사람이 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살아있는 진리를 눈앞에 두고

자기가 투사한 그 사람의 이미지만 보고 있어요.

그래서 참사람이 되지 못하고

옛사람으로 사는 거예요.

 

이거를 우리 마음학회에서는

약간 현대적인 과학적인 용어로

제가 이 직업이 변리사다 보니까

과학적인 용어를 동원하면 ‘4차원이라고 그래요.

4차원에 대해서는 좀 이따 설명하겠지만

 

그래서 의식 명상 실습을 여러분들이 자기를 한번 점검할 때

자기한테 물어보세요.

지금 어디에 어떻게 내가 있는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떻게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확고하게 정견을 갖고

누가 언제 어디서 물어보든

바로 즉답이 나올 수 있어야 돼.

 

당신 어디에 계신가?

그러면 내가 어떤 사람을 깨달았다고 해서 한번 물어봤어요.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시냐?”

그랬더니 지금 여기에 있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아주 당당하게 얘기하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틀렸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지금 여기에 있다라는 것도 생각이에요.

지금지금이 어디 붙잡을 수나 있어?

과거 현재 미래 붙잡을 수 있나?

여기, 저기는 안 돼?

여기만 돼요?

그런 게 다 생각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런 개념을 써가지고는 다 생각에서 못 벗어나요.

당신 지금 어디 있느냐?”

이렇게 보여야 돼.

당신 지금 어디 있냐?”

 

여러분, 길 가다가 뭐 오래간만에 아는 사람 만났다고 그래봐.

아무개이러잖아.

그럼 저쪽에서도 보고

반갑다이러잖아.

 

얼굴 보는 게 아니고 이걸 보는 거예요, 이걸.

그 생명을 보는 거라고, 그 의식을.

여러분이 의식을 봤지 시체 껍데기를 봤어요.

 

이거는 죽으면 이렇게 일자로 드러누워 있어.

여러분이 그 사람을 안다는 게

그 얼굴, 매일같이 변해가고, 매년 늙어가는 그 껍데기를 보고 안다는 거예요?

그 의식을 안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이거를 봐야지

얼굴 보고 아냐 모르냐 이러면

그 사람 얼굴이 성형 수술하면 어떡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