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9] 자기가 공부하지 않는 길 / 피올라 현대선 2강 "내가 공부하는게 아니다" 4회

Buddhastudy 2024. 6. 24. 19:15

 

 

마스터에서는 애고의 완전 정복법이라고

이 세 가지를 제가 소개할 거예요.

마스터 과정에서 그게 뭐냐 하면

 

 

--에고의 완전 정복법

1, 정견을 철저히 하라.

 

첫째, 정견을 철저히 하는 거죠.

이게 제일 중요하죠. 기본이고.

정견을 철저히 함으로써 우리는 뭘 깨닫냐면

전도몽상에서 깨어나요.

그리고 세번뇌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거를 알게 돼요.

 

 

--에고의 완전 정복법

2, 나의 탐진치를 바쳐라

 

그다음 두 번째로 법력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가 인내하기 힘들고 감당하기 힘든 역경대들이 올 때

이걸 어떻게 끝까지 정견하기가 사실 힘들어요.

무슨 말이냐면

아주 단적인 예로

상사가 나를 막 째려보면서 야단치는데

같이 그냥 눈깔 똑바로 뜨고선,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대꾸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시어머니가 그러는데 그래봐

천하의 후레자식이지.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으냐?

그때 바치는 법이 좋아요.

바치는 법이 뭐냐 하면

정견으로 감당이 안 되는 건

더 빨리 해소하는 방법이 바치는 법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

나의 탐진치를 바치는 거예요.

근데 시어머니가 억울한 걸로 야단친다.

직장 상사가 억울한 거로 나보고 시말서 쓰라고 한다.

뭐 이럴 때

너무나 억울하고, 분통 나고, 막 진짜 집어던지고 싶고 막 이럴 때

그때 이 분노와 생각과 감정과 느낀 모든 거를

그거를 하나님이든 부처님한테 바쳐버리는 거야.

 

이건 내가 받을 게 아니고

이거는 부처님 하나님 당신한테 드립니다.

?

부처님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는 거는

내가 무슨 돈 드리고 선물 드리는 게 아니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나의 과제를 당신이 해결해달라고 바치는 걸 좋아해요.

?

그분들은 그러기 위해서 공부를 하셨으니까

세상을 정화하고 세상의 고통과

그 이런 어떤 번뇌를 전부 깨끗이 하기 위해서 이런 서원을 세우셨으니까

그래서 이거는 내가 감당하기 힘드니 당신이 좀 감당해 주세요하고 받쳐버려.

 

아주 좋은 공부 방법이에요.

정견으로 안 되면 그냥 그렇게 바치는 거예요.

 

이거 옛날에 백성욱 박사라고 하는 큰 도인께서 개발하신 방법인데

저도 젊었을 때 좀 해봤어요.

근데 아주 좋아요.

 

근데 그렇다고 해서 이걸 자꾸 바친다 하면

또 이게 이 공부 방법의 단점도 있어요.

뭐냐 하면

자꾸 아상이 생겨.

중생인 나는 어쩔 수 없으니 부처님 당신한테 바치겠다.”

 

그러니까 내가 정견 수행을 하되

정견 수연 갖고 감당이 안 될 때는 받쳐버려.

큰 슬픔, 큰 고통, 큰 어려움, 탐진치, 욕망 이런 거 다 받쳐버려.

 

부처님은 좋은 것만 받아야 돼.”

그건 내 망상이고요, 내 착각이에요.

 

예수님도 그랬잖아.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나에게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

 

부처님은 아닐 것 같아?

나는 좋은 것만 받고 싶은데

아니요.

그 번뇌 망상이 다 허망한 것이다. 그거를 끝까지 봐라.”

이거를 얘기하시는 분이라

나 이거 감당하기 힘드니 당신이 좀

그럼 오케이그렇게 되죠.

이게 참 좋은 공부 방법 중에 하나예요.

 

 

--에고의 완전 정복법

3, 감흥계합하라

 

그다음에 또 하나

마스터에서 이런 방법을 구체적으로 프렉티스를 할 건데

또 하나가 뭐냐 하면

감흥하는 거예요. 감흥

감흥 계합한다.

쉽게 말하면 하나 된다는 거예요.

하나 된다는 걸 유식하게 말하면 감흥계합한다 이런 말 하는 거예요.

감흥한다.

 

여러분이 예를 들면

아주 그 맑고 깨끗한 어떤 아침에, 정말 청명한 아침에

어떤 고요하고 아름다운 숲속을 거닌다거나

어떤 외국에 여행 가서 어떤 그런 아침 햇살을 본다거나

또는 아주 아름다운 황혼을 혼자 감상한다거나

이럴 때 여러분 그때 그 순간에 너무나 아름답다. 이럴 때

자기가 그 아름다움과 동화돼 버리는 거, 하나로 녹아드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런 순간 못 느껴봤어?

 

아주 아름답고 깨끗한 아침 숲속을 혼자 산책한다든가 할 때

자기가 마치 무슨 어떤 그런 순수한, 깨끗함, 고결함과 하나가 돼버리는 것 같아.

 

근데 대부분의 사람은 좋다하고 다시 와.

그런데 공부하는 사람은

그것과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해야 돼.

 

왜냐하면 부처님의 존재 방식이 그런 존재 방식이에요.

부처님의 존재 방식이

그 정말 우주 대법신으로서

대광명, 대자비, 대지혜의 광명으로 계시거든.

 

그러니까 나는 그런 걸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과 그 정결함과 그 신비함에 대해서 나는 예배를 해요.

삼배합니다.

?

그게 부처님이 드러나시는 모습이거든.

 

그리고 그것과 나 없이 합일되는 그 체험을 합니다.

그게 내 잠재 흡습 속에서 나를 그만큼 성장시켜줘요.

 

여러분이 어떤 감동스러운 영화나 아름다운 걸 보면 눈물이 나요.

콧등이 찡하거나 눈물이 나거나 가슴이 먹먹하거나 그러죠.

이거 내가 안 그래야지해도 그렇게 됩니다.

또 일부러 그래야지하면 그게 돼요? 안 돼요?

 

그게 뭐냐 하면

우리의 그 마음이 진리와 감흥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이런 차원을 모르면

대승불교는 이런 차원은 얘기도 안 하고

맨날 그냥 정견정견 반야, 뭐 이 소리만 하고 있어요.

그래서는 끝까지 아상을 버리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피올라의 역발상 명상에서는

첫째가 자기가 공부하지 말라는 거고

두 번째가 존재 중심으로 살라는 거예요.

존재 중심으로 살라는 게 뭔지 아시겠어요?

존재 중심으로 살라는 건

머리 중심으로 살면 어떻게 돼?

맨날 생각만 자꾸 하죠. 생각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돼?

반드시 필연적으로 번뇌가 뒤따라와요. 감정이 뒤따라오고 .

그게 머리 중심이야

 

가슴 중심은 어떻게 돼?

가슴 중심은 느낌 중심이고, 감정 중심이에요.

그러니까 가슴 중심으로 살아도

좋은 건 좋은 거고, 나쁜 건 나쁜 거야.

멀리하고 싶은 건 멀리하고 싶고

좋아하고 싶은 건 가까이하고 싶은 거야.

 

오직 [존재 중심]만이

모든 거를 그냥 [있는 그대로 놔두고 자기를 열어 젖혀요.]

여러분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이 생명의식의 자리로 이렇게 존재해 봐.

그럼 세상이 그대로 여러 앞에 펼쳐져 있잖아, 그죠?

 

여기 뭐 좋다 싫다, 안다 모른다, 이거다 저거다가 없어 하나도 없어

?

머리가 비었으니까.

 

모든 게 그냥 있는 그대로 쫙 펼쳐졌어요.

이렇게 살아야 돼.

그게 내가 없이

진리 그대로의 나를 내어 맡긴 삶이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역발상 명사

역발상은 뭐냐?

여러분은 이미 그 자리가 무지개 몸으로서 여러분 안에 이미 다 있어.

이미 다 있는데 왜 그게 펼쳐지고 개화를 못하느냐?

왜 그럴까요?

자기 존재의 중심이 번뇌망상에 있거든

오온에 있고

자기가 공부하려고 들거든

자기가 공부한다는 게 뭐야?

식스존 갖고 공부하겠다는 거 아니에요, 결국은.

 

그래서 역발상으로

나는 이미 우주 법신이고, 근원이고, 모든 게 이미 완성됐는데

이 번뇌망상 짓을 자꾸 하는 이 나쁜 업습 때문에

이게 개화를 못하고 있을 뿐이다.

 

빨리 개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번뇌 망상을 쉬면 돼요.

그러면 이미 개화돼 있구나라는 걸 본인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역발상도 굉장히 중요하다.

 

 

--

여러분들이 그렇게 해서

자기가 공부하지 않는 법

어떻게 하시는지 아시겠죠?

오늘 그 강의를 했습니다.

 

특히 미세한 생각을 가지고

마치 요리조리 법상을 만들어 세우면서

자기가 공부 잘한다고 착각하지 마시고.

 

머리 똑똑하고 이렇게 영민한 사람들이 그런 짓을 잘해요.

그래서 내가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어쨌든 오늘 또 여러분이 몇 분이 그런 면에서

자기를 돌아보실 기회가 돼서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개별적인 질문의 시간을 한 20분 정도 갖겠습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요즘 이런 일이 있다 해도 좋고

-아니면 내가 공부하는데 이런 문제가 지금 잘 안 된다라고 해도 좋고

아무거나 질문해 보세요.

 

(저도 하나 질문드리겠습니다.

이게 제가 평생 저한테 숙제인데요.

저에 대한 어떤 분별의식, 에고적인 게 많이 드러나고 보이기 시작하는데

반대로 상대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더 세밀하게 그런 것들이 많이 보이고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그게 더 분별이 더 많아지고

더 판단을 더 많이 하게 되고

근데 옛날에 비해서는 더 너그러워지고

그걸 보는 게 점점 더 사람들이 더 많아졌긴 했는데

그래도 그게 해결이 안 되고

더 많이 세밀하게 분별이나 이런 게 더 많이 오는데요.

그 분별을 하면 된다고 하셔서 많이 시도는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는 않거든요.

거기에 대한 과제가 계속 남아 있습니다.)

 

 

내가 옛날에 그랬어요.

지금도 완벽히 100% 완전하다고 말하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도 참 분별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이 공부하니까, 남의 마음이 막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까 정말 그 옹졸함, 내지는 치사함, 내지는 뭐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정말 세상이 싫더라고

뭐 친구라는 놈들이 나한테 돈 빌려 갈 생각, 이용할 생각, 뭐 등칠 생각

이런 고등학교 동창애들도 그런 애들이 있어요.

근데 걔는 자기가 그게 잘못인지 몰라

왜 그러냐면 평생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게 자기 삶의 방식인 거야.

좀 옆에 애들이 만만치 않아, 공부를 많이 시켜줘.

 

그러니까 내가 그런 애들 사이에서 별 얘기를 다 하고 왔다갔다 하고

심지어는 밴드에다 그런 욕도 올리고 이런 애들 사이에 있으면서

내가 얼마나 그런 데서 떠나있고 싶겠어요.

 

그런데 이 깨달음 공부를 하면서

내가 어느 날 그런 나를 본 거예요. 나를 돌아본 거야.

그런 나를 돌아보니까

이 모든 게 다 내 안의 일이더라고, 다 이게.

우리는 여태까지

쟤가 그래서, 니가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정말 황당하거나 말도 안 되거나 너무 심한 요구들을 하거나

그렇게 이유를 달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거는 다 사소한 내 해석이고, 이야기고

결국 보니까

내가 그렇게 법을 만들고

네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뭐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쫙 만들어서

그 김연수의 인생스토리라고 하는 책을 써서

그 안에 슬픈 주인공 내지 고통받는 주인공으로 자기를 각색하고

그 안에 들어앉아서 괴로워하고 있더라고.

내가 나를 보니까.

 

가만히 있어 봐.

이게 내가 여태까지 정견공부한다고 그래놓고 이게 뭐 하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어

정견공부는 따로 하고 이건 또 따로 있는 거야.

딴 살림이야.

 

그래가지고 그거를 한번 그런 마음을

정견을 다시 정신 차리고 다시 공부하고

또 이렇게 정견해도 안 되는 건 바치고.

 

그리고 또 예수님이나 뭐 석가모니가

석가모니가 가리왕이 자기가 숲속에 정견하는데

자기 궁녀들이 훌륭한 성자가 공부한다고 와서

앞에서 예불하고 뭐 이러니까 질투가 나와서

과연 네가 얼마나 성인인가 보자고 와서

공부하는 사람을 칼로 팔을 자르고 막 이랬어요.

전생에 그랬대요. 그런 얘기가 있어요.

 

그럴 때도 부처님은 성을 내지 않고

그냥 인연으로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그 마음에 한번 감응을 해 봤어요.

그 인욕심에, 감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그 인욕심이지만

그걸 감흥해서 그 순간이나마 하나가 돼보려고 느껴본 거예요.

 

이런 그 세 가지 공부법을 통해서

내가 성장하는 거지

누가 성장하는 게 아니에요?

내 내공이 강해지는 거고, 내가 법력이 늘어나고

내 정견과 지혜가 성장하는 거예요.

 

근데 다른 관점으로 말하면

내가 성장하는 게 아니라

또 어떻게 보면 원래 있는 것이 꽃피기 시작하는 거야.

나를 통해, 이 나라는 현상을 통해서 그것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나를 가치있고 공부할 때는 그게 잘 안 보이더니

내가 나를 내어 맡기고, 정견하고, 바치고, 그리고 감흥하니까

그런 것들이 막 내 안에서 꽃피어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결국 이 모든 것이

내 의식 세계를 동그라미라고 친다면

이 동그라미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한 거야.

근데 니가 그랬다라는 거는

벌써 금강경에 아상이 떨어진 거예요.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 여기 떨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런 거 사상 좀 제발 갖지 말라는 말은 뭐냐 하면

이 네 마음 안에 이 동그라미 세계, 네 눈앞의 세계의 모든 책임은

너한테 있다는 거야.

이걸 어떻게 보고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너한테 있다는 거야.

 

그런데 나는 그래서 초롱님한테

상대방이 그렇게 문제가 있거나, 심한 짓을 하거나, 사기를 치려거나

나를 무슨 그렇게 매도하거나, 곡해하는 거를

내 잘못이라고 여기라는 게 아니에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야.

그런 얘기가 아니고

그런 건 사실이야. 사실

그런 팩트는 있어.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자고.

근데 문제는 그럴 뿐인 거야.

그 이상, 거기다 대고

그러니까 넌 잘못했다. 나는 억울하다.

뭐 이런 더 이상의 해석이 없는 거야. 그럴 뿐인 거야.

그냥 팩트야. 팩트의 세계만 있어.

 

호수 위에 배가 하나 있는데 다른 배가 와서 부딪혔어.

그러면 내가 이쪽 배 위에서 누워서 낮잠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와서 쾅 받아

그래서 벌떡 일어나서 욕을 하려고 봤더니 저 배에 아무도 없어.

빈 배가 와서 부딪힌 거야.

그러면 그 배를 보고 욕하나?

그게 팩트라고.

 

이 세상에 모든 건 공해

나도 공하고 너도 공해

?

일어났다 사라지는, 머무르지 않는,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 허상들이라고.

허상들한테 실상의 의미를 부여하면

그게 자기 번뇌인 거야.

 

/모든 존재들은

나타났다 사라져가는 허상들이고

실재하는 마음이

그냥 잠깐 살아보는 아바타들이에요.

아바타, 허상들한테

실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다 공부하는 과정에 있어. 자기 나름대로.

물론 그중에 어떤 씨앗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고

어떤 거는 꽃도 못 피고 그냥 사라져 버릴 거예요.

그건 자기가 관여할 바가 아니야.

그건 각자 몫이야.

다만 자기 거나 꽃 피우라고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