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현대선11]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 피올라 현대선 3강 "모든 일들은 지금 이자리에서 다 일어난다" 2회

Buddhastudy 2024. 7. 1. 19:49

 

 

그래서 오늘 한번 이 실험을 해봅시다.

지금 여러분 눈앞에 공간이 있죠?

자기 앞에 공간 없는 사람이 있어요? 손 들어보세요.

다 있죠?

 

근데 이 공간이

공간의 이름이 공간이지

이것은 사실 의식이에요.

이게 의식이라고요

 

보통 사람은 자기의식이 자기 몸 안에 있는 걸로 알아요.

그런데 내가 아침에 눈 뜨면 전 세상이 다 내 의식 때문에 있지

내 의식이 없는데 세상에 나타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이 [공간의 다른 이름이, 의식]이에요.

 

그러면 한번, 이 내 의식을 이 공간에 꽉 채워봐요.

지금부터 1분 명상을 하겠습니다.

눈 뜨고 하는 명상이에요.

눈 뜨고 자기 눈앞을 바라보면서

이 공간에 내 의식을 꽉 채워봅니다.

1

*~!

 

방 안에

또는 내 눈이 의식되는 모든 공간에

내 의식으로 꽉 찼다라고 한번 느껴보세요.

이 순간 나는 몸이 아니고요.

몸에서 느껴지는 느낌조차도 하나의 느낌일 뿐입니다.

나는 의식입니다.

내 존재의 중심이 의식으로 옮겨갔어요.

나는 의식입니다.

.

.

.

.

 

느껴지십니까? 뭐가?

잘 안 된다?

 

그게 왜 그러냐면 그걸 바로 잠재업습이라고 그래요.

자기 몸이 나라고 하는 잠재업습이 강하기 때문에

의식이 몸에서 자유롭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이 명상을 많이 하셔야 돼요.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공간이 내 의식이다.”

 

왜냐하면 내 의식 없이는

저 공간은 보일 수가 없고, 나타날 수도 없어요.

인식될 수가 없다고, 아시겠죠?

 

그걸 많이 하시면 어떻게 되냐면

이 몸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요.

몸에서 해탈한다고요.

그래서 몸 안에 의식이 들어있는 게 아니고

의식 안에 몸이 들어 있게 해야 돼요.

 

사실은 의식 안에 몸이 들어 있어요.

여러분이 살다 보면

자기 몸을 좀 객관적으로 바라보거나 느낄 때가 있어요.

내 몸이 좀 의식은 그냥 명료한데

의식은 또렷하고 명료한데

몸이 말을 안 듣거나 몸이 좀 이상하거나

또는 내 몸을 마치 무슨 물건 바라보듯이 볼 때가 있어요.

 

이렇게 의식, 이 공간을 내 의식으로 꽉 채우는 명상을 많이 하시면

그러면 이게 순수의식이 그런 형태로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순수의식을 더 빨리 깨우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다음에 4차원 명상에 대해서 잠깐 얘기를 하면

2차원이라고 하는 건 이런 종이를 말하죠.

이 종이 위에다가 점을 하나 찍으면

2차원 내에서는 그 점이 고정되죠.

위치가 정해지죠.

여기 이렇게 가운데 점 하나 찍었어요.

그러면 이 점 찍은 이 위치는 2차원 내에서 고정되잖아요.

이 점은 2차원 종이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죠.

 

만약에 이 점이 의식이 있는데

이 의식이 이 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정하면

그럴 때는 그 점은 3차원이 돼요.

그 점의 의식은.

 

근데 자기를 이 점이다라는 형상에 고집하면

이 종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여러분도 이 몸에 너무 오랜 시간 매여 있었기 때문에

자기를 몸이라고 여기면 3차원에서 못 벗어나요.

 

근데 여러분 본래 조금 전에 제가 본편님하고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분 원래 4차원적 존재예요.

4차원적 존재라는 건 시공이 없어요.

시공을 자기 안에 갖고 있다고요.

 

3차원은 2차원을 자기 안에 갖고 있어요.

3차원 공간 안에 이런 2차원은 엄청나게 많이 쌓아도 다 못 채워.

 

마찬가지로 4차원에는

3차원을 아무리 많이 집어넣어도 다 채울 수 있어.

 

이게 무슨 말이냐면

여러분이 이미 체험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핸드폰에 수많은 동영상이 들어가 있어요.

모든 동영상은 다 3차원이야.

그런데 핸드폰이라고 하는 기계 안에 그 3차원들이 다 저장돼 있어.

그래서 그 핸드폰은 4차원적인 거예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과거를 지금 회상하는 것도

과거 회상하면 3차원이에요.

또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3차원이야.

어저께를 회상하는 것도 3차원이고, 1년 전을 상상하는 것도 3차원이야.

이 모든 게 다 여기 들어 있어. 여기.

그래서 여러분이 이미 4차원이에요.

 

근데 여러분 자기를 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3차원에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근데 이렇게 자기를 의식이라고 해서

이 눈앞에 보이는 허공을 의식으로 꽉 채우는 명상을 꾸준히 하시면

이 몸에서 해탈해요.

몸에서 해탈하게 되면 어떻게 되냐 하면

시공간이 없어져요.

이 허공에 시공간이 있어요?

허공은 시공간에 영향을 받나? 안 받나? 안 받죠.

허공은 안 늙어요.

허공은 크기도 없어

시공간에 영향을 안 받아요.

여러분이 본래 그런 존재거든.

그래서 영생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자기는 죽는다고 생각해

?

나는 몸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이 되요.

그래서 몸이 된 거예요.

 

여러분이 갓난아기였을 땐 자기 몸이라고 안 했어.

그때는 몸이라고 안 했고

몸이 너무 쓰기가 생소하고 서툴러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기어다닌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일어나 걷는 거를 배우는데 2천 번 넘어진 거예요.

몸이라고, 몸을 나라고 여기는 과정도 공부하고 익숙해진 거예요.

처음부터 그런 게 아니라고.

 

그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거예요.

그 처음으로 돌아가면 뭐예요?

여러분은 무한한 의식이야.

순수한 의식이고 영원한 생명이라고

몸을 나라고 했기 때문에

죽을 존재가 됐고, 3차원 안에 갇힌 것 뿐이에요.

 

 

그래서 그럼 4차원이라는 게 뭐냐?

아주 알기 쉽게 설명하면

여러분 빵집에 가면 네모난 식빵이 있죠.

네모난 식빵을 이렇게 자르면 잼 발라 먹고 하잖아요.

 

네모난 식빵을 하나 딱 자른 그 단면이 현재야.

이거를 길게 하면

이쪽 거는 과거고, 오른쪽 거는 미래야.

 

그런데 이거를 한 2m 정도 되는 긴 식빵을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래도 여러분은 동시에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보고 있어.

이 식빵의 앞, 왼쪽 끝, 오른쪽 끝, 중간 다 보고 있어.

이게 4차원적인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다음에

영원히 몸을 벗어나서 죽으시면

자기 인생에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눈앞에 나와.

한눈에 다 보여.

4차원적 전제로 가신 분한테는.

 

깨닫지 못하면

4차원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이제 3차원의 음의 세계에 머물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걸 봐도

얼핏이나 볼까 제대로 못 보지만

여러분이 진짜 깨달으면

시공을 딱 초월했기 때문에

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가 식빵 보듯이 다 보여요.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의식이

의식 스스로를

계속 정견하고 확인하는 게 깨달음이에요.

의식이 살아있는 의식 스스로를

계속 정견하고

내가 이것이다하고 확인하는 게 깨달음이라고/

 

얼마나 쉬워요.

이 의식이 의식을 보고

이게 나다

이거를 계속 보고 있고

이것을 확인하고 있고

이게 나임을 스스로 받아들인 게 깨달음이라고.

 

?

이 순수의식은 영원한 진리이고, 길이요, 생명이니까.

아브라함 이전부터 있었던 거니까.

 

그러니까 불교의 진리나 기독교의 진리나

다른 게 하나도 없어요.

다 똑같은데 말만 다른 거예요.

 

그래서 깨달음에...

제가 여러분에게 오늘 당부하고 싶은 거는

생각으로 안 깨달음을 정리해서 알면서

깨달았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바로 이 자리, 그 자체가 돼야 된다.

여러분이 그냥 살아있는 의식이 돼야 돼.

 

그래서 초견성이라고 하는 거는

깨달음에도 단계가 있어요.

초견성, 견성, 보살지, 그리고 성불, 이렇게 네 가지가 있어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깨어난 자, 구원받은 자, 대천사급이 된 자, 완전한 하나님과 합일한 자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이게 뭐냐 하면

초견성은 뭐냐 하면 이 자리를 얼핏 본 거야.

이 자리를 본 거라고.

 

그런데 한 10%밖에 못 봤어.

그러니까 사는데 90%는 또다시 그냥 옛날로 돌아가 있어.

그건 겨우 봤는데

이 사람은 열심히 공부 안 하면

다시 옛날로 또 빠져버려요.

그러니까 퇴전을 한다고.

초견성은 아직 제대로 견성한 것도 아니에요.

근데 그런 사람들이 견성했다고 뭐라고 할까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다음에 두 번째, 진짜 견성은 뭐냐?

아직 100%는 아니야.

근데 51% 이상 됐기 때문에

언제 어디 가서 빠지든

다시 오뚜기처럼 돌아와.

이 사람은 더 이상 퇴전을 안 해.

항상 이 자리로 돌아와.

좀 실수는 있지만.

이 정도는 돼야 견성이에요. 아시겠죠?

다시는 이 자리를 놓치지 않아

좀 가끔 빠지긴 해도.

그러니까 한 51% 이상은 이 자리에 와 있는 거야.

 

그다음에 세 번째, 보살 정도 되면

불교에서 말하는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이런 보살급이 되면

90퍼센트 이상이 와 있는 거예요.

90% 이상이 돼야 비로소 삼명육통이 열리기 시작해요.

그전엔 순수하지 못해서 안 돼.

 

그러면 성불은 뭐냐?

완전한 하나님의 자리로 간 사람

100% 순수한 진리지.

그러면 아미타불처럼 또는 예수님처럼

자기가 천국을 만들 수가 있어요.

그래서 성경에도 그 말이 나와.

내가 먼저 가서 너희들이 올 것을 준비하리라이런 말이 나와.

이게 뭐냐면

나 천국 만들겠다는 얘기야.

 

불교에도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정토를 서원을 세우고

그런 세계를 만들어서

누구든 여기에 오면

나와 같이 더불어 공부하고

여기에서 다시는 고통 없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겠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공부해야 될 길이

견성하는 게 1단계지만

초견성하시는 분은 견성하기 위해서 애써야 되고

견성하신 분은 보살되기 위해서 애쓰셔야 되고

보살되신 분은 성불하기 위해서 애쓰셔야 돼.

 

그러면 오늘 결론적으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곳이 어디인가?

여러분, 어디예요?

여러분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잖아.

근데 눈앞이라고 하는 말도 이거 생각이에요.

 

진짜는 뭐냐 하면

여러분이 의식이 일으키고 있는 거야.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곳.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곳은

이 자리가 모든 것을

자기가 해석하고, 분별해서 일어나고 있어요.

모든 일이 일어나는 곳이 어디라고?

내 마음인 거예요.

의식 장난, 의식 놀이라고요.

 

우리의 삶이라는 게 뭐냐 하면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거는 결국 뭐냐 하면은

이 순수의식, 우주의식의 창조 체험 놀이 하는 거예요.

자기가 어디까지 만들어 볼 수 있나

내가 뭐 무슨 짓을 해볼 수 있나.

 

여러분의 삶은

자기 의식의 눈앞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해석하고 분별하면서 놀아보는 거야.

그러면서 자기 마음의 능력을 체험해 보는 게임이라고요.

별거 아니에요.

 

이거 아바타 게임이에요. 아바타.

이게 아바타예요.

이게 내 의식의 아바타고

이 아바타를 자동차처럼 타고 앉아서 게임하고 있어.

근데 참 못난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맨날 슬프고, 괴롭고, 힘든 거예요.

자기의식을 그렇게 그 꼴밖에 못 쓰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래서 피올라 마음학교의 깨달음은

공부를

난 대승불교가 참 이해 안 되는 점이

그 하란 대로 하면 어떻게 되냐면

굉장히 소극적이 되고, 현실 부정적이고, 염세주의적이 돼요.

행복한 게 하나도 없어.

맨날 자기가 심각하게 지켜봐야 되고.

이 자리 놓칠세라, 감시해야 되고

 

그게 아니고 본질적으로 삶이라고 하는 거는

이 의식이 활동해 보는 놀이예요.

그렇잖아.

기왕이면

행복하고 즐겁고 그렇게 놀면서 공부해야지

왜 지지고볶고

내가 또 실수를 했군요.

내가 또 내가 또 잘못했군요.

나는 왜 이것도 모를까 하고 자기를 쥐어박고

왜 그렇게 공부하냐고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기본 마인드를 바꿔야 돼.

이건 내가 노는 거다.

근데 내가 왜 이렇게 심각하게 놀고 있지?

내가 왜 이렇게 바보같이 놀고 있지?

왜 내 생각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지?”

 

슬픈 일이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오면

욧깐 일에 내가 힘들고 고통스럽고 비명 지를 내가 아냐

그래 한번 와봐.

너를 통해서 나는 더 성장하고 더 세질 거야.”

이렇게 돼야지.

아이고, 큰일 났네요. 어쩌면 좋아. 마음공부 다 소용없네.”

 

소용없다는 건 누가 만든 거예요?

지가 만들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중생은 보면 말이죠.

중생은 꼭 인과법 아니면 연기법에 빠져있어요.

네가 그러니까 나도 이런다.

요 소리 꼭 해?

부부지간에도 마누라가 좀 실없는 소리 하면

남편이 어쭈하고 그걸 또 보복하려고 들어요.

 

그래서 그게 인과법 아니야?

네가 이러니까 나도 이런다.”

그러니까 중생인 거예요.

 

마누라든 남편이든 실수해도

상대가 그 인과에 빠지지 말고

그냥 내 의식의 창조 놀이를 하면은

상대가 감화가 되게 돼 있어요. 안 그래요?

 

그 자기가 자기 잘못한 걸 눈치를 채.

근데 그걸 꼭 보복을 해야 돼.

그렇게 왜 인과법 속에서 사냐고.

그러니까 중생이지.

 

그러니까 놀지 못하는 거야.

놀지 못하고 어때요?

자기 인생과 싸워요.

그러니까 힘들게 살죠.

 

중생이 또 못 빠져나오는 게 뭐냐 하면

연기법이야.

이게 이러니까 그건 그래야지.”

 

여러분 자기도 모르게 재빨리 생각이 어떻게 드냐면

흑백논리를 생각을 해.

요게 요러니까 그럼 저건 저런 거네.”

 

그런 법칙이 자기를 지배하게

허락을 한다고요.

그래서 해탈을 못하는 거예요.

모든 법에서 자유스럽질 못해.

 

아공법공이 못 되는 이유는

자기가 모든 법을 만드는 자인데

법의 지배를 당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얘기하셨어요.

 

진리가 너희를 천국에 데려다 주리라라고 얘기 안 하셨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여러분 제가 여러분을

삶에서 자유스럽고

생사에서 자유스러운 길로 안내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여러분은

지금 마음이, 의식이

의식이 마음을 만들고

그리고 그게 여태까지 살아온 삶이

굳어 있고, 차가워져서 얼어 있어요.

얼음과 같아.

 

그렇지만 얼음의 본질은 물이에요. 안 그래요?

HO라고.

그러니까 여러분이 따뜻하기만 하면 녹아.

근데 왜 이렇게 계속 차갑게 살아요.

왜 이렇게 냉정하게 사냐고.

 

그래서 예수님이 사랑하라고 그러는 거야.

서로 사랑해라.

, 좀 사랑해.”

 

사랑이 목적이 아니고

사랑하면 너는 진리를 알게 된다, 이 말이여.

그게 뭔데?

얼음이 녹는 거예요.

그래서 뭐가 돼?

물이 되고, HO가 되고

물이 HO가 된다는 건 뭐야?

수증기에 의해서 기화된다는 거예요.

그건 뭐가 돼?

그게 진리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맨날 동그라미와 화살표 얘기하는 게

동그라미는 이미 진리 이 자체고

화살표가 의식이 창조 놀이하는 거야.

창조놀이, 체험하는 게 화살표야.

그러니까 화살표를 똑바로 쏴야 되겠죠?

똑바로 쏴야지 엄한 데다 쏘면 어떻게 되죠?

자기만 괴로워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