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421회 남편이 힘들어 합니다

Buddhastudy 2013. 5. 29. 22:07

출처 YouTube

  

첫째는 내가 보기에 남편이 힘든 거요. 내가 보기에 남편이 힘들다. 실제로 남편은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스님을 보고 스님이 너무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내가 힘이 안 듭니다. 또 어떤 사람은 스님이 너무너무 편하게 산다. 자식도 없겠다. 아내도 없겠다. 그런데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그렇게 한가하게 살지도 않습니다.

 

내가 보기에 힘들다. 내 생각에 힘들다. 첫째 이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두 번째 내가 알고 있는 거보다 남편이 더 힘들게 살 수도 있고,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남편이 덜 힘들게 살 수도 있습니다. 남편이 힘들게 산다면 그것은 무슨 인연인가? 그것은 법의 인치를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런가? 그렇지 않습니다. 절에 안다녀서 그런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증권회사에 나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은행에 나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배 만드는 회사에 나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동차 만드는 회사에 나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농사짓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남의 회사에 취지해서 다니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조그마한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업원이 볼 때 종업원들은 너무 힘들고 사장은 너무 편해 보입니다.

 

사장이 볼 때는 종업원들이야 걱정할게 뭐 있노? 월급 주겠다 와서 일만하면 되지. 사장은 돈 끌어와야지 종업원들 일 시켜야지. 영업해야지. 아주 생각할게 많고 머리가 아프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육체 노동하는 사람은 정신적인 노동하는 사람 만날 노는 거 같아. 그런데 정신적인 노동하는 사람은 육체 노동하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머리는 안 아프지 않느냐 적어도. 자기는 힘들고 남은 다 편해 보입니다.

 

그런데 스님 같은 사람은 또 어떻게 생각하느냐? 남은 나보고 힘들다는데 나는 천하에 내가 제일 편한 거 같아. 딴 사람들은 중하기 어렵다는데 저는 중하기 제일 쉬워. 천하에 중질하기보다 쉬운 게 어디 있어. 왜 쉬운가? 이건 아무것도 안하면 되니까. 이 중은 가만히 앉아있으면 신도들이 와서 가만히 앉아있다고 훌륭하다고 돈 갖다 줍니다. 아시겠어요? 뭘 잘 안 먹으면 뭘 잘 안 먹는다고 훌륭하다 그래. 또 다 떨어진 옷 입고 있으면 다 떨어진 옷 입고 있다고 또 훌륭하다고 그래.

 

중은 취미가 불경 공부하는 건데 불경 열심히 공부하면 불경 열심히 공부한다고 난리요. 중이 밭에 가서 일하면 아이고, 우리 스님 밭에 가서 일한다고 또 좋아해. 그래서 천하 이거보다 더 쉬운 게 없어. 하나도 골치가 안 아파. 하하핳. 그런데 다른 사람보고 어떠냐? 너무너무 힘들어 보인다는 거야. 또 어떤 사람은 어떠냐? 자긴 너무너무 힘드는데 남은 또 노는 것같이 보인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니 자기가 힘들게 사는 것은 옛날부터 말이 있어. 사주팔자 지 하기 나름이다.

 

자기가 힘들게 하는 거요. 모든 걸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힘이 드는 거요. 일이 많아서 힘이 드는 게 아니라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힘이 드는 거요. 일이 적어서 힘이 안드는게 아니라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면 힘이 덜 드는 거요. 저도 월요일 날 밤에 회의한다고 우리 초등학교 빌려서 복지 시설하는 그 회의한다고 새벽 3시까지 하고 절에 오니까 4시에 예불한다고 문 열 때 들어와 잤어. 그리고 화요일 법회 몇 번 했습니까? 2시간씩 네 번했잖아. 그죠?

 

그런데 그 밤에 또 회의하러 왔어. 그래서 또 2시까지 했어. 그래서 지금 약간 몸이 좀 찌부등한 거요. 몸살기운 좀 있고. 그런데 내가 본래 건강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약골 중에 약골이었어. 중학교 다닐 때 100미터 달리기하면 온몸이 다 멍들듯이 되고 의식을 잃어버릴 정도요. 만날 아픈 사람에 속합니다. 아시겠어요? 스님이 안 아플 때는 언제밖에 없다? 법문할 때밖에 없다.

 

우리 스님 안 아플 때는 법문 할 때 밖에 없다 그래. 옆에 있는 사람이. 아파가지고 완전히 의식불명상태에 있다가 법상에만 올라가면 까랑까랑하다는 거요. 까랑까랑하다 내려와 가지고 보면 또 다 죽어간다는 거요. 그러니까 어떻게 자기 생을 받아들이느냐? 이 문제요. 그래서 스님의 생각에는 그래요. 전생은 논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거를 굳이 전생 식으로 설명을 하면 빚이 많은 사람이에요. 뭐가 많은 사람이라고? 빚이 많은 사람이오.

 

이 세상에 와서 열심히 종노릇해서 빚을 다 갚고 가야 될 사람이오. 그럴 팔자다. 그러니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 말이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지은 인연의 업을 모르고 지금 빚 갚으러 온 주제에 지금 돈이나 펑펑 쓰고 놀려고 그러니까 지꼬라하고 안 맞아서 힘이 든다. 옛날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어.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옛날식으로 표현을 해서 기도를 하면 빚 잘 갚고 가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해야 돼.

 

요즘 식으로 스님의 표현대로 하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일을 해야 돼. 이 세상에 나보다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사실은 백배도 더 많아. 이렇게 자꾸 지금 사는 인생을 힘들다 힘들다 하면, 정말 힘든 게 어느 정도인지 보여져버려.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든다? 옛날에 그거는 힘든 게 아니었구나. 그게 정말 복이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도록 깨우쳐줘. 자꾸 이런 생각하면 뭐가 따른다? 재앙이 따른다. 이 말이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재앙이 따라야 지금이 좋은 줄을 알게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 인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화를 자처하는 행위다. 그러니 생각을 바꿔서 긍정적으로 살펴야 한다.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 말이오. 그래서 저는 불법만나서 기쁩니다. 부처님 제자 됨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생을 임한다면 소위 말하면 업이 바뀐다. 이 말이오. 업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