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즉문즉설] 제419회 나누기의 의미

Buddhastudy 2013. 5. 27. 22:07

출처 YouTube 

 

오늘 반야심경 강의를 듣고 그냥 헤어지는 거 하고 만약에 우리가 시간이 있어서 둘러앉아서 자기가 듣고 오늘 느낀 점을 나누기를 할 때, 한 달 정도 경과해보면 효과가 배가 됩니다. 그래서 나누기를 하는 거요. 우리는 듣고 의심이 나는 것도 나누기 하고, 기뻐했던 것도 나누고, 이렇게 쭈욱~~ 나눠보면 자기가 어떤 기뻤던 것이 나만이 아니라 딴 사람도 ~ 이렇게 느꼈구나.”할 때 그 기쁨이 배가 되고, 자기가 뭔가 거기에 의심이 있었을 때 딴 사람도 의심이 있는 걸 보고,

 

~ 이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이 의문이 있구나.”하는 거를 알게 되고, 나만 문제인 줄 알았더니 아니다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내가 분별심이 많이 났는데 내가 옳다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나누기를 해보니까 딴 사람은 아무도 그렇게 안 느꼈어. 그랬을 때 나를 돌아보는 마음도 생기고, 또 사람들이 똑같은 법문을 듣고 똑같은 일을 하고도 그 느낌이 다양한 걸 보면서 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서로 다르구나.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요.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견이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거나 느낌이 다르거나 견해가 다른 것에 대해서 수용하는 힘이 생긴다. 그래서 법회가 끝나면 반드시 나누기를 해야 됩니다. 스님께 이렇게 직접 강의를 듣는 우리 해운대 법당보다도 비디오테이프를 갖고 듣는 다른 법당에서 법문을 듣고 그 결과가 더 좋아져요. 왜 그럴까? 우리는 숫자가 많다보니 듣고 끝나면 그냥 다 가기가 바빠. 그런데 거기서는 어쨌든지 법회가 끝나면 30분 정도내지 1시간동안 나누기를 합니다.

 

그래서 그 여러 문제들을 그 속에서 풀기도 하고 의문이 풀어지기도 하고 스님 법문 듣고 약간 이해를 못했는데 거기에서 나누다보니까 이해가 되기도 하고, 오해가 생긴 게 풀리기도 하고, 공감이 되어져서 더 기쁘기도 하고, 자기 문제가 뭔지를 돌아볼 수도 있게 되고, 그래서 저희들 정토회에서는 법회를 듣거나 부엌 청소를 하거나 어떤 일을 하고는 반드시 끝난 뒤에 그 일을 행하고 나서 어떻게 느꼈는지 나누기를 하게 됩니다.

 

또 저희 정토회에 상근하는 법사님들이나 실무자들은 각 부서별로 한 달에 한 번씩은 반드시 보살 법회이후 2시간정도 나누기를 합니다. 1년에 한차례내지 두 차례는 스님하고 대중들이 다 둘러앉아서 반드시 나누기를 합니다. 그런 힘이 있기 때문에 이 정토회가 유지가 되는 거요. 정토회가 그냥 유지되는 게 아니에요. 밖에서 보는 사람은 정토회는 스님이 말하거나 하면 어떤 결정을 내리면 착~ 사람들이 다 하는 거 같죠.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하는 게 그냥 명령에 의해서 하는 게 아니고, 그 문제점들이 다 둘러앉아서 거기에 대해서 다 토론이 되고 나누어지는 거요. 지난번에 지율스님께서 청선산 살리기 한다고 57일간 단식했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스님께서 찾아와서 좀 도움이 주십사 했어요. 그런데 내가 옛날에 그런 제안을 한번 한 적이 있어요. 스님께서 하시는 것도 좋지마는 이것이 좀 대중화 되려면 꼭 터널이 이쪽으로 꼭 통과해야 된다. 안 통과 해야 된다. 이런데 너무 초점을 맞추지 말고 바로 생명의 귀중함을 일깨울 수 있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러면 천성산 같으면 청성산 정상에서 1300년 전에 원효대사가 중국에서 온 수행자 천명을 모아놓고 아함경을 강의해서 거기서 깨닫고 천명의 성인이 났다 해서 천성산이라고 부르는 거거든요. 그런 것처럼 우리도 그 청선상 화엄벌에서 천명의 대중이 모여서 법문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어때요? 너무 그 산에 집착하지 않고도 대중의 의식을 깨울 방법이 있지 않느냐. 만약에 그런 일이라면 내가 같이 할 수 있겠다. 그러데 이 굴이 뚫리느냐? 안 뚫리느냐? 이것만 갖고 싸우는 데는 스님이 참여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어요.

 

작년에 지율스님 단식할 때 우리가 정토회에서 10만 명 서명운동해서 단식 중단시킨 적이 있지 않습니까? 끝난 뒤에. 그랬더니 이번에 오셔서 스님께서 제안하신대로 그렇게 한번 했으면 좋겠다. 그래. 그러니 이미 내가 제안한거고 그래서 그럽시다. 이런 제안을 이미 내가 제안을 했는데 스님이 와서 지금 얘기하니까 내가 거절할 수 있나? 없나? 스님이 제안한 것이 아니고 내가 제안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포그레인 미는데 가서 데모하지 말고 거기서 금강경 법회를 한다든지. 예를 들면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보면 어떻겠냐? 하고 내가 제안을 한 적이 있는데, 요번에 오셔서 스님이 그렇게 하자고 받아들였어. 그래서 내가 그렇게 하자.” 했어. 우리 정토회에다가 얘끼를 했어. 우리 정토회는 스님 마음대로 못해. 정토회에서 회의를 했는데 어렵다는 거요. ? 지금 북한 돕기도 해야 되고, 또 음식쓰레기 남기지 않기 서명운동도 하고 있는데 여기 청성산까지 받아놓으면 우리가 힘들어서 못한다.

 

두 번째는 대중에게 공지가 경주 남산 간다고 이미 다 공지가 됐는데 지금 바꾸면 안 된다. 이렇게 해서 반대가 많았어. 그래서 스님이 웃으면서 그래. 그럼 그건 너그대로 해라. 나는 나대로 할게.” 해운대 법당에 있는 사람만 데리고 가서 해운대 법당에 있는 사람은 내 말 안 듣겠나. 딴 데 있는 사람들은 정토회 말 듣겠지마는, 해운대 법당에 나오는 사람은 내가 지금 법문을 하는 중이니까 내말 안 듣겠나. 그러면 내가 해운데 법당에 있는 사람만 데리고 올라가서, 500명 안되겠냐. 데리고 가서 하지 뭐. 내가 하지 뭐.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아니 스님도 정토회 회원인데 정토회 결의를 무시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요. 그러고 나서 내가 얘기했어요. 이거를 부담스럽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한 사람은 목숨을 걸고 했는데, 사실은 내가 스님 좀 쉬십시오. 내가 대신해 드릴게요.” 이렇게 해야 되는데, 내가 8달에 회의니 뭐니 바빠 가지고 사람이 죽는다 했는데도 얼굴만 삐끔 들여다보고 중제도 안서주고 도움도 안줬지 않았냐. 그러니 우리가 그 정도는 꼭 거기에 찬동을 안 하더라도 어때요? 격려차원에서 필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 생명을 살리자는 것은 정토 이념에 맞지 않느냐? 그러니 해볼 만하다. 경주 남산은 또 내년 봄에 가면 되지 않느냐? 원래 우리가 작년에 청성산 서명하고 청성산 한번 가보자. 우리가 청성산 살리자고 서명은 해놓고 청성산이 어디 붙었는지 아무도 모르거든요. 그래서 청성산을 답사를 해보자 했는데 봄에 바빠서 못 갔으니 가자. 이렇게 해서 대중들이 동의를 했어요. 그러니까 법륜스님 말한다고 법문은 스님 말을 듣지마는 일은 스님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다 의논하고 논의하고 회의하고 이렇게 하는 거란 말이오.

 

또 갔다 오면 갔다 와서 평가하고 해보니 어땠느냐? 뭐가 문제다. 이런 것을 의논함으로 해서 우리의 견해 차이를 좁혀나가고 우리가 마음을 하나로 모아가는 거요. 그래서 정토회 가장 큰 특징은 나누기를 하는 문화가 있다는 거요. 즉 스님과 수직적인 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를 중요시 한다는 거요. 그래서 지금 대중이 너무 많아서 지금 그냥 넘어가는데 정토 여기 불교대학만 하더라도 반드시 법회가 끝나면 나누기를 합니다.

 

서울 같으면 법회가 끝나면 다 10명씩 10명씩, 20명씩 20명씩 나눠서 나누기를 한 30분하고 가야 돼. 이렇게 끝난다고 우우~ 가는 법이 없어요. 여기서 끝나면 우우우가고, 끝나면 우우우~ 가고. 사실은 큰 도움이 안 됩니다. ? 그냥 학원 수강생 비슷하게 강의 듣고 가고 그러거든요.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이렇게 2부 법회라도 참석을 해서 질의응답을 하고. 이것도 일종의 나누기잖아요. 질의응답을 하고 이게 다져져야 되요. 자기화 해야 되요. 자기화 하지 않는 거는 아무리 좋은 법문도 자기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화하는 과정이 바로 나누기이며 대중의 견해 차이를 조율하는 게 나누기며, 서로의 마음을 열어놓고 수평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는 게 나누기다. 그래서 이 나누기는 물론 처음에 참석한 사람은 자기의 느낌이나 자기 생각을 내놓기가 어때요? 참 쑥스러워요. 이게 왜 그러냐? 마음이 닫혀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생각은 있는데 입에서 말이 잘 안 나오죠. 질문하라 그래도 잘 안하잖아요. 그럼 질문이 없느냐? 그건 아니에요. 질문 없으면 집에 가지 뭐 하러 앉아있겠어요? 그런데 이런 닫힌 마음을 여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좀 불편하다. 정토회 여론 조사를 해보면 정토회가 제일 좋은 점 중에 2번째가 나누기입니다. 제일 정토회 와서 자기가 힘든 점 중에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가 나누기에요. 이 나누기는 제일 정토회의 좋은 점에 점수도 있고. 정토회에서 자기가 정토회 와서 제일 어려운 점이 나누기가 있어요. 그런데 정토회 오래 있는 사람은 이 나누기야 말로 정토회의 엑기스다. 정토회만이 갖는 큰 장점이다. 이렇게 말하고.

 

처음 온 사람들은 정토회는 다 좋은데 이 나누기만 안했으면 좋겠다. 나누기 때문에 도저히 부담스러워서 다니기 어렵다. 이런 사람도 있다. 이걸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 나누기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신심을 깊이 하고, 우리들 상호간의 관계를 좋게 만들어 나가는. 그러고 절에 다니다 보면 스님과 여러분과 개인적인 수직관계만 형성되기가 쉬운데. 이 나누기를 통해서 스님 과의 관계가 아닌 도반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이런 것으로 성립이 된다.

 

그렇게 때문에 정토회에서 스님이 안가도 절이 운영이 되지 않습니까? 스님이 법문 듣고 일방적으로 하는 사람은 스님 올 때만 모이고 스님 가버리면 아무도 안와요. 그럼 다른 법당이나 다 이것이 스님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 다 자기들대로 정진을 해나가는 거요. 이 나누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