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13회) 사춘기의 딸

Buddhastudy 2011. 4. 4.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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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 기계가 아니죠. 기계는 입력을 딱 시키면 입력시키는 데로, 그대로 반응한단 말이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어린애들이라도 가르치면 가르치는 데로 따라 해도 그것이 또 사람마다 다 달리 반응을 한단 말이오.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 사춘기 이전은 따라 배우기. 고대로 부모가 가르키면 가르키는데로 따라 배우기 하는 게 특징이라면.

 

사춘기부터는 저항하기입니다. 저항은 아니에요 사실은. 따라하다가 자기대로 한 번 해 보기 하거든요. 그게 자립으로 가는 길이에요. 어른이 되 가는 과정인데. 자기식대로 시도를 해 보니까. 거기에 뭐가 있나 하면 첫째 잘 안 되요. 자기식대로 시도를 해 보고 싶은데 잘 안되죠. 잘 안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거요. 이유 없는 반항을 하죠.

 

어머니가 볼 때는 이유가 없죠. 학교 선생님이 봐도 이유가 없고. 애가 어제까지 멀쩡하더니 오늘은 왜 저런 식으로 고함을 지르고 저러냐? 자기 나름대로는 스트레스를 받는 거요. 첫째는 자기가 뭔가 시도를 하고 있는데. 자립을 향해서 몸부림을 치는데. 그것이 실수할 수, 실패할 수밖에 없죠. 자전거를 타더라도 한 번 만에 타지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 넘어지는 과정을 거쳐서 타지는데. 자꾸자꾸 넘어져봐야 이 안되는 거, 넘어지는 것을 수용하게 되는데. 처음에 사춘기 초입에는 그게 안 되죠. 늘 따라하는 건 실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새로 시작하면 실수가 있게 마련이란 말이오. 거기에 스트레스를 받고. 두 번째는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이제 어른이 볼 때는 말 안 듣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오. 딴짓 하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오. 그러니까 자꾸 야단을 치죠. 그러니까 야단맞을 짓을 하고 야단을 맞으면 교육이 되는데. 자기는 야단맞을 짓을 안했다고 생각하는데 야단을 치니까 거기 또 스트레스를 받게 되죠. 그 다음에 이 신체적으로는 어떠냐 하면 신체가 성장하면서 남자든 여자든 제 일차 성정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심리상태가 어떠냐 하면. 항상 약간 들떠요. 심리가 들뜬단 말이오. 그리고 이성에 대한 뭐라고 딱~ 뚜렷이 말할 수는 없지만. 안정된 심리에서의 이성을 대하는 게 아니고. 약간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이성에 대한 막연함. 막연한 그리움이라고 그럴까? 막연함이죠. 그러니까 그것이 불안한 상태에요. 그 심리 자체는. 이성을 그렇게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불안정한 그런 상태에 들뜨게 된단 말이오. 그것도 본인으로서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거죠.

 

그 이런 상태에서 또 어릴 때 시키는 말만 잘 듣고 착하게 자란 아이들 같으면, 그 시키는 말 잘 듣고 착하게 잘 듣는다 하지만은. 그 아이 입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 저항이 바깥으로 표출이 안됐지. 마음에 저항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우리도 지금 그렇게 다 자라지만은 야단을 맞으면 알았습니다. . . 해도 마음에서 기쁜 건 아니잖아요. 야단맞고 기뻐요?

 

시어미니가 뭐라고 해도 예 예 하고 지내지만 기쁜 거는 아니잖아 그죠? 오래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단 말이오. 그러니까 저항을 하죠. 그래 엄동 짓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즉 그런 엉뚱한 짓의 충동이 마음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현실로 나타나면 사고가 되죠. 그러나 대부분 그런 충동은 가지고 있지만은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담배를 피든지 연애를 하든지 술을 먹든지. 그렇지 않으면 복장을 불량하게 해 다니든지.

 

그럴 때 그 청소년들에게는 그게 굉장히 나쁘게 보여야 되거든요. 학교에서는 그 말썽꾸러기들 아닙니까? 그죠?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그게 굉장히 영웅시 됩니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하거나 저항했던 얘기를 하면 애들한테는 굉장히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나도 저리 못해본, 왜냐하면 다 대부분 스트레스하고싶은 그런 욕망이 있으니까. 못해본거에 대해서 오히려 자귀하는 이런 형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청소년 사이에서 급속도로. 이런 것도 성장 과정이라 봐야 되.

 

그래서 사춘기 청소년을 둔 부모는 제일 좋은 거는 지켜보는 거요. 지켜볼 때도 늘 다섯 가지 불자라면 다섯 가지는 규제를 해야 된다. 그것이 죽이거나 때리는 행위, 두 번째 훔치거나 뺏는 행위. 세 번째 성폭행이나 성추행 하는 행위. 네 번째 거짓말하거나 욕설하는 행위. 다섯째 술을 먹고 취하는 행위. 술을 좀 먹는 거 까지는 몰라도. 그걸 먹고 취한다 하는 거는 안 된단 말이오. 그러면 지금은 화가 나가지고 펄쩍펄쩍 뛰고, 벽을 부수고 하는 것은 이미 폭력성이 있다는 거 아니오. 그죠? 내부에 스트레스가 그만큼 쌓여 있다는 거요. 여기서 대책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그런 내부의 스트레스를 갖고 있는 아이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감싸줘야 되요. 그걸 풀어줘야 되요. 안 그러면 이게 억압이 되면 나중에 저런 경우에 어른이 되면 술 먹으면 그런 폭력성이 나타난다. 평상시에는 얌전하다 술 먹으면 잠재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어쨌든 감싸 안아서 풀어주는 행위가 필요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스트레스를 드러내는 모습이 폭력적인 것은 규제가 돼야 됩니다. 안 그러면 남에게 피해가 가거든요.

 

만약에 그런 것들을 사람을 때리는데 썼다 그러면 감옥에 갈 거 아닙니까? 그러면 아이한테 큰 충격을 주죠. 남의 아이 피해도 있지만은 내 아이에게 피해도 크잖아 그죠? 그러기 때문에 어떤 스트레가 있고 어떤 행위. 그러한 심리 상태는 이해해 주는 게 필요하고. 그러나 그 행위를 표출하는 언어나, 행위의 표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일정한 규제가 있어야 되.

 

지켜본다는 거는 아이가 실수 하는 거를 용인을 해 내야 된다는 거요. 때로는 화가 날 수도 있고 때로는 저항 할 수도 있고, 그런데 거기에 선을 일정하게 그어줘야 된다. 아까 얘기한데로 부처님 말씀한 다섯 가지는 울타리를 쳐주고. 그 울타리 안에서는 그거 다섯 가지 말고도 우리 부모가 볼 때는 저래서는 안된다는게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그죠? 그것은 지켜봐야 되요.

 

우리도 어떤 일을 해 놓고도 내가 화를 벌렁 내 놓고도. 속으로 아이고 미안할 때가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화가 나서 미안해요. 화를 내서 미안해요. 이런 말 입에서 잘 안나오잖아 그죠? 그러면 가만히 있으면 제가 아무것도 모르느냐? 그건 아니에요. 자기도 다 속으로는 그런 걸 자각을 하는데. 그럴 때 그 자기가 잘못했다. 한 열쯤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미안해하는데 야단은 한 백쯤 쳐버리면. 미안함은 온데 간데없어지고 억울함만 남는단 말이오.

 

그러니까 저항이 생기는 거요. 그럴 때 그 야단이 교육효과가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그리고 또 뭐든지 잘못해도 오냐 하고, 내버려 둬도 교육효과가 없죠. 그러니까 잘못을 자각할 수 있도록. 그러니까 한대의 종아리 정도면 얘가 좀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텐데. 열대를 때려 버린다든지. 한 대의 종아리가 필요한데 그냥 오히려 칭찬을 해줘 버린다든지. 이러면 여기에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그리고 아까 미니스커트를 입는다 뭐한다 이거는 심리가 어른이 되고 싶은 심리야. 어른의 흉내를 내고 싶은 심리거든요. 그런데 어른에 따른 책임감. 옛날 같으면, 요 나이에 시집을 보내 버린다든지, 장가를 보내 버린다든지. 그러면 며느리로서 자기 일을 다 해야 되고, 애를 낳게 되면 엄마로서 자기 일을 다 해야 되고. 이렇게 되는데. 지금 어른이 취급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몸뚱이는 어른이 되고 아직도 사람들의 취급은 어린애 취급을 하게 되니까. 거기에서 어른 흉내를 내게 되는 게 미니스커트를 입는 다든지. 힐을 신는다든지, 화장을 한다든지. 남자들 같으면 담배를 핀다든지 술을 먹는다든지. 자기들의 어디 그런 이상한 집에 간다든지 그래서 바깥에서 나이를 항상 올리죠. 항상 나이를 올린단 말이오. 두세 살 올려서 행동을 한다든지. 이런 증상이니까.

 

그것도 한쪽은 지켜보는 게 필요하고. 애들이니까 애들 문화라 그럴까? 분위기를 따라가는 거는 하지만은. 그것도 일정한 규칙. 그러니까 그것이 조금 방종, 청소년의 방종이 흐르면 안 된다는거. 그런데 보통 부모들이 너무 우려를 해서, 너무 간섭을 많이 하죠. 그러니까 아이들이 자기 행위를 숨기게 됩니다. 부모한테 안 알려 주게 되죠. 그래서 사고가 나면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생겼냐? 놀라 게 되는데. 그러니까 그 아이들의 행위를 지켜보는 게 필요하다. 그것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 지켜봐야, 사고가 날 만한 방종을 막을 수가 있죠. 알아야 막을 거 아니오. 나도 모르게 저질러 버리면 내가 못 막잖아요.

 

그런데서 알고 이거를 제제를 가하지 않는다. 그게 사실은 실질적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력이 필요하다는 거요. 모르면 몰라서 그 보다 더한 일을 해도 괜찮고. 알면 조그마한 일에도 간섭하게 된다는 거요. 그러니까 아는 건 다 알고. 제제를 가하는 건 아주 극소수로 간다. 이게 굉장히 냉정해 져야 되죠. 요 사춘기때 자립을 해야 되는데. 사춘기 때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엄마가 뺏어 버리면 그 이후에 아이는 세상에 대한 도전을 할 용기가 없어지죠. 그래서 큰 그런 오계라고 하는 울타리 이외에는 가능하면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것. 마음을 아프게 가지고 라도 지켜봐주는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