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홍식/윤홍식_즉문즉설

79. 종심소욕불유구 - 욕심이 양심을 어기지 않는 경지_윤홍식

Buddhastudy 2013. 12. 8. 21:17

출처 : 홍익학당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어유~ 이런 거 연구하는 것두요, 끝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한테 또 명상에 단계를 또 하나만 어제 밤새 또 다시 수정하고요, 학당에 이런 승급체계나 이런 거,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이해가 빨리 되고, 또 수련을 정확히 체크해 드릴 수 있어야 되잖아요. 쉽지 않다. 몇 십 년을 했는데도, 이게. 도대체 내 삶은 나아지지 않지. 뭐 이런 결론이에요. 언제쯤엔 제가 다 이젠 만들었다. 다 이루었다하고 쉬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듬고 있고, 또 다시 연구하고. 어제는 수심결 꺼내서 또 수정할 거 없나하고 다시 또 뒤적이고요. 요즘 제가 새로 알아낸 내용들을 옛날 책에 또 접목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또 그런 거 연구하고 뭐하다보니까요. 책 써 놓은 게 많고 말해 놓은 게 많다 보니까. 다시 재검토해야 될 것도 늘어요.

 

그래서 이게 내가 말을 더 많이 해 놓으면 이게 일이 더 커질 텐데. 죽을 때까지 힘들겠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는데. 이런 일로 뭔가로는 우리가 살면서 힘들지 않을까요? 저는 이왕이면 이런 걸로 힘들면 보람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일로 제가 좀 힘들더라도 우리도 도와주시는 분하고 같이 만들어 놓으면 작품을. 영적 등불이. 많은 분들이 헤매실 때, 선이 뭔지 악이 뭔지, 정의가 뭔지, 불이가 뭔지, 어디가 양심인지, 욕심인지 헤매실 때 이렇게 갑니다. 삽시다. 하는 등불이 하나 딱 있어서 나침반 역할을 해주면, 아마 인류가 두고두고 아마 유용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욕심이죠. 이왕이면 저는 당대에 많은 분들이 이걸 하는 걸 보고 싶어요.

 

그런데 이거는 안 되도 저는 인류가 이거를 따르기만 하면 인류가 화평해질 거라는 어떤 대동사회가 올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안 되도 뭐~ 섭섭할 거는 없습니다만, 이왕이면 많은 분들이 닦아서 변하시는 걸 내 눈으로 좀 보고 싶다하는 것도 있죠. 그런 거 싫어요. 죽고 난 뒤에 작품이 비싸지고 이런 거. 살아서 좀 보고 싶어요.^^ 이건 제 욕심입니다. 제 욕심인데, 이왕이면 내가 내 눈으로 좀 봤으면 하는 게 있죠. 당연히. 내 양심을 넘어서까지 욕심을 부리지만 않으면 되요. 그래서 저는요, 제 욕심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를 꺼려하지 않아요. 다 말씀 드립니다. 제가 뭔 욕심을 갖고 있다. 말씀 드립니다. 왜냐? 오해하실까봐요. “~ 저 피터 팬이 욕심이 없나봐.” 이런 잘못된 상을 잡으시면 여러분 공부에 방해가 되요.

 

이 공부한다는 게 욕심이 준다는 거랑 다릅니다. 욕심이 준다는 건요, 욕심에 손을 덜 들어주게 된다는 거지. 욕심이 사라지지 않아요. 제가 공부해본 결과는. 제가 공부를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욕심이요, 안 사라지고 똑같이 있어요. 그런데 제 모습. 특히 그걸 표현하는 방식은 계속 바뀌어요. 양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욕심이 안정을 찾는 거지. 아까 그 서경 말씀 드렸죠? 욕심은 위태롭다고 그랬죠? 양심은 미약하다. 그러니 양심을 정밀하게 파라 그랬지. 욕심을 파라고 안 해요. , 양심만 더 확충하면요, 욕심은 어떻게 되냐 하면요, 위태롭다가 안정이 되는 것뿐이에요. 욕심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게 아니고요, 욕심이 안정이 되요. 뭔 얘기냐 하면, 남의 거 먹자는 말은 안한다고요. 욕심도. 먹고 싶다고는 하지만. 이해되세요?

 

갖고 싶다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갖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고요. 그러면 내 마음이 화평이 오는 겁니다. 내 마음의 팀원들, 욕심들이 나를 따라주면, 양심을 따라주기만 하면 이게 해결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공자님이 뭐라고 그랬죠? 본인 공부에 극치를? 욕심이 사라졌다고 안했어요. 從心所欲不踰矩종심소욕불유구. 여기서 심은 욕심이에요. 욕심이 마음대로, 욕심을 따르더라도 양심을 어기지 않는 경지. 종심소욕불유구. 종심. 욕심을 다 따라봤는데도 불유구_여기서 구는 (법도 )자입니다. 양심을 말해요. 불유는 어기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즉 이 말은 우리말로 풀면요, 꼴리는 데로 해도 양심을 어기지 않는 경지. 이게 우리 성인의 경지입니다. 공자님 70에 얻었다는 성인의 경지가 뭐냐 하면 욕심을 부려 봐도 양심을 넘어가지는 않는 경지.

 

이 경지가 목표입니다. 재미있죠? 고전을 정확히 풀어야 되요. 안 그러면요 오해가 생겨요. 그리고 뭐가 생기냐하면요, 포기가 빨리 이루어져요. “내갈 할 거는 아니네.” 여러분 다 하실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못할 게 하나도 없어요. 다 하실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양심으로 욕심 많이 죽이고 사세요. 이미. 그렇죠? 그걸 더 세련되게 하고, 원리를 알고 하시기만 하면 성인되실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욕심나는 거 다 못하고 사시잖아요. 지금. 그런데 그게 체면 때문에 더 큰 이익 때문에 하면은 아니고요. 순수한 양심 때문에 욕심을 죽이고 사시죠. 아까, 철로에 누가 떨어졌다고 했죠. 내 욕심은요, 내려가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내려가서 좀 도와줬다고 치죠. 그 순간에 양심이 욕심을 다스렸지 않습니까? 그 힘을 갖고 계세요.

 

다만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게 문제죠. 그거를 수시로 불러내고, 늘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성인이 되는 겁니다. 찰나찰나는 우리도 다 가능하다는 거예요. 나 진짜 이거 먹고 싶은데, 집에 있는 내 가족 때문에 참았다. 아니면요, 이렇게 좋은 거, 만난 거 좋은 거 샀는데, 혼자 먹어볼까? 하다가 가족을 가져서, 가족과 같이 먹으면 더 좋을 거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럼 이게요, 아무것도 아닌 일 같죠? 찰나찰나 양심과 욕심이 거기서 싸우고 있고, 양심이 욕심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이런 변혁들을 중시하세요. 그리고 그 양심에다가 조금만 힘을 실어주시면 여러분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거를 꼬옥~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