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목스님_유나방송

정목스님_나무아래 앉아서 5회

Buddhastudy 2014. 7. 2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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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TV

 

 

가을벌레가 우네.

아직 엄마 품에 있고 싶은

어린 가을이

홀짝홀짝 풀섶에서

울고 있네.

 

눈 감으면

저만치 가고 있던 여름이

쥐고 있던 별들을

강물에 던져 넣네.

 

잠시 세들의 살던 집도

내 집인양

정들면 떠나기 힘드네.

 

정들면 상처마저

버리기가 힘드네.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시인의 말처럼 정말 정이 들면 상처마저도 버리기가 힘든 법이지요. 세월의 무게만큼 쌓여있던 정, 이게 아무리 살기가 어렵다해도요, 못산다해도요, 이걸 그저 툭~ 떼어내서 버리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저녁이면 가을벌레가 풀섶에서 울고 있는 요즘, 우리는 또 한 번의 계절을 떠나보내고 다시 또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나무아래 앉아서 오늘 첫곡은 계곡과 산으로 마음의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Over Valley and mountain, James Last 오케스트라로 띄어드립니다.

 

..

 

우리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거, 복이죠. “복 많이 받으세요.”라든지 복이 있어야한다. 그런 말 참 맣이 하는데요, 돈 복도 있어야 되겠고, 먹을 복도 있어야 되겠고, 사람복도 있어야 되겠는데, James Last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고 있는 이 분은 상복을 타고 난 사람이에요. 정말 프로필을 보면 무슨 상, 무슨 상, ~ 다 읽을 수도 없을 정도로 상복도 특별히 타고 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독일의 팬플룻 연주자입니다. 그의 연주로 오늘 첫곡 시원스럽게 띄어드렸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복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바세계는 복만 있는 게 아니라 담과 벽으로 둘러 쌓여서 살아가죠. 인간의 마음도 이렇게 담과 벽으로 둘려 쳐져서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말, 얼마나 많이 합니까? 중국의 만리장성이라고 하는 게 있죠? 만리장성은 그 당시에 흉노족이나 돌궐족 같은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세운 거대한 장성인데요. 사실 그 만리장성이라고 하는 그 거대한 장성. 성이라는 게 민족과 민족 사이에 서로가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게 아무리 길다한들, 그게 아무리 높다 한들 넘지 못하지는 않죠?

 

그런데 인간의 마음이라는 건 한번 마음의 문의 탁~ 닫혀있으면 이걸 열어젖히지 않는 이상, 이 벽과 담을 넘어서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벽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데요, 터키의 수도 이스탐블, 거기에는 아주 유명한 성당이 있습니다. 아마 시청자 여러분께서도 가보신 분들은 다 가서 보셨을 거예요. 소피아성당이라고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 소피아성당은 둥근 돔 형식으로 성당을 지었는데, 지름이 32미터니까 상상이 안가시죠? 거기다 높이는 56미터입니다. 정말 까마득하고 아득한 그 거대한 성당이 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거, 돔은 원형의 지붕이잖아요.

 

더 놀라운 사실은요, 그토록 거대한 높이의 원형 돔형식의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기둥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에요. 도대체 그 옛날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지은 걸까? 정말 쳐다보면 아득하죠. 그런데 이슬람교가 들어가면서, 이슬람교가 지배하게 되면서 이 성당은 이슬람교의 사원으로 쓰여지 게 됩니다. 이슬람교의 사원으로 쓰이다가 1935년도에 박물관으로 개조를 하게 되는데, 박물관 개조를 하기 위해서 벽에 칠해져 있는 이 칠을 벗겨 내는 거죠. 칠을 벗겨 내다보니까 놀라운 게 발견된 거예요. 그 안에서 가톨릭의 성화와 수많은 모자이크들이 보물이 쏟아져 나온 겁니다. 수백 년 동안 벽 속에 숨겨져 있던 가톨릭의 성화와 모자이크.

 

그 보물들이 벽에서 막 쏟아져 나온 거죠. ~ 상상만 해도 환희심이 나지 않나요? 우리나라도 그런 사찰들이 몇 군데 있지요? 그 가운데 우선 전남 무이사가 벽속에 또 벽화의 그 불화가 그려져 있고, 불화 그 속에 또 불화가 그려져 있고. 7겹이던가요? 그렇게 몇 백 년을 내려오면서 불화를 그리고 또 그이위에 벽을 만들고 이랬는데, 나중에 보니까 몇 겹으로 된 속에 불화들이 층층이 숨어져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금 그게 국보로 지정이 되어있죠? 그것처럼 수많은 벽들 속에는 그렇게 많은 보물들이 진진찰찰 숨어 있습니다. 이렇게 찬란하고 화려한 이 문화, 바로 비잔틴문화이죠. 그 비잔틴문화가 벽속에서 쏟아져 나온 거예요.

 

인간의 마음도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이 사람과 저사람, 나와의 관계 속에서도 마음에 문을 닫아놓고 있으면 그 사람 속에 어떤 진귀한 보물이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그 마음에 빗장 문을 열고, 저 상대방의 마음에 빗장 문을 또 열고, 서로의 마음속을 보여주다 보면 그 속에 우리도 못 알아차렸던 만다라가 숨어 있는 겁니다. 화엄경에 그 화엄법계도라고 하는 변상도. 그 변상도의 그림에 부처님이나 대보살님들의 중중무진으로 펼쳐진 그 탱화를 보면 얼마나 환희심이 납니까? 이번 가을에는 우리마음에 빗장 문을 열고, 내 마음의 숨어 있는 그런 변상도, 화엄법계도를 전시하는 가을전시가 열릴 수 있게 마음의 문을 열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번에 들려드릴 음악 안나게르만의 노래로 듣죠. 가을의 노래입니다.

 

..

 

마치 공기와 물처럼 우리는 서로 헤어져 살지 않을 거예요. 영원히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인데, 정말 옆에서 같이 산다는 말이 아니라, 이 노랫 속에 담긴 의미는 추억 속에서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할 겁니다. 라는 그런 애잔한 가사가 담겨있네요. 안나게르만.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가수입니다. 러시아출신인데, 우즈베키스탄 작은 마을에 태어나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게 되어서 어머니가 폴란드사람과 다시 결혼을 하게 되요. 그런데 폴란드에서 만난 아버지도 또 일찍 돌아가시게 되요. 내가 러시아 사람이냐? 폴란드 사람이냐?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하죠. 노래로 자신의 힘들던 시절을 건너온 여성인데, 46살 젊은 나이에 요절합니다.

 

으흠. 그녀의 목소리에는 가을이 담겨 있어요. 그녀는 세상 떠나고 없지만, 안나게르만이 부른 러시아 로망스들은 지금까지도 잔잔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지요. 러시아의 문호인 막심고리끼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러시아사람들은 워낙 비참하게 살아서 슬픔 정도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게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과 정서가 좀 닮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우리도 하도 비참하고 어렵게 살아본 역사가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슬픔, , 뭐 이런 거 정도는 잘 넘어갈 수 있는 민족이기도 하죠.

 

가을에 이렇게 멋진 음악을 듣고 나니까, 한편의 시를 듣고 싶지 않으세요? 오늘은 바랑 속에서 책 한권, 시집을 골라봤습니다. 김재진 시인의 먼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라. 읽어드릴께요.

 

돌아서면 까먹고 이제 늙었나 봐

불 위에 얹어놓은 냄비 졸아붙었다며

한탄하는 아내의 그 한 마디에 어머니 생각합니다.

 

적어놓지 않으면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고

언젠가부터 난초 향기조차 느낄 수 없다시며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그렇게

후각이 없어지더라고 혼잣말 하시는 어머니.

 

연휴 때 세상 떠나면 차가 막혀

아이들 내려올 때 불편할지 모른다고

걱정하시던 아버지 돌아가신 뒤

어머니 기대어 계시던 먼 산 바라보며 옛날 생각합니다.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고 세상 떠나겠다며

병원 가시는 것도 거절한 채

단명하신 아버지 생각하며 어머니 생각합니다.

 

가을이 온 산의 잎들을 물들이거나

마당에 봄볕이 고양이 같이 따사로울 때

먼 산 같은 사람에게 기대어

고즈너기 미소 띠며 세상에 나서 그렇듯

사랑했던 사람이 있어 행복합니다.

 

..

 

, 이대로 그냥 음악을 몇곡 계속 들었으면 좋겠네요. 레이정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피아니스트입니다. 그의 연주로 프라미스, 약속 들어보셨습니다. 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우리음악에 대한 노스텔지어가 생기더라고 그래요. 그래서 아예 음악의 캐릭터를 그렇게 우리 가락으로 잡아봤다고 하는 젊은 뮤지션입니다. 요즘에 우리나라의 젊은 뮤지션들이 우리 정서를 이렇게 우리가락을 담아서 좀 더 퓨젼스타일이라고 할까요? 그런 음악으로 표현하는 걸 보면 참신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게도 하고 또 놀랍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

 

사람사이의 직장인들, 참 이런 고통 고민 많으시지요? 그런데 제가 편지사연 읽다보니까 이런 마음이 들어요. 외계인을 만난 건 인생의 행운이에요. 지구인이 외계인 만나는 거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우리 이렇게 수많은 외계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으흠. 혹시 말이죠. 그 직장 상사, 외계인라는 그 직장상사가 아닌, 내가 원하는 다른 이상형의 직장상사, “저 사람이 내 상사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혹시 해보신 적 있으세요? “난 저 사람 마음에 안 들어. 이 사람이 아니고 저 사람이 우리 상사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든지요. 또는 이 직장이 아니고, 내가 형편만 나아지면 나 다른 직장으로 옮길 거야.” 라든지. 혹시 이런 생각하면서 살고 계시진 않나요?

 

참으로 신기하게도 말이죠, 세상은 우리 마음의 반영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상대방이 하는 사사건건이 다 문제로 보입니다. 나는 옳은데, 저 사람이 하는 행동은 아주 형편 없어보이죠. 그런데요, 이거 혹시 아시나요?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수백 년이 지나도 어렵다는 사실이에요. 수백 년이 지난 이후에도 그 사람이 바뀔 수 있을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럼 제일 쉬운 방법이 뭘까요? 나 자신을 바꾸는 거예요.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고 그게 또 바른 길이더군요. 우선 그런 상황이 올 때 말이에요, , 응급처치가 여러 가지 있지만, 응급처지로 한 가지 오늘 말씀드려 볼게요.

 

그 외계인 같은 사람을 만날 때 지구인과 외계인이 만났잖아요. 그럴 때,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점, 사사건건 저 직장상사 저런 사람을 만난 게 내 인생에 불행이야. 라는 생각이 들 때, 그 사실이 내 인생을 전체적으로 물러나서 볼 때, 그게 정말 그토록 중요한 일인지. 그거 이외에는 나에게 중요한 일이 없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는 거예요. 마치 우리의 눈을 우주로 물러나서 내려다보듯이 그렇게 눈의 시각을 확대해 보는 겁니다. 세상에 살다보면 그 일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정말 많거든요. 우선순위를 정해서 더 중요한 일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사람을 한편으로 이해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말이죠, 이런 거 한번 해보세요. ‘자시심 연습이라고. 내가 상대방에게 미워죽겠는데 자비심을 보내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한번 해보는 거예요. 자비심을 방사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그냥 조용히 잠시 눈을 감고 그 사람을 떠올리세요. 싫다는 생각도 밉다는 생각도 그 어떻다는 생각도 그냥 거기 내려놓으시고, 마치 저기에 서 있는 한그루 나무를 바라보듯이.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이는 거죠.

 

나는 당신에게 아무적대감 없습니다.

당신 또한 나에게 적대감 없기를 바랍니다.

 

이걸 한 3번 정도 해보세요. 그러면 우선 내 마음이 진정이 되고요, 그 사람을 향하던 그 저항하면서 맞붙던, 그 강력한 힘의 에너지가 좀 슬며시 풀어집니다. 이렇게 나 자신을 바꾸어가는 길 밖에 없고요, 우린 어차피 이 세상이 지구인과 외계인이 섞여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힘내십시오. 오늘 음악을 한 곡 선물하면서, 이런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그 직장 상사도 괜찮아 보이지 않을까 싶은데, 유익종씨의 노래로 띄어드릴게요.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요.

 

..

 

떠오르면 가슴만 아픈 사람, 혹시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 있으세요? 그리워서 그리워서 떠올렸는데, 그냥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더군요. 안보면 보고 싶고, 보면 원수 같다고요. 혹시 그러신가요? 우리의 헤어짐은 멀어도 그게 마음에 남아서 창문 흔들리는 소리에 돌아보는 마음. 그래요. 이가 갈리도록 그렇게 미운 사람도 저게 문제야. 문제야.” 삿대질 하며 손가락질 하던 사람도, 어느 날, 가을낙엽처럼 훌훌 옷을 벗으면 세상 떠날 한 존재일 뿐입니다. 어느 날 떠난 뒤에 왜 우리 진짜 미웠던 사람인데, 이상하게 세월이 흐르다보면 한 10년 지났는데 갑자기 그 미운사람이 기억나고 보고 싶은 그런 사람 혹시 없으세요? 같이 있을 땐 그렇게 속을 썩이두만, 안보니까 보고 싶다. 그게 또 인생인 모양입니다.

 

여러분이 일생에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으신지요?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또 어떤 노력들을 하십니까? 불가에서는 그런 엄청난 소망을 이루기위해서는 그저 뭐, “어떻게 해주세요.” “이루어 주세요.”라는 그렇게 작은 가슴속에 기도만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 세상에 와서 거대한 소망 한번 이루어보면 어떨까요? 불가에선 그걸 발원이라 그럽니다. 이 발원은 전 생애를 통해서 내려오는 목표여야 됩니다. 이번 생에 여러분은 어떤 목표로 어떤 발원을 올리고 싶으신지요?

 

내 마음의 성소 발원문을 올리는 시간, 오늘은 깨달음을 완성하는 발원을 올리겠습니다.

 

대보살님들께 보호를 간청하오니

우리가 하찮은 병에 걸려도 두려워하며

의사의 말을 따르는데

하물며 수많은 번뇌와 병에 시달리고 있으면서

어찌 대보살들께

보호를 간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번뇌보다 더 무서운 병은 없기에

번뇌의 병 하나만으로도

모든 중생들이 전멸될 수 있거늘

어찌 대보살들께

보호를 간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제가 삼보에 귀의하고도

모든 고통을 없애주는

참된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산을 오르다 낭떠러지를 만나도 조심해야 하거늘

무간지옥 같은 천길 지옥의 낭떠러지에서야

얼마나 더 많이 조심해야 하겠습니까?

 

적어도 오늘은 내가 안 죽겠지 하는 마음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겠습니까?

 

죽음이 언제 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것

누가 저를 이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세속의 삶을 즐겼으나

진리를 만난 지금, 그 모든 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허망하고 부질없는 것에 탐닉하느라

저는 붓다들의 가르침을 무시해왔습니다.

제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모두 두고

저 혼자 떠나야 하거늘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모든 고통의 원인인

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낮이나 밤이나

오로지 이것만을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고 저질렀건 모르고 저질렀건

제가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악업은 무지 때문입니다.

 

중생들의 보호자이신 대보살들게

두 손 모아 참회하오며

절하고 또 절을 합니다.

중생들을 자비로 이끌어주시는 성자들이시여

제가 지은 모든 악업으로부터 저를 구하소서.

 

삼보를 만나고 진리를 만난 이상

결코 작은 악행도

다시는 저지르지 않기를 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