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목스님_유나방송

정목스님_나무아래 앉아서 7회

Buddhastudy 2014. 8. 31. 20:58

"> 출처: 불교TV

 

 

사람들은 자기가

부처인지도 모르고

중생이라고 합니다.

 

진짜 금을 착각하여

아무리 잡석이라 불러도

진짜 금인 것처럼

 

사람은 자신이 가진 진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우리 곁에 오셨던 성철큰스님은 사람들이 스스로 부처인 줄도 모르고 중생이라 여기며 산다고 말씀하셨지요? 스님말씀과 같이 우리는 매일 부처를 곁에 두고도 부처를 간절히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 곁에 오셨다가 떠나신 성철 큰스님, 가야산 해인사에 그렇게 많이 운집했었던 대중들,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우리 곁에 오신 선지식들을 떠올리며 오늘은 머리 조아려 예경 올립니다.

 

..

 

이런 음악을 들으면 왠지 가을 억새밭이 있는 곳으로 막 나갈 거 같죠? 두두둥~ 치면서. 가을이 정말 가까이 왔는데 느끼면서 사시는지요? 이 시간에 보내드리는 음악을 듣고 있자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정화가 되는 거 같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시청자분들이 꽤 많이 계시더군요. 병상에 누워계시면서 BTN을 시청하신 분들도 계시리라고 여겨요. 물질인 이 몸이라는 육체. 이것이 한 생애를 살면서 아프지 않고 살기가 참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몸이라고 하는 이 육체는 정말 어디까지 뻗어있는 걸까요? 우리의 피부가 끝나는 곳이 우리 몸에 끝일까요? 이 인간의 몸의 일부분.

 

예를 들어서 손가락 마디나 발가락 마디 하나가 잘려져 나갔을 때, 우리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느끼지요. 그런데 참 묘한 거는요, 더러 우리 몸의 일부분이 이미 소멸되어 없어진 상태. , 팔이 잘려나갔다거나 다리가 잘려나갔거나, 손가락이나 발가락 하여튼 잘려나갔다 하거나 할 때, 이미 우리 신체에서는 그 일부분이 잘려나갔는데도 불구하고 그 통증을 여전히 느끼는 거, 그걸 환지통이라고 부르죠. 환지통. 이거는 두뇌의 신경 구조가 그렇데요. 말하자면 이미 우리의 몸에서는 그 부위가 사라졌지만 뇌는 그걸 기억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 그대로 아직도 팔과 다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똑같이 통증을 느끼는 겁니다. 환지통. 그렇다면 말이에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그리고 느껴지는 것들, 이것이 어쩌면 실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환지통처럼 그게 실상이다. 하고 느끼고 사는 건 아닐까요? 모든 게 환희다. 라는 말을 합니다만, 환희라고 하는 말, 우리가 현상세계라고 믿고 있는 것들, 지금 제 눈앞에는 카메라가 막 돌아가고 있어요. TV도 있고. 여러분 지금 TV로 보시면 등도 보이시고 화면들이 보이죠?

 

이렇게 우리 눈에 보이는 이런 현상세계. 이런 거 자체가 환지통과 같다고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은 텅 빈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이 있다고 믿는 거죠. 우리의 기억이 그게 거기에 있다고 믿는 것. 그래서 어쩌면 이 세계가 창조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텅 빈 공인데. 우리의 기억이 자꾸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 그 기억의 집착이 현실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요? 환지통. 어려운 듯하지만 한번쯤은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지요? 지금 우리가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인간관계가 복잡하다 어렵다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것도 진실은 환지통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것이죠.

 

오늘 환지통에 대해서 저도 좀 깊이 생각해보고, 여러분에게도 화두로 던져봅니다.

 

..

 

이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저 기계가 기계로 보이지를 않아요. 마치 접촉하면 우리의 살결이 닿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이 서 있는 거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여러분 눈에는 안보이시잖아요. 지금 카메라만 저를 쳐다보고 있거든요. 그리고 우리 카메라감독하고 많은 분들이 빙글빙글 돌리면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시청자여러분께 멋지고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드릴까? 기계가 제 앞에 왔다 갔다 합니다. 음악 한곡이 마음이 따뜻해지면 이런 기계조차도 마치 살결을 느끼는 것처럼 사람 냄새나듯이 그렇게 느껴지는 것. 그래서 한곡의 음악은 인간을 만드는 가장 좋은 재료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켈틱 음악들은 대체로 선율, 운율들이 아주 단순합니다.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기 때문에 바로 우리 정서적으로 팍~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 있지요. 제가 좀 전에 우리 몸에 대한 기억, 또 환지통에 대한 말씀을 드렸는데요, 내 몸에서 일부가 잘려져 나갔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는 그것이 거기에 있다고 기억을 해서 계속 통증과 아픔을 여전히 느낀다. 그래서 우리가 눈앞에 보여지는 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현상세계 또한 환지통이라 생각한다면 텅~빈 공 가운데 그것이 있다라고 내가 계속 기억을 집착하는 건 아니겠는가?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요, 평소에 여러분들은 몸에 대해서 얼마나 자주 자각을 하면서 사십니까? 내 몸에 상태가 어떤지, 또 몸이 진정으로 느끼고 있는지, 내가 불쾌하다 불안하다 초조하다고 말할 때 실제 그 느낌이 내 몸과 어떻게 밀착되어있는지를 느끼시는지요. 저는 가끔 맨발로 잔디 위를 걷거나 자갈 위를 걷기도 합니다. 우리 발바닥은 우리 몸 신체에 있는 모든 근육이 발바닥에 다 있다 그러잖아요. 그래서 발을 다 벗고 잔디 위를 걷거나 가갈 위를 걷다보면 발이 굉장히 자유로워진다 그래요. 신발이, 신발을 신으면 여성들 특히 하이힐 같은 거 신으면 여기 좁아지잖아요. 굽이 높은 걸 신으니까 얼마나 몸이 불편하겠어요?

 

그런데 맨발을 탁 벗으면 발바닥이 쫘아악 펴지면서 바닥에 접촉해서 닫는 순간 몸이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자갈 위를 걸을 때 불편할 거 같지만, 모래 위를 걸을 때 찝찝할 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원래 우리가 태어날 때 신발신고 온건 아니잖아요. 오늘 바랑 속에서 멋진 책한 권 꺼내보겠습니다. 이렇게 말이죠.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티베트 스님께서 책인데요,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가운데, 오늘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여러해 전 내가 인도의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길 대부분이 아직도 자갈로 포장되어있는 상태였다.

서두르는 바람에 센들 신는 걸 잊고 숙소를 나선 나는 곧 후회했다.

자갈로 된 길을 맨발로 걷는 기분은 아무래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한 인도인 의사에게 이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 아주 좋아요.”

그는 고대 의학책에 따르면 발바닥의 여러 지점을 누르는 것은

몸의 여러 내부기관과 조직의 활동을 자극함으로써

전신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나로서는 그것이 매우 참신한 생각이었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난 후부터 나는 더 자주 맨발로 다녔다.

 

놀랍게도 불편함 대신

발바닥에 닿는 돌의 감촉에 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일까?

 

돌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 발도 달라지지 않았다.

걷는다는 신체적인 행동에도 변화가 없었다.

 

그 경험에서 변한 것은

단지 나의 관점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전에는 자갈 위를 맨발로 걸으면

아플 거라고만 생각했다.

 

의사가 그 상황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을 제시하자

또 다른 가능성이 경험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만약 내가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았거나

아니면 나 자신이 그 불편함에 굴복했거나

혹은 방에서 나올 때마다 샌들 신는 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나는 내 마음에 조건 지워진 측면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아픔과 불편을 경험하는 순간들에

더 많이 감사하게 되었다.

 

그것들 각각은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씨앗이며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이고

내게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나 자신과

주위 세상에 대한 관념들을 관찰하는 기회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고통의 원인을

상황이나 조건에 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통의 원인은 사건이나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전개될 때 그것을 해석하는 우리의 방식에 있다.

 

..

 

마가랏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영화로 만들어서 대 히트가 되었던 것이죠? 여자 주인공 스칼렛 생각이 나시나요? 당차고 자기주장이 강한 그 여 주인공의 모습이 명장면처럼 지나가는 거 같은데요, 영화, 요즘도 좋은 영화 정말 많이 만드는데 옛 영화들 한 번씩 보고 싶을 때 있으시죠? 이 시간을 통해서 영화 음악들 가끔 들려드릴 거예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테마곡 내 사랑은 진심입니다. ...

 

일반 하프하고 조금 달라요. 인디언 하프는 조금 서양의 큰 하프보다는 좀 작아요. 그런데 굉장히 귀엽고 소리도 굉장히 영롱하죠. 인디언 하프였습니다.

 

..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니까 저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따뜻해지네요. 생태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신군요. 생태미술놀이. 저도 왠지 선행님 따라 나가서 숲속에서 함께 놀아보고 싶네요. 그래요. 아이들은 숲에 가서 수업을 하면 스스로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배우는 게 참 큰 거 같습니다. 왜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을 숲으로 데리고 들어가서요, 행거라 그러죠? 나무와 나무사이에 행거를 걸어놓고 그 위에 아이들이 올라가게 하는 거예요. 그럼 처음에는 굉장히 두렵고 무서울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행거에 누워서 흔들흔들 흔들리는데 서서히 밤이 찾아옵니다.

 

늦은 밤이 찾아올 때 7, 8살밖에 안된 아이들은 엄마 찾을 거잖아요. 엄마엄마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 나무 아래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여기 있으니까 안심 하거라. 신호를 보내면 점점 점점 숲속에 어둠이 짙어올 때 아이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부엉이 소리를 듣거나 올빼미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거죠. 그게 얼마나 축복인지. 밤이 아니면 볼 수 없고, 밤에 숲속은 두렵고 무서운 거라고 알고 있었던 아이들에게 올빼미를 만나거나 부엉이 소리를 듣는 다는 건, 굉장한 교육이잖아요. 으흠. 사연을 소개하다보니까 문득 아이들이 숲속에서 행복해 하는 모습이 제 눈에도 떠오릅니다.

 

아까 결혼 20주년 기념 축하 달라고 하셨던 분과 그리고 선생님께 제가 멋진 음악, 선물하겠습니다. 녹색마차가 달려갑니다.

 

..

 

아이들이 단잠을 자고 있어요. ~ 봄이 마차를 타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어보렴. 그러면 봄을 볼 수 있을 거란다. 이런 노래입니다. 녹색마차에 봄을 실어 보냈는데, 알렉산드로 스와노프의 목소리가 굉장히 동화적이면서도 정감이 있죠. 여기서 말하는 봄이라는 건, 실제 계절의 봄도 봄이지만, 희망을 말합니다. 단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쉿~ 하라고 그러고, 창밖을 내다보면 봄이 와 있을 것이다. 항상 희망을 품고 살아가렴.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는 노래입니다. 우리 마음은 작은 것에도 쉽게 자극을 받으면서 살아가죠. 어린 날에는 뭐, 그냥 배가 고프면 밥 먹으면 그 순간 기분 나빴던 거 해결되고요, 또 뭐, 속상해서 징징대고 울다가도 그냥 또 맛있는 거 사주면 또 금방 해결이 되고요.

 

그런데 이게 어른이 되어가면서는 먹는 걸로 해결이 안 되잖아요. 불쾌하거나 우울하거나 짜증이 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평소에 마음을 다스리고 해결을 하시는지요? 1200년 전 인도에 싼티대바라고 하는 분은 이 생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내가 정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발원문을 작성을 합니다. 산티데바가 작성한 발원문이 요즘 행복수업이라고 하는 책으로 나와 있지요. 한줄 한줄 읽다보면 정말 한 인간이 이런 전도의 서원을 세울 수도 있구나. 멋진 일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산티데바의 발원문 중에 나무토막처럼 있거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이 오더라도 나무토막처럼 묵묵히 있어라.

 

내 마음의 성소 발원문, 오늘 함께 공양 올리겠습니다.

 

마음 챙김이 마음의 대문에서 초병으로 자리 잡고 지키면

다른 지혜도 찾아오고

한번 찾아오면 다시 떠나지 않습니다.

 

처음 마음을 다스릴 때는 이런 식으로 마음 챙김을 유지하고

때때로 마음 상태에서 허물을 발견하면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애착이나 미움이 일어나면

아무 행동도 말도 하지 말고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오만하거나 잘난 척하거나,

남들을 조롱하거나 헐뜯거나,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들을 속이려 할 때,

또는 자기 자신을 추켜세우고 싶거나,

남들을 깎아내리고 싶거나,

남들을 해치거나 이간질하는 말을 하고 싶을 때,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물질적인 이득을 바라거나

사람들의 존경이나 명예를 원하거나

시중들어줄 사람과 시중을 받고 싶을 때는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남들이 이익을 얻는 것은 싫어하고

자기 자신만 얻으려고 하거나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곁에 있기를 바랄 때는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안달하고 나태하고 용기 없고,

뻔뻔하거나 상스러운 말을 하고 싶을 때

자기에게 유리하게 편파적인 마음이 일어날 때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번뇌에 물들어 있거나,

쓸데없는 활동에 빠져있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알아차리고

적절한 대응책을 이용해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단호하고 자신있고 꾸준하게 공경하며

예의바르고 겸손하며

온화하고 차분하게 남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나와 상충한다고 해서 낙담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부족함은 번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해심을 가지고 그들을 자비롭게 대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남들을 위해 오로지 선행만 하며

모든 것은 그림자와 같다고 생각해서

마음속의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귀중한 인간의 삶을 사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항상 기억하며

언제나 마음을 수미산처럼

흔들리지 않게 유지해야 합니다.

 

이렇게 귀중한 인간의 삶을 사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항상 기억하며 언제나 우리 마음을 수미산처럼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라. 이 멋진 발원, 이번 한주 가슴에 새겼으면 합니다. 오늘 내가 하는 한마디 말이 가슴 아픈 사람에겐 위로가 되기를 기원 드리며 오늘 순서 접습니다. 당신과 내 안의 신성한 빛, 거룩한 불성에 경배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