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198회] 집나갔던 며느리에게 믿음이 안갑니다

Buddhastudy 2016. 7. 5. 05:09



 

그러니까 애기 엄마하고 나하고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여기 있는 모든 사람한테 물어보면 애기는 내 자식이에요? 그 며느리 자식이에요? 그러면 애기 엄마가 애기에 대한, 잘 키우든, 못 키우든 권한이 있지, 할머니한테 권한이 있는 건 아니에요. 할머니한테 권한이 있는 거는 애기 엄마가 애기 키우는 거를 포기했을 때, 즉 엄마를 포기했을 때, 보호자를 포기했을 때 할머니가 애기의 보호자는 될 수는 있어요. 아시겠죠? 그러기 때문에 애기 엄마가 애기를 키운다하면 잘 키우니, 못 키우니 이런 걱정 하면 안 돼요.

 

그냥 애기들을 애기 엄마가 키운다니까 참 좋은 일이다. 그래서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돕고, 도울 일이 없으면 그냥 정을 끊어주는 게 아이에게 좋습니다.

 

. 어떻게 끊기는? 저그 엄마가 데려가면 되지. 양육을 잘하든 못하든 그건 엄마의 일이지, 자기가 관여할 일은 아니에요. 그러면 자기가 얘기한데로 옛날에 잘못 살아서 이런 과보를 받았는데, 지금 또 잘못해서 손자들이 커서 똑같은 고통을 또 겪게 되요. 그러니까 뭘 먹이느냐? 뭘 입히느냐? 이런 건 중요 안 해요. 제가 상담을 해보면,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 이런 어릴 때 상처 때문에 상담하시는 분이 많거든요. 우리 3040년 전에는 정말 살기 어려웠잖아요. 그럴 때 남편이 갑자기 돌아가시거나, 안 그러면 남편이 병이 들었거나 남편하고 이혼했거나 이럴 때 지금처럼 자식이 둘이 있다.

 

하나는 세 살이고, 하나는 일곱 살이다. 그러면 둘 다 키우기에는 너무 벅차고, 애들한테 밥도 제대로 못 먹이겠고, 그래서 큰 애는 외갓집이나 또는 큰 집이라 부탁을 해서 좀 키워 달라.” 부탁을 하고, 작은 애는 힘들지만 자기가 업고 다니면서 키운다. 이 말이오. 장사하면서. ? 작은애는 남의 집에 맡기면 그 집에서 키우기가 어려우니까. 이렇게 작은애는 내가 업고 다니면서 구걸도하고 보따리 장사도해서 키우면 고생은 작은애가 훨씬 더 하고, 큰 애는 그래도 큰 집이나 외갓집에 살만한데 부탁해놓으면 먹고 사는 건 나은데, 애가 크면 누가 상처가 많을까요? 작은애가 많을까요? 큰 애가 많을까요? .

 

그거 왜 그래요? 그러니까 애는 뭘 먹이느냐? 입히느냐는 중요 안하다니까. 이유가 없어. 그러니까 엄마하고 있는 거는 상처가 없고, 엄마하고 떨어진 건 상처가 생기는 거요. 할머니가 아무리 잘 키워도 큰 집에서 얘를 아무리 잘해줘도, 엄마하고 떨어지면 상처가 있고, 아무리 못 먹어도 엄마 등에 업힌 애는 상처가 없어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잘 키우니 못 키우니 이렇게 해서 시비를 하면 할수록 애는 나빠져요. 그러니까 엄마가 데려가서 키운다. 또 할머니가 열심히 키우고 있을 때라도 엄마가 와서 제가 키우겠습니다.”하면 아이고, 고맙다. 착하다. 그래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있어야지.”하고 줘야 되는데,

 

자기도 못 키워서 보육원에 데려다놨는데, 애기 엄마가 데려다 키우겠다는데, 그걸 자기가 잘 키우니 못 키우니 하는 거는 전혀 도리에 맞지 않는 거다.

 

며느리 마음 따질 필요 없다니까. 일시적으로 그러고 가서 한 달이든 두 달이든 키우다가 또 못 키우면 보육원에 가면 본래 자리로 돌아오잖아요. 그게 할머니가 그거를 애 엄마를 미워하는 게 애한테 상처가 되지, 애기 엄마 욕을 하는 게 애한테 상처가 되지, 제 어머니가 데려왔다가 갔다하는 거 보다 자기가 애기 엄마 욕하는 게 상처가 더 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반성했다더만 하나도 안 했더더만. 똑같애.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워하고 안하고 간에 아이에 대해서 엄마의 권리지 자기는 권리가 없다니까. 엄마가 포기할 때만 권리가 있다니까. 자기가 나서서 여기 설칠 필요가 없다니까.

 

며느리가 버리고 가면 내가 돌보다가 며느리가 데려가려면 아이고, 잘됐다.”하고 보내고, 또 며느리가 못 살겠다고 버리면 또 보호하고, 또 데려가면 또 주고, 열 번 해도 괜찮아. 그리고 며느리 미워하면 안 돼.

으흠, 괜찮아. 그거보다는 자기가 미워하는 게 더 나쁜 영향을 줘.

 

마침 이 분이 질문하니까 내가 한 가지 얘기를 할게요. 옛날에 조선시대에 양반 상놈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있었죠. 그리고 그때는 절이 마을에 안 있고 다 어디 있었어요? 산에 있었잖아. 그죠? 그 한 스님이 염불을 하시는 스님이신데, 그저 눈만 뜨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시는 그런 스님이신데, 이 마을에 유지, 촌장 집에, 마을에서 제일 잘 사는 부잣집이 그 스님의 신도요. 제일 후원을 많이 해. 그래서 스님을 존경하고 스승처럼 받들고, 그리고 그 절 짓는 거 다 불사 도와주고. 그렇게 해서 스님을 마치 자기 집 부모처럼 모시고 살았어요.

 

그런데 딸이 17 18, 시집갈 딸이 있는데, 시집을 보내려니까 딸이 시집을 안 가려는 거요. 이 핑계 저 핑계 선 보라해도 안 보고. 그러는 중에 왜 그러냐고 자꾸 따져 물었어요. 물어도 대답을 안 하는 거요. “시집갈 마음이 없다고. 엄마하고 같이 살겠다.”. 이러는데 애가 갑자기 배가 불러 보니까, 딸이 애기를 낳은 거요. 완전히 옛날 같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잖아. 그러면 이 딸이 누구하고 연애를 했나? 집에 있는 머슴하고 연애를 한 거요. 옛날에 이러면 머슴을 죽여요? 안 죽여요? 종을 죽여 버립니다. 옛날에는.

 

남자가 계급이 높고 여자가 계급이 낮을 때는 괜찮은데, 계급이 낮은 남자가 계급이 높은 여자하고 관계를 맺으면 죽입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부모한테 얘기를 하면, 요즘 같이 수술이라든지 이런 게 있으면 했을 텐데, 그런 것도 없는 시대니까 배를 감싸고 감싸고 속이고 속이다가 결국은 9달이 넘어가면 속일 수 있어요? 없어요? 없단 말이오. 이렇게 해서 만약에 사실대로 말하면 누가 죽는다? 남편이 죽죠. 그러니까 어떻게 거짓말을 했나? 도대체 어떤 남자고 하니까, 저 위에 있는 스님이라고 얘기했어요.

 

그러니까 이 집에서는 그 스님에 대한 실망이 얼마나 크겠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거 같죠. 그렇지만 그 스님을 가서 처벌하거나 이럴 수는 없단 말이오. 또 관계가. 그래서 딸이 애기를 낳자 애기를 안고 부모가 절에 가서는 스님한테 당신 애 가져가시오.” 탁 던지듯이 줬어. 그러니까 스님이 애기를 턱 받으면서, “아미타불이러고 받았어. 아무 얘기도 안하고. 스님은 난데없이 갑자기 생겨난 일 아니오. 그리고 절에도 안가고 완전히 의를 끊고 살았어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이렇게 세월이 지나니까, 이 딸은 자기애기 보고 싶은 것도 있고, 그 스님한테 해를 끼친 거에 대해 죄송스럽고.

 

그래서 몇 년이 지난 뒤에 부모한테 이실직고를 한 거요. 사실은 내가 머슴하고 연애를 해서 그랬다. 그러니까 주인이 또 들으니까 이번엔 또 스님한테 미안해요? 안 미안해요? 너무너무 미안한 거요. 그래 스님한테 가서 애 데려 가겠습니다.” 이랬더니, 주면서 아미타불이랬어. 이게 염불수행자의 수행력이다.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수행자는 좋은 일 나쁜 일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갖고 와서 그럴 때도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고, 데려갈 때도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그러니까 이 신도는 스님을 못 믿어서 이러지만, 스님은 그 사람들을 믿기 때문에 그 사람이 미워해도 이유가 있을 거고, 칭찬해도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이런 게 우리가 사람에 대한 믿음인데, 우리 그렇게 잘 되요? 안 돼요? 안 돼. 그러니까 한 20년 결혼 생활한 남편도 누가 밖에서 전화 와서 당신 남편 어디 호텔에서 어떤 여자하고 나오더라.” 그러면 눈이 휘떡 뒤집혀 져버려. 그런데 길가는 전화 내용은 믿고 20년 산 자기 남자는 안 믿잖아. 그러니까 믿음이 없는 거요. 그런 얘기하면 알았어요. . 알았어요. 우리 남편 무슨 볼 일이 있었겠죠.” “아니라니까, 내가 방에서 나오는 거 봤다니까.” “알았어요. 그러면 내가 남편 오거든 확인해 볼게요. . 전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고 오면, 남편에게 물어보면 되요.

 

여보, 오늘 전화가 왔는데, 이런 이런 얘기를 하는데, 왜 이런 전화가 오지? 무슨 일이 있었니?” 그러면 이렇게 이렇게 얘기를 하면, “, 그랬구나. 그래도 당신 조금 조심해라. 사람들이 보면 오해하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해 줄 수가 있어야지. 그런데 그렇게 되는 여자 있으면 손 한번 들어봐요. 한번 들어봐. 아이고, 이래서 내가 결혼을 안 한다니까. 그러니까 남편 말을 더 믿어야지. 왜 길가는 사람 말을 더 믿느냐? 그리고 남편이 또 그렇다 하면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이게 단순한 우발적 사고면 용서를 해줘야 되고, 그 다음에 이게 약간의 내면에 그런 부족함이 있어서 그러면 채워줘야 되고. 이렇게 문제를 풀어야지, 반대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아까 저 거사님처럼 관계가 안 좋으니까 기도도 하고, 관계가 좋아지니까 애들하고 대화하기 위해서 여행도 마련하고 이렇듯이, 자꾸 노력을 해야지. 그러니까 애기 엄마는 어떤 애기도 제 엄마로부터 자라고 싶습니다. 이해하셨어요? 그것이 좋은 환경이든 나쁜 환경이든 관계없이. 그러니까 부부라도 우선권이 여자에게 있다. 아이는.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시어머니고, 내의 손자가 된다하더라도 나는 촌수가 훨씬 멀다. 그래서 간섭하면 안 된다.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돕고, 도울 처지가 안 되면 그만이지, 거기에 끼어서 관여하면 아이가 나빠진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자기가 정말 수행자라면 애기를 할머니한테 갖다놓고 나가면 아미타불이러고, 애기 키우다가 데려가겠습니다.”이러면 아미타불하며 돌려주고, 또 며칠 있다 데리고 오면 아미타불해서 또 키우다가 또 데려가면 또 주고, 그러면 아이한테 상처가 있을까? 없을까? 상처가 없어요. 그걸 갖고 싸우기 때문에 상처가 생긴다. 이걸 꼭 명심하셔야 되요. 질문자 알았어요. 자기 생각으로 하면 안 돼요. 자기 생각으로 살아서 지금 이렇게 문제가 많아졌다. “에이고, 내가 잘못 살았구나.” 처음에 반성을 해놓고 또 자기 생각대로 살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순리대로 해야 된다.

 

스님이 말한 게 이게 순리고, 지금 자기가 말한 건 자기 생각이오. 그건 순리에 역행하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또 더 나빠진 결과가 나오고, 10년 있다 또 후회해서 또 질문하는 이런 일이 생긴다. 기도를 하셔야 되요. 절에 다니시면 절을 하면서 아이고, 부처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지 새끼라도 살기 어려운 데도여자가 혼자 나가서 살려면 힘들어요? 힘 안 들어요? 힘들어도 지 새끼라고 데려가서 키우려니 부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절하고, 또 데려다주면 아이고 부처님 얼마나 살기 어려우면 지 새끼를 버리고 저러겠습니다. 아이고, 빨리 자리가 안정되기를 바랍니다.”이렇게 기도해 줘야 되요.

 

그러니까 지 새끼 버리는 거 짐승보다 못하다. 맞는데, 얼마나 지도 처지가 딱하면 자기 새끼를 버리겠어요? 자기 새끼 버리는 게 아무 느낌 없이 버리는 여자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버리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면 버리겠느냐? 이해해야 되고, 또 데려가려고 할 때는 기꺼이 돌려줘야 되고, 그런 마음을 내셔야 아이들이 잘 자란다. 그 혼란 속에서도 잘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