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6)

[법륜스님 즉문즉설 1203회]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Buddhastudy 2016. 7. 24. 06:14


 

 

행복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스님 말씀 공감하는데 만약에 기본적인 의식주나 자유가 박탈되는 상항, 가령 태어날 때부터 아프리카 난민이라든지 아니면 일제 강점기 때 핍박받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그런 상황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는 건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때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건지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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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경우에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거 맞아요. 그런 경우에도. 예를 들면 감옥에 갇혀 있는데 억울하다고 나가려고 하는데 가둬놓으면 괴롭겠지. 이왕지 들어왔는데 여기서 한 3년 명상이나 하고 가자. 이렇게 마음먹으면 어때요? 그 안에 사는 게 좀 편하겠지. 그러니까 마음만 먹으면 다 백프로 좋아진다. 이렇게 해석하지 말고, 똑같은 조건일 때는 마음먹으면 훨씬 더 좋아진다. 이렇게 이해하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겠죠? 예를 들어서 자기하고 나하고 둘이 어디 가서 실종이 되어서 일주일간 밥을 못 먹었다. 그러면 자기는 밥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밥을 못 먹으니까 굉장히 음식을 찾고 두려워하고 그럴 거 아니야. 그럼 스님은 밥을 먹을 수 있는 조건에서도 밥을 안 먹고 단식을 해 봤단 말이야. 최장 70일 까지. 그러면 만 20~30일 정도 굶어서 안 죽는다는 거는 아예 여러 번 해 봤으니까 알까? 모를까? 알겠지. 있는데도 안 먹고도 단식을 했는데, 없는데 굳이 찾아서 먹을 게 뭐가 있겠어? 그지?

 

그러니까 자기하고 나하고는 이 경우에 자기도 배고프고 나도 배고파. 자기도 두렵고 나도 좀 두렵지만 자기보다는 내가 훨씬 덜 두려울 거야. 똑같은 조건인데. 그러면 안 먹어도 사나? 그 얘기는 아니야. 그래서 두 가지, 같은 조건일 때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달라지고, 두 번째 조건이 바뀌면 또 좋아지고 나빠져. 똑같은 법륜스님인데 전쟁 통에 사는 게 나을까? 평화시대에 사는 게 나을까? 스님이 밥 못 먹어도 얼마정도는, 한 달은 버틸 수는 있지만 그래도 밥 못 먹는데 있는 게 편안할까? 밥 먹는데 있는 게 편안할까? 조건도 좌우가 돼. 그래서 두 가지가 다 관계가 있어.

 

그래서 내가 어떠냐? 내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르다. 요건 인이라 그래. . 직접적 원인이고, 내가 놓여진 처지가 어떠냐에 따라 다르다. 이건 연이라 그래. 그래서 인연이 만나서 뭐가 생긴다? 과보가 생긴다. 인을 우리가 식물에 비유하면 씨앗이야. 연은 밭이야. 그러니까 똑같은 밭이라면 종자를 어떤 종자를 심느냐에 따라서 곡식이 더 잘 될 수 있나? 없나? 있지. 똑같은 종자라면 밭을 더 잘 가꾸면 좋아지나? 안 좋아지나? 좋아지지. 그런데 요럴 때, 종자만 가지고 밭은 필요 없다고 말해도 안 되고, 밭만 가꾸면 되지 종자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고, 둘 다 관계가 있다.

 

그래서 인연이 만나서 과보가 생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 그런데 내가 만약에 콩 100개를 쥐고 자갈밭에 쫙 뿌려버렸어. 그래도 두 개는 살아. 콩을 기름진 밭에 확 뿌렸다. 그래도 두 개는 죽어. 그런데 요 두 개 살고, 두 개 죽는 거를 너무 강조하면 종교가 그래. “봐라. 자갈밭에 뿌려도 살 놈은 살지 않나.” “봐라. 기름 진 밭에 뿌려도 죽을 놈은 죽지 않느냐.” 이렇게 모든 책임이 다 누구한테 있다? 개인에게 있다. 이게 종교가 너무 편향적으로 간 거야. 그런데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면 자갈밭에 뿌렸을 때는 2개 살았고, 기름진 밭에 뿌렸을 때는 98개 살았잖아. 그지? 그럼 몇 배 살았다? 49배나 더 살았잖아. 그죠?

 

그러니까 환경을 개선하는 거는 중요한 일이다. 밭을 잘 가꾸는 거는 중요한 일이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면 반대로 밭만 가꾸면 되느냐? 사회만 잘 만들면 인간은 다 행복하냐? 이건 또 아니야. 왜 그러냐하면 인도는 가난한 나라지만 가보면 행복한 사람들이 있나? 없나? 미국은 부자나라지만 괴로운 사람 있나? 없나? 있지.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때 물질적으로 따지면 미국은 인도에 아마 한쪽은 천불이고, 만약에 5만 불이다 그러면, 50배 잘 살잖아. 그런데 행복의 척도를 계산하면 인도가 미국보다도 더 높을 수가 있어.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기 때문에 환경이 좋으면 좋다는 거는 맞는데, 그러니까 좋다가 아니라 좋아질 확률이 높다. 수행을 하면 행복해질 뭐가 높다? 확률이 높다. 수행하면 반드시 행복하다든지, 환경이 좋아지면 반드시 행복하다든지, 이렇게는 말 할 수가 없어. 이건 뭐하고 똑같나하면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요? 반듯이 그래요? 담배를 안 피우면 확률이 낮아요? 반듯이 안 걸려요? 확률이 낮아. 그러니까 우리는 이거 하면 걸리고, 이거 하면 안 걸리고, 이게 아니라, 확률이 폐암 걸릴 확률이 높으면 가능하면 안 하는 게 낫고, 확률이 나은 쪽으로 선택하는 게 낫잖아.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수행을 하고 또 동시에 우리 사회를 좀 더 아름답게 가꾸는 사회변화도 해 나가야 돼.

 

그런데 여러분들에게 내가 지금 가정을 부부 아까 예를 들면, 남편이 술을 먹는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남편이 너무 부부관계를 자주 요구한다할 때 내가 그 남자를 고쳐줄 수가 있나? 없나? 없지. 그럴 때도 그 처지를 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좀 낫나? 안 낫나? 그래서 오늘 하는 얘기는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좀 낫다. 열배 나아질 수 있고, 스무 배 나아질 수도 있다. 이런 얘기요. 그러면 마음만 먹으면 다 되느냐? 그렇게는 말 할 수는 없어. 그러나 환경도 동시에 개선해 줘야 돼.

 

그래서 수행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길이 성불이라고 그러고, 환경을 개선해서 좀 더 중생들이 편안하게 사는, 그런 세상을 뭐라 한다? 정토라 그래. 정토. 그래서 상구보리하고,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 이게 바로 성불과 정토를 함께한다. 이게 대승불교야. .

 

그런데 우리 사회운동은 개인은 놔놓고, 환경 운동할 때도 개인이 소비 욕구는 안 줄이고, 자꾸 댐 막지마라. 전기 원자력발전하지 마라. 이렇게만 주장을 하잖아. 그것도 맞는데, 또 반대로 나만 그냥 아껴 쓰면 된다. 이것만 갖고도 안 돼. 그러니까 제도적으로 바꿀 건 제도로 바꾸고, 또 우리 자신이 또 절약할 건 절약을 해줘야 돼. 그러니까 전에는 땜 막지마라. 이것만 했다면 앞으로는 땜 막지마라 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뭐? 물 아껴 쓰기 운동도 같이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해야 돼. 원자력 발전하지마라 그러려면 우리가 전기를 좀 아껴 써야 되나? 안 아껴 써야 되나? 아껴 쓰는 거와 요금을 좀 더 내는 거를 받아들여야 되나? 안 받아들여야 되나? 받아들여야 돼.

 

그러니까 그 요금 조금 적게 내고, 전기 좀 더 쓰려다가 원자력 발전 터지면 엄청난 재앙이 따라. 그러니까 가난할 때는 재앙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사는 게 중요하니까 그게 문제가 안 되었는데, 먹고 살만하면 뭐가 중요하다? 안전이 중요해지는 거요. 그러면 이게 가치기준이 달라져. 북한 같은 데는 원자력 발전이 갖는 위험이 중요할까? 전기가 중요할까? 그거는 원자력 발전이 아니라 뭐라도, 그 보다 더 위험해도 전기를 하자 그럴 거고, 독일 같은 데는 충분히 먹고 사니까 요금 더 내거나 이게 중요하나? 위험을 없애는 게 중요하나? 그러니까 그거는 원자력 발전이 있는 것도 없애자 그러고, 북한은 없는 것도 짓자고 그러고. 우리는 지금 중간쯤 끼었어.

 

그러니까 젊은 세대는 위험을 더 중요시하고, 나이든 세대는 경제효율을 더 중요시하고, 그러니까 고려원자력발전소가 수명이 끝났는데도 기성세대는 아니, 아직 쓸 만한데 더 쓰지 왜 그러냐?” 이러고, 젊은 세대는 위험하니까 문을 닫아야 된다. 또 가까이 있는 사람은 위험하면 자기한테 돌아오니까 부산, 울산 사람은 닫아야 된다. 우리는 서울이나 강원도 멀리 떨어져있으니까 좀 더 쓰면 어때? 이게 또 인간이 이해관계, 세대로, 또 가치관으로 지역으로 또 이해가 달라지는데, 이걸 조사를 하면 반반 되니까 시끄러운 거요. 이게 좀 더 잘 살아지면, 시간이 좀 흐르면 반대가 더 커질 거고, 1020년 전에는 찬성이 더 많았을 거고. 지금은 중간한 거요.

 

우리나라는 반대하면서 외국에 또 파는 건 찬성하잖아. 굉장히 잘했다고 또 그러잖아. 모순이에요. 우리 인간들이. 그런데 이런 것도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고 절대적으로 나쁘고 이런 게 없어요. 우리가 놓인 처지에 따라 어떤 때는 선으로 보이고, 어떤 때는 악으로 보이는 거요. 그래서 어떤 가치관을 절대선 절대악으로 보면 원리주의자가 되는 거요. 항상 그것은 인연을 따라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