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우학스님의 금강경 10_7. 정교와 사교, 법인. 생즉애

Buddhastudy 2017. 4. 27. 19:35



152페이지, 이 존중정교거든. 정교. 중간에 보면 우리들이 정교와 사교를 구분한다. 이랬잖아요. 정교와 사교. 보입니까? 정교와 사교, 정교는 바른 가르침, 바른 종교이고, 사교는 삿된 가르침 삿된 종교를 사교라 말합니다. 그러면 불교적 입장에서는 무엇을 정교라 하느냐 이거죠. 무엇을. 그래서 이것이 정교다. 이것은 분명한 정교의 잣대하고 탁 도장 찍듯이 해놓은 것을 법인이라고 말해요 법인.

 

이것은 초하루법문 때 말씀을 잠시 드린바가 있어요. 법인. 그래서 이 법인에는 사법인 또는 삼법인이 있는데, 고 밑에 한번 봐요.

 

제행무상. 모든 존재는 다 무상하다는 겁니다. 모든 존재는 다 무상하다. 참으로 무상합니다. 무상하니 안 하니는 자기 얼굴을 거울 꺼내놓고 봐봐요. 무상한지 안하는지. 무상하지요.

 

두 번째 제법무아라. 제법무아라. 모든 존재는 다 무아더라. 무아. 나라고 할 만한 영원한 실체는 없다. 이 말입니다. 이 말에는 공간적으로도 그렇고, 시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무아입니다. 무아. 모든 존재는 다 무아라.

 

그래서 세상이 무상이고 무아인데,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즉 이 현실원리를 자각하지 못하면 고통이 따라와요. 일체개고라 그래. 일체개고 일체개고.

 

그런데 이 제상이 무상이고, 무아인 것을 잘 긍정적으로 잘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그 자체가 평온하고, 그러한 자리를 열반적정의 자리다. 열반적정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 열반적정. 즉 중도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열반적정. 그러면 보통 삼법인이라 하면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열반적정의 삶, 중도적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아래 보면 제법무아와 제행부상의 현실원리를 자각하고 역동적이며 창조적 삶을 살아야 한다. . 아주 중요한 말이네. 그게요. 이것을 보통 우리가 생활 속에 적용한다면 무상이고 무아임을 늘 받아들이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면 더우면 , 덥겠거니이렇게 생각을 해야지, “덥다. 더워서 죽을 지경이다.”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는 거죠. 춥다 해서 , 오늘 날씨가 참 추운 날씨네. 겨울이니까 춥지.”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그것도 남편이 한대 때리면 저 사람이 힘이 좋으네.”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남자입장에서는 우리 거사님들도 더러 계시는데, 여자가 막 바가지 긁으면 아이고 또 본색 나오네. 본색 드러나네.”이렇게 생각하면 그만이라. 그게.

 

또 자식이 속 썩이면 어떻게 해요? “, 자식도 남이다. 스님이 늘 그러데. 자식도 남이라 하더니, 아이고 그래, 내가 실수해서 하나 낳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요. 그럼 마음 편안해져요. 아무튼 우리는 제행무상이고, 제법무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인생이 재미있다.

 

그래서 그 뒤페이지 봐봐요. 154페이지.

인생은 사랑이다.

생즉애라.

불교적 애라 이 말입니다.

 

그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인생은 사랑이다. .

생즉애는 발달된 대승불교의 실천철학이다. 자기 존재를 무로서, 주변의 이웃이나 자연 우주에 용해시킬 때, 거기서 열반은 확연하게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는 본래 하나이며 진리는 본래 차별이 없는 것이다. 그랬고, 그 아래에 중간에 것은 읽어보시고,

 

상행무념지심하면_늘 무념의 마음을 행하면

즉위희유지법이니_곧 희유한 법이 되나니

항하사의 제불이 체개동이다_무량한 부처님이 체가 다 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