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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10_4. 어두운 과거를 숨기고 지내야 하나요?

Buddhastudy 2017. 8. 10. 21:06


 

이분은 아마 제가 듣기에는 불자가 되기 전에는 그렇게 건전한 삶을 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불자가 되면서 다시 태어난 거겠죠. , 내가 불자가 되었으니까 부처님의 계율에 어긋나지 않도록 살아야 되겠다. 그리고 이 좋은 도반들과 생각을 함께 섞어서 봉사도 하고 기도도하고 멋지게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과거를 되돌이키지 않고 현실 속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요.

 

주변사람들이 그를 칭찬했겠죠. “넌 참 착하구나. 넌 참 모범청년이야. 넌 참 훌륭한 사람이야.” 이렇게 말해줄때 본인은 과거에 부처님 만나기 전에 행했던 모든 순간순간들이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참 착하신 분이신 것 같아요. 그렇죠? 사람은 이 부처님 이 사바세계에 오신이유는 옳지 못한 중생을 옳게 가르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에요.

 

그래서 마음하나 바뀌면 새롭게 태어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 게 뭡니까? 순간순간 잘못된 마음을 바꾸어서 지금 이 순간부터 바르게 살겠다는 마음을 내는 순간에 이미 그는 딴 인격이 되는 거거든요. 이게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과거를 이어 원죄를 묻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이 순간, 내가 한 순간 바꾸면

모든 죄를 바꿀 수 있는 게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비유컨대 천년동안 한 번도 빛이 들어가지 않은 암흑의 동굴이라고 하더라도 성냥 한 개비면 훤한 동굴을 만들 수 있듯이, 내가 마음 밭에 번뇌가 가득차서 오직 업을 짓고 사는 중생이었지만 부처님 만나는 한순간에 그것이 아니라고 포기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기 시작한다면 이는 진리를 통한 한 살의 나이를 가진 또 다른 인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는 불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과감하게 부끄러운 과거라고 하더라도 단절시키면

그로서 나는 새로운 인격이 되는 겁니다.

절대 과거에 매몰 될 이유가 없어요.

오늘 내가 무엇을 할 건가가 중요한 거지,

과거에 내가 뭐였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뭐라고 하는 것은 절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옛날에 부처님 당시에 유명한 앙굴리말라라고 하는 부처님 제자가 있었습니다. 이 앙굴리말라는 99명 사람의 생명을 살해한 살인자였습니다. 그 앙굴리말라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99명을 죽인 게 아니에요. 잘못되어진 진리를 만나므로 인해서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마가 된 거죠.

 

원래 앙굴리말라라는 사람은 출가 전에 아힘사까라고 하는 아주 능력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진리를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스승을 찾아 나섰다가 한 스승을 만납니다. 그 스승의 문하에 들어가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출가를 했지만, 그 스승문하에서 최고의 실력이 있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아주 모범적인 스승의 제자가 되었던 거죠.

 

스승의 아내가 볼 때 참 훌륭한 청년입니다. 잘생겼어요. 근육도 멋졌습니다. 모든 부분에 앞서가는 스승의 제자 아힘사까를 바라보는 순간에 스승의 아내는 그 아힘사까에게 뭐가 일어났냐? 색심이 일었습니다. , 아힘사까를 사랑하자. 그래서 아힘사까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집니다. “당신 참 멋집니다. 당신 참 잘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아힘사까의 눈에 들려고 온갖 짓을 다하지만, 아힘사까는 오직 그 여인에게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 “나는 진리를 찾았을 뿐이지 결코 색정에 눈이 먼 사람은 아닙니다.”라고 거부를 했습니다. 여러분, 애정이 심하면 증오가 만들어진다는 얘기 이해됩니까? 내가 너무 좋아하는데 상대가 좋아해주지 않으면 미운생각이 들어요? 안 들어요? 들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 스승의 아내는 그 아힘사까가 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기회가 오기를 갈구하다가 어느 순간에 스승의 무리가 멀리 호연지기를, 훈련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 남편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량을 지키지 위해서는 아힘사까 같은 능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니, 이 사람을 여기에 놔두고 나머지 사람들만 데리고 수련을 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스승은 자기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그럴 수 있겠구나. 그래서 아힘사까와 스승의 아내만 도량에 남고 전부다 수련대로 떠납니다. 그 수개월 수련을 간 동안에 이 스승의 아내는 노골적으로 애정표현을 합니다. 아힘사까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을 하는 거죠. 수개월이 지나고 난 이후에 승의 무리가 귀향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때 스승의 아내는 본인 스스로가 머리를 산발하고 몸에 상처를 내고 겁탈을 당한 것처럼 위장을 합니다. 스승의 무리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스승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아힘사까가 알고 봤더니 정말 나쁜 놈이더라. 당신이 자리를 비우고 난 후에 끊임없이 나를 겁탈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그를 저항하기 위해서 상처가 남았다.” 저놈은 정말 나쁜 놈이라고 모함을 했습니다. 스승은 아힘사까가 비웠습니다.

 

그렇지만 그 아힘사까를 힘으로 제어하거나 본인의 능력을 제어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은 아힘사까를 부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잘못되어진 진리를 가르칩니다. “너는 이제 내가 가르칠 모든 부분을 다 받았다. 내가 너한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한 가지 관문만 남았는데, 그 관문은 99명의 사람의 목숨을 죽여서 그 사람들의 손가락을 잘라 100개의 목걸이를 완성하는 순간에 너는 이 세상에 더 없는 깨달음의 주인공이 될 거다.”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의심하지 않았던 아힘사까는 그때부터 사람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99명을 죽이고 마지막에 사람을 찾아보니까 무서워서 다 도망을 가서 주변에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 자기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 목숨을 노립니다. “어머니, 당신의 목숨을 내게 주신다면 내가 원하는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죽는다면 그것도 헛된 죽음은 되지 않을 테니까 죽어 달라.”는 쪽으로 어머니를 향해서 죽이려고 다가갑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신통력으로 그를 바라다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를 향해서 갑니다. 주변에 있는 많은 제자들이 말립니다. “부처님 그 곳에 가면 죽습니다. 그곳에 살인마 앙굴리말라가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절대가면 안 된다.”고 만류했지만, 부처님은 아힘사까가 있는 곳에 가서 유유히 걸음을 걸어갑니다.

 

그때 아힘사까는 너무 반가운 발자국 소리를 들었습니다. ? 자기 어머니를 대신해줄 수 있는, 대신 죽어줄 수 있는 한 남자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남자를 행해서 뜁니다. 그렇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고, 항상 그 한 남자인 부처님께서는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앙굴리말라가 큰소리로 말합니다. “거기 서거라. 제발 좀 서라.” 이야기를 할 때 부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셨냐하면 나는 항상 이 자리에 있느니라. 단지 너의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참 멋진 말씀이시지 않습니까. 나는 결코 도망을 가는 것도 아니고, 나는 급할 것도 없는 사람이 나는 목적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사람이다.

 

그래서 내 마음은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느니라. 그런데 단지 네 마음이 급할 뿐이다. 이 얘기에 아힘사까가 딱 맞는 소리를 듣습니다. “, 이게 무슨 소리일까?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일까?” 그 진리어린 한 말씀에 앙굴리말라가 당신은 누굽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나는 여래니라. 진리는 이런 것이다. 사람의 목숨으로서 해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없느니라. 이런 설법을 쭉 하십니다.

 

그때 아힘사까가 당신은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당신을 일찍이 만났다면 내가 이런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았을 텐데. 너무 늦게 만난 내가 아쉽다.”는 표현을 하면서 부처님, 어차피 저는 버린 몸입니다. 어차피 죽어질 목숨이오니 저를 위해서 죽어주십시오.” 그때 부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하면 그렇지 않다. 앙굴리말라야. 지금 이 순간 너 마음을 바꿔 진리에 가까이 다가온다면 너는 한사람도 죽이지 않은 또 다른 인격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 마음을 바꾸어라. 마음을 바꾸는 그 순간에 너는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러면서 아까 말씀드렸던 여기 수백 그루의 볏짚이 있다고 치자. 그 볏짚을 태우는 데는 몇 개의 성냥이 필요하냐?”라고 묻습니다. 수백 수천 차에 이르는 볏짚이 있다고 칩시다. “그 볏짚을 태우는 데는 수천 개의 성냥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한 개비의 성냥이면 그 수많은 볏짚을 태울 수 있듯이, 네가 가지고 온 모든 번뇌 또한 그렇다. 네가 지은 업 또한 그런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에게 머리를 깎고 제자가 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는 앙굴리말라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넌 지금부터 소리쳐라. 나는 부처님을 만난이후에 한 사람도 죽인 일이 없다. 난 한 사람도 죽인일이 없다고 고함쳐라.” 왜냐? 그는 이미 부처님의 제자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업 안 짓고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죄 안 짓고 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부처님 진지를 만난 이 순간부터 다시는 없을 짓지 않겠다.”라고 마음내고 그 마음 내는 행위를 이어가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새롭게 태어난 인격이라고 생각하시고 열심히 노력해 가시는 불자들이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