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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39_7. 붓다로 가는 길 (스스로 생명을 늘린 록펠러)

Buddhastudy 2018. 2. 7. 20:35


요즘 월도스님의 즉문즉설이 밴드에 올라와서 지금 참여하고 있는 인구가 2700명 정도가 되었어요. 점점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밴드에 들어가 보면 정말 우리 불자님들이 제가 하는 법문보다 더 귀한 내용들을 많이 올려주고 계세요.

 

오늘 아침에 어떤 불자가 귀한 내용을 하나 올려놨는데 이 부분을 오늘 제가 법문을 좀 하고 싶어서 말씀을 드립니다.

 

미국에 유명한 록펠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록펠러라고 하는 사람은 33살에 백만장자가 됩니다.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죠. 그는 44살에 미국의 최고의 부자가 됩니다. 백만장자를 뛰어넘어서 세계에 가장 큰 부자가 되는 거죠. 이런 엄청난 부자가 되고 난 이후에 그는 55세에 희귀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불치병으로 병원에 갔는데 병원의사가 뭐라고 이야기를 했냐하면 1년 밖에 못산다고 얘기해요. 1년 후면 죽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록펠러가 그 진단을 받고 난 후 휠체어에 앉아서 본인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는데 곧 죽는데요? 안 죽는데요? 너무너무 절망스러웠던 거예요. 돈이 많으면 뭐해? 죽는다는데. 그래서 55에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상황에 처해서 휠체어에서 절망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절망을 하고 있는 그 순간에 액자가 하나 눈에 탁 들어와요. 뭐라고 적어 놨느냐하면

 

이 세상의 행복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다.

 

이렇게 나와 있어요. 우리가 살다보면 받을 때 좋아요? 줄 때 좋아요? 사실은 보면 받을 때도 좋아. 그런데 그 받는 것 보다 줄 수 있는 게 더 좋은 거예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대게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왜 나만 갖고 나한테만 달라고 그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달란다고 하는 것은 줄게 있으니까 달라고 그러지. 줄게 없으면 달라 소리를 안 하겠죠. 그 만큼 여유가 있다고 얘기가 될 수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행복한 겁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달라고 그럴 때 줄 수 있으면 행복한 거예요. 줄 수 없는 게 문제인 거죠.

 

그래서 이 록펠러가 보니까, 글귀가 있는데,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게 행복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게 참 맞는 이야기다. 그 글귀를 보고 있는 순간에 왁자지껄하며 병원 창구에서 소란이 일어났어요. 소란이 일어난 내용을 가만히 보니까 어떤 아이가 병원에 입원을 하려고 그러는데 돈이 없어서 입원을 못하고 있는 거예요.

 

울며불며 부모는 입원을 시켜달라고 난리고, 병원에서는 안 된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자기의 직원을 시켜 몰래 병원비를 지불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비밀리에 병원비를 지불을 합니다. 이 록펠러는 기분이 좋았을까요? 안 좋았을까요? 세상에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록펠러는 자기의 자서전에 자기 평생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바로 그 아이에게 이름 없이 내가 병원비를 준 일이고, 그 어린 소녀가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미소 짓는 그 모습에 세상의 모든 근심을 다 잊어버려서 그 희귀병, 그 불치병이 싹 나아서 몇 살까지 사느냐 하면, 98까지 살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생명을 늘리고 줄이고 하는 것은 행복한 겁니다. 행복은 누군가에게 얻는 행복보다는 누군가에게 주는 행복이 이렇게 행복하답니다. 모쪼록 여러분, 보시 많이 하시되, 그 보시를 할 때는 그냥 바라는 마음이 없는 무주상보시를 해야 되는 겁니다.

 

록펠러라고 하는 사람이 그 병원비를 대주면서도 결코 누구라고 알리지 않았던 그 기쁜 마음이 본인 스스로를 행복하게 했고, 그 행복이라고 하는 부분은 불치의 병을 해결할 수 있는, 그래서 생명을 이어가는 결과를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가피는 반드시 도량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마음을 누군가에게 보시하는 마음으로 보살행을 실천했을 때, 우주공간 어딘들 존재하는 것이 가피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좋은 일 많이 하시고, 보시 많이 하셔서 영원한 행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두서없는 법문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