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0)

즉문즉설_법륜스님(제332) 문제아이 지도하기

Buddhastudy 2010. 7. 29.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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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선택이다. 어차피 내가. 내가 원하는 일을 다 할 수도 없고. 다 이룰 수도 없고. 또 그 뿐만아니라. 남이 원하는 것을 내가 다 해 줄 수도 없습니다. 이게 삶의 현실이다 이거야. 현실은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적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도 매우 적은데. 이 머리 속에서 그리고 있는 상상이 할 수 있는 일도 매우 많은 것 같고. 또 해 줄 수 있는 일도 매우 많은 것 같은 착각. 또 그래야 된다는 착각을 우리가 하고 있기 때문에. 인생살이가 가볍고, 기쁘고, 재밌고 그렇지가 못하고. 항상 무겁고, 힘들고 그렇다 이 말이오. 그래서 제가 선택이다 이렇게 말하는거요. 많은 일 가운데에서 내가 어느 부분을 선택해서 하는 거고. 내가 원하고자 하는 것도 많지만. 그 가운데도 선택해서 해야 되는거고. 또 내가 원한다고 이루어지지 않아요. 이루어지는 것도 내가 원하는 것 중에 몇 개만 이루어져요. 이루어지는 건 선택이 아니에요. 노력 하는 건 선택인데. 또 사람들이 나한테 원하는 건 다 해 줄 수가 없고. 그 중에 선택해서 할 수 밖에 없어요.

 

이럴 때 여러 분들이 어떻게 하면 잘 선택 하느냐?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하거든. 잘 선택한다는 것은 이익을 극대화 시키거나 효율을 극대화 시키는 사고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선택에 잘했다, 잘 못했다가 자꾸 생긴다. 그런데 선택을 할 때 너무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불교적으로 말하면 인연 닿는데로 그냥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되. 그래서 지금의 문제도 선택을 하고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되요. 그러면 이 아이를 아이가 조사를 해 보니까 생모로부터 사랑도 못받고. 또 양모로 부터도 사랑을 제대로 못받고.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면 심성이 좀 삐뚤어졌다. 세상 누구도 못 믿는다. 그래서 제 맘대로다 하자. 그럼 이 아이를 내가 엄마가 못 준 사랑. 양모가 못준 사랑을 내가 줄 수 있겠느냐? 이걸 내가 선택을 해야 된단 말이오. 선택을 했으면 이 아이는 벌써 배신을 몇 번 당했는데. 내가 또 정을 줘 놓고는 또 배신을 한단 말이오. ? 책임을 못져서 버리면 아이가 볼 때는 배신이란 말이오. 책임의 문제요.

 

손을 꼭 잡아 줬으면 꼭 잡아 준거에 대한 책임을 지겠느냐 이거야. 그러니까 책임도 못지면서 일을 벌리면 나중에 그 아이에게 도로 또 한 번의 상처를 주게된다. 고치든 못 고치든 관계없이. 못 고치더라도 누군가는 그 아이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있어야 될거 아니냐. 못 고치더라도. 그럼 못 고치고 말썽꾸러기 아이도 누군가는 그를 따뜻하게 돌봐주는 사람이 한 사람쯤 이 세상에 있어야 안되겠어요? 그러니까 내가 그걸 돼 줘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 한다면 크게 문제가 없죠. 그런데 문제는 지금 애를 고칠려고 하잖아. 야단을 치면 고칠까? 따뜻하게 해 주면 고칠까. 어떻게 고칠까 하잖아. 애는 그냥 생긴대로 놔 좋고. 다른 사람은 다 그걸 보고 짜증을 내고 미워하고 성질 내고 난리인데. 난 딴 건 못해주더라도 애를 그냥 그런 아이도 내가 따뜻하게 감싸주는 사람이 되야 되겠다.

 

이렇게 결정 해 버리면 어려운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이렇게 해서 하다가 보면 자꾸 방법이 생겨.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우선 애한테 내가 들어주는. 아이 얘기도 들어주고. 어떤 사고를 쳐도 애 편이 좀 되어 준다. 잘 했다 이 말이 아니에요. 그걸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일단은 너 잘했다 두둔해 준다는 게 아니라. 일단은 오도갈데가 없는 사람을 내가 포용해 준다. 그런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임하면서 애가 무슨 일이 있을 때 선생님한테는 선생님은 자기편이구나라든지. 자기를 내치지는 않는 사람이구나. 자기를 막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내치지는 않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자기를 아끼고 사랑해주기를 원하는게 아니라. 하도 사람들이 내치니까 내 칠거라고 미리 짐작한단 말이오. 그러지만 않아도 애가 조금 감동을 느끼지. 그렇게 해서 이거는 하면서 방법을 그렇게 하면 아 이건 어떻게 얘기 하면 되겠다라든지.

 

그런데 항상 마음에서 조급해져. 희망이 약간 보이면 야 이렇게 고치면 되겠다 이런 생각하면 안 돼. 고칠 생각을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라도 내가 좀 수용해 줘야 되겠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편하죠. 아까 얘기한데로 수업시간에 떠들면 앞에 나와 가지고 가끔 발언도 시켜도 보고. 또 끝난 뒤에 얘기도 한 번 나눠보고. 그러니까 네가 수업시간에 떠들었기 때문에 벌로, 자꾸 이렇게 하면 힘든다는거요. 할 말이 많구나. 나와서 한 번 해 볼래? 둘 이가 얘기하면 둘이 나와서 한 번 해 봐라. 혼자서 떠들면 혼자 나와서 해 봐라. 또는 끝나고 아까 할 얘기 많던데 선생님하고 얘기 좀 해 볼까? 무슨 얘기냐? 이렇게 얘기도 해 보고.

 

이제 그것이 만약에 이렇게 해보고 지나치다 싶으면 교장선생님하고 의논하면 되잖아. 이 아이가 조는것도 아니고. 공부하라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수업시간에 계속 떠들어서 전체 수업을 진행을 내가 좀 할 수가 없는데. 교장선생님이 내 수업할 동안에 이 아이 개인지도 좀 해 주십시오. 요렇게 요청하면 되지. 이렇게 요청을 한다든지. 어쨌든 방법을 찬찬히 연구를 해 보면 되는데. 거기 마음에서 이 놈이 나쁜 놈을 어떻게 해야 되나. 자꾸 이런 생각하면 그 아이가 피해 입는다는 게 아니라.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거요. 그러니까 그걸 외면 하라는 게 아니라. 해보고 또 질문하세요.